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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삼위일체)순례단 대구교구 순례후기 입니다 |
성남시에 사는 동생으로 부터 "연극 공연이 있는데 같이 갑시다" 라는 전화를 받고 "나는 연극 좋아하지않아요, 안갈랍니다"라고 대답하자 “「추기경, 김수환」연극공연 티켓이 두장 있는데 유 ....." ”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 말하며 나에게 거듭 묻는다. 그런데 “추기경, 김수환” 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래, 어 그럼 같이 가야지”했다, 2년전 일이다.
“추기경 김수환의 생애”를 담은 연극 공연 「추기경 김수환 탄생 100주년 기념 문화공연」이 상영되는 서강대 메리홀 사제, 수녀, 평신도 관람객들이 숨죽이며 기다리는데..“수환아 너는 커서 뭐 하면서 살거야 ?” 유년시절 바른 자세로 성장 해 가는 수환이를 보고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스런 눈빛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가톨릭 신앙이 이어져 내려오는 가난한 옹기굽는 부모, 결국 수환이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신부가 되었고,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젊은 주교, 추기경을 탄생시킨다,「추기경, 김수환」은 당시 어두웠던 한국 군부 정치에 맞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였고, 그는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한국 가톨릭의 별로 떠 오른다.
공연을 보면서 나도울고 너도 울었다, 울다, 웃다를 반복하면서 “인간적인 추기경님의 모습도 보았고, 이분의 삶, 영향력, 철학을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나는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는데....그런데, 오늘 우리 111(삼위일체)순례단은 「추기경, 김수환」의 생가 성지순례를 간다. 유년시절 추기경이 살던 그곳 옹기굽던 장소를 순례하는 것이다, 그곳이 궁금하고, 가보고 싶었는데...,마음 설렌다......
일정 설명 및 기도 |
◆ 김수환 추기경 생가
경북 군위의 산골에 위치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생가는 그가 군위 초등학교를 거쳐 소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김 추기경의 집안은 충남 논산군 연산의 양반 가문으로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기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의 집안이다. 조부인 김 요안은 병인박해 때 연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옥중 순교하였고, 조모 강말손은 남편의 순교 뒤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갖은 고생에도 교우들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김 추기경의 부친 김영석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했던 로베르 신부의 일을 돕기도 하였고, 모친인 서중하는 대구의 유명한 신자 집안인 달성 서씨의 후손이었다. 로베르 신부의 중매로 김영석 요셉과 서중하 마르티나는 혼인을 하였고, 1922년 4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김 추기경은 1922년 5월 8일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 추기경이 8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해수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어머니가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일깨우고 배우고자,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 주변에는 추모 전시관, 수련 시설,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이 조성되어 있다. 내용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의정부교구 111(삼위일체)순례단 여러분! 오늘 순례 참 잘오셨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는 2024년6월18일 교황청 시성부로 부터 「추기경, 김수환」시복 추진에 대해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승인받았습니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김수환 추기경을 공식적으로 【하느님의 종】 으로 칭할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도 나름 준비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하느님의 종】이 되시고 난 뒤 여러분이 처음 이곳 단체 순례자가 되신 것 입니다.”
뜻 밖의 신부님 강론 말씀을 듣고 가슴 뭉쿨 해옴을 느끼고 있을 때, 라파엘 순례 단장은 옆에서 미사 참례중인 나의 옆구리를 쿡 누르면서 “추기경께서 【하느님의 종】이 되신 뒤 우리 순례단이 처음으로 이곳을 단체 순례하는 거래..." 나는 속으로 “순례단장 감동 먹었구만......”
《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 |
◆ 비산 (날뫼) 성당
현재 대구 비산 성당 자리는 경상 감영의 사형 터 가운데 하나로 ‘이 알로이시오 곤자가’의 선대 때부터 신자들이 살았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따르면 ‘날뫼’에 교우촌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떤 노파’의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도시(대구)에 아주 열심한 노파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노파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리를 설명하여 많은 신자들로 이루어진 교우촌(날뫼로 추정)을 세웠고, 철저한 교리 교육과 신심의 모범으로 그 교우촌을 지탱하여 왔습니다”(최양업의 열아홉 번째 서한).
병인박해로 관덕정에서 순교한 이윤일 요한 성인의 시신을 날뫼 뒷산에 묻었던 이응칠 가족도 이곳에 살았으며, 1887년 로베르 신부의 사목 보고서에 따르면 30명의 신자가 날뫼에 살았다. 대구대교구가 설정된 뒤 신자들이 늘어나자 1927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31년 남산 본당에서 이전해 온 명도 회관 건물을 골격으로 성전을 짓게 되었고, 1958년 1월 29일 현재의 성전을 축성하였다.
이윤일 성인의 유해가 지나간 곳을 따라 순례를 하려면, 대구 관덕정 순교 성지와 비산 성당을 거쳐야 한다(이윤일 요한 성인 유해 이장 길: 관덕정 순교 기념관–비산 성당–용인 묵리–미리내 성지–성모당–관덕정 순교 기념관).
내용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새방골성당
새방골성당은 초대 대구교회 사제로 임명된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토 김보록 신부가 신나무골을 거쳐 1888년 이곳에 부임하면서부터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대구교회 본당사제이신 김보록 신부가 맨 처음 머물던 곳인 신나무골이 대구교회 첫 본당 터이고, 바로 이곳 새방골이 그 두 번째 본당 터이다. 그 후 김보록 신부에 의해서 대구교회의 얼굴인 계산동 주교좌성당이 설립되면서 계산동성당 관할공소로 되었다가 날뫼에 비산동성당이 설립되면서부터는 비산동성당 관할 새방골공소에서 1963년 준 본당이 되고 1978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새방골성당은 원죄 없으신 성모님(12월 8일)을 주보로 모신다.
〈새방골 성당 기도문〉
성부와 성자와 함께 하나 되시는 사랑의 성령이시어 지체 없이 내려오시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 빛으로 채워주소서.
주님 말씀하신 대로 우리 모두 사랑의 불이 훨훨 타올라 오로지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며 서로 한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일생을 사랑의 제물로 바친 김보록 로베르 사제처럼 오롯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오니 당신의 일꾼으로 삼아주소서.
그리하여, 천국을 향해 순례하는 영혼들을 위해, 당신 품에 고이 쉬고자 하는 만물을 위해,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하느님의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여! 우리에게 힘을 주소서.
모든 성인과 순교자들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내용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가실성당
1895년에 설립된 가실 성당(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48호)은 대구 계산 성당에 이어 경상도 지방에서는 두 번째 성당이며, 경상도 북부 지역과 충청도 일부 지역까지 교세를 맡아 관할하는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하였다. 성당의 주보성인은 성모님의 어머니 안나 성녀이다.
현재의 성당과 사제관은 1923년에 완성되었고, 설계는 파리 외방 전교회 프와넬 신부가 하였다. 가실 성당의 건축 양식은 신로마네스크 양식이며, 당시 본당 신부였던 투르뇌 신부가 망치로 벽돌을 한 장씩 두드려 가며 확인하였다고 한다.
6·25 때 남한과 북한의 양측 군인들이 성당을 병원으로 사용하였으며,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는데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52년부터 북한 덕원에서 내려온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맡아 사목을 하고 있다.
가실 성당에는 1924년 이전에 프랑스에서 석고로 제작된 안나상이 있으며, 성당만큼 오래된 ‘안나’ 종과 성체등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가실 성당은 동양화풍의 14처와 독일의 유명한 작가 에기노 바이너트(Egino Weinert)의 감실, 행렬용 ‘무지개 십자가’와 색유리화로 ‘기도하기 좋은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가실 성당은 대구대교구 도보 성지 순례 길인 ‘한티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내용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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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 황금성당
『사학징의』에 따르면 1801년 박춘산이 ‘천주학’을 믿은 죄로 김산읍(김천의 옛 이름)에 유배되었으며, 같은 시기 부산 동래 출신인 현계탁도 형이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김산 고을 증산으로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여러 박해 시기를 거치면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 신자들이 김천 지역의 산골 마을로 숨어들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해서 마잠, 먹방이, 장자터 등 여러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김천 지역은 이러한 박해를 피해 들어온 신자들의 교우촌일 뿐만 아니라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김천 성당(현 김천 황금 본당)은 대구 성당(현 계산 주교좌성당)과 가실 성당에 이어 대구대교구의 세 번째 본당으로 1901년에 설립된 뒤 경상도 북부 지역의 전교와 신앙의 중심지였다.
초대 주임 김성학 신부는 자라밭골(현 김천시 황금동) 작은 초가집에 본당을 설립하였으나, 기존 건물이 협소하여 1907년에는 기와집을 지어 성당으로 봉헌하였고, 1934년에는 붉은 벽돌조 고딕식 성당을 신축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후 2000년 5월 27일 100주년 기념 성전이 옛 성전 맞은편에 건립되었고,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다.
내용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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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 오늘 순례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하느님께 감사올립니다.
형제 자매님
장거리 순례 하시느라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수고해주신 봉사자님들께 깊은 감사를드립니다.
안전하게 귀가 잘 하시고, 피로 잘 푸시면서 편안한 밤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무더위 건강하시고, 8월 순례때 반가히 뵙겠습니다.
(순례단장 김재연 라파엘)
◇ 단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봉사자님들 그리고 순례를 함께 하신 순례자님들 모두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광탄 성당 조동원 안드레아)
◇ 무더운 날씨였지만 단장님, 봉사자님들 배려로 하루가 행복한 대구 순례였네요. 많은 준비로 맘껏 먹고 즐기는 하루였어요. 감사드립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생가터에서는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어요.
아름다운 붉은색의 꽃(매롱 아니고 배롱), 푸른 잔디가 인상적였어요.
마음이 풍성하고 풍요로운 순례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항상 다음이 기다려지는 우리 111순례단 행복한 마음으로 사랑합니다..편한밤 되세요~굿나잇 💕🙇♀
(백석동 성당 김양주 베네딕타)
◇ 단장님,봉사자님들,수고하심에 행복한 순례였습니다 ♡111순례 모든분들 은혜속에 행복한 하루되세요 함께할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백석동 성당 성연화 모니카)
◇ 김수환 추기경님의 생가터 순례는 몹시 더운 날씨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길에서 만난 예수님은 몸이 오싹거리도록 처참했습니다. 특히 14처의 두개골이 갈라진 모습은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자신의 삶을 질그릇이라고 표현하시어서 으아해하고 왜 그러셨을까을 스스로 생각해봤습니다. 스스로를 낮추시고 연약한 존재로 여기셨다는 생각에 머무릅니다.당신을 낮추고 비우는 삶이 질그릇같은 삶이셨습니다
하느님을 알기전에는 나약하고 일그러지기도 잘했던 나라는 사람이 하느님을 알고나서 옹기가 되어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순례를 다니면서 조금씩 조금씩 단단해지는 옹기같은 신앙인이 되어가고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으신분을 만나고 와서 좋았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는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것도 다시 배우고 왔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비우고 비우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아보렵니다
무더위와 함께하신 순례단 단원님들 감사합니다
(행신2동 성당 이민자 율리아)
◇ (7월의 순례지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 터와 기념관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7월5일 교황청으로부터 김수환 추기경님이 시복 추진 대상자로 공식인정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한 후 그분의 생가와 기념관을 순례하게 되어 느낌이 특별했습니다.
그곳 신부님께서도 추기경님의 시복추진 소식 이후 우리가 첫 단체방문이라며 환대해주셨습니다. 추기경님이 삶으로 신앙을 증거 하신 종으로서의 모습, 하느님 안에서 어린이 같은 모습으로 사셨던 ‘영적 겸손’을 강조하시며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자고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의 호 ‘옹기’
옹기는...
빚다,
질박하다.
견디다.
품다.
비우다.
숨쉬다.
저는 옹기의 ‘비우다’를 마음에 담고 왔습니다.
(화정동 성당 심숙희 테클라)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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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좌영베드로 형제님!
이렇게 멋진 글,사진 올려주셔서 다시 한번 더 생생한 감동으로 벅찹니다.
깊은 감사 드립니다.♡
금번 순례는 동행을 하지 못하여 못내 아쉽지만~ 베드로 팀장님의 에필로그 에 담긴
필력과 글맵시에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현장에 와 있는듯한 감흥을 느끼게 해주시는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홍길동처럼 동분서주 하며 동영상
촬영과 순례사진을 남기는 베네딕도 봉사자님 ♡♡♡
우리 단장님을 비롯한 봉사자님들과 순례단
형제.자매님들의 성심에 주님 은총 담뿍
내리시어 선물과 같은 오늘~~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