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作 <아주 환한 날들>
김문음
70대의 여인인 주인공은 혼자서도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 남편이 죽고 홀로 지켜오던 과일가게를 체력이 부쳐 육 년 전에 아예 접은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일과를 아주 정교하게 짜 놨다.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라며 독려하는 평생교육원 수필쓰기 시간에 그녀는 아직 한 번도 글을 써낸 적이 없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단지 그 수업이 ‘수요일 오후 세시에 개설’되었기에 신청했던 까닭이다. 그 전에는 건강 수지침 수업, 여행 영어회화 수업, 생활 인터넷 수업을 들었었다. 이외에도 월요일 장보기, 화요일 아쿠아로빅, 저녁이면 천변에 나가 일만 보 걷기, 잠들기 전에 T.V로 가벼운 오락 프로그램 보기 등을 수행하며 알차게 지낸다. 주말에는 딸과 통화를 하며 짧은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녀는 뭐든지 스스로 해결하며 살았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다소간 자부심을 느꼈다. 혼자 집에 있으면... 뜻하지 않은 비난을 받을 일도 없었다.
그렇게 ‘아늑’하던 그녀의 일상은 사위가 한 달만 맡아 달라는 바람에 앵무새를 집안에 들인 후, 수선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곧 후회했다. 그녀가 그 부담스러운 부탁을 수락한 것은 딸애가 어릴 적 닭이 없어졌다며 목놓아 울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고생스러운 한 주일을 보낸 후 딸애에게 전화했음에도 딸이 짤막한 답변만을 하자갑자기 섭섭함이 밀려왔고, 그녀는 콱 죽고 싶어졌다. 딸이 그녀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 게 열세 살 때부터였는지 열다섯 살 때부터였는지 그 시점이 졍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들 사이가 틀어진 것을 그즈음부텨었는지도 몰랐다.
언젠가부터 딸과 통화를 하고 나면 그녀는 몸 쓰는 일을 찾아서 했다. ... 마음이 심란해지면 몸을 쓰는 건 장사할 때부터 그녀의 몸에 밴 습관이었다. 선량한 편이었지만, 밥을 차려줄 사람이 필요해 그녀와 결혼한 것으로 보였던 남편은 일머리마저 없어, 야채가게 일은 온통 그녀의 힘으로 일구어졌으므로, 몸을 혹사할 일이 많았다. 그녀에게 마음을 돌볼 여유라곤 없었다.
밥그릇을 엎고, 가슴팍의 깃털을 뽑고, 툭하면 비명을 지르는 앵무새로 인해 곤혹스러워 하던 중, 설상가상으로 앵무새가 아픈 것 같아 병원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놀아주라고요?”
“안 그러면 외로워서 죽어요.”
죽는다고? 울음을 터드리는 어린 딸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선했다. 죽더라고 내가 데리고 있는 동안에는 안 되지. 그녀는 이제 사료도 다르게 주고, 새장을 열서 앵무새와 놀아도 주며 일주일 만에 3킬로가 빠질 정도로 섬세하고도 고역스러운 돌봄 노동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신기하게도 앵무새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털실 뭉치처럼 고개를 파묻고’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그녀의 배 위에 올라앉아 있는 앵무새를 보며 속수무책으로 말랑말랑한 마음이 된다. 앵무새 관련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를 드나들며 정보를 얻고, 급기야 초소형 이동장을 구입해 천변 산책까지 앵무새와 함께 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아득히 잊었던 기억들이 소환된다.
어릴 적 강진 할머니댁에 보내져 백부 집에 얹혀살던 시절, ‘서울 말씨와 얼굴의 수두 자국’ 때문에 주변 아이들로부터 놀림 받아 ‘스스로가 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떨어져나온 부스러기’처렴 느끼며 숨고만 싶었을 때, ‘수두 자국 있어도 예쁘다’, ‘달도 겉이 움푹 패여 있지만 저렇게 빛나고 아름답잖니’라 말해주던 춘식이 삼촌, 중학교 시절에 친구 점선과 오빠들과 함께 동대문 실내 아이스링크에 처음 갔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던 기억(‘넘여져도 다시 일어서던 몸들’)...
가슴 아픈 기억들도 있다.과일 트럭이 다른 차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으니 빼라는 경비원과 핏대를 높여가며 싸우는 걸 본 딸이 그녀더러 창피하다고 말했을 때는 그녀도 너무 창피하고 분해 뺨을 때렸다.
똥이 안 나온다고 하도 그래서 변비약 정도는 알아서 사먹으라고 남편에게 화를 냈는데 알고 보니 내시경이 안 들어갈 정도로 이미 암이 커져 있었다.
그녀는 (딸의) 아이들이 자라는 걸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아이를 매일 돌보고 매일 저녁 딸과 밥을 같이 먹는 건 그녀가 아니라 딸의 시어머니였다. 딸은 단 한번도 그녀에게 아이를 맡아달라 부탁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변에서 새장의 잠금쇠를 풀었다. 날아갈 수도 있다 했지만 앵무새는 봄날의 목련송이처럼 그녀의 웃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이고 간지럽잖아” 너무 간지러워 웃음이 났다. 한번 터지자 웃음이 계속, 계속 나왔다...
그녀는 아득히 어린 시절, 그녀가 무서워할 때면 아홉 살 많은 사촌언니가 그녀을 업고 불러주던 노래도 기억해냈다.그녀는앵무새를 품은 채, 환한 달이 하천 위로 기다랗고 빛나는 띠를 그려놓은 걸 보며 흥얼거렸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앵무앵무 앵무새 밭에서 울지...
앵무새가 갔고, 그녀는 일상을 되찾았다. 어느 겨울날 노트 갈피에서 아주 작은 연노란빛 솜털 하나를 발견한 후, 그녀는 ‘앵무새’라고 써본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하던 그녀, 이제 눈을 감은 채 기억들 사이를 헤쳐 지나갔다. ... 작고 작은 새가 그녀에게 있던 시절로.
그러고 보면 그 시절,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앵무새가 전부였다. 앵무새에게도 그녀가 전부였고.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걸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
글이 아주 섬세하고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어 체험하듯 푹 스며들어 읽었다.
-날 살리는 생명의 온기를 주기도 하고, 날 해치는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게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 내게 상처를 주었던 혹 내가 상처를 주었던 이(순간)는 누구(무엇)였을까.
-읽으면서 ‘말랑말랑한 힘’이라는 시집 제목이 떠올랐고, 내가 2019년에 썼던 책 속의 한 대목도 생각났다.
(“내래 너 넘마 처음 봤을 때, 꽃같이 예쁜 여자가 새까만 연탄을 머리에 이고 눈빛도 초롱초롱하니 흔들임 없이 오래 착, 착, 걸어오는데... 와아, 내 가슴이 철렁하니, 놀랐다 야.”
‘곷같이 예쁜 여자가 새까만 연탄을 이고’ 그 표현이 하도 선명해 지금도 이따금 떠오른다.
꽃같이 예쁜 젊은 아낙이 머리에 까만 연탄을 이고 사뿐사뿐 걸어온다. 아직 생때같은 새끼 삼남매, 무능한 남편과 오빠,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생존의 압박에 치여, 자신이 장차 얼마만큼 괴수처럼 변해갈지 모르는 얼굴이다. 그저 한 가닥 불안을 머금고, 입술을 꼭 다문 채 행여라도 정신이 스트러질세라 한곳만을 응시하는, 골몰해 있는 얼굴이다.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
나는 도원엄마가 ‘꽃같은’ 하셨을 때의 그 얇은 꽃잎의 느낌, 연약하고 부드러운 생명의 온기를 가만히 호출해본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딸아이의 단답식 말에, ‘그녀는 콱 죽고 싶어졌다’라는 표현이 난데없이 나오는데, 그 과격하다 싶을 수도 있는 대목이 실은 완전 공감되었다. 부모 자식은 서로에게 ‘급소’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주변에 ‘조손 가정’ 아니고, 자식이 키우던 반려동물을 대신 키워주는, (워커홀릭으로 살다가) 그 동물을 통해 뒤늦게 화해의 기운을 만들려 애쓰는 지인들이 몇 있어 더 실감이 났다.
-후반에 주인공이 앵무새에 대한 글을 쓰는 대목은 앞의 글쓰기 강좌와 맞물리며 너무나도 이창동 영화 <시>가 연상되어 심히 민망해지려 했는데, 눈을 감은 채 기억들 사이로 빠져들어 갈 때 다시 감정이입이 되어 다행히 흡족하게 마칠 수 있었다.
-기억의 갈피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따뜻하고 환한 공간에 도달하는 걸 잘 그려냈기에 나도 더 깊이 깊이 어떤 환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낑낑 시도해보다가, 아주 어릴 적 우리 집에 얹혀살던 큰외삼촌이 떠올랐다. 기골이 장대했던, 그러나 남한 사회에는 적응하지 못한, 우리 동네의 흔한 실향민 백수 남성 중 하나였던 큰외삼촌이 나 유아 시절에 무척 예뻐하며 한글, 그네 타기등도 다 가르쳤고, 나를 달고 천재라고 자랑하며 다녔고, 아, 무엇 보다 내가 ‘땡깡을 부릴 줄도 아는 아이’였다는 유일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