구약의 ‘히다’와 ‘마샬’의 관계는 시편 78:2에서 밝히고 있다. 기록된바 “내가 입을 열고 ‘비유(마샬)’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히다)’을 발표하리니(아삐아, 1인칭, 미완료)” 하였다.
1) 마태는 자신 안에서 발견한 구약의 히다를 감추인 크룹토로 표현하였다.
마태 사도가 이 말씀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내가 입을 열어 ‘비유(파라볼레)’로 말하고 창세로부터 ‘감추인 크룹토를 드러내리라(에류코마이 1인칭)(마 13:35)” 하였다. 마태 사도는 자신 안에서 발견한 구약의 히다를 ‘감추인 것(크룹토)’으로 의역하였다. 이처럼‘ 히다(크룹토)’는 반드시 내면에서 ‘파라볼레(비유, 속담)’을 통하여 드러낼 때만 성경 말씀의 참뜻이 열린다.
이를 벗어난 번역은 모두 하나님 말씀이 아닌 거짓된 견해가 되는 것이다. 특히 밖에서 들은 것, 배운 것 등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창세기부터 기록된 모든 내용(기록)은 감추인 히다(파로이미아, 크룹토)로 된 말씀이다.
2) 감추어진 히다를 드러내려면 오역한 창세로부터를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자신의 마음 밭을 개간)'가 선행되어야 한다.
감추어져 있는 히다(크룹토)를 드러내려면 반드시 ‘창세로부터’로 오역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자신의 마음 밭을 개간)’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비유(파라볼레)는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자신의 마음 밭을 개간)를 통해서 모든 히다를 밝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천국의 비밀(뮈스테리온)을 언제나 ‘파라볼레(비유)’를 통하여 밝히셨다. 그것은 구약에 ‘히다’에 해당하는 파로이미아와 크룹토(비사 비유 숨기다 감추다)를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히다’ 곧 ‘파로이미아’와 ‘크룹토’가 성경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더는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이며, 세상의 학문적인 지식이요, 철학이요, 교훈서에 불과한 종교 서적이 될 뿐이다.
이 관계를 놓치면 성경 전체의 의미를 놓치고 마는 것이며, 성경 말씀이 아닌 엉뚱한 이야기로서 바로 역사서나 소설이나 동화책 이야기가 하나님 말씀으로 변질되게 되어 있다. 이 관계를 제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성경 말씀을 여는 지름길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