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중국어
海待 (하이따이)
해외유학 귀국후 직장을 찾지 못한 자를 뜻함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을 '海归(海龟, 바다 거북이와 발음이 같음)'라고 한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서 직장을 찾지 못하고 그냥 쉬고 있는 사람은 무엇이라고 부를까?
요즘 중국에는 많은 해외유학파 출신들이 적합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조롱반, 진담반으로 '미역(海带)'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자로 쓸 때는 '海带'가 아닌 '海待(海带와 발음이 같음)'로 쓴다. '海待'는 "해외에서 유학하고 귀국해 직장을 찾지 못해 일자리를 마냥 기다린다"의 뜻으로 요즘 중국 현실에 맞게, 새롭게 나온 단어이다.
'海待'가 형성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몇가지를 꼽아보면 이렇다. 첫째, 중국교육수준이 크게 향상되었기에海归(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취업이 예전같지 않다. 둘째, 요즘 중국의 기업과 일반 직장에서 인재채용에 대한 요구가 더욱 합리적이다. 예전에는 학력을 주로 봤지만 현재는 능력을 위주로 따진다. '海归'는 상당한 기간 해외에 있다보니 국내형세에 대한 이해가 적다. 그들은 이론지식만 풍부했지 실전경험이 적다. 때문에 기업은 국내에서 배양된 동등한 자질을 소유한 인재를 채용하는 편이다. 셋째, 사실 '海待'들의 자질은 그리 높지 않다. 해외유학을 다녀왔다고 해서 모두 높은 기술과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넷째, 해외유학파들은 월급에 대한 요구가 높다. 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유로 높은 월급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이런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의 취직은 순순히 풀리지 않고 취직은 하루 이틀, 한달 두달 미루어져 마침내 취직 대기자 '海待'행렬에 가담하게 된다.
靠山 (카오산)
후원자 혹은 믿고 의지하는 사람
후원자 혹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靠山(카오산)'이라는 말은 당나라의 안록산(安禄山)의 난에서부터 시작된다.
당현종(唐玄宗) 이융기(李隆基)는 삼진 절도사였던 안록산을 몹시 총애하였는데, 신임이 두터워 그를 재상으로 발탁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상(右相)이었던 양국충(杨国忠)이 이를 알아차리고 황제에게 안록산은 야심이 큰 인물이니 재상 발탁은 거두기를 간곡히 권했다. 양국충의 진언을 들은 황제는 장계(张戒)에게 명해 재상 발탁과 관련한 조서 작성을 중지시켰고, 안록산의 절친한 친구였던 장계는 이같은 사실을 안록산에게 알렸다. 후에 당(唐)대의 대시인 이백(李白)을 만나게 된 장계가 안록산과의 일을 얘기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들은 이백은 거침없이 "내가 보기에 안록산은 반역을 꾀하는 놈이다. 그의 야심이 만만치 않으니 절대 '靠山(카오산)'하지 말고 황제를 잘 보필하라"고 충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백의 말대로 안록산이 난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백의 충고를 깊이 새겨들은 장계는 안록산과 멀리했고 난이 정리된 후에도 여전히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후에 장계는 "'靠山(카오산)'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고 하며 이백의 충고에 따른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이때부터 '靠山(카오산)'이라는 말은 후원자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면서 지금까지 이르게 된다.
眼中钉 (이엔중띵)
눈에 든 가시
眼中钉(이엔중띵)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 또는 사물을 눈에 든 가시로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가 나타난 유래를 살펴보면 오대(五代)시기로, 처음 사람들에게 '눈에 든 가시'로 보인 사람은 후당(后唐)의 조재예(赵在礼)이다.
'신오대사 조재예전(新五代史赵在礼传)'에 따르면 그는 당명종(唐明宗)시에 송주(宋州)의 절도사(节度使)였다. 재임 중 그는 자신이 황제의 친척이라는 권세를 믿고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기는 등 백성을 마구 유린해 원성이 높았다. 그러다 나중에 그가 면직을 당하자 이 소식을 접한 송주의 백성들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서로 소식을 전하며 '눈에 든 가시를 뽑아 버렸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고 속내를 나타냈다.
한편 '눈에 든 가시'는 '살에 박힌 가시(肉中刺)'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멍청함을 뜻하는 '얼바이우'의 유래
중국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반댜오쯔(半吊子)와 얼바이우(二百五)가 있는데 이는 둘 다 그다지 좋지 못한 뜻으로 쓰인다.
'반댜오즈'는 보통 사리 분별력이 없는 사람, 지식이나 기술이 미숙한 사람, 불성실 등의 뜻으로 쓰이고, '얼바이우'는 천치, 바보, 멍청이, 학문이나 기술이 미숙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이 습관처럼 쓰는 이 두가지 말은 언제부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두 관용어는 중국 고대에 쓰이던 화폐 단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대에 가장 널리 쓰이던 화폐 가운데 네모끌 구멍이 난 원형 동전이었는데, 사람들은 휴대를 간편하게 하고 계산하기 쉽도록 끈으로 동전을 꿰어서 가지고 다녔다. 이 동전을 꿰어 놓은 끈을 한대(汉代)에는 관(贯)이라고 지칭했었다. 이후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기에 이르러서는 이 '관(贯)'이 또 하나의 화폐 단위가 되었는데, 일관(一贯)이 1천문(一千文)에 상당했다. 또 돈을 꿰어 들었을 때 아래로 처친다(垂吊)고 해서 '일적(一吊)'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반댜오(半吊子)'가 유래하는데 일적의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반댜오쯔(半吊子)' 혹은 반댜오(半吊)라는 말로 여러가지로 부족한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했다.
한편 '얼바이우'는 '반댜오쯔'를 토대로 생겨난 말인데 250문 '얼바이우'로 500문인 '반댜오쯔'의 절반이라고 해서 아주 못난 사람을 청하는 의미로 쓰였다. 근래에는 두 관용어 모두 웃기는 말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倒霉 (다오메이)
'운수 사납다'
'운수 사납다'는 뜻으로 쓰이는 '다오메이(倒霉)'라는 단어는 본래 장저(江浙)일대의 지방 언어이다. 이 단어가 생겨난 시간은 대략 명조(明朝) 말년으로 짐작되고 있다.
'팔고취사(八股取士)'라는 당시의 과거제도는 응시 자격이 엄격히 제한되었기 때문에 좋은 자질을 가진 자들이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거기에다 시험장의 부정 행위가 만연해 과거 시험에 급제한다는 것은 마치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았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길할 것을 기원하여 시험을 치르기 전에 일반적으로 제집 문앞에 깃대를 세웠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를 '미(楣)'라고 했다. 만약 시험에 붙으면 깃대를 여전히 세워 두었으며, 낙방하면 깃대를 넘어 뜨렸는데 이를 '다오메이(倒·넘어뜨리다+楣)'라고 하여 '운수 사납다'는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
门当户对 (먼당후뚜이)
'비슷한 수준의 집안'
건축 미학에서 유래
중국인들은 혼인 관계에서 남·녀 두 집안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형편이 걸맞아야 혼사가 원만하게 이뤄 질 수 있다고 여기며, 이를 '먼당후뚜이(门当户对)'라 일컫는다.
'먼당'이란 원래 대문앞 양쪽에 놓여진 돌 북을 말한다. 북소리는 넓게 퍼지면서도 위엄이 있어 고대 민간에서는 악귀를 피하는 것으로 치부해 왔다.
'후뚜이'는 대문(门楣) 위 또는 대문의 양쪽에 설치한 벽돌 혹은 나무로 된 조각이다. 전형적 '후뚜이'는 짧은 원형 기둥으로 길이는 33센치미터 정도이다. '후뚜이'의 원형은 생식 숭배 관념과 관계가 깊다.
'후뚜이'와 '먼당'은 건축 미학의 원리다. 이처럼 필수적 조화라는 사회의 관념에서 비롯되어 나중에는 혼인에서 배필 여하를 가늠하는 상용어로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