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승만을 함부로 욕하는가?
최근에 개봉되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지난 2월12일 기준 누적 관객 24만명 돌파했다고 한다.
2024청룡의 해를 맞았다. 지금 한국인(韓國人),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독일의 서정시인 안톤슈낙의 수필에 나오는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아니고, ‘정원(庭園)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도 아니고, 더욱이 ‘오 뉴월의 장의(葬儀)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도 아니다.
다름아닌 바로 자랑스런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그동안 이승만 죽이기 차원에서 독재자, 부정선거 원흉 , 친일파, 미국의 앞잡이 등, 온갖 수식어를 동원하여 무차별 폄훼해온 좌파진영의 가혹한 행패 때문이다.
- 한 인물의 역사적 평가는 어떤 잣대로 서술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이뤄져야 한다. 객관적인 사실 관계 팩트가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설날 연휴를 맞아 영화를 관람했다. 대강의 줄거리를 요약해 본다.
- 이승만은 70년 현대사에서 지워버렸다. 당시 대통령 후보 조병옥 서거로 인하여, 이기붕 당선을 위한 부정선거 획책.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1960.4.19로 인하여 비난과 왜곡으로 바뀜, 교육현장에서도 왜곡이 심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눈을 가린 3.15부정선거는 인정해야 한다.
- 한국의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59.12.4.재일동포 북송반대 975명이 니가타항에서 북송선 타고 갔다. 1904~ 1905년에는 사진관에서 양복을 빌려입고 미국 대통령을 면담했다.
-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하와이 8개섬을 찾아다니면서 어린 여자아이들을 하와이로 데려왔다. 그리고 하와이 ‘기숙학교’를 설립하여 공부를 시켰다.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다.
- 하와이로 떠날 때 거리의 시민들로부터 환영받았다. 성원 변함 없었다. 경향.동아에서 이승만 도망 갈 것이다 라고 보도 했다. 이화장 정문에서 기자들이 지켰다. 그 당시 허정 권한대행 모습이 보인다.
- 하와이에서 매우 궁핍한 생활 교민이 주거할 집을 제공했다. 경향신문의 스위스 비자금은 허위기사였다. 필리핀 마르코스는 보석. 금괴를 갖고 도망갔다. 두 지도자가 비교된다. 두 지도자의 엇갈린 운명 – 마르코스는 토지개혁 실패로 후진국으로 전락 – 한국은 33개 개혁중 토지개혁(농지개혁)을 포함 성공하여, 자작농 비율을 높임으로서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오늘날 이병철 정주영 같은 기업인들에 의해 대기업 성장의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 김영덕감독 자신도 1995년 북한을 방문했던 한 목사가 평양 거리 한복판에 ‘이승만 괴뢰 도당을 타도하자’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 증언을 듣고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
- 미국 한국영사관 앞에 서재필 동상은 있고 이승만 동상은 없다. 미국은 3,000개의 조지워싱턴 동상 기념물을 설치하고 있다.
- 6.25한국전쟁시 한강다리 폭파를 두고 이승만이 서울을 버리고 도망갔다 ‘런승만’ 이라고 거짓 왜곡 선동 선전했다. 김구 방북은 철저히 김일성에 이용당했다. 제주 4.3사건 남로당의 남한 선거 방해 공작이었다. 이승만은 독도와 한국전쟁을 통해 두 번이나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킨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민중의 벗 최고지도자. 민주주의자 반공주의자이다.
- 문재인 김정은 평화 쇼 사진, 개성공단 건물 폭파장면 영상도 있다.
*살아 생전 그토록 다시오고 싶었던 자신의 고국이었지만 생을 마감하고 나서야 그는 고향땅에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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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라델피아 서재필 기념비 / 기념관에 사진에 중앙에 서재필 사진을 크게하고 이승만 사진은 좌측 상단에 조그맞게 배치했다. 이승만 철저하게 역할 축소 했다.
- 서재필기념사업회 뉴욕지부 -- 이승만이 크게 부각되면 불리하다. 문재인 정권에서 이승만을 지우려고 했다. 서재필을 앞세웠다. 이승만 보다 서재필을 부각시켰다. 문 정부에서 제헌국회 사진 젊은 날의 이승만 사진 / 정부의 지원도 없고 좌파정부에서는 박정희 반공정신을 폄훼했다. 외국의 경우 만델라, 간디 등 자국의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것이 관례이다.
- 이승만의 토지개혁으로 소작농이 사라지고 농민은 자기소유의 땅을 가졌다.
-" 자네가 얼머나 조국을 사랑했는지 자네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내가 잘 안다네, 왜 그렇게들 하와이에서 그렇게 그분의 업적과 노고를 폄훼하는지. 친구여 그것 때문에 자네가 얼마나 고생을 해 왔는지 바로 그 애국심 때문에 그토록 비난 받고 살아온 것을~" (이 장면에서 가슴이 울컥했다.)
- 우리가 지난 70년 동안 왜곡되어서 잘못알고 있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전쟁’ 영화를 통해서 올바른 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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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범모 경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