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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선우회 회원님들,
제가 너무 게을러서 녹취록을 너무 늦게 올려 드려서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귀한 법문 읽으시고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가지, 동영상 녹화를 못 해서 함께 올려 드리지 못한 점 사과 드립니다.
봉은선우회 교무
심행 합장
봉은선우회를 위한 혜국선사 법문
봉은사에 법회 하러 갔더니, ‘스님 꼭 잠깐이라도 한마디 해 달라’고 해서 뭐 한마디 하는 것이지, 이런 도량에 와서 내 말 듣는 것 보다는 자기 마음을 어떻게 비워 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는 ‘고려사’라고 하는 역사책에 보면 남북한 다 합쳐서 8개 명당에 들어 가는 그런 터입니다. 아주 명당입니다. 그런 명당에 와서 명당 기운을 잔뜩 가지고 가면, 명당의 기운은
우주에 가득 찼으니까 가지고 가면 (좋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빈 공간이 있어야 들어 갈 수 있지.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스스로
포기하는 마음, 감정이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꽉 차 있으면 어떤 명당 기운도 들어 갈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석종사
오신 신도들에게는 뭐 기도 동참하라고 부탁하는 분도 없고, 기와불사 하라고 부탁하는
분도 없고, 오직 한가지 법당에 앉아서 가만히 자기 자신을 돌아 봐서 내 안에 가장 못된 성깔머리, 내 안에 정말 고쳐야 할 성질이 어떤
게 있는가? 그것을 부처님께 올려 놓고 가자.
‘내 이 못된 성질머리를 무덤 속까지 짊어
지고 가서는 도저히 부끄러운 일이니
오늘 부처님께 바쳐 두고 갑니다.’ 하고 딱- 마음을 올려
놓으면 빈 공간이 생겨요. 명당 기운이 저절로 들어 갑니다. 가피가 그냥 들어 간다 이겁니다.
마음 한번 비우는
것이 제 말 열 번 들어 보는 것 보다 나은데, 이왕 해야 된다고 해서 하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새해니 묵은 해니 분별을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가 바뀐 듯 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
졌는가? 중생들이 어리석어 꿈 속에 사는구나.’
학명스님이라고 하는 스승님 말씀인데, 우리 지금 ‘새해’라 그러지요? 그렇지요? (네-) 저 ‘해’가 새 ‘해’ 맞습니까? 저 오늘 뜬 ‘해’가?
십 년 전에
뜬 ‘해’하고 지금 ‘해’하고 같은 ‘해’입니까? 이놈은 새 ‘해’고 그건 없어져 버린 묵은 ‘해’입니까? 꼭 같은 ‘해’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새해’라고 이제 나보고 ‘새해’ 건강하십시오. 하면 내가 늘 ‘해’한테 미안하다고, 사람들이 몰라 가지고 당신을 자꾸 응? 새 ’해’, 묵은 ‘해’ 하는데 세월은 가는 법이 없습니다. ‘해’는 그대로 있습니다.
태양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돌기 때문에, 세월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 인간들이 뛰고 있는 것을 세상사람들은
세월이 흘러 갔다. 내 청춘이 다 지나갔다. 거꾸로 알고 있는 거에요.
세월은 가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허공도 그대로요. 태양도 그대로요.
그대로 자기 자리를 지켜 주고 있는데 우리들이 정신 없이
뛰고 있으니까.
과연 내가 어떤
발자국을 내고 걸어 가고 있는가? 눈 오는 들길을 걷는 나그네여.’
지금 눈이 왔지요? (네) 눈이 하-얗게
왔습니다. 여기 처음에 눈이 하얗게 오니까 부산 쪽에서 온 스님이, 부산 쪽으로는
눈이 잘 안 오지 않아요? ‘와! 원장스님 눈 왔습니다. 눈!’
김진석 수필가가
쓴 ‘백설부’에 보면 ‘천국의
아들이여, 바람의 행자인 그대들은 백설이여.’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원장스님 눈 옵니다 눈.’ (그래서 내가) ‘눈 오는 게 좋은 거 아니요. 우리는 저 밑에 까지 차가 올라 오려면 눈을 쓸어야 되는데(그랬어).
(그런데 그 스님이 또) ‘눈 쓰는 게 얼마나 재미 있는데요.’ (그러는 거야)
뒷날 또 눈이 왔다. (그러니까
그 스님이 또) ‘스님 또 눈이 옵니다.’
그래서 여섯, 6일 째 눈이 오니까 (그 스님이)
‘비러먹을 눈이.’(하더니) 여덟
번 눈 쓸라 하니까 ‘썅놈의 눈이.’ (하더군) 처음 그렇게 좋다고 하는 눈이 몇 번만
지나 가면 썅놈의 눈이 되는 거지. 그건 바로 우리 일이라.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원인은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즐기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정말 소중하다. 내 남편 내 아들, 내 딸이 소중한 것이라. ‘내 복이 딱 그 만큼이구나. 정말 고맙다.’ 하면, 정말
행복은 처처에 있는데, 가지고 있는
것에 고마워 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가지고 있지 않은 남의 것을 탐하는 바람에 이건 불행한 것이다.
그럼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 왔으면 내 발자국이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눈이 하-얗게 온 날, 돌아 보면 비뚤 비뚤 걸어 가는 사람은 비뚤 비뚤 발자국이 찍히고, 반듯
반듯 걸어 가는 사람은 반듯 반듯 찍히는데, 그 발자국을 돌아 가서 고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생의 발자국은 고칠 수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 갈 수 없고,
어제로 돌아 갈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루 지나간 발자국은 영원히 그냥 있습니다. 영원히.
그러면 다음
생 다음 생 자자손손이 우리 아버지 지나간 발자국 우리 어머니 지나간 발자국. 과거에 내 생에 내가
저런 발자국을 지나왔구나. 그걸 업경대라 그래. 그러면 한번
잘 못 찍힌 발자국을 다시는 고칠 수 없다면, 시간적으로 지금, 공간적으로 Here, 여기. 오늘 내 발자국을 바로 찍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 말을 부처님께서는
탁! 도를 깨닫고 나서. 지금도 저는 꼭 부처님께 108배를 하는데, 그때 마다 원이,
제가 무슨 원이 있겠어요? ‘다음 생, 다음
생에도 오직 스님의 길을 가겠습니다. 스님의 길이 아니면 결코 가지 않을 것이니 부처님이 지켜 봐 주십시오.’
왜 그런 맹세를
하느냐 하면 제가 스님생활을 13살에 들어 와서 57년 동안
했습니다. 한평생 청춘을 부처님께 바친 사람이 얼마나 좋았으면 다음 생에도 오로지 스님의 길을 가겠습니다. 어째서 그럴까?
그 원인이 부처님이
탁! 깨닫고 나서 첫 마디가, 부처님께서 첫 마디가, 여러분들을 보고, 저희들 보고, ‘하! 아름답다. 정말 거룩하다. 이
우주 천지에 부처 아닌 존재가 단 하나도 없구나. 모든 일체 존재가 개유불성이구나. 전부 부처이구나.’(하신 겁니다).
저는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인지를 몰랐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교회에 다녔거든요. 대갈빼기가 좋아 가지고 기도문 같은 것을 워낙 잘 외워서 밀크를 잘 타다 먹었는데, 그때 내가 배울 때는 모든 생명은 죄인이라 그랬어요.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
왜 죄인이라 그래요? 왜 죄인이라 그랬어요? 따 먹지 말라는 과일을 따 먹었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나는 그것도 이해가 잘 안돼요.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중생 그 새끼 아담새끼하고 이브새끼 그것 따 먹을 것 그걸 모르겠어요?
따 먹을 줄 뻔히 알면서 심었다면 죄를 만들고, 몰랐다면 전지전능이 아니고, 아담 할배하고 이브 할매가 그걸 따 먹지 말라는 과일 따 먹어서 죄진 피로, DNA로 아브라함을 낳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혜국을 낳았다 말이요.
이 혜국이 지랄
발광을 하고 절을 하고 별 짓을 해도 죄 지은 피로 나를 만들어놓았으니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걸 원죄라 그러지요? 그렇지요?
대답하기가 아주 몹시 싫은 모양이네. 대답 안 해도 나 혼자 잘 지껄여요.
그래 전부 죄인이라는
거여. 어릴 때 진짜 충격 받았거든요? 그럼 내 죄는 내가 어쩌지 못한다는 것 아니냐?
그런데 성철큰스님
밑에 와서 살면서, 부처님께서는 죄인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본질은, 여러분들의
본질은 죄에 물들지 않는다, 우리 생명의 본질은 누구나가 부처다.
왜냐? 우리 본질은 공성이니까, 공성. 공성이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공성. 연기 공성이니까 저
허공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똥물을 끼 얹으면 묻어요? 안 묻어요? 똥물이. 안
묻어요. 빈 그릇은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본질이
공성이에요.
다만 중생이라고
하고 죄업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익힌 습관이지. 습관을 예를 들어서, 내가 담배를 피워요? 안 피워요? 담배 피울 리가 없지요? 콩만할 때 들어 와서 언제 익혀 보지도 못했으니, 담배가 있거나
말거나.
그런데 담배
중독된 사람은 담배 안 피우면, 돈 생기면 담배 집으로 가요 ? 안
가요? (가요.) 그건 누가 익힌 거요? 본인이 익힌 거요. 본인이. 도박을
익힌 사람은 돈 생기면 도박집으로 가요. 그건 본인이 익힌 습관이지 누가 뭐 집어 넣은 게 아니라 이거요.
내가 익힌 습관은
누구도 못 고칩니다. 본인이 고쳐야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기가 익힌 습관이 죄지, 본질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우리 생명의 본질은 죄에 물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 습관이 죄이기
때문에 그 습관을 고칠 수 있는 것은 본인이 고친다. 그러나 본질이 물 안 드는 부처기 때문에 익힌
만큼만 노력하면 누구든지 죄에서 벗어 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한번 지금 생각해 보자 이 말이요. 생각. 그 죄에서 벗어난
생명이 왜 본질이 죄에 물들지 않느냐 하면, 이 법당하고 봉은사 법당,
여러분 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방, 그 벽을 다 허물어 버리면 한 허공이지요? 이제 한 허공이지요?
그런데 부처님은? 이 벽이 있는 채로 한 허공이다. 이것도 허공이고 여러분들이 사는
아파트 방도 부엌도 화장실도 같은 허공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벽 때문에 봉은사 법당이다, 요 벽안에 있는 것은 혜국이다. 요
앞에 있는 것은 보살이다. 처사다. 벽 있는 채로 한 허공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아까도 조금 전에 했었는데, 지금 제가 오른 손을 들었지요? (네) 지금은?(왼손) 우리 두 눈으로 보면 오른 쪽, 왼쪽, 너다 나다, 여자다 남자다 나눌 수 있지만, 오른쪽 손 움직이는 에너지나 왼쪽 손 움직이는 에너지는 같은 에너지이지요? 그
에너지를 내 생명이라 그래요.
그런데 내 에너지는
내가 만들어 본 역사가 없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밤새 만들어 놓은 산소, 공기를 코로 숨을 들어 마셔서 빌려 와서 쓰는 에너지고. 물에서
빌려다가 물을 마셔서 물에서 에너지로 만들어서 빌려 온 에너지고. 대지에서 나오는
음식, 과일, 떠 오르는 태양에서 열량, 우주에서 빌려다 쓰는 생명이지, 내 생명 따르는 게 아니라 우주에서
찬 생명을 우리가 빌려 쓰는 거죠.(네)
그걸 제법무아라
그랬어요. 나라고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한 생명을 한 허공에서
이 법당, 저 법당 하듯이 한 생명이다. 그 생명에 의해서
새들은 날아 가고 있고 노루들은 뛰어 다니고 있고.
괴테라고 하는
시성은 시인은, 이런 법화경 법문을 듣고 얼마나 기쁨이 치솟아 올랐던지, 하나 라고
하는 시를 지었는데, 한번 읽어 볼까요?(네)
하나, 모든 것이 제 멋대로 구르는 듯 해도 사실은 하나로 얽혀 있다네.
우주의 황금조를
만들어 이들을 떠 안고 있다네.
모든 것이 이
하늘의 향기를 쫓아 지구가 그 품에 떠 안기는구나.
일체 모든 것이
이 향기를 쫓아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구나.
휘몰아 치는
생명의 회오리 속에서 나도 파도도
다 함께 춤 춘다.
삶과 죽음이
있건만 영원의 바다는 쉼 없이 출렁이누나.
변화하고 진동하는
저 힘이 내 생명의 원천.
오늘도 먼동이
트는 아침에 나는 거룩한 생명의 옷을 짜노라.
아주 이 시가
아름다워 들어 보면 모든 게 다 얽혀 있다는 것은.
와! 참!
괴테라는 분이
시성이라더니, 한국어로 번역을 했는데도 요 정도 아름다운데, 킹게
케강게(독일어) 하면 그 사람들(독일사람)이 원어로 봤으면 기가 막힐 거 아니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걸 연기라 그랬어. 이것이 있음으로 인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함으로 인해서 저것이 멸한다. 그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지해 가지고. 나는 여러분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우리나라 저
나태주 시인의 시에 보면,
어디선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숨쉬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이 세상은 찬란한 아침이 오고,
어디선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이 세상은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아프지 마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지, 나 혼자 독립된 존재가 아닌데, 여러분은
독립되었다고 하는 생각을 오늘 내 버려라 이거요.
아, 온 생명이 우주에 가득 차 가지고, 여러분들 지금 여기 와서 공기
마시는데 공기가 모자라요? 남아요? (남아요) 남기는
뭐 남아! 모자라지도 안 하고 남지도 안 하지. 남는
게 어디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공기는 대통령 먹는 공기나
내가 먹는 공기나 천하가 먹는 공기가 똑 다 같아요.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다.’ 이 말이야.
태양광이 떠
오르는데 꼭 같이 떠 올라. 하늘에서 내리니까 꼭 같이 내려요.온
우주 재산이 우리는 꼭 같이 평등성인데 인간들끼리 조금 더 가졌다. 덜 가졌다.
그걸 비교하느라고 우리는 평생 인생을 다 바치는 거야.
아! 내가 이 지구상에 와 가지고 내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가실 때 맨손으로 가더라. 과연 저승에 딱 갔을 때 뭘로 가지고 어디로 갈까? 인생점수를 보고
간다. 대학 갈 때 수능점수를 보고 가듯이. 내 인생점수는
과연 몇 점일까?
저는 저녁마다 내 점수를 채점해 봐요. 오늘은 몇 점짜리 인생인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엄청 노력한 사람이거든요? 축생의 길을 지나고 지옥을 지나고 여러분들이 오늘날까지 여기까지 와서 부처님이 모든 중생이 부처라는 법문을 한번 들으려고 까지 하는 걸,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보면, 정말 피나는 길을 걸어 온 것이거든. 그런데
인간까지 와 가지고 남들 하는 대로 그냥 브랜드 찾아서 남들 한다고 그냥 큰 아파트 찾아서.
최선을 다 해서
해야 하겠지만 그것 못지 않게 내 인생 여기서 내 마음 닦고 내 마음 농사 짓는 것 없이 딱 죽으면 나는 빈손으로 헤맬 수 밖에 없다. 어떻게 그런 점수를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나랴. 인생 점수를 좀 올리십시오.
염라대왕께 이
세상에 올 때 철석같이 약속하고 오셨어요. 이번 만은 정말 인생 점수
5점 내지 10점은 올려 가지고 오겠노라고. 그런데
까 먹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까 먹는 사람이.
여러분들이 석종사
같은 이런 천하명당에 왔으면 아! 과연 나를 끌고 다니는, 내가
움직이고 다니는 이 생명의 원천, 거룩한 옷을 짜야 하는 생명의 원천을.
과연 나는 어디에
있는가? Where am I? Only I don’t know. 오직 모를 뿐. 모르는 것은 백지이기 때문에, 백지에서 하는 게 내 마음 모양에
들어 가는 시간이야. 아! 내가 나를 찾아 다니고 주인이
주인 노릇 하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 석종사에서 못된 성깔머리 하나씩만 올려 놓고 빈 공간에 ‘나는 누구인가?’ ‘누가 나를 끌고
다니는 걸까?’ 그 내 안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우주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나라는데, 그럼 내 몸 안에 나를 끌고 다니는 놈을 알면 우주를 아는 건데, 이건 정말 해 볼만한 일이거든?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 본질은, 빈 공간은 절대 더러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너의 본래의 모습이다. 부처인줄 알았으면 거기를 어떻게 안 가겠느냐?
부디!
여러분들 지금
서울에서 왔지요? (네) 한강 몇 번이나 봤어요? 한강? 한강 몇 번 봤어? (수
없이 봤지요) 그러니까 잘 못 된 거요. 내가 어제 본 한강은
이미 바다로 가 버렸어. 그 한강이 아니야. 한 시간 전에 본 강물은 이미 흘러 가 버렸어.
그러면 내 얼굴은? 마찬가지야. 내 누이동생이, 지승월보살이라는
이가. 돌 사진을 가져 왔는데 대단히 귀여워. 애기 새끼가
꼬추를, 요만한 꼬추를 내 놓고 방긋이 웃는 사진을 가지고 와서, ‘이
얘기 예쁘지요?’ 해서, ‘응! 그 누구 집 자식인지 제법 예쁘다.’ 그러니까, ‘얘가 스님인데요?’ 하는 거야.
그게 나라는 거야. 그게. 그게 나야? 지금? 다
늙었지 않아? 그러니까 그 얘가 내가 아니야.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그 얘가 나야?
우리 얼굴 도
흘러 가는 강물과 같아서 날마다 달라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 얼굴 그대로 보고 있어요.
그래서 이와찬이라는
시인은 딱 두 구절을 썼는데, 그 사람은. ‘거울’이라는 시를 딱 썼는데 첫 마디가 ‘아이 시팔 깜짝이야!’ 한번 찾아 봐요. ‘아이 시팔 깜짝이야! 맨날 본 나인데도
볼 때마다 다른 놈이’ 요렇게 썼더라고 정말 맞는 말이거든.
아, 그러면 부처님이 제행무상이라고 하는 것은 덧없고 무상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강물처럼 내가 정신 없이 변해
가고 있는데, ‘내가 누구인가?’ 깨어 있지 않고는 그냥 물에 휩쓸려 가는 거기
때문에. 그걸 휩쓸려 가지 않으려면 제법무아 ‘내가 독립한 존재가
아니라 우주 전체가 나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믿어서, 그럼 ‘그 놈이 누군가?’ ‘과연 나는 누구인가?’ 감정이 하자는 대로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떤 생각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인가? 내가 내 주인 노릇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습관은 내가 익혔는데도 그 습관을 익히는 놈이 주인이 되고, 나는 끌려 다녀서야 되겠는가? 주인이 주인 노릇 한번 하려고,
부처님은 한
평생 주인이 주인 노릇 좀 해 봐라. 우리
주인 노릇 못 하고 감정이 하자는 대로 끌려 가서는 눈 감고 죽어 봐 봐요. 얼마나 그게 허무한 일이고 얼마나 후회될 일인가? 저런 거룩한 부처님을 스승으로, 불자가 되어 가지고
지금 저 미국
같은 데 한번 가 봐요. 미국 몇 십년 전에 갔을 때는 불자가 60만명
밖에 안 되었는데,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6백만명 되었는데, 작년에 가 보니까 명상센터 등록된 사람만 천 오백만 명이래요.
내가 뉴욕 원적사에서
법문 딱 하고 나오니까, 통역하던 김교수는 먼저 버스를 타 버렸고, 거기는
버스 세우기가 힘들어서 길 건너 가기 때문에 길 건너 버스를 타 버렸고, 나는 아침에 차를 대접을 많이
받아 차를 좀 많이 마셨다고 오줌이 마려워 가지고 오줌 싸고 간다고 좀 늦게 나왔는데 미국인 두사람이 쫓아 문안에 들어 오면서 ‘Are you from Korea?’ 한국에 젠 마스터냐?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나 참선했다’고 그랬지.
(알고 보니) 한국에서 참선한 스님들이 오셨다 해서 4시간 반인가 4시간을 차를 달려서 자기는 의사고 이 사람은 변호사인데
한마디만 해 주고 가라고. 그 말을 들으려고 쫓아 왔으니 한마디만 해 달라고 나를 안 보내 줘.
그래서 그쪽에서는
불교라고 그러면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왜냐? 인간은
죄에 물 들지 않는 (진리) . 이것은 천하의 희망이요. 천하에.
한마디 해 달라
그래서 내가 ‘날 보고 영어를 아주 잘 하는 줄 아는데 우린 진짜 뱃장 영어거든. 밥 얻어 먹는 것도 근근히 하는 영어인데, 딱 외우는 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
(스님의 영어 법문) Please ( ? ), Please ( ? ) , and ( ?
) yourself.
남의 소리, 내 소리 들으려고 하지 말고 당신 마음에서 일어 나는 소리를 들어라. 그러려면 첫째 마음이 가라 앉아야
된다.
내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
가면 그림자 생기고,
돌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 없이
물결을 저으니,
행여 백조가
우는 날, 이 물가 어지러워질까?
나는 날마다 꿈을 낚는다.
김광석씨 마음이라는
시인데, 당신 마음의 샘물을 가라 앉혀라. 그러면 찌꺼기가 보인다. 여러분들 연속극 ‘왔다 쌀보리’,
쌀보리가 아니고 ‘왔다. 장보리’ 같은 걸 보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요? 안 일어 나요? (일어 나요) 안 일어 나지요? 그냥
보는데 정신이 팔려. 축구 볼
때, 저 놈의 새끼 잘 한다, 못 한다. 박지성이가 어쩌고 저쩌고 할 땐, 망상 안 일어 나요.
(그런데)
딱 법당에 와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다 보면 5분도 안 되어 가지고 ‘아이고, 알마니 가방이 십 프로 세일하는데’, ‘하, 이놈의 자식이 뭐 어쩌고 저쩌고’, 온갖 망상이 다 일어 나는 거야. 아이고 우리 영감탱이가 몇 년 몇 월 며칠 날
뭐라고 했지? 그 영감 두고 보자.
우리는 부처님
경전 외우고 시를 외우는데 자신 있는데, 남의 말 들으면 그냥 잊어 버리는데, 보살들은 이거 외울 것은 안 외우고 남편 몇 월 며칠 날 잘 못한 것은 10년 동안
기억을 하고 있데요.
그래서 그러면
여러분들이 생각을 해 봐요, 그러면 연속극 보고 축구 게임 보는 것이 훨씬 안 낳을 까? 그러면 번뇌 망상이 안 일어 나니까. 선방에 잠깐 앉았으면 얼마나
일어 나는지.
내 송광사 살
때, 하루는 떡 앉았는데, 돌아 가신 종정스님이 그때 입승
볼 땐데, 한 스님이 무릎을 탁! 치면서 ‘알았다!’ 그러는 거에요. 저 스님이 깨달을 정도로 공부 한 스님이 아닌데 무어냐? 해서 다 돌아 앉으라 해서 ‘뭘 알았냐?’ 하니까 ‘하, 내가 한 20년 전에
돈을 빌려 준 사람이 도저히 생각이 안 났는데, 아 그게 생각이 났다.’
이거요. 그건 마음이 가라 앉으면 생각이 나요.
그러면 여러분이
번뇌 망상이 일어 나는 것은 내 안에 눈이 가라 앉으면 찌꺼기가 보였다는 이야기 아니요? 번뇌 망상이
바깥에서 들어 오는 게 아니잔아. 아, 내 안에 이런 번뇌망상이
있구나. 해서 그걸 기도로 바꾸고 화두로 바꾸니까 내 안에 어떤 도둑놈이 있는 가를 먼저 알아야 되기
때문에 번뇌 망상이 일어 나는 것은 그 놈을 볼 줄 알아야지. 연속극 볼 때는 휘저으니까 그 찌꺼기
볼 여가가 없다 이 말이야. 더 그냥 흙탕물이 일어 나는 시간이다.
아,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샘물이 가라 앉아야 번뇌 망상이 뭐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니까 내 마음을 가라 앉혀야 하겠구나. 고로 기도하는 것도 참선하는 것도 전부 다 내 안에 샘물을 가라 앉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내
단점이 보이 걸랑 그걸 싫어하지
말고, 이런 내 못된 성질을 진압을 할게 아니라, 어이 자네
덕택에 내가 오늘까지 살아 왔네. 그럼 우리 한번 부처의 길 가 보자.
‘이 뭣고?’
그렇게 해서 마음들 좀 농사 잘 지어 가지고 눈 감고 저승 갈 땔랑 천상명의 귀천에 나오는 시처럼,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나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정말 손짓하고 갈 수 있어야 됩니다. 특히 불자들은.
나는 부처님
제자가 된 불자들이 이 세상 나온 정말 복 중에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석종사 와서 내일부터라도 정말, ‘세월이 가는 게 아니라
내가 달리고 있으니, 나는 어디로 달리고 있는가?’ 가는 순간 순간에 내 발자국 확인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금강경을 읽든지, 절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꼭 조금씩 이라도 해 나가야겠다’ 해서, 눈 감을 때 그것 밖에 가져 갈 수 없으니, 천금 같은 인생을 그림 잘 그리고 그렇게 가십시다.
나도 없고 남도 없을 때 어떠합니까? 대나무 그림자 맷돌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어 나지 않고, 밝은 달 연못을 투과해 들어 가도 물결 하나 일어 나지 않는구나.
부디 소원을 잘 이루어서 행복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