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향수>를 쓴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콘트라베이스>(열린책들)는 소설이 아니라 희곡 작품이다. 남성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는 어느 오케스트라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배우가 연극을 통해 그 악기가 갖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의 신분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을 다룬 작품이라고 작가 자신은 소개하고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독일 뮌헨 태생으로 대인 기피증이 있는 기이한 인물로 1984년 이 책을 발간했다. 흔히 오케스트라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으로 비유한다. 각기 다른 모양과 음색의 악기들이 자신의 선율을 연주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앙상블을 이루어 하나의 관현악단(사회)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같이 눈에 띄는 자리가 있는 반면 열심히 일해도 잘 들리지 않는 후미진 자리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홀대받는 자리가 콘트라베이스 파트라는 것이다.
주인공,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축제 공연 연주회 시간을 서너 시간 남겨놓고 도시 한복판의 방음벽을 한 연습실 겸 숙소에서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자신이 어떻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콘트라베이스에 빠져들기 시작했는가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8월이 되면 36세가 되고 미혼이고 공무원격인 시립오케스트라 단원이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한평생을 먹고 사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라는 얘기도 한다. 현악기 중에서 가장 저음을 내는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 말하자면 모든 소리의 균형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음이지만,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는 콘트라베이스의 고독에 대해서도.
그러다가 그는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열정을 뜻하는 것 같다. 삶에의 열정. 그가 사랑하는 여인 세라는 신출내기 소프라노 가수다. 그는 세라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그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생애 단 한번만이라도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를 바랄 정도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은, 그녀가 소프라노 가수이고, 그가 가장 저음을 내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만큼이나 머나멀다. 아니 그녀는 아예 그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 그는 생각한다. 어떻게 그녀에게 나를 알릴까. 그는 우리에게 유혹적으로 속삭인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오늘 축제공연으로 라인의 황금이 초연되는 음악당에서, 화려한 의상과 중후한 양복을 입고 있는 2000명의 관객들 앞에서, 제일 첫줄에 수상과 그 가족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음악당 안의 모든 것이 혼연일체가 되고 최초의 동작이 막 시작되려고 할 그런 초긴장의 순간에 내가 ‘세라’ 하고 외친다면 그녀의 삶 속에 ‘나’라는 존재는 영원히 각인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그가 진짜 그렇게 할지 안 할지는 모른다. 그가 연미복으로 갈아입고 연주장을 향해 떠나면서 작품은 끝이 나기 때문에. 그는 떠나면서 오히려 그 자신보다는 우리들에게 되묻는다. 자, 어떻게 하시겠어요? ‘세라’ 하고 외쳐서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시겠어요? 아니면 이렇게 익명인 대신 먹고 사는 것은 염려 없이 삶을 이어나가시겠습니까? 라고.
첫댓글 향수 - 그르누이의 이름은 없었다 .
그의 세계는 , 육체는 향기 , 냄새 , 인간을 정제하고 발효시켜 만든 향수 .
그의 생명을 삭제하는 순간
하늘에 퍼지는 사랑과 평화의 향기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