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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일 금요일 구병산 맛보기
윤이와 둘이서
산행코스 : 적암리 – 절터 – 동봉 – 절터 – 적암리 원점회귀
산행거리 : 약 7.6 km 산행시간 : 약 4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763565
거리 7.6 km
소요 시간 4h 28m 34s
이동 시간 3h 40m 59s
휴식 시간 47m 35s
평균 속도 2.1 km/h
최고점 846 m
총 획득고도 572 m
난이도 힘듦
지난 추석에 엄니집에 다녀온 후 러시아 여행에다 백두대간 산행이 매주 이어지다보니 한 달 넘게 찾아뵙지 못했다. 모처럼 백두대간 산행이 없는 주말이라 유구에 가려고 했는데 마침 토요일이 장모님 88회 생신이라서 대구에도 가야했다. 어쩔 수 없이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서 대구에 갔다가 유구를 들러오기로 했다.
대구 가는 길에 회덕 – 상주간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구병산(九屛山 876.5)에 들르기로 했다. 충북알프스 제 1 구간에 속하는 구병산은 전에 가보고 싶은 산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이제까지 가보지 못했다. 전에 백두대간 백학산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길에 잠깐 속리산 휴게소에 들렀을 때 휴게소에서 올려다본 구병산 암릉은 산객을 유혹하는 듯 장엄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금요일 아침 일찍 미리를 회사에 데려다 주고 출발할 생각이었으나 어찌하다 보니 9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구병산 들머리인 적암리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다른 사람들이 쓴 산행기를 보니 산행 소요시간도 제각각이다. 빠르면 4시간쯤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6 ~ 7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시간이 촉박하다.
구병산 입구 적암리 마을에서 바라본 시루봉
오늘따라 공기중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온통 하늘이 뿌연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주변 산을 바라봐도 짙은 먼지와 뒤섞인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리다. 만일 저런 상태라면 산행을 하는 의미가 없어보인다. 다행히 오후에는 좀 나아질 것이란 예보를 믿고 산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가는 도중 졸음이 쏱아져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적암리 휴게소에는 12시 넘어서 도착했다. 천호시장에서 김밥을 사왔으나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고 가기로 했다. 좀 낯선 음식이지만 돼지고기 짜그리라는 음식을 시켜먹었다. 고기에서 좀 역겨운 냄새가 났지만 원래 그런 음식인가보다 하고 먹었다. 동네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인 듯 점심시간에 식당이 무척 붐빈다. 우리 둘 다 배탈이 난 걸 보면 돼지고기 짜그리에서 나던 수상한 냄새가 음식의 상한 징조였던 것 같다.
구병산 : 왼쪽부터 구병산 정상, 853봉, 835봉 그리고 맨 오른쪽 신선대
미세먼지가 조금 걷히고 나니 청명한 가을 날씨가 돋보인다. 하늘은 푸르고 단풍든 감나무 잎이 예쁘다. 적목리는 보은군에 속하지만 상주시에 가까이 있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마을에 감나무가 많고 감을 켜서 곶감으로 말리는 집도 여럿 보인다.
11월 2일부터 산불조심 기간이라며 산 들머리에서 안내원 한 분이 불쑥 나서면서 “늦으셨네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지금 올라가면 어두워서야 내려올텐데 산길이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오후 2시다. 빨리 다녀오다 해도 오후 6시는 될 터이니 이미 어두워졌을 시간이겠다. 우선 갈 수 있는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조금 올라가니 물이 마른 개울이 나오고 이어서 좁은 임도 끝에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가면 신선대 좌측으로 가면 구병산 정상이다.
가을풍경 - 적암리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이 보인다. 보은군과 상주시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산국>이 활짝 피었다.
감나무 단풍잎
<개쑥부쟁이>
<좀작살나무>
이미 시간에 쫒기는 형편이 되었으니 신선대로 올라갔다가 구병산을 찍고 내려오기에는 너무 늦었다. 곧바로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아보인다. 생강나무와 비목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단풍이 강원도나 서울 도봉산에 비해 화려하지 않지만 노란색이 가을 기분을 고취시킨다.
까만 열매가 달려 있는 낯 선 나무도 보인다. 충청도가 북방한계선인 <감태나무>다. 생강나무나 비목나무와 마찬가지로 녹나무과 생강나무속이다. 이 산 중턱 아래쪽에는 유난히 비목나무와 생강나무가 많이 보인다. 옛날 기름이 귀하던 시절 열매에서 채취한 기름으로 머리손질할 때 사용한 기름이다.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이라도 기름은 동백기름과 비슷했던지 시골에서는 생강나무나 비목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불렀다.
녹나무과 생강나무속 <비목나무>
녹나무과 생강나무속 <감태나무> - 충청도 이남지역에서 자란다.
녹나무과 생강나무속 <생강나무>
산길은 점점 좁아지고 조금 더 오르는 길 앞쪽에 붉은 색 단풍이 눈에 익은 나무가 우뚝 서 있다. <감나무>다. 나무 꼭데기에 서너 개 아직도 달려 있다. 길가에 축대처럼 보이는 작은 돌담이 있는 것이 옛날에 이곳에서 누군가 살고 있었던 흔적 같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오른 산길은 ‘절터’에 이른다. 조금 더 굵은 돌을 쌓아서 만든 축대 위는 약 30여 평 정도 넓은 땅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고 주변에는 감나무뿐만 아니라 오래된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다. <산수유>나무도 몇 그루 있는데 잎만 무성하지 열매는 없다.
절터 주변에는 감나무가 여러 그루 보인다.
<느티나무>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정수암지 옹달샘 전설
두꺼비를 닮은 바위
절터에는 주춧돌이 널려있다.
길 옆에는 이 곳이 옛날 ‘정수암’ 절터였다는 설명과 이 곳 약수가 정력을 키워주는 바람에 이 곳에서 수련하던 스님들이 6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하산했으며, 이 옹달샘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면 생명이 칠 일간 연장됨으로 일 주일에 한 번씩 올라와 이 물을 마시면 영원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안내문을 돌에 새겨 놓았다. 그런 풍문에 사람들이 다 마셔버린 탓일까 샘물은 말라 있고 빈 절터는 고즈녁하다. 절터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또 발길을 재촉한다.
이 절터는 또 하나의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구병산 정상이고 오른쪽은 853 봉이다. 왼쪽으로 가는 길은 희미한데 반해 오른쪽 길은 계단으로 잘 다듬어져 있고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뚜렷하여 오른쪽 길을 택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택했다.
계곡길을 오르다 내려다 본 풍경
잘못든 길 끝에는 바위절벽이다. 끝에 동봉이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오르자 예전에 설치해 놓았던 디딤목은 낡아서 땅에 뒹굴고 가파른 길에는 작은 모래알갱이와 낙엽으로 미끄러워 조심하지 않으면 왼쪽 벼랑으로 구를 수 있다. 가끔 빨간색 시그널이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기에 등산로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지만 아무리 보아도 등산객들이 지나다닌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하고 올 때는 항상 길도 아닌 곳으로 데리고 다닌다고 또 한 바탕 소나기가 내릴 듯한데 왠일로 조용하게 앞서 올라간다.
이제 눈 앞에 너덜겅이 나타난다. 크고 작은 돌이 널부러져 있는데 안정화되지 않아 어떤 것은 흔들거려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지기 쉽상이다. 나무 사이로 올려다본 정상쪽은 깍아지른 바위절벽이다. 계속 이 너덜겅을 따라오른다 해도 끝에서 능선길과 어떻게 연결될지 알 수 없다. 마침내 너덜겅이 끝나고 가파른 흙길이 이어진다. 나무를 붙잡고 한 발 한 발 디디며 올라 작은 안부에 올라섰다. 물을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른다. 진행하던 방향으로는 깍아지른 암벽이다.
<천남성>
능선에 가까와지자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질텐데
저 끝에 있는 봉우리가 구병산 정상이겠지.
정상을 오르지 못하는 대신 바위 위에 멋지게 서 있는 소나무에 만족한다.
조금 여유를 갖고 옆을 보니 조망이 탁 트인 바위가 있다. 아랫쪽을 보니 우리가 출발했던 적암리 마을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너머로는 끝없이 산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조금 걷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산의 형상이 뿌옇게 보인다. 뒤를 돌아 구병산 능선길 왼쪽으로 큰 봉우리 두 개가 우뚝 서 있는데 짐작컨데 저 중에서 멀리 있는 높은 봉우리가 구병산 정상이리라. 시간은 4시를 향해 치닫고 있어 해가 쥐꼬리만큼이나 짧아진 걸 감안하면 오늘 정상을 밟는 것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윤이는 벌써 하산을 종용한다. 앞으로 이어진 길이 불분명하니 올라온 길을 뒤돌아가자 한다.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마구 서둘러대는 성격을 익히 아는지라 잠시 난감해진다. 우선 앞쪽을 살펴보기로 했다. 꽤 높은 암벽인데 군데군데 손발을 지탱할 수 있는 바위 모서리가 여러 개 나 있어 올라가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 암벽 아래에는 예전에 설치했던 로프가 끊어져 땅 위에 뒹군다. 윤이는 그런 암벽을 오르는 것은 무리라 한다.
찬란한 단풍나무 숲도 여유가 있어야 감상할 수 있다.
절벽 사이에 난 회랑을 따라 능선길에 닿는다.
그리고 곧바로 절터 방향으로 하산을 결정한다.
다시 암벽 아래 좁은 회랑을 따라 조심조심 왼쪽으로 진행하여 가 보니 거기에도 예전에 버려진 로프가 널부러져 있다. 짐작컨데 전에 충북알프스를 야심차게 추진할 때 설치했던 것이 관리가 안돼 방치된 것 같다. 회랑을 따라 조금 더 나아가니 내가 짐작했던대로 능선길이 나타난다. 능선길 비탈진 바위에는 새로 매어놓은 하얀색 로프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윤이에게 이쪽으로 건너오라고 하니 정말 길이 있느냐, 왜만하면 그냥 올라온 길로 내려가자고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던진다. 이 쪽에 능선길이 있다고 다시 확인시켜 주고 나서야 마지못해 건너온다.
오후 4시가 넘었다. 능선에 올라서자 마자 갈림길이다. 853봉으로 되돌아갈 일은 없고 반대편 구병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거리표시는 없다. 계곡으로 난 길은 절터까지 2.0 km 라고 표시되어 있다. 절터에서 적암리마을까지 가는데 또 얼마간 시간이 소요될 터이니 지금 발길을 돌리는 것이 맞다. 윤이는 어쩐일로 자기말대로 따르는지 신기하다며 좋아한다. 나도 내 나름대로 계산을 해보았는데 짧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기 전에 하산하려면 여유를 부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산하는 길은 비교적 가볍다. 올라올 때에 비해 길도 잘 되어 있고 단풍나무가 화려하게 물들어 있다. 그러나 이 길도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예전에 매어놓은 로프는 길에 너부러져 있어 땅에 박아 놓은 쇠말뚝이나 밧줄에 얽혀진 철사줄이 자칫 방심하면 부상을 줄 수도 있겠다. 절터가 가까와지고 하산시간이 가늠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될 즈음 바위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아름다운 단풍도 이제 마지막 끝물이다. 내년에나 다시 볼까나.
어떤 때는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화투장 10번째 풍(楓)이다. 10월을 상징한다.
이렇게 고운 단풍을 보니 정상에 가지 않은 마음도 위로가 된다.
산에 오를 때부터 눈에 띄는 것이 돌의 색깔이다. 길가에 있는 돌의 색이 연한 자주색이다. 지난번 덕황산 산행길에 자암재라는 고개를 지나면서 그 고개 이름의 유래가 바위 색이 자색(紫色)인데서 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주변에서는 바위가 보이지 않았었다. 이 산행 들머리로 삼았던 적암리의 이름 유래가 산 아래에 있는 바위가 붉은 색을 띄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대충 보아도 이 산에 있는 돌은 철분이 섞여있어서 그런건지 자주색을 띄고 있다.
하산길은 평이하다. 2 km 되는 절터까지의 하산길을 쉬엄쉬엄 한 시간만에 내려오니 아직도 해가 한 자락 남아 있다. 절터에서 마을까지는 이미 왔던 길이니 편안한 오솔길을 산책하듯 걷는다. 산불감시하던 아저씨는 퇴근했는지 자기집 옆에서 마른 들깨를 추스리고 있다. 길에서 만난 마을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더니 다가와 젊을 때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라며 보기 좋다고 웃으며 지나간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본다. 머지 않아 내 다시 오마 !
사람에게도 귀소본능이 있어 늘 집에 가는 길은 편안하다.
올라갈 때 갈라진 절터를 지나고
단풍나무 우거진 숲길을 걸어 내려간다.
낮에부터 떠 있던 초승달이 감나무 가지사이로 점차 빛을 더해가고 산 너머로 소리없이 내려앉은 저녁해는 잠시 밝은 기운을 보이더니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마을을 지나는데 귀밝은 동네 개들이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를 용케 알아채고 반갑다고 하는건지 겁주려고 하는건지 왕왕 짖어댄다. 높은 감나무에 장대를 걸어 가을을 거두던 노인은 집으로 들어가고 열린 대문 안으로 마당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곶감이 마지막 햇볕을 받고 가을 어둠속으로 잠긴다.
6시가 다 되어 구병산 식당이 있는 휴게소에 도착하여 4시간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어쩌면 이렇게 아쉬움을 남겨두는 것도 꽤 괜챦은 일이다.
그래야 다음에 또 오고 싶어지니까.
손주들에게 줄 곶감이 말랑말랑 익어간다.
낮에 놀던 초승달이 하늘 한가운데 감나무 가지에 걸리고
느티나무 우람한 휴게소에서 하루 산행을 마친다.
첫댓글 ㅎ자율산행은 원점회귀가 아쉽죠~
구병산 정말 멋진 산이더라구요. 충북알프스 다시 한 번 가볼 생각입니다. 시간 부족 그리고 미세먼지로 인해 조망이 좋지 않아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