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을 오르며
2015년 11월 08일 09시 36분에 9호선 가양역 3번 출구에서 위짜츠 보사그 씨모으 까토나 네명이 만났습니댜. 모처럼의 단비가 지난 금요일 부터 내리기 시작하더니 일요일 아침 지금도 가랑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조단스는 오늘 비가 온다고 집에서 숨 안 쉬고 TV와 동침하겠답니다.
비가 내리면 " 숨 안 쉬고 잠도 안 자며 밥도 안 먹냐 ?"고 면박을 주는 까토나의 일성을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을 아는듯 비는 어느새 잦아 들었습니다. 간밤에 내린 비로 강물이 부풀고 바람에 파도가 일렁입니다. 한강을 따라 걷고 있는 늘걷회 회원들의 마음도 어찌하여 일렁이는지 모릅니다.
가양대교를 뒤로 하고 마곡철교 밑을 지나서 방화대교를 통과하여 행주대교로 올라섭니다. 행주대교가 세개가 나란히 전개됩니다. 오른 쪽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대교였으나 입구를 막아 놓았습니다. 왜 막았을까 멀쩡한 다리 같은데 사람이라도 통행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해 봅니다. 우리가 걷는 대교는 가운데 위치하며 강서에서 일산 방향으로 진행하는 다리입니다. 그리고 그 왼편에는 일산 쪽에서 강서 방향으로 진행하는 다리입니다. 이처럼 세개의 다리가 나란히 각기 다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의 중간 정도 쯔음에 다다르니 오른 쪽의 교량의 상판이 100여 m 정도 소실되어 있습니다. 이 때야 다리 입구를 막아 놓은 이유가 풀립니다.
다리 자체가 노후되어 통행 자체가 위험하다고 미리 철거를 했는지 아니면 상판 붕괴의 사고가 났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1994년도 10월 21일에 일어났던 성수대교의 붕괴 사건이 연상됩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하던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수장(水葬)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습니다. 그 다음해 1995년 6월 29일 저녁에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1400여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다치고 실종되는 믿을 수 없는 사고가 또 터졌습니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과 정부 당국의 관리 감독 부재는 애꿎은 서민들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그 이후로도 입에 담기도 지겨울 만큼 예상키도 힘든 안전 사건 사고가 수 없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저 다리 아래로 굽이쳐 흐르고 있는 물줄기를 말없이 바라보며 인간 경시(輕視)의 끝은 어디일까를 잠시 상념에 잠겨 봅니다.
저 만치 앞서 가는 벗들의 뒤를 급히 서둘러 쫒아 갑니다. 어느새 행주 산성 입구에 즐비한 먹거리 마을을 지나쳐서 산성에 있는 권율 장군 앞에 섭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애국지사나 열사,의사등의 동상 앞에 서면 내 스스로가 한 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곤 하는 마음은 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국가의 발전이나 민족의 영광을 위하여 몸바쳐 헌신한 것이 없음에 자괴감에서 나오는 한탄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국가와 민족에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하는 존재의 미안한 마음이 아닌가로도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이 손 마이크를 쥐고 학생들에게 행주 산성의 유래와 권율 장군의 위업을 열변을 토하듯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설사 선생의 말소리를 귀로 흘리며 충장사와 대첩비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오르는 언덕 주위로 노오랗고 새 빠알갛게 물이 들은 단풍잎이 황홀하리 만치 아름답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소풍이라도 온 듯이 연거푸 스마트폰 샷다를 전공노의 엉거 주춤한 폼을 잡습니다.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에서 향불로 경의를 표하곤 대첩비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오릅니다. 대첩비는 보수 수리 공사중으로 잠시 바라보며 지나갑니다.
뒤편의 나무 계단을 내려 가며 새로 복구한 토성을 밟아 갑니다. 이곳의 이름이 행주산성이라고 일컫게 된 것도 행주치마에 돌멩이를 담아 나르던 밥집 할머니로 부터 연유된 것이라 합니다.
왜놈들과의 수년간에 걸친 전투에서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더불어 행주대첩을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로 평가하게 된 것도 이러한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기와 양식도 바닥이 났던 최악의 상황에서 권율장군에게 행주대첩이라는 승리를 안겨 주신 어머니들의 위력과 희생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어쩌면 세계 역사는 여성들 특히 어머니 품속에서 부터 이루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려오는 계곡마다 노오랗고 빠알간 단풍나무 숲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산객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산성 입구로 내려와 먹거리 마을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그렇게 많은 식당들이 있지만 마땅한 회식 장소를 물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생각 이상으로 가격만 비쌀 뿐입니다.
장어를 먹고 싶다는 보사그의 하소연으로 전에 한번 가서 먹어 보았던 불광역 근처의 장어집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예상보다 밑반찬과 채소가 여러가지로 깔끔하고 먹음스럽습니다. 장어는 주방장이 직접 숯불에 구워서 차려줍니다. 자신이 직접 굽느라고 매연에 휩싸이지도 않으며 구이 맛도 담백하며 고소합니다. 가격도 행주산성의 거의 반값으로 기분 좋고 맛있게 푸짐하게 먹습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거푸 거푸 완샷의 권주가가 터져나옵니다.
또 한번의 쏘맥 2차를 거치고 금기시 하는 3차까지 안국동으로 자리를 옮겨서 마십니다. 오가는 술잔 위로 서로의 잘 잘난 주장과 의견이 부딪치기도 합니다.
역시 사람사는 세상은 친구뿐 아니라 부모 형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삶에 대한 철학과 보는 관점이 서로가 다릅니다. 각자의 생각대로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만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만족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사회가 발전이 있을 것이며 다양한 목소리와 주장으로 하여금 더욱 성숙한 민주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이 지구상의 인구 70억명이 똑 같은 인생관,동일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고 가정을 해봅니다. 그러면 엄청난 혼란과 재앙이 따를 것이며 지구 자체가 아수라장으로 인간의 삶은 멸망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거나해진 기분을 만끽하며 전공노가 되어 마지막 요새(要塞)인 아내의 치마 품속으로 골인합니다.
늘걷회 친구들 !
오늘 밤 꿈속에서라도 돌멩이를 행주 치마에 힘겁게 담아 나르던 밥집 할머니를 만나봄이 어떠리요
20151111 청원 약국에서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