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의 세상살이는 그야말로 쪼다같다. 아버지가 시켜서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갖고 살아 왔을 뿐. 잦은 출장은 치료하지도 못하는 불면증을 만들어 내고 일용할 양식은 일회용 버터와 일회용 설탕뿐 이런
넌덜머리 나는 생활에 못 견뎌서 자신이 탄 비행기가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는 상상을 해보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죽음을 돈으로 계산해버리는 자신
마저도 돈벌레임을 보여줄 뿐이다. 잭에게 노동이 즐겁지 않은 것 같다. 무슨 일이든지 즐기면서 할 때 의미가 있다는 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야 자신을 발전시킬 수도 있고 삶의 활력이 될 수도 있다. 잭에게서 이런 모습은 찾아 보기 힘들다. 모던 타임즈의 찰리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죽지 못해서 하는 노동, 억지로 하는 노동일 뿐이다. 잭에게서 노동의 의미를 빼앗아 간 건 무엇일까?
소비문화는 이 시대
대중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것 같다. 끊임없이 발달하는 기술은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을 만들어 낸다. 요즘 최신형 핸드폰을 한 번 봐라.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고 다재다능한 기능은 웬만한 컴퓨터 하나 부럽지 않다. 정말이지 보기만 해도 입이 쩍하고 벌어질 정도다. 또 얼마나 좋은 상품들이
많은가. 셀 수 조차 없는 상품의 종류하며, 색상과 디자인은 또 어떻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품을 꼭 필요해서 사는지는 의문스럽다.
상품광고에 현혹돼서 남이 가지고 있으니까 또는 자기만족에.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잭도 소비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어 보인다. 근사한 아파트에
가득 채운 가구들. 최고급 오디오. 거기다가 최고급 목욕가운. 잭이 집안 가득한 물건들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써보기나 했는지 아니면 그 많은
가구들이 직장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잭이 소비를 통해서 기쁨을 얻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소비중독증에 걸려 있을 뿐이다.
이 시대는 사람의 몸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몸짱 열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일게다. 몸을 지키고 건강하게 살겠다는데, 자신감 좀 가져보고 개인
경쟁력 좀 키우겠다는데 뭐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자기 몸 가꾸고 멋진 몸 만들어서 어깨 으스대며 돌아다니는 건 그네들 자유 아닌가. 그런데
잭의 말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근육질 몸이, 미끈한 몸매에다가 관능미 넘치는 탱탱한 젖가슴이 정말이지 남자답다거나 여자답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안하지만 내 눈엔 농장에서 사육되는 가축떼들처럼 보인다. 34-24-36 환상적인 몸매를 만들려면 자기자신을 얼마나 절제해야
하는지는 잘 안다. 그런데 사람의 다리 굵기나 길이를 수치화 한다고 남자답다거나 여자답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멋진 몸 한 번 만들려면
밥처럼 호르몬 주사까지 마다하지 말아야 하다니. 그 야만스러운 짓이란. 꼭 몸이 아니더라도 남자나 여자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문득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텔레비전에서 내보내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시챗말로 하나같이 쭉쭉빵빵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텔레비젼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나 일반 대중들의 의식이 시퍼렇게 멍들 수 밖에. 그래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름대로 문명인이라고 자부할테지만 삶의
근본문제들 예컨대 전쟁과 평화라든지 인간해방이나 인권문제 등에 너무 무감각 한 것은 아닌지. 정말로 하나같이 모두들 욕망에 노예들이 된 것은
아닌지 우울할 따름이다.
잭은 직장에서 무기력 한
삶과 세상에서 쪼다 같았던 삶을 내던져 버리려고 파이터 클럽을 만든다. 주먹질로 상대를 두들겨 패고 때려 눕힌다. 흠씬 두들겨 맞은 얼굴은
피범벅이다. 파이터 클럽에 모여든 사람들은 주먹질에 끊임없이 환호성을 질러댄다. 주먹질이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선지 아니면 기존
사회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일상에서 무기력하게 살던 사람들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에게서 살아있다는
어떤 생명력도 읽어 볼 수 있다. 테일러가 필요도 없는 차와 비싼 옷을 사려고 개처럼 일한다는 말은 세상 풍조를 잘 꼬집은 듯 느껴진다. 게다가
대중매체에 대한 공격은 우리의 무비판적 사고를 비판하는 것 같다. 이렇게 보니 파이터 클럽이 주먹질만 하는 싸움판만은 아니다. 세상에 향해
대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장소이자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반성을 통한 치열한 몸부림의 장소이다. 나도 마음속에 파이터 클럽 하나 만들어야 할
것만 같다. 상대는 세상이 만든 야만적인 규칙과 울타리 그리고 지나친 소유에 대한 욕망 이라고 해두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몸부림을 치면서 마음과
싸워야 하겠지만 그래도 삶을 고뇌하면서 현실이 주는 답답함을 걷어차고 진정한 자유를 얻어보는 게 더 낫겠지. 물론 이때 현실에 무감각 해서는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반격이
시작됐다. 잭과 테일러는 군대를 조직한 것이다. 커피전문점을 습격하고 멀쩡한 차를 야구방망이로 때리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는 국제정보센터와
신용정보회사를 폭파할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행동이 현실이 아닌 탓에 유쾌하게만 보인다. 신용정보회사 하나쯤 날려버리면 잭의 채무 정리쯤이야
깔끔하게 처리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큰 일을 앞둔 잭에게 미안하지만 근본구조 그러니까 사회 밑바닥을 손보지 않고서는 잭과 말라와 같은 문제들은
해결 할 수 없을 것 같다. 폭파 밖에 생각하지 못한 잭의 의식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주먹질이나 막판
반전만을 떠올릴 것 같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야만적인 질서에 대해 딴지를 걸고 대들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야만적인 고리를 끊기 위해
사회를 다시 디자인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사회는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고 기쁘게 그리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 지난친 경쟁을 하지
않으면서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 지나친 소비주의로 자연을 낭비하기 보단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면 좋을 것이다.
어둑어둑한 밤 창 밖에으로
고층빌딩 건물이 짓누를 듯이 서있다. 잭과 말라가 서있는 바로 앞에서 쾅하는 폭음과 함께 높은 건물들이 순식간에 와르륵 무너진다. 내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떨림이 느껴진다. 그동안 내 마음속에서 나를 짓눌렸던 단단한 벽들이 동시에 소리없이 허물어 내리는 것만 같다. 지나친
물질욕,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 질기게 따라 붙어있던 지방대라는 꼬리표, 고질병이 되어버린 열등감과 사회구조와 내가 만든어낸
실패자라는 낙인까지. 우리는 이상할 때 만났어 라는 잭의 말은 꼭 나에게 그리고 88만원 세대라는 청춘들에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괜찮아 이제
다 잘 될거야 라는 말에서 희망이 감지된다. 나를 짓누르던 틀과 쥐어짜는 사회구조에 더 이상 내 몸과 영혼을 맡기지 않을 작정이다. 정말이지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처럼 느껴진다. 잭과 말라가 맞잡은 손에 내 손도 같이 더해본다. 무너져 내린 빌딩 숲 저 너머에 꼭 희망과 자유가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