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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생 호랑이할머니들의 추사모
우선자
초복, 중복 입추가 지나 벌써 몇 달째 하늘도 무심하시지 기다리고 기다려도 비 다운 비를 볼 수가 없다. 시원한 소낙비가 잠시라도 머리 위로 쏟아 퍼 부어 내리면 좋으련만 연일 폭염의 연속이다.
‘행정안전부 안내, 오늘 11시 폭염경보, 최고 35도 이상, 야외 활동 자제 충분한 물마시기 등 건강에 유의바랍니다.’ 연일 계속 되는 폭염주의와 야외활동 자제 안내휴대폰의 문자 전송은 식상하다.
마른장마에 참을 수 없는 폭염을 불러온 이상 기온은 해가 거듭 될수록 열감은 배가 되는 듯하다.
아파트 층층마다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아스팔트 위 달아오른 지열, 나뭇잎들마저 목말라 윤기를 잃고, 바람 한 점 없는 베란다 창문은 열기도 겁이 난다.
때 마침 익숙한 polaris 휴대폰소리에 친구 영순이가 귀청을 울린다.
“뭣 하노? 오늘 추사모 모임 아이가 오고 있나?”
아! 깜빡. 대충 서둘러 택시를 타고 갔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냉냉 하다. 야무지고 시간관념 철저하며 똑 부러지고, 빈틈없는 점순이의 신경질에 변명의 여지도 없다.
“가시나 시간 좀 지켜라! 누군 시간이 남아돌아가나, 기다리는 사람 생각 좀 해라.” 짜증을 내며 고성을 지를 땐 친구고 뭐고 뒤도 안 보고 돌아오고 싶었다.
찜찜하고 끈쩍거리는 기분은 화끈거리는 열감으로 솟구쳐 올라 정말 덥다 더워!
친구들은 서로가 음식 솜씨자랑에 날을 세우지만 오늘 계주인 영순이의 웰빙음식으로 먹음직스럽게 한 상 가득하다.
영순네 부부가 정성껏 가꾼 텃밭 여러 종류의 야채 쌈, 어름동동 시원한 배추물김치, 찐 가지나물무침, 양념돼지 불고기, 매콤하고 짭쪼름한 밑반찬도 입맛을 돋군다. 특히 쌈장 자랑에 TV 요리 특강이 무색할 정도다.
고스톱만 치면 못한다고 엄살을 떨던 내숭쟁이 복조가 드디어 입을 연다.
“야들아 묵을 것 다 묵었으니 한 판 돌리자. 너거들 휴가 안가나?”
백수가 휴가? 우린 남아넘치는 게 시간이야 깔깔거리며 박장대소한다.
50년생 범띠 호랑이할머니들 4 명은 어릴 적 골목 아래위 옆집 초등학교 동창들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병환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너무나 일찍 다섯 식구의 가장이 되신 친정어머니는 대구 도청 소재지 현재 경상감영 옆 중앙시장에서 채소난전을 하셨다. 새벽을 여시는 나의 어머니, 별을 이고, 별을 가득 채워 오셨다.
지금의 경상감영 중앙공원 동편 대보 백화점, 무궁화 백화점은 옛날의 명성을 잃었지만 60년 전엔 서울의 명동처럼 가장 번화한 대구역과 향촌동, 의류, 생활가전, 미군 구제물품 등이 주류인 교동시장, 미스코리아배출 송죽미용실, 극장 (대구, 자유, 송죽, 아세아), 녹향 음악 감상실등 유행의 첨단을,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거리였다
당시엔 시골서 살다 신혼부부, 중고등학생들이 유학으로 비교적 집세가 싼 방을 찾는 이가 많았다. 방세를 놓을 수 있는 제법 큰 집과 유동인구가 많은 중앙 시장에서 장사를 하신 어머니덕분으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다른 친구들 보다는 여유가 있는 편이라 항상 과일이랑, 건오징어 등 먹을 것이 있었다.
동네 소꿉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나의 집 부엌을 지나 골방에 모여 들었다. 요즘 Girl 그룹처럼 노래와 춤을 추며 끝도 없는 이야기꽃으로 해 지는 줄 몰라 하면 저녁준비를 하시는 할머니께서 문을 활짝 밀치면 큰 소리 내어 얼굴을 붉히시며 소리소리 치시며 화를 내시는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학교 마치면 너거 집에 갈 것이지, 천 날 만날 와 우리 집에 와서 안 가노 빨리 가거라.” 할머니의 귀찮아하는 소리 마다 않고 할머니의 꾸중을 듣고서야 그래도 아쉬워하며 겨우 자리를 떴다.
현재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모르는 친구 정분인 45년 전 동원 예식장에서 결혼식 할 때 한창 전성기 잘 나가는 배우 예명 ‘윤소라’가 왔다고 나와 남편인 신부와 신랑은 뒷전이었다는 것을 한 참 후에 알았다.
남편 친구들은 서로 자기를 윤소라에게 소개를 시켜 달라고 해서 남편은 좀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고 했다.
결혼식 이후론 본적이 없는 친구 정분은 영화 ‘속 팔도강산’ 음악과 함께 각지의 명승과 산업현장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국가홍보영화의 모범이 되는 작품에 출연한 신인배우이다. 국책영화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1968년 신인 배우로 촬영차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뉴욕 세계유명 도시로 다니며 특색 있는 도시의 그림엽서를 보내 줄 때는 꼭 학교로 보내 주어 배우 친구 덕에 어떤 관계며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그림엽서를 돌려 보며 나도 꿈 많은 여고생들의 선망이 되었다.
등교하기 전 매일 기다리 던 친구 윤소라는 나의 집 건너 이웃집 셋 째 딸, 아버지가 키가 무척 크며 서양적인 외모와 체구, 어머닌 외모가 일본 사람처럼 오목조목 인형처럼 보였다.
본명은 김정분 공부는 뒷전이고 우릴 관객으로 앉혀 놓고는 모션과 노래와 춤, 1 인 쇼로 웃기거나 우릴 보고 동작하나하나 세세히 가르쳐 주며 따라 할 것을 재촉하고 때론 잘못을 지적도 하고,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장래 진로가 분명한 친구는 대구에서도 좀 유명한 옛 제일극장과 아카데미 사이에 위치한 일광사진관에 중학교 2 학년 때 교복을 착용한 학생 사진이 전시 되어 있다. 외국적인 외모에 미소가 예쁜 친구 윤소라, 배우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사진관이 없어 질 때까지, 쇼 원도우 안쪽 중앙에 전시 되어 고등학교 때 서울로 간 친구를 사진으로만 하교 시에 가끔씩 눈도장을 찍은 기억이 난다. 다섯 명의 친구가 계원이 될 것인데 그립다.
우리 호랑이 네 명은 정말 묵은 지 같은 친구다. 다들 제 앞 가름 잘 하며 토닥토닥, 티격 퇴격, 푹푹 찌는 더위도 기세등등한 폭염도 추억을 사랑하는 모임‘추사모’가 있는 한 청량한 사이다가 될 것이다.
애꿎은 신발타령
우선자
산메아리 모임에서 모처럼 울진 ‘금강송 보부상둘레길’ 체험을 하기로 한 날이다. , 평소 보다 2시간이나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뒤척이다 잠도 아닌 선잠에 깨어 보니 모두가 잠든 동네아파트 주변은 캄캄하고 고요하다.
‘이웃과 더불어 서로 배려하고 친절한 아름다운 아파트를 만들어 갑시다’ 승강기 안에 부착 된 광고판 글이 생각났다.
방문을 살짝 열고 씽크대 수도꼭지를 쫄쫄 내리도록 아주 조심스레 간식을 챙겼다. 오이와 참외 오렌지를 8 명이 먹을 수 있도록 먹기 좋게 종류별로 랩에 넣고 믹스커피와 냉동실의 생수도 확인을 했다. 입고 갈 산행 옷과 6~7시간 걸어야 하기에 두께가 있고 넓은 어깨 끈으로 된 가방을 찾아 두었다. 체력 보충을 위해 견과류을 찾아보니 냉동실에 보관한 새콤 달콤 적당히 말려 쫀닥 거리는 아로니아 한 줌 그리고 지난 가을 소꿉친구 영순이가 사다 준 피호두를 야심한 밤이라 소리 안 나게 호두까기 기계에 힘을 주어 눌렀더니 욱신거리는 손가락의 아픔을 참았다.
신발장 문을 활짝 열고 여러 켤레의 등산화중 맨 윗 쪽 가장 자리에 있는 큐션이 많아 폭신폭신하고 두꺼운 양말을 신어도 발가락 쪼이지 않고 신고 벗기도 편리하고 발이 편한 등산화를 찾아 두었다. 준비 끝 얼마나 일찍 일어나 설쳤기에 아직도 오전 3시경 다시 잠을 청했다.
비몽사몽 잠꼬대 하는 나에게 오늘 울진 금강송 간다더니 벌써 6시가 다되었다는 남편의 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내 사랑 ★★이 검정 비닐에 든 김밥과 치킨도시락을 내민다. 난 6시 출발하면 KJ에서 아침제공에 금강송체험마을에서 제공하는 비빔밥을 점심으로 알고 있다. 나를 생각해 일부러 편의점에서 사 오신 건 고마운 일이나 김밥은 자기 아침으로 드시고, 치킨 도시락은 점심으로 드시라고 말 해 주었다. 혼자 있을 남편이 불쌍해 보여 애교를 좀 떨었더니 죽전우방은 걸어서 10분도 체 안 되는 거린데 자동차 키를 들고 먼저 나선다.
남편이 서두르는 탓에 눈을 두고 왔다. 그렇잖아도 늦어 애가 타는데 안경을 두고 가려다 되 돌아 안경을 쓰고는, 쌩하고 달려왔더니 버스 앞에 서있는 총무 K선생님 휴대폰을 올렸다 내렸다하는 모양이 나를 찾는 전화였음이 분명 했다. 센스 있는 남편 덕에 5분 만에 왔는데, 아유! 민망 버스 안 일행들의 시선은 무섭다. 아마도 내가 가장 연장자 같아 체면은 더욱 말이 아니었다. 뭐, 딱 6시 예약 된 출발 시간인데 겸연쩍어하며 안전벨트를 찾았다. 버스는 상주 ~영덕 새로 계통 된 고속도로 위로 단숨에 달렸다.
오늘 같이 체험하기로 한 ‘산메아리’ 동행은 15년 전 대구 J초등 1학년 전원 여선생님 8 명이 매월 모임을 가진다.
난 혼자서 10년 전 명퇴를 하고 세대 차이가 무려10년~20년 , 모임 시 대화내용도 다른점이 많고, 퇴근이 끝난 후 저녁 6 시경 만나면 백수가 밤늦게 집에 가는 것도 싫어 모임을 탈퇴할까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잘 버티고 월례회 출석에 모범을 보였다. 내가 탈퇴를 한다면 혹여나 모임이 흔들릴 수 있고, 15년전 학년 말 처음 모임을 시작 할 때 ‘산메아리’ 모임명도 내가 지었고 모임에 대한 선생님들의 열정과 분위기도 좋았기 때문이다.
현장에 근무 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임의 시작은 각 학교의 소식에서 교재 연구, 학생 생활지도, 상담, 담당 업무, 학교 분위기 등 각자 토론에 열의가 대단하다.
후배 선생님들의 수업기술 전수 공유의 장, 승진, 전보의 기회를 찾는 정보교환의 장에서 때로는 지루함도 있지만 난 묵묵히 경청을 하는 편이다. 근무 환경이 너무나 달라 격세지감을 느낀다. 또한 힘들어 하시는 후배 선생님 위로와 격려를 하고 후배 선생님들이 경험 할 수 없는 내가 본 학교 밖 생활 이모저모를 들려주어 간접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선배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교과 지도 보다 학생 생활지도가 너무 힘들어 사회에선 선망의 직업인이고 제자들이 희망하는 첫 번째 직업이지만 정작 선생님들께서는 가르침에 보람도 있고 학생 대부분이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나 명퇴를 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학부모 상담을 하지만 가정에서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나 변한 개인주의는 부모 가정교육의 성향에 따른 극적인 자식사랑, 방임, 방치로 생활지도 교육에 문제점이 많다고 한다.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라고 가정에서부터 태어나 말을 시작하면 일본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으로 철저한 가정교육이 된다면, 서로가 배려하고 존중하는 일반적인 사람과의 관계교육이 될 것임이 절실하게 느낀다.
가이드는 여행 일정이 프린트 된 A4한 장씩 주고는 지켜야 할 매너를 강조하였다.
"음주와 가무는 절대 금지, 승하차 시간 지키기, 동승한 민원을 생각해 귓속말로 얘기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가이드는 모두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찍 서둘러 왔기에 주무시면 청송휴게소에서 깨우겠다고 말하자 바로 버스 천정 양쪽 화려한 반짝이 네온불빛이 사라졌다. 동승한 일행들도 가이드가 말하기 전 거의 모두가 잠에 떨어 진 것 같다.
차창 밖은 곧 비가 쏟아질 듯 어둑 캄캄하다. 온 국민이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것 같은 가뭄 피해가 심한 이때 장대처럼 쏟아지는 소나기를 보고싶다. 우산과 비옷, 폭신폭신한 발 편한 등산화까지 준비 했지만 마음속으론 그래 도착까지 3시간만 비야, 비야......
성서 죽전우방에서 1 시간 청송휴게소 도착. 화장실이 끝내 준다. 마치 5성급 호텔에 온 듯 청결함은 기본이고 한식 출입문이 호화롭다. 타 휴게소와 달리 음료용 온수 설치는 했으나 시늉만 해서 카페를 이용 해야만 되는 휴게소의 장삿속이 좀 보인다.
KJ에서 제공하는 아침끼니를 간단하게 때우는데 먹는 모습이 장관이다. 시멘트 맨 땅 바닥에 쪼그리고 삼삼오오 앉아 먹는 사람들, 우리 산매아리는 제 각각 시래기국밥을 사람 턱 밑에 오는 높이의 시멘트콩쿠르담장 위를 밥상으로 나란히, 키가 좀 작은 P교장은 발뒤꿈치를 들고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 이라며, 우리 모두 옆옆이 얼굴 마주 보고 까르르 웃자니 담장 앞을 지나는 차들도 조심조심 운전을 하면서도 밥 먹는 군상들의 풍경이 너무나 웃겨 기이한 표정이다.
청송휴게소에서 2시간 남짓 제한 된 인원이 동시에 입산하기에 차는 속력을 내어 드디어 도착, 금강송보부상 체험은 산림보호 차원에서 하루 80명으로 인원제한을 하고 울진군 자체 문화해설사가이드와 함께해야만 예약 할 수 있다. 버스는 산행이 끝나는 지점으로 떠나고 우린 오로지 천 길 낭떠러지 위 토끼 길을, 넘쳐흐르는 계곡물을 건너, 때로는 산적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이겨내 생계를 유지 해야만 했던 옛 보부상들의 발자취를 찾아 문화해설사 등 뒤만 따라 걸을 뿐이다.
10년 전 남편과 함께 1박2일로 체험한 금강송 단지는 단지 앞 펜션까지 왕복 2시간 코스였고 산행 길도 쉬웠는데 처음부터 가파른 산 위로 오르니 숨이 차다. 등 뒤의 색도 무겁고, 오랜만에 신은 발목 위 까지 오는 등산화도 무겁다.
일행은 젊음이 말 해 주듯 나 보다는 앞선다. 영덕, 울진에서 생산 된 소금과 해산물을 내륙지방인 안동, 영양, 청송, 봉화로 무거운 물건들을 등짐을 지고 ,머리에 이고 다녔다는데 하지만 토끼 길 바위산을 오르고 내릴 때는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등에 있는 짐이라도 들고 싶다.
4분의 1쯤 왔을까? 시원한 계곡물과 쭉쭉 뻗은 미스코리아 늘씬한 다리를 연상케 하는 오늘의 주인공 미인송 등거북 모양에 붉은솔 껍질, 짙은 청록의 바늘 잎 하늘을 찌러 듯 높이 솟은 금강송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산양 서식지에서 문화 해설사의 말씀은 산양은 주로 바위 위로 다니고 서늘한 곳을 좋아하지만 기후, 자연환경의 변화로 개체수가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산양 보다는 휴식이 필요해 마음은 똑 같은 가 보다 일행 모두 간식 내 놓기에 바쁘다.
휴식도 잠시, 걷고 또 걸어 목도 마르고, 햇빛까지 눈부시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안경까지 안개비가 된다. 보이지 않는 안경을 접고 목 아래 옷 깃에 걸었다. 난 일행 중 맨 꽁무니를 따라 걸으며 ‘집이였음 좋겠다.’ 생각 뿐이다.
가뭄에 단비랄까 금방이라도 힘이 솟을 듯 먹음직한 산딸기 밭이다. 길은 외길이라 했겠다, 둑을 올라 큰 것만 골라 4~5개를 먹고 마음이 바빠 달렸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 옛 주막 터에 설치 된 그늘 막 통 나무 의자에 앉아 일행들 모두꿀맛 같은 비빔밥을 먹고 있어 나도 비좁은 자리 만들어 조미료 없는 담백한 산골 비빔밥을 뚝딱,
좀 이상하다 뭔가? 아! 내 눈이 살아졌다. 딸, 사위 함께 고르고 골라 마련한 비싼 안경, 지나 온 길 곰곰이 생각 해 보니 범인은 산딸기, 혼자서 막 달렸다. 소리치는 가이더를 뒤로 하고 안경을 잃었는데 거리도 가까우니 금방 갔다 온다는 말을 남기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는 힘을 다 해 달렸다.
둑 위로 올라가 산딸기 가지 이곳저곳을 뒤적여도 눈앞이 캄캄하다. 주변사방을 다시 찾았지만 애가 탄다. 할 수 없어 둑에서 내려와 길가에서 앉아 풀잎 하나하나 제쳐보니 아! 맙소사 오늘 못 올 곳을 왔구나! 안경 두 눈알은 흔적이 없고 안경테만 양쪽 부서져 ‘찾느라고 애 많이 썻지롱!’ 놀리는 것 같다. 안경테만 움켜지고 한 참을 걸었다. 걷는데 방해만 되어 서운한 마음을 달래고저 멀리멀리 던져 보았지만 내 눈 앞에서 계속 알짱거린다. 생각하니 찾기 전 까진 얌전히 있던 안경이 아둔한 주인을 만나 우악스럽고 미련한 등산화로 하여금 소중한 안경을 박살내었기에 등산화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처음부터 둑을 오르지 않고 차근차근히 찾았으면 될 것을 애꿎은 등산화만 탓하니 오늘 금강송 보부상 체험은 파란 하늘, 마음껏 들이키며 묵은 찌꺼기 걸러 낸, 내 온 몸을 정화 시키는 울창한 금강송 숲 맑은 공기로 채우고, 좋은 만남으로 긴 시간 서로의 속내를 알아 가며 650m고지에 우뚝 서있는 450년 된 금강송의 기를 받고 폼 잡은 추억도 남겼으나 찜찜한 기분은 영 ~ 씻을 수 없다. 애꿎은 신발이여, 내 안경 돌려 줘.
가을이 익어가는 시누이 사랑
우선자
카톡, 카톡, 까톡까톡...... 연신 울린다.
가을을 총 망라 할 수 있는 사진들 참으로 많이도 날아들 온다.
가을 풍경에 좋다는 문구는 다 넣어, 가을은 휴대폰에서 시작이다.
저 만치 멀리 간 듯 폭염을 뒤로 한 바람 맞으려 팔 벌려 하늘을 본다.
점 하나 보이지 않는, 말로는 말 할 수 없는, 샛 파랑 물감이다.
내가 하늘을 날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 들이 한 눈에 들어 올 것 같다.
역시 가을은 하늘이야!
따르릉~ 따르릉~ 수하기를 들자, 새댁 집에 있네.
상추랑 깻잎, 고추 줄 테니 밭으로 오라고 하신다.
“오늘은 자네 시매가 볼일이 있어 새댁이 밭으로 와야 해.”
난 손위 큰 시누형님께서 오라고 하시면 열일 마다 않고 자동차 시동을 건다.
가을볕이 서늘한 와룡산 산자락 아래 야들야들 쑥쑥 잘 자라는 상추 잎,
아래에서 위로 한 잎씩 갈릴 때는 입 안 가득 상추쌈이 생각나 군침 돈다.
보랏빛 갤쭉 오동통한 가지가 주렁주렁, 하지만 가을이 오나 보다.
반짝반짝 윤기 나는 한 여름 가지가 아니다.
한 여름 내내 잎 따든 들깻잎도 단풍이 든 듯 색 바랜 연 녹색으로 얇다.
형님께서는 해마다 조그만 텃밭을 일구어 주시는 농작물은 골목시장을 통째로 산 듯 다양하고 품질은 우량하다.
옛날 고등학교 등하교시 3 원을 내고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내리면
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남학생들이 뒤 따른다. 여드름쟁이 남학생들 히죽히죽 웃으며 남색 A자형 후레아 교복치마 내 무릎아래 종아리를 보고 놀린 절구통 보다 더 통통한 무시(무)를 가을 김장철이 되면 20 Kg 마대 자루 2 포대씩이나 주신다.
노랗게 속이 꽉 찬 알배기배추, 속이 꽉 찬 배추 한 포기는 내 가슴이 벅차다.
자동차로 20 분정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텃밭, 큰형님내외분의 애기 다루 듯 잘 가꾼 풋 새들은 나풀나풀 일렁이는 부추와 상추, 고추, 가지, 열무, 당근, 고구마, 감자, 완두콩 등 보물단지다.
종류도 다양한 쌈 채소가 많다. 신선하고 맛있는 치커리, 쌈케일, 겨자, 치콘, 뉴그린, 청경채, 근대 등이다.
특히 잎 둘레가 둥글고 넓적하며 한 두 포기만 심어도 끊임없이 연신 잎들은 갈기고 갈겨도 끝이 없는 레더치커리는 새댁이 좋아 한다고 오실 때 마다 비닐봉지에 넘쳐난다.
시아즈버님의 처남댁 사랑이라 생각하니 존경스럽고, 시누형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형님내외분 말씀은 가끔씩 처남도 없이 부르며 달려와 상추 잎, 깻잎, 돈 나물을 뜯기도 하고 올캐로 부터 일상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심심찮아 좋다고 하신다.
가끔은 이웃 텃밭에 일 하시는 분께 시누이들에게 맛있는 밥도 잘 사고, 잘 놀아 주고, 제주도 구경도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게 다녀왔다고 하시며 올케인 내 자랑도 하신다.
더욱 올케인 나를 예뻐하시는 이유는 형님 내외분께서 땀 흘려 가꾼 채소를 새댁은 하나도 남김없이 버리지 않고 알뜰히 먹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여든 노부부의 사랑과 정성으로 모종 포기 한 포기마다 이른 아침부터 땀 흘림과 노동으로 가뭄에 단비라며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폭염도 마다 않고 이른 봄 텃밭을 일구어 소독 하시고, 씨종자를 고를 땐 우량 신품종이라고 하시며 자랑도 하신다.
내가 보기엔 전문 농업인처럼 텃밭 한 곳에 농기구랑, 비료, 차곡차곡 재워 둔 거름 흑, 간이 물 급수장치에 소쿠리와 비닐봉지, 크기가 다른 광주리들, 조그만 바둑판처럼 정비 된 밭이랑, 가장 자리에 심은 잘 자란 돈 나물 빈틈이 없다.
텃밭 둘레는 산비둘기, 까치, 와룡산 노루 등 원치 않는 손님을 막기 위한 망 처리 등 참 농사꾼이시다.
잘 아시는 고향지인인 약정골목 한 의원에 부탁 해 한약 찌꺼기를 퇴비로 사용해
땅콩재배를 하셨는데 거름기가 너무 과해 실패 하셨지만 가을무와 김장 배추는 정말 보람을 느끼시고 좋아하셨다.
이른 봄엔 씨를 뿌리시고, 모종을 심고, 모종을 옮기고 지극 정성을 다 하신다.
주변 토지를 임대 해 텃밭을 일군 이웃 텃밭과 비교해 보면 시누형님텃밭과 확연히 다름을 볼 수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10평 남짓 되는 텃밭이지만 잘 정돈 되고 계절에 따라 적기에
오밀조밀 잘 가꾸시고 수확하시는 보람이 노부부는 놀이터요 장난감이다.
씨앗이 싹터 뾰족뾰족 올라 올 때, 여린 싹들이 자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름의 희열을 만끽하시는 기분이 최고라고 하신다.
난 텃밭 가꾸기에 문외한(門外漢)이라 형님내외분처럼 희열을 느낄 수는 없지만
십여 연을 형님내외분 덕분에 여러 종류의 무공해, 무 농약 식품, GAP인정(Good Agni cultural Practices
- 농산물 우수관리 제도로서 농산물과 농업환경에 잔류하는 위해요소를 조절하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농산물 안전성을 확보하기위한 우수관리 인증제도), 유기농 쌈 채소를 비싸게 구입 한 일도 없었다.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친환경 유기농 쌈 채소뿐만 아니라 형님께서는 마치 야채 가게처럼 감자, 고구마, 파, 근데, 마늘, 고추 등 웬 만한 밭에서 나는 식품 먹 거리 공장이시다.
남편은 4 남매의 막내로 10년 전 고인이 된 12 년차 시숙과, 10~8 년차, 두 분의 시누님이 계신다.
두 분 누님부부들의 인정 많고 동생 사랑에 지극하신 덕으로 나도 덤으로 일찍 여윈 부모를 대신 한 듯 복에 겹다. 음으로 양으로 아낌없이 베푸시는 두 누님내외분을 보면 난 항상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할 텐데 마음뿐이다.
정성이 듬뿍 담긴 큰시누이사랑 웰빙 채소에다 두 분 시누님께서 곰삭은 젓갈과 보리새우 듬뿍 넣어 시원하고 맛깔스러운 김장김치를 주신지 10 여년이 지났다. 우리 가족 현재까지 잘 차린 친 환경 웰빙 밥상은 가끔씩 찾아오는 멀리 있는 나의 딸네, 아들네도 고모들 이야기에 그리움을 전 한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