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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산악회 / 말레이시아 코타 키나발루산 등정기
동남아의 최고봉, 키나발루가 이루는 서사시
평균연령 61.5세, 철저하게 준비된 해외원정
평균연령 61.5세, 12명의 등반대원, 4,095m 고지의 키나발루산 해외원정은 2011년 1월 4일부터 계획된
산행이었다. 당시 산장예약이 확정되지 않아 미루었다가 이번에 단행한 것인데 철저하게 준비되었던
산행과는 달리 나는 산행을 다녀오고 나서야‘까페’(다음까페 : 하노이 산악회)에 이미 자료가 많이
올려져있었음을 알게 되어 산행기를 쓰면서도 송구하기 짝이 없다.
4월 28일(토) 아침,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에어 아시아항공(09:30발)을 타고 쿠알라룸푸르로 날아간
시각은 낮 12시30분경. 공항 내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는데 식당 비슷한 것은 없고 패스트푸드점만 있다. 저가항공을 택해 기내에서 조식을 할 수 없었던 우리는 각자 먹을 것을 선택하고 펼쳐놓았는데 도시락과
샌드위치 정도였다. 하지만 밥은 못짬펀참 후루룩 밥이었고 반찬도 닭다리 하나 뿐...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도 맛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린 우리는 키나발루로 가는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동쪽 사바 주에 위치해 남지나 해협과 접해있는 해양도시, 코타 키나발루의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경. 우리가 묵게 될 매실라우리조트까지는 이동시간만 2시간 반 가량.
산장에 도착하면 즐거운 만찬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에 정보에 버스에 탑승한 우리는 오랜 이동시간에
지쳐있었다. 산장이 가까워지면서 산길로 오르는데 차장 밖으로 별무리가 장관을 이루며 쏟아져내린다.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밤하늘이다.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키나발루의 밤하늘을 먼저 만난 우리는 이튿날 펼쳐질 진면목 또한 상상할 수 없었다.
산장에 여장을 푸니, 너무 늦은 탓에 만찬 대신에 도시락이 배달되었다. 한국식당에서 온 것이라는데
열어보니 밥과 닭다리 한 개, 그리고 사과 한 개가 전부다. 우리 모두가 기절할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시장을 반찬삼아 먹고 나서 술은 딱 한잔씩 정도만 하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한다.
보르네오섬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땅 ‘코타 키나발루’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특급 휴양리조트들로 여행의 백미를 이룬다는데 그래서일까 우리가 숙박한 매실라우 리조트의 산장은 나무로 지어진 호텔로 아주
깔끔하고 예쁜 산장이었다. 산장 2개실을 사용했는데 각각 방이 3개씩이서 6개 룸에서 2명이 한조로
편안하게 취침할 수 있었다. 이튿날은 다행히 리조트의 레스토랑에서 조식 뷔페를 할 수 있었다.
아침 8시경 매실라우 게이트(2,000m)에서 산행허가를 받고 이번 산행의 가이드인 김영준님의 설명을
들었다. 키나발루산은 세계의 산 중에서 7개 지역만 발급해주는 산행수료증을 받게 되는 산행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원들 모두 명패를 반드시 지참하고 입구 및 출구에서 본인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것.
산행 시 반드시 비가 올 터이니 우비를 준비해야 하며, 중식을 하게 될 쉼터까지는 모두 7개의 쉼터가 있어서 그곳에서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12명의 대원들 중에서 서너 명만 짐을 포터에게 맡기고
드디어 출발. 더러는 반팔, 더러는 긴팔 복장으로 오르기를 시작, 첫 쉼터인 시마 쉼터에서 휴식을 취했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키나발루 국립공원
코타는 시(city)라는 뜻, 키나발루는 ‘죽은 자들의 영혼의 안식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렸던 토착민 카다잔족은 키나발루를 `아키나발루(Akinabalu)ㆍ죽은 자를 숭배하는 장소`라 부르며 아주 신성한 산으로 여겨 왔고 사람이 생을 마치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키나발루 산꼭대기에서 또 다른 삶을 영위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의 보물이라 불리우는 사바주(Sabah, 바람 아래의 땅`이란 아랍어에서 유래)에 위치하여 사바주를 대표하는 현대적인 항구도시로
30여 인종, 200만명이 살고 있다.
키나발루산의 등산로 입구는 팀포혼 게이트(Timpohon, 1,866m)와 매실라우 게이트(Mesilau, 2,000m)
이렇게 두 입구를 통해서만 오를 수 있는데 우리는 키나발루의 밀림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매실라우에서의 출발을 선택했다. 원시적인 밀림들을 통과하면서 신이 빚으신 아름다운 고봉들을 감상하고 군락을 이루고 있는 열대식물과 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기에 말이다.
점심을 먹게될 롬뽀유 휴게소(약 2,500m)까지 뱀부-네펜스트-띠깔로드-롬뽀유 쉼터를 지나야 했다.
그중 세 번째와 다섯번째의 휴게소에 식수가 나오지 않아 조금 고생했는데 미리 체크하지 않은 가이드의 책임도 있지만 가끔 우천으로 인해 식수시설이 고장나거나 상황이 바뀌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판시팡을 오르거나 땀다오의 A코스를 올라본 사람이면 쉬 오를 수 있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등산로는 무척 가파랐다. 하루를 묵게 될 라반라따 산장(3,2772.7m)까지 9시간을 올라야 하므로 힘들다는 기색을 비추기도 난망하다.
중식 이후에 한참을 올랐을까, 저멀리 등 뒤의 산맥들에 구름이 휘감기며 그림같은 풍광을 이루니 모두
감탄하며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수천 여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는 키나발루산은 고립된 열대섬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천혜의 보고였다. 올라가는 중에 “어, 이것 봐라. 파리지옥인가...?”하는 차 대원님의 말에 보니, 이 대원님은 파리를 잡아먹는 식물이니 손가락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하며 손가락을 넣자마자 비명을 지른다. 그 말에 속을 이도 없는데 우리에게 놀라지도 않느냐며 섭섭해하신다.
빨간 색의 꽃인테 꽃이 입을 아주 크게 벌리는 있는 모양이 커다란 뱀도 잡아먹을 만한 공산이다.
키나발루의 아름다운 밀림과 자연
그대로 보여준 최상의 날씨
여행가이드의 말처럼 비가 오기는 커녕 날씨가 화창하기 이를 데 없다. 기상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사람도 키나발루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없다는데…. 때로는 자욱한 운무로 때로는 갑작스런 소나기로 때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변화무쌍한 날씨라고 하는데 우리가 택했던 그 시간만큼은 어찌된 것일까?
더 이상 좋을 수 없으리만큼 일기가 좋아 우리는 축복 속에 산행을 할 수 있었다. 구름 한 점과 바람 한 줌도 신의 허락이 있어야만 머물 수 있다고 하는 키나발루이니, 우리는 축복에 축복을 받은 것같은 기분이었다. 오후 2시경이 넘어가자 서서히 고봉들이 보이기도 하고 고사목들도 눈에 띄면서 푸른 밀림이 점점
줄어가고 고산식물인지 아주 작고 빨간 꽃이 피어있는 나무가 보여 독특해보인다.
산행의 대장을 맡으신 김세천 대장님은 대원들의 보폭과 시간을 계산에 이미 심중에 넣으셨으리라….
그래서 계속 천천히 일정간격으로 오르시고, 그 뒤를 이으신 박성주 대원님과 박균철 대원님은 젊은 오빠로 명명할 정도로 힘드신 기색이 없다. 그리고 내 뒤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시는 강희엽 대원님은 나처럼
좀 힘들어 보이시고, 그 뒤를 계속 잇는 박해방, 차현선, 최수경, 김영재, 김성호, 문재근 대원님에 이어
이재국 대원님이 후미를 맡으셨다. 나는 예상 외로 너무 힘들어서 말할 기력이 없는데 뒷분들은 여기가
바다인 양 물을 만난 고기처럼 농담과 재치로 유머의 장을 펼치니 연신 웃음바다.
여기에 한목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최수경 대원이다. 서울에서 날아온 최 대원은 지난 번 판시팡도
서울에서 와서 함께 등반할 정도로 우리 하노이 산악회의 귀빈 중 귀빈이다. 젊음도 젊음이려니와 산행에 지치지 않는 체력과 단련된 몸으로 산행하는 동안 줄곧 나르듯이 등반하는데 재담 또한 뛰어나서
우리 산악회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귀염둥이 막내둥이였다. 산꾼임에 틀림없는데 산사람답게 심성 또한
맑고 밝아서 베트남에 언제든 와도 누구나 반겨줄 친구처럼 된 대원이다. 그가 없었으면 재미가 없을 뻔
했다는 게 모두의 의견임에랴….
이제 고봉이 보인다. 아! 저기일까, 멀지 않은 것일까 하며 오르지만 아직도 먼 것만 같다. 3,000m고지
가까이 이르자 넓은 바위가 나타나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드디어 배낭을 포터에게 맡기기로 하고 카메라만 들고 오르기 시작했다. 출발 시부터 그랬으면 좀더 사진을 많이 남겼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나의 체력으로 사진을 계속 찍으며 오른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오후 4시경 되자 멀리 고봉들이 보이고 우리는 용기를 얻어 고사목들을 감상하며 - 실은 땅만 보고 가기에 급급했지만 - 가끔 촬영도 해가며 올랐다.
라반라따 산장과 고산증
드디오 4시 반경에 우리는 노란색 지붕으로 된 우리의 숙소 라반라따(3,272.7m) 산장에 도착했다.
라반라따 산장군은 4개의 산장(군팅3,324m, 파나라반3,314m, 라반라따3,272m, 와라스3,244m)으로 되어
있으며 산장 숙박인원은 총 146명으로 제한돼있다. 6인실과 4인실을 배정받은 우리팀은 여장을 풀고
1층 식당으로 가서 줄을 서야 했다. 벌써 식당에는 미리 올라온 팀들이 꽉 차 있었고 외국인들도 꽤나 많이 눈에 띈다. 키나발루산은 이 제 세계 각지에서 즐겨찾는 명소인 듯하다. 식당은 뷔페 형식인데 1층 전체가 식당, 2층이 숙소이다. 식사는 양식으로 샐러드와 감자튀김, 계란 부침(오믈렛 비슷), 고기, 야채 등
간단했다. 식사 후에 담소시간에 김 대장님이 맥주 세 캔을 사셨는데 1캔에 10불~! 세상에서 최고로 비싼 맥주를 드신 셈이다. 이튿날 정상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 하지만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잠을
잘 수 없을테니 술을 한잔씩 하고 어서 잠을 청하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가이드가 하라는대로 팔목의
맥박을 재어보니 100m 단거리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맥박이 빠르다. 고산지대에서는 맥박과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잠을 이룰 수 없게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설마 나같은 사람이 잠을 못잘 수가 있을까 내심 웃으며 숙소로 올라갔다. 우리 방은 6인실로, 6학년 대원님들과 함께 묵는 방이다. 2층 침대가 세 개이니,
6명이 자는 것이다. 나는 젊은 사람이 올라가라며 수경을 2층으로 떠밀어 올려보냈다. 자는 것일까 안 자는 것일까 아주 생생한 느낌이 계속 되었는데 11시경에 해방이 형님이 깨셔서 화장실에 가셨다. 그때부터
우리방 팀은 한숨도 더 잘 수가 없었다, 만일 그때 안깨었다면 더 자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한 번 깬 이상에는 고산증으로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뜬 눈으로 새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우리는 고산증에 두통으로 시달리면서도 잠을 더 못자고 1시부터 일어나 씻기 시작했다. 샤워하는 것도 -따스한 물도 나오지 않지만- 고산에서는 금지되어 있어서 얼굴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물칠만 했다. 1시반부터 1층 식당에서 조식을
하고 2시반 경에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저마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끼고 오르는데 처음부터 바위산으로 이어지면서 계속 가파른 바위산으로 오른다. 등반 길이 잘 다듬어져 있는 것은 다행이 나무계단으로 길을 닦아놓아서 자연친화적인데다 오르는 데에도 좋았지만 무척이나 가파르고 힘든 산행 길이었고, 계단이 없는 곳은 여지없이 경사가 높다.
올라도 올라도 깜깜한데 우리를 앞지르며 속력을 내던 몇몇 청년들(말레이시아 현지인)은 이내 지쳐서
앉아서 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를 앞지르다가는 또 쉬고…역시 산행은 천천히 같은 속도로 오르는 것이 중도이리라.
두 시간 정도를 오르니 평평한 바위가 나타나는데 잠시 휴식한다고 하여 바위에 벌렁 나웠다. 이 때다 싶어 5분 누워서 쉬어야지 했던 것인데 가이드가 갑자기 ‘일어나라’고 명한다. 잠시도 누우면 안된다는 것이다. 누우면 퍼져버려서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속으로 나는 퍼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좀만 쉬게
해주지 하며 벌떡 일어났다). 이제 다시 오르기를 50분 정도 했을까. 가이드 말이 이대로 가면 우리 팀은
일출을 못본다고 하는 것이다. 해는 05:45분경에 뜰텐데 우리는 6시 이후에나 도착할 거라는 말이다.
그러더니 앞서가던 최수경 대원과 두세 명 대원님들은 보이질 않는다. 뛰어가듯이 오르는 모양이다.
나는 어찌해야 할까? 일출을 못본다는 말에 나도 힘이 나고 있었다. 정상 봉우리가 보이는데 예서 말 수는 없지…이윽고 옆에 가는 록키님을 앞지르며 파이팅을 외치며 속도를 내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면
인간은 힘이 나긴 나나보다. 나도 믿기지 않지만 첨벅첨벅 오르며 나는 20여 분을 제법 빠르게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도착한 시각이 5시 50분경이었다.
내면의 고요함을 선사하는 장엄한 서사시
뷰랴부랴 일출의 모습부터 챙기려고 카메라를 삐죽이 들고 내민다. 판시팡에서처럼 장관을 이루며
떠오르진 않았지만 구름 속으로 비추이는 일출을 연방 촬영했다. 이어서 정상 아래로 펼쳐져 있는 산맥들과 봉우리들, 그 아래 파노라마로 이어지는 장관이 일품이다. 카메라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웅대하고 장엄한 서사시처럼 키나발루의 화폭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정상은 로우봉(Low’s Peak, 4,095m)이며 정상부근은 정상에서 바라다보면 왼쪽으로 어글리시스터봉
(Ugly sister Peak, 4,032m), 킹에드워드봉(King Edward Peak), 킹조오지봉(King George Peak), 당나귀봉(Donkey Ears Peak, 4,054m) 등과 오른쪽으로 알렉산드라봉(Alexandra's peak, 4,003m), 성요한봉(St. John's peak, 4,091m), 남봉(South Peak, 3,933m) 등 높은 암봉이 즐비하게 둘러싸여진 편편한 암반으로 되어 있다. 북위 5도 정도에 위치하여 매일 해가 뜨고 지는 시각이 거의 일정하다고 한다.
로우봉 아래의 풍경은 이러한 거대한 봉우리들과 거대한 화강암이 편평하게 펼쳐져 있어 결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으로 일생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저 아래 보이는 사얏사얏산장(3,668m)까지 이어져있는
하얀 밧줄은 등반로를 가이드하는 로프이다. 사얏사얏산장을 오르내릴 때 체크를 받아야 정상등반증이
교부되므로 우리는 명패를 보이며 체크를 받았다.
우리는 예정시간보다 1시간 가량 늦은 8시 30분경 라반라따산장에 다시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조식을 하고 하산을 시작해야 하는데 하산 예정시각이 8시였으나 10시경 출발하게 되었다. 이제 팀포혼 게이트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거의 나무계단으로 되어져있었는데 우리가 올랐던 매실라우게이트에서의 등반로에 비해
일률적으로 급경사의 하산로여서 재미있지는 않은 등반로였다. 키나발루의 자연 밀림과 멋을 구경하기에는 매실라우로 올라서 팀포혼 게이트로 하산하는 여정이 최상임을 느꼈다. 조금 지루하지만 마구 내리달리는 길을 다섯 시간 남짓 내려와 중식을 하는 발삼레스토랑에서 아주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어서
호텔로 돌아가 여정을 풀기로 되어있었지만 우리는 이어서 저녁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시내의 ‘대장금’이라는 한식당. 여기서 정상 등반의 회포를 풀고 호텔로 향했다.
해변에서의 자유와 노숙자의 자유
4월 30일(화). 즉 우리가 세 번째 밤을 보낼 곳은‘왕의 휴양지’라 하는 수트라하버 리조트의 퍼시픽 수트라 호텔. 퍼시픽 수트라와 마젤란 수트라로 구성된 수트라하버는 부대시설로 5개의 수영장, 15개의 각종 식당과 바, 27홀의 골프장과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갖춘 마리나클럽 등 최고급의 휴양호텔이었다.
새벽부터 오른 등정에 각자 쉬는가 싶었더니, 어느새 호텔 로비에 몇몇 분이 모이셨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 국가이기에 술을 파는 곳이 없는데 여행가이드에게 물으니, 'Water Front'(이름이 맞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를 가면 시내에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았다. 시원한 맥주를 가볍게 하며 아름다운 휴양지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튿날은 새벽부터 호텔 풀장을 찾은 대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트윈 룸에 수경씨와 묵은 나는 곧장
풀장으로 향하고. 아침 식사 이후에 대원들 모두 풀장에서 수영을 즐겼다. 호텔 풀장과 이어져있는 백사장이 너무나 아름답고 바닷물도 청정해서 우리는 휴가라도 온 양 자유로운 시간에 도취할밖에…. 오후시간은 시내관광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이구동성으로 관광하며 기념품을 살 바에는 바닷가로 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어느 섬이었는데 그곳이 혹시 키나발루의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히는
마누칸섬이 아니었을까…?
그 섬에서의 휴식이 로우봉이 주는 즐거움에 비히면 만분의 일도 안되지만 대원들 모두 모처럼 해변에서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해물뷔페식당. 말레이시아 전통가옥 형식인지
호수를 끼고 있어서 선상의 식당같은 분위기가 나는 멋스런 곳이었다. 공항으로 가기 직전의 일정이어서
저녁을 풍성하게 먹고 8시 40분경 키나발루 공항으로 향했다. 다시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1시 10분. 여기서 우리는 새벽 6시 20분발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이제는 노숙자로! 공항 여기저기에 담요나 이불을 깥고 누워자는 사람, 의자에 기대거나 카트를 타고 자는 사람 등 노숙은 평범한 일로 보인다. 우리도 가장 선배이신 두 분이 먼저 자리를 펴고 노숙자의 폼을
잡으셨다. 여기서 펼쳐놓은 각자의 이야기들이 오프레코딩 되어버려서 알 수는 없지만 저마다 현실 속의
이야기들과 진실과 농담을 오가며 보따리들을 풀어놓아서 우리의 삶과 인생이 거기에 그대로 녹아있는
듯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생에 한 장면으로 또 남아있을 푸르디푸른 봉우리들과 편평한 키나발루의 화강석 바위들. 그 너른 품이 내 안에 있는 듯하다.
<글·최미영>
첫댓글 깡닥님^^. 1등으로 감상했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벅차고 정상에서 느꼈던 행복이 바로 어제일처럼 가깝게 느껴집니다.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산행기 즐감했습니다. 좋아요.
좋은 산행기 즐감했읍니다
공부가 더해지지 않고는 쓸수 없는 산행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마치 기도 들이기 전에 목욕기제하듯이 잘 다듬어지고 정성들여 쓴 산행기 잘보았읍니다.
제품을 광고하듯 군더더기가 없고 포인트을 꼭 찍어 맛갈 스럽게 쓴 님의 글 솜씨도 키나발루 산 만큼이나
아름답군요.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스크랩 해가겠읍니다.
감사합니다...다음에는 더욱 솔직하게 느껴지는대로 써보겠습니다...
너무 정제되고 정돈된 것처럼 썼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암튼 공부도 많이 하고 제게도 도움이 되었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