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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우두커니 보고 있는 영새.
시합 날짜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핸드폰을 꺼내드는 영새. 만지작거린다.
결심이 선 듯이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영새: 영샙니다. 채린이……. 데려가 주십시오. 더 이상 내 파트너……. 아닙니다.
이때, 터져 나오는
채린: 거짓말! 아저씨 거짓말쟁이야! 나랑 춤춘다고 해 놓고선 지금도 이후로도 나만 아저씨 파트너라고 했잖아요!
영새: 애처럼 굴지 마.
채린: 내가 누구 때문에 춤을 췄는데. 춤추는 동안, 아저씨만 사랑하라고 했잖아……. 근데 이제 와서 누구랑 춤을 추라는 거야.
영새: 채린아.
채린: 난 아무렇게 돼도 괜찮아요. 중국으로 쫓겨나도 괜찮아요. 돈은 벌어서 갚으면 되잖아. 아저씨, 다리 나을 때까지 기다릴게 여기서 꼼짝 안하고 아저씨 낫기만 기다릴게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다른 사람이랑 춤추라고만 그러지 마세요. 응?
채린을 뿌리치고, 비척대며 일어나는 영새.
영새: 내 말 못 알아듣겠어? 니가 귀찮아, 아주 싫어 죽겠어! 너 웃는 것도 싫고, 애처럼 징징대는 것도 꼴 보기 싫어! 보기 싫으니까, 다 가지고 가! 니가 들고 온 이 쓰레기들 다 가지고 가!
닥치는 대로 걷어차고, 집어 던지며
영새: 이 딴 거 다 필요 없어! 이게 뭐야? 반디? (수족관을 걷어찬다.) 웃기지 마. 그따위 것들 안 믿어. (반디를 발로 밟는다.)
채린: (반디를 몸으로 막으며) 아저씨 그러지 마세요. 엉~ 엉~
영새: (결혼사진을 보고는) 이건 또 뭐야? 결혼사진? 니 까짓거랑 무슨 결혼이야! 결혼은!
(결혼사진을 던지자 결혼사진이 찢어진다.)
바닥에 나뒹구는 반디들과 찢어진 결혼사진.
채린: 아저씨~ 왜 그래요
닥치는 대로 걷어차고 내던지는 영새를 붙잡는 채린.
채린에게 딱 따귀를 갈기는 영새.
영새: 너 왜, 내 말. 내 말귀를 못 알아듣니? 엉! 이제 다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고! 꺼지란 말야! 이건 또 뭐야?
진열되어 있는 드레스와 턱시도우를 잡아 찢으려 하는 영새.
채린: 아저씨~ 하지 마요~ 하지마! (울음을 터뜨린다.)
멈칫 하는 영새.
영새의 손을 풀고 턱시도우를 당기는 채린.
채린: 갈게. 내가 갈게요. 찢지 마요. 아저씨가 제일 아끼는 옷이잖아. 아저씨, 춤출 때 입을 옷이잖아
채린, 읍읍 울음을 삼키며 옷 가방을 챙긴다.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집어넣는 채린.
드레스와 신발을 개켜 넣는다.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는 영새.
울음을 삼키고, 목소리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채린: 아저씨……. 나 안 미워하죠? 이대로 가도……. 나 안 미워 할 꺼죠?
채린의 눈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돌아서 어깨를 들썩이면서 플로어를 가로질러 나가는 채린.
영새, 입술을 꼬옥 깨문다.
현 수 의 댄 스 교 습 소. / 낮
음악이 흘러나오면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현수의 옆모습.
손을 뻗어, 우두커니 서 있는 채린에게 춤을 청한다.
홀드를 하면서, 채린의 등에 손을 대고 당긴다.
일순간, 버팅 기는 채린.
움찔하는 채린을 꽉 끌어당기는 현수.
두 사람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자꾸, 동작이 엇갈리는 현수와 채린.
현수, 멈춰 서서, 채린을 노려본다.
채린, 체념하듯 고개를 숙인다.
다시 리드를 하는 현수.
현수의 리드에 밀림이 없이 부드럽게 따라하는 채린.
뭐라고 쑤군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연습생들.
피니쉬 동작을 마치면
현수: 오케이. 다음 퀵스텝! (신호를 보낸다.)
채린: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현수:……. ?
채린: 정말 사랑하는 사람하고 춤을 춰 본적 있나요?
현수: 다시 말 안 한다. 니 머리 속에서 나영새, 그 놈 지워!
영 새 의 집. / 밤
차차차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미수와 철용.
두 사람 모두 춤을 추면서도, 시선은 영새에게 가 있다.
우두커니 망가진 미니 분수대를 보고 서 있는 영새.
건 너 편 옥 상. / 밤
몸을 숙인 채로, 영새 쪽 창문을 보는 김 과장과 은혜.
김 과장: 이제 부부가 아닌 것도 드러났는데……. 슬슬 움직여 볼까요? 은혜씨 사진 찍어 놓은 것들 찾아놨겠죠? 확실한 거 몇 개만 골라주세요.
은혜: 글쎄요.
김 과장:……. ?
은혜: 저 사람 표정 좀 봐요. 위장결혼이었더라도…….
두 사람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였을 거예요.
김 과장: 그걸 어떻게 알죠?
사진을 꺼내 바닥에 펼치는 은혜.
사진 속에는 사랑스런 모습의 영새와 채린에 모습들이 찍혀있다.
황당한 듯 사진을 바라보다가 은혜를 보는 김 과장.
은혜: (김 과장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눈빛만 봐도 알아요. 제 눈을 보세요.
각자의 눈을 바라보는 은혜와 김 과장.
뚫어질 듯 보는 은혜의 눈을 피해, 큼큼대는 김 과장.
현 수 댄스 교 습 소. / 낮
퀵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는 채린과 현수.
채린, 억지로 붙잡힌 듯 현수의 리드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한다.
현수와 채린의 춤추는 모습이 여러 각도로 오버랩 되어 보인다.
점차, 현수의 리드에 맞춰지는 듯한 채린의 동작.
뚜르앙레르와 그랑 알레그로를 맞춰 춘다.
숨을 몰아쉬며, 만족한 듯한 현수의 표정.
여전히 어두운 채린.
일력이 변하고 ‘국가대표 선발전’포스터에 박힌 날짜와 점차 가까워진다.
스 카 이 라 운 지. / 밤
무역센타 전망대 라운지 정도.
채린은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있다.
이때, 저쪽 테이블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채린.
남자1: (폭죽을 터트리며 앞에 있는 여자에게 생일을 축하 해주고 있다.) 가연아 생일 축하해. (장미꽃과 선물 상자를 준다.)
여자1: 고마워 자기야. (매우 즐거워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채린.
이때 들리는 현수의 소리.
현수: Happy birthday! 채린.
흠칫 놀라서 돌아보는 채린. 현수간교한 눈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탁하고 부딪치면 대기하던 웨이터 드레스를 들고 온다.
붉은 색의 멋진 드레스다.
현수: 어때? 대회 때 입을 드레슨데 이건 프랑스 봉 마르세 백화점에서 전시 되었던 드레스야 맘에 들어?
채린: (끄덕인다.)
작은 상자 하나를 채린 앞에 밀어놓는 현수.
현수: 생일 선물이야. 열어 봐.
상자를 열면 요란하게 반짝이는 목걸이가 놓여있다.
현수: 대회 날 이걸 하고 나가면, 비주얼 스캔들 장난 아닐거야. 심사위원 중에 여자도 몇 명 있거든. 여자들은 항상 럭셔리 한거에 약하게 되어 있는 거 아냐?
채린: …….
영 새 의 집. / 밤
불이 꺼진 실내.
삐삐삐 자동응답 소리가 컴컴한 영새의 집 플로어에 들리고 바닥에는 소주병이 널 부러져 있다.
‘삐’ 소리가 나며 자동응답기로 전환되면
(채린): 아저씨? 저 채린 이예요. 잘 지내셨어요? 오늘요……. 63빌딩 전망대 갔다 왔어요.
- 63빌딩 앞거리 -
채린: 오늘 무슨 날인지 아세요? 아저씨 생각 많이 났는데…….(울음을 참으려는 듯) 저 솔직히 아저씨가 해주는 떡하고 미역국 먹고 싶었는데…….
- 영새의 집 -
(채린): 내일이 시합이에요. 있잖아요……. 아저씨……. 첨엔요……. 춤을 출 수가 없었어요. 자꾸 아저씨 얼굴이 생각나잖아.
말을 멈추는 채린.
영새도 전화기만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 63빌딩 앞거리 -
채린: 내 몸 안에 리듬을 기억하면 아저씨와 같이 추는 거랑 같은 거죠. 그쵸?
- 영새의 집 -
입 주위를 손바닥으로 꾸욱 씻어 내리는 영새.
- 63빌딩 앞거리 -
채린: 나 춤추는 거 보여주고 싶은데…….
핸드폰 폴더를 닫는 채린 눈가가 젖는다.
채린은 핸드폰 사진에 붙어 있는 스티커 사진을 바라본다.
- 영새의 집 -
컴컴한 영새의 집 플로어에 삐삐삐 자동응답 소리가 들리고
영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화면을 빠져나간다.
탁자 위에 스무 송이 장미꽃과 향수병이 놓여 있다.
- 시간경과 -
화장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는 영새.
플로어 거울 앞을 지나가다가 다시 플로어 거울을 보는 영새.
초라하게 거울을 보는 영새.
갑자기 거울엔 영새의 환상으로 채린이가 보인다.
뒤 돌아 보면 채린이가 손을 내민다.
영새는 채린의 손을 잡고 비엔나 왈츠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춘다. 그러나 플로어 멀리서 보면 영새는 혼자서 춤을 추고 있다.
대 회 장. / 낮
길게 늘어뜨린 플랭카드에 보이는 ‘국가대표 선발전’ 글씨.
대회장 외곽에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풀거나, 서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참가 선수들 모습.
단상에서는 주요 초대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고 플로어 주변으로는 엄청난 사람들이 피켓과 플랭카드를 들고 포진해있다.
여기저기, 00무도학원이라는 패널을 흔들며 응원을 하는 관객들.
무대 옆 입구 쪽에서는 여기저기, 서로 스텝과 호흡을 맞춰 보기도 하고, 긴장되는지, 기도하거나 혹은 염주를 굴리는 사람도 있다.
철용과 미수도 긴장이 되는 듯, 호흡을 맞추고 있다.
(소리): 다음은 차차차 심사가 있겠습니다. 호명 받으신 선수들은 출전해 주십시오.
현수, 채린의 번호가 호명되자 손을 흔들며 대회장으로 나간다.
철용과 미수도 호명하는 번호에 따라 손을 들어 보이고, 플로어에 나간다.
플로어에 서 있는 채린은 무의적으로 객석의 누군가를 찾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새. 그런 채린을 보던 현수 채린에게 나지막이 다그친다.
현수: 장채린 아무리 그래도 나영새는 안와. 원래 그런 놈이야.
자세를 잡는 참가자들.
음악이 나오면, 미친 듯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철용과 미수.
마지못해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는 채린.
과장된 철용의 연기와 미수의 스킬 호흡이 척척 맞는다.
현수와 채린도 댄스를 춘다.
환호하며 응원하는 사람들
현수와 채린도 춤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철용과 미수, 춤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무대를 빠져 나온다.
서로 만족한 듯, 껴안는 두 사람.
시간경과
탈 의 실. / 낮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채린.
머리를 틀어 올리고, 화장한 모습이 몹시 매력적이지만 무거운 얼굴이다.
아직, 드레스를 챙겨 입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채린.
문이 왈칵 열리면, 연미복 복장의 현수가 들어온다.
현수: 뭐 하는 거야? 아직 옷도 안 입고 있으면 어떡해?
채린: …….
현수: (옷걸이에 걸린 붉은 색 드레스를 떠안기듯 건네며) 빨리 입고 나와. 십 분전이야.
나가는 현수.
채린 빨간 드레스와 신발을 보며 입을 꼭 다문다.
대 회 장. / 낮
사회자: 다음은 모던댄스 부분입니다. 호명 받은 팀들은 입장해 주십시오. 1.3.7……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나가는 선수들.
현수, 불안하게 탈의실 쪽을 보면 응원하느라 막힌 통로가 열리며 채린이 나타난다.
하얀색 드레스와 하얀 신발. 영새가 선물한 것들이다.
현수의 얼굴이 치익 흐려진다.
현수, 채린의 손을 낚아채듯 잡는다.
매섭게 노려보는 현수.
현수: 이번만은 봐주겠어.
팔을 구부려, 채린에게 팔짱을 끼게 하는 현수.
금세 웃는 낯으로 무대로 향한다.
주위를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채린.
영새를 찾는 채린의 시선이 대회장을 360도 훑어보지만 영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조바심이 나는 채린.
자세를 잡는 출전자들.
현수, 불이 붙은 눈으로 채린의 팔을 꽉 움켜쥐며
현수: 너 자꾸 이럴 꺼야!
여전히, 조바심이 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한다.
그런 채린의 모습이 누군가의 시야로 보인다.
사회자: First Dance, Waltz !
스피커에서 왈츠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자세를 잡는 선수들.
채린을 꽉 끌어당기며
현수: 장채린!
여전히, 채린의 시선은 흐트러져 있다.
이때, 들리는 철용의 소리.
철용: 채린씨! 채린씨!
채린, 고개를 돌려 철용을 본다.
철용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채린의 시선으로 카메라 급격하게 돌아가면 연미복을 입은 영새가 서 있다.
채린의 눈에 물기가 핑글 돈다.
영새 오른 손을 자신의 왼쪽 심장에 가져다댄 후, 천천히 뻗어 앞으로 내미는 동작을 취한다.
(영새소리): 채린아 내 몸 안에 리듬을 기억하면 나와 같이 춤을 추는거야.
마치 두 사람만의 암호인 듯이 채린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현수의 리드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하는 채린.
부드럽고, 유연한 채린의 동작.
음악 속에 빨려 들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몸이 움직여진다.
그런 채린을 보는 영새의 시선.
대견스러운 듯 하면서도, 어딘지 슬픔이 배어다.
춤이 끝나면 현수, 질투 어린 시선으로 영새 쪽을 바라본다.
박수를 쳐주는 영새.
채린의 숨은 벅차기만 하다.
사회자: Next Dance, Quick step !
음악이 흘러나오면, 정해진 틀대로 춤을 추기 시작하는 선수들.
채린 역시 현수의 리드에 따라 달리고, 멈추고, 턴하고 아라베스크 자세를 취한다.
영새, 손끝으로, 박자를 하나, 둘, 하나, 둘, 셋 맞춘다.
현수의 리드에 따라 스텝을 밟던 채린.
(영새소리): 채린아, 지금이야.
채린, 영새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도약을 하며 그랑 쥬떼로 공중에서 발을 바꿔 힘을 준다.
착지와 동시에 현수의 손끝을 잡고 도약을 하는 채린.
공중에서 한바퀴 턴을 한다. 뚜르 앙레르다 !
입이 떠억 벌어지는 관중들과 심사위원들.
당황한 옆 커플 스텝이 엉킨다.
(영새소리): 앤드!
채린, 마지막 그랑 알레그로를 피니쉬로 장식하며 앤드 자세를 취한다.
일제히 기립을 하며, 현수와 채린에게 박수를 치는 관중들.
미수와 철용도 손바닥이 얼얼하게 박수를 친다.
영새 역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낸다.
채린, 관중에게 인사를 하고 영새를 보고 벅찬 숨을 쉰다.
사회자: Next Dance
음악이 시작되면 홀드한 채린의 손을 꽉 움켜쥐는 현수.
채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오버랩 되며 보이는 춤들
마지막 춤을 끝으로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채린과 현수.
채린, 고개를 돌려보면 영새 없다.
당기는 현수의 손을 뿌리치고 영새가 있던 방향으로 뛰는 채린.
웅성대는 사람들.
대 회 장 - 밖. / 낮
드레스를 입고, 불편하게 달려 나오는 채린.
주변을 돌아보지만 영새는 보이지 않는다.
행인들이 채린을 호기심 어리게 쳐다본다.
어느새, 채린의 손목을 움켜쥐는 현수.
와락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끌려가는 채린.
쓰윽 화면 앞으로 보이는 영새의 옆얼굴.
씁쓸한 미소가 떠오르며
F.O
F.O 된 상태에서 들리는.
사회자: 제 00회 국가대표 선발대회 우승자 및 2,3위를 호명하겠습니다. 먼저 모던댄스. 부문입니다 3위 67번 권팔인 양갑숙. 2위 23번 박원형 홍은옥. 우승 45번 정현수, 장채민.
환호성과 박수소리들이 잦아들며 F.O 끝.
거 리. / 밤
어느새 계절은 봄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깔끔한 복장을 입은 영새는 신호등 앞에 서 있다.
뒤쪽에 보이는 전광판에 채린과 현수의 기사가 나오고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자 반대쪽으로 한쪽 다리를 쩔뚝거리며 걷는 영새.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앞. / 낮
담배를 피우며 벽기둥에 서 있는 영새의 손에는 매우 예쁜 반지가 있다.
그 반지를 바라보는 영새.
차가 들어오는 것을 느낀 영새는 반지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이때, 하얀색 대형차가 영새 앞에 멈춰 선다.
차에서 내리는 현수. 뒷문을 열어 주자 차에서 내리는 채린 계단 앞에서 시선이 마주치는 두 사람.
울컥 반가움이 솟아오르지만 내색을 하지 못한다.
채린: 일찍 왔어요?
영새: 아, 아냐 금방…….
채린, 뒤편 재떨이에 수북이 꽂힌 담배를 본다.
영새: 드……. 들어갈까?
고개를 까닥하는 채린.
영새는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채린보다 먼저 들어간다.
다리를 저는 영새의 둿 모습을 보는 채린.
채린은 가슴이 미여져 얼굴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낮
영새와 채린이 들어오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옆 출입구로 향한다.
은혜와 김 과장이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있다.
은혜: 잘됐으면 좋겠다.
김 과장: 잘 될 겁니다.
여러 개의 철창문으로 분리되어 있는 통로를 따라 정복을 입은 직원 뒤를 따르고 있는 채린과 영새.
멈춰서는 직원은 양쪽 문을 열며
직원: 나영새씨는 이쪽. 장채민씨는 이쪽입니다.
배정된 문으로 들어가려는 채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언가 만지작대는 영새.
영새: 채, 채린.
채린, 돌아보면.
영새: 자, 잘하라고.
채린, 고개를 끄덕이고 희미하게 웃는다.
들어가는 채린.
영새도 1호실로 들어간다.
1 호 실. / 낮
의자에 앉아 있는 영새.
정복에 제법 지위가 있어 보이는 남직원이 들어와 앉는다.
옷매무새를 추스르는 영새.
사무적으로 서류를 펼쳐들며
남직원: 시작할까요?
영새: 예.
남직원: 이름이.
영새: 나영샙니다.
남직원: 아니오. 부인 말입니다.
영새: 장채민입니다.
남직원: 부인 직업이 있나요?
2 호 실. / 낮
채린: 안무지도예요.
여직원: 안무지도요? 방송국 쪽에서 일 하나요?
채린: 아뇨. 댄스 스포츠 강삽니다.
여직원: (뺑뺑이를 도는 시늉을 하며, 비웃듯이) 이거요?
채린: (정색을 하며) 댄스 스포츠는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으로 공식 지정됐어요. 머지않아 올림픽에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거구요. 영새씨는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출전한 분이에요.
여직원: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합니다. 두 분이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죠?
채린: 이년 전에 관광가드로 잠깐 서울에 왔었어요. 그때 처음 만났죠.
1 호 실. / 낮
영새: 그 이후에 이메일과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딱 한 번 만났는데 얼굴이 잊혀지질 않더라고요. 그때 편지 보여드릴까요? (호주머니에서 꺼내려 하면)
남직원: 됐습니다. 결혼사진 있나요?
지갑을 펼쳐 보여주는 영새.
둘의 결혼사진이 지갑 안에 있다.
남직원: 부인이 미인이시군요.
영새: 예……. (자조적으로) 참 예쁘죠.
2 호 실. / 낮
여직원: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다 왔죠?
채린: 못 갔어요.
여직원: 왜죠?
채린: 저한텐 서울이 온통 신혼여행지 잖아요. (사이) 그 사람이랑 있는 시간은……. 모두 신혼여행 같아요.
여직원: (고개를 끄덕인다.) 부럽네요.
몽 타 주. / 낮
몇 차례, 묻고 대답하는 것이 교차로 오버랩 되며 보여 지고 점차, 자신 있고 조리 있게 대답하는 두 사람의 모습.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쁜 표정들이 교차된다.
채린: 빨래하는 것도 곧잘 도와주고 그래요.
영새: 덤벙대느라고, 발을 잘 삐곤 하죠.
채린: 코를 골아요. 피곤하면 좀 심하게 고는데……. 베개를 돌려주면……. 금새 애처럼 잘 자요.
영새: 아직도 잘 때 손가락을 빨아요.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자는 걸 보면. 애 같죠. 너무 귀여워요.
채린: 제가 힘들어할 땐 제 발을 닦아줘요. 그 사람 손이 크거든요. 그 손으로 제 발을 꼭 붙잡아줄 땐 마음속으로 이렇게 얘기를 해요. 이렇게 좋은 사람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요.
부러운 듯이 보는 여직원.
영새: 좋은 여잡니다. 헤어지지 않고 싶은 사람이죠.
채린: 참 좋은 사람이에요. 다신…….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날 수 없을 거예요.
1 호 실. / 낮
서류를 챙겨드는 남직원.
남직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요즘 워낙 위장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거니까 이해하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영새.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는 남직원.
남직원: 주민증은 일년 후에 찾으셔야 될 겁니다. 아무튼 잘 사십시오.
고개를 꾸벅하는 영새.
출 입 국 관 리 소 - 앞. / 낮
나오는 영새와 채린 서로 어색하게 머뭇댄다.
서로 뭔가 말하려 하다가 멈춘다.
채린: (뭔가 말하려하면)
옆쪽에서 들리는 박수소리.
현수가 경용, 기철과 함께 들어온다.
박수를 탁탁 치는 현수.
현수: 축하해! 이젠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셨는데, 축하 안 할 수 있나? (영새를 보며) 안 그래?
영새: (외면한다.)
채린: (난감하다.)
현수: 자, 가실까요?
현수 시니컬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영새를 쳐다본다.
돌아서 가는 채린. 두어 발 걷다가 영새를 향해 돌아서서 동시에 서로를 부른다.
채린: 아저씨!
영새: 채린아!
채린, 휘익 고개를 돌린다.
영새: 넌 해낼 줄 알았어.
고개를 끄덕여주는 영새.
채린도, 억지로 감정을 누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옆에서 보고 있던 현수 매몰차게 채린을 돌려서 자신의 승용차로 데리고 간다.
울컥하는 영새.
고개를 가로 젓는 영새.
채린: 그렇겠죠……. 그렇겠죠…….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걸어간다.
영새도 방향을 돌려 쩔뚝거리며 걷는다.
부르릉 떠나는 채린을 태운 차.
차 뒤편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영새의 모습이 멀어진다.
채린의 눈에서도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영새: (혼잣말처럼) 잘 된 거야. 나영새. 니 인생은 원래 그렇게 돼 있었어. 어쩔 거야, 차라리 잘 된 거라고.
비틀대듯 출입국 관리소를 걸어 나오는 영새.
멀리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멀리 여객선이 들어오는 듯한 환영에 빠진다.
영 새 의 집 - 침 실. / 밤
침대에 쿨렁 쓰러지듯 눕는 영새 눈을 감는다.
실내.
어둠이 젖어 들어, 실내는 바깥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고 있다.
수족관에서 사각사각, 흙을 털어 내는 반딧불이들.
반딧불 하나가 초록빛 광채를 내며 푸르르 날아오른다, 한 마리가, 두 마리가 슬그머니 눈을 뜨는 영새.
반디 하나가 눈앞에서 나르는 것을 본다.
흠칫 놀라는 영새.
몸을 일으켜 보면, 수 십 마리가 떼를 지어 초록빛을 밝히며 실내를 날고 있다.
반디가 영새 앞을 지날 때마다 초록빛으로 물들며 밝혀지는 영새의 표정.
이때 들려오는 채린의 목소리.
(채린소리): 아저씨. 반딧불이 왜 초록색 불을 켜고 나는지 알아요? 그건요……. 밤새 사랑의 불을 밝히고, 자기를 사랑해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오직 한 사랑만을 기다리죠. 자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그런 사랑을요.
침대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영새.
블루스 음악이 천천히 새어 나오자
다리를 쩔뚝거리며 예전 채린을 위해서 바닥에 그려 주었던 풋워크에 신경을 써야 할 지점과 턴의 각도 L.O.D 에 맞춘
방향들에 맞춰서 홀로 춤을 추다가 아픈 다리 때문에 주저앉는다.
몽 타 주. (대 회 장, 영 새 의 집) / 낮
채린과 현수가 단체전을 경기에서 비엔나 왈츠를 추고 있다.
채린과 현수가 개인전 탱고를 추고 있다.
심사워원들끼리 채린과 현수의 춤을 보고 매우 만족해하는 눈치다.
채린과 현수의 춤추는 여러 장면이 대회 의상은 바뀐 채 디졸브 된다.
메달을 받는 채린과 현수. 관중들 박수를 친다.
채린과 현수는 환하게 웃으며 관중들을 향해 우아하게 인사를 한다.
사진 기자들 인사하는 채린과 현수를 찍는다.
채린과 현수의 찍히는 사진 정지되면 스포츠 신문으로 넘어간다.
그 사진을 가위로 오리고 있는 누군가의 손, 보면은 영새다.
F.O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겨 울 / 낮
분리대를 사이에 두고 은혜와 김 과장이 뭐라고 속삭이면서 키득대고 있다.
은혜, 김 과장 뒤쪽을 보더니 반가운 얼굴이 되며
은혜: 어머, 오랜만이에요.
채린이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
김 과장도 반가운 얼굴이 된다.
은혜, 몸을 일으키면 벌써 만삭이 가깝다.
은혜: 주민등록증이요?
채린: 산달이 언제예요?
김 과장: 다음 달입니다.
채린: 축하드려요.
김 과장: 아들이랍니다. 하하. 이 녀석 나오기만 하면, 바로 댄스를 가리킬 겁니다. 지 엄마 닮아서 춤 발은 좀 날 것 같거든요.
은혜: (주민증을 건네준다.) 어머, 이거 언제 찍은 사진이야? 되게 어리게 보인다. (반출장부를 보여주며) 여기 지장 찍어 주세요.
지장을 찍는 채린.
김 과장: 예전에 채민씨랑 영새씨 살던 집 있죠?
채린: (궁금해져서) 그 집이 왜요?
김 과장: 구청 다니는 친구 놈한테 들었는데 다음 달에 건물 헐고, 재개발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거 안 팔고 가지고 있었으면, 지금쯤…….
채린: ……!
은혜: 여보, 공무원이 그따위 사행심을 조장하면 되요?
김 과장: (긁적긁적)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이 그 말이야. 재개발된다고 땅 투기하고 그러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고……. 그러면 안 되지…….
은혜: 이제 진짜 대한민국 국민이 되셨네요. 축하해요. 아 참! 그리구 이건 축하 선물이예요.(사진첩을 준다.)
김 과장: 허락 맞고 찍은 건 아니지만 채린씨 만나면 꼭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주민증과 사진첩을 받아드는 채린.
예전 사진관에서 찍었을 법한 단발머리에 앳된 모습.
주민증 안에 든 자신의 모습이 무척 낯설기만 하다.
은혜에게서 받은 사진첩을 열어보는 채린.
양쪽에서 빨래를 잡고 비틀며 웃고 있는 영새와 채린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이고 둘의 춤추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인다.
영 새 의 집 - 건 물. / 황 혼
더욱 추레하게 변한 영새집 건물.
벌써,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을씨년스러움이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건물 입구의 편지함을 보는 채린.
낡은 철제 편지함이 망가져, 바닥에 반쯤 걸려있다.
계단을 올려다보는 채린.
영 새 의 집 - 앞. / 황 혼
영새집 앞에 서 보는 채린.
손을 뻗어 문을 돌려보지만, 요동을 않게 굳게 닫힌 문.
열쇠를 숨겨두는 비밀장소를 슬그머니 열어보는 채린.
열쇠가 보이지 않는다.
빈 공간을 만져보는 채린.
물끄러미 보다가, 돌아선다.
F.O
영 새 의 집. / 밤
플로어는 지저분하게 먼지가 쌓여있고 액자에 걸려있는 채린과의 결혼사진 찢어진 부분에는 테이프가 붙여졌다.
예전 채린을 만나기 전의 지저분한 플로어의 느낌이다.
뽀빠이 바지를 덜렁 입고 페인트 통을 들고 있는 영새.
추레하게 길러 진 수염. 머리도 여기저기 새집을 지었다.
벗겨진 발자국에 페인트를 덧칠하는 영새.
커튼을 젖히고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영새.
작은 분재가 있다. 옆에는 작은 물레방아까지 설치되어 물들이 졸졸 흐르고 있다.
수족관에 담긴 흙에 물을 축축이 뿌려주는 영새.
침대 밑에는, 채린의 가족사진이 여전히 놓여있다.
레 스 토 랑. / 밤
바깥으로 야경이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
현수와 채린이 식사를 하고 있다.
조용히 식사를 하는 채린과, 흘끔거리며 채린을 보는 현수.
찻잔을 앞에 두고 있는 두 사람.
채린, 바깥쪽 야경을 망연하게 바라본다.
현수: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해야지. 나한테 계획이 있어. 한국 무대 정리하고 영국으로 가자. 채린이랑 나라면 세계무대로 진출해도
채린: 아니오.
현수: ……?
채린: 이제 춤 같은 거 안 출래요.
현수: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채린: 고향으로 돌아갈래요.
현수: 그럼 여태껏 한 건 뭐야? 이제 당당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을 받았잖아. 왜 이제 와서.
채린: 반디……. 알아요?
현수: ……?
채린: 운명처럼 누군가를 기다려야 되는 생물이래요. 그 기다림이 끝에 아무도 찾아주지 않으면 그렇게 죽는대요.
직감적으로 채린의 마음속에 영새가 있음을 느끼는 현수.
채린 몽환적인 눈빛으로 야경을 보며
채린: ……. 저 불빛들 꼭 크리스마스 츄리같죠.
현실에 있지 않는 것 같은 채린의 표정.
그런, 채린을 보는 현수.
달 리 는 택 시 안. / 오 전
조수석 위에 강아지 두 마리가 차의 진동에 따라 까닥댄다.
물끄러미 보다가, 희미하게 웃는 채린.
고 등 학 교 강 당. / 낮
음악이 흐르는 고등학교 강당에서 남녀 고등학생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있는 영새.
영새는 남녀 학생들 중에서 박자가 맞지 않는 팀에게 자세를 교정해 주는데 문 쪽에서 고등학생인 연수가 영새에게
연수: 선생님 누가 찾아 오셨어요.
영새 자세를 교정해주다가 문 쪽을 보면 상두가 한손엔 상자를 들고, 한 손으로는 아는 척을 한다.
영새는 그런 상두를 보고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 시간경과 -
강당에는 고등학생들은 없고, 창가 쪽에 기댄 영새와 상두만 있다.
영새는 담배를 피고 있다.
상두: 다리는 좀 어떠냐?
영새: (담배를 한대 빨며) 왜 왔수? 뭐 또 팔아먹을 거라도 있나 해서 왔수?
상두: 아직도 삐져 있냐?
영새: 그쪽한텐 삐질 것도 없으니 걱정마쇼.
상두: 야 그때 일은 내가 정말 미안하게 됐다. 현수 그 인간이 너한테 그렇게 까지 할 줄은 몰랐다.
영새: 지금 나한테 사과하는 거유?
상두: 미안하다니까 임마. (웃으며 상자를 내민다.)
그리고 이건 채린이가 너한테 전해 주라 글더라.
영새 너한테 선물 받은 건데 이젠 자기 필요 없다면서…….
영새: (상두를 보며)
상두: 아까 오면서 잠깐 보니까 드레스하고 슈즈던데.
영새: ……. ?
상두: 니 가짜 마누라 한국 떠난댄다.
영새: 그게 뭔 소리야? 한국을 떠나다니?
상두: 한국에선 살기가 싫텐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현수하고 춤추는 게 힘들었나봐. 이젠 뭐~ 주민증도 받았으니까 너 깜빵 갈 일도 없다면서 지 고향으로 가겠대. 지금쯤 터미널에 있을 거다. 중국으로 가기 전에 한번 만나봐라.
인 천 항 터 미 널. / 낮
가방을 든 채, 서 있는 채린.
이제 막 중국에서 도착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나같이 추레하고, 겁에 질린 표정들.
피켓을 들고, 사람을 찾는 사람들.
영 새 차 안. / 낮
강아지 두 마리가 차의 진동에 따라 까닥댄다.
매우 빠르게 운전을 하는 영새.
영새의 차는 인천 터미널을 향한다.
인 천 항 터 미 널. / 낮
채린의 환영으로 보이는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걸어오고 있는 자신의 옛 모습이 보인다.
채린 고개를 돌려보면 벌써 텅 비어 있는 터미널.
피켓을 거꾸로 처박아두고 앉아 있는 영새의 모습이 보인다.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진 영새의 모습. 거기엔 영새와 비슷한 다른 사람이 있다.
영 새 차 안. / 낮
운전을 하는 영새. 도로 표지판을 보면 인천 터미널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털털거리며 이상한 조짐을 보인다.
영새: 야! 야!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좀만……. 좀만 가면 돼 야!.
차는 계속 덜덜거리며 굴러가자.
영새: 그렇지 그거야……. 그래.
인 천 항 터 미 널. / 낮
다른 승객들도 배를 타려고 표를 검사하는 입구에서 서 있다.
채린은 배를 타려고 출입구 쪽을 지나 배 쪽으로 걸어가다가 뒤돌아본다.
인 천 항 터 미 널. / 낮
영새의 차가 터미널 앞에 멈추고 영새는 차에서 내려서 터미널로 들어가면 터미널 안은 설렁하다.
배타는 출입구 쪽에는 검사하는 아저씨가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영새 여기저기 둘러보지만 채린은 보이지 않는다. 낙담하는 영새.
그런 영새의 뒤로 노을이 지고 을씨년스러운 터미널의 뱃고동소리만 들린다.
F.O
수 퍼 앞. / 밤
영새의 집 길을 걷는 누군가의 발
누군가의 시선이 지나가면서 슈퍼를 보면 슈퍼 주인도 여전하고, 졸면서 하품하는 것도 여전하다.
그 누군가의 둿 모습이 언덕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서서 올려다본다.
보면은 채린이다.
채린은 교습소 창문을 바라본다.
교습소 창문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혹시나 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영새다.
숨이 흐읍 막히는 채린은 눈이 뜨거워진다.
채린: 아.
채 부르기도 벅차서 멈추면
창문을 닫고 돌아서는 영새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그렁그렁해져서 바라보는 채린.
영 새 의 집 - 플 로 어. / 밤
문을 닫고 돌아서던 영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창문을 왈칵 연다.
창문 위를 올려다보고 서 있는 채린이 보인다.
채린: 아저씨! 아저씨 맞죠?
영새: (후광을 받는 영새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채린: 영새 아저씨, 맞죠?!
영새:…….
채린: (울음이 목소리에 배며) 아저씨 맞아요. 우리 아저씨가 맞아 아저씨, 대답 좀 해 봐요, 네?
영새:…….
영새, 몸을 돌려 창문을 닫고 사라진다.
채린: (혼잣말처럼) 아저씨…….
창안의 불이 꺼진다.
채린, 눈에서 눈물이 핑글 돈다.
올려다보던 채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고개를 돌리는 채린.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이때, 닫힌 창문 안으로 약한 광채 하나가 파르르 날아오른다.
공중을 한 바퀴 돌더니 영새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광채, 반짝반짝 초록빛을 뿜는다.
우뚝 멈춰서는 채린 고개를 천천히 돌려본다.
이때, 창문 안으로 수십 마리의 광채가 초록빛을 뿌리며 날아오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채린의 눈가.
채린: 아저씨.
영 새 의 집 - 앞. / 밤
하아~하아~ 숨이 벅차서 올라오는 채린.
문 앞에 서서 호흡을 고른다.
손잡이를 붙잡고, 문을 열면 반디 한 마리가 날아오르다, 채린의 어깨에 앉는다.
들어서는 채린.
영 새 의 집 - 플 로 어. / 밤
교습소 안을 온통 빛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들.
플로어 맨 끝에 영새가, 어둠 속에 서 있다.
두려움과,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채린.
불빛 저쪽 어둠에 여전히 서 있는 영새.
눈이 그렁그렁 해져서…….
채린: 아저씨. 왜 나 안 찾았어요? 아저씨가 찾아 올꺼라고, 언젠간 꼭 찾아 올꺼라고……. 맨날 맨날 아저씨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영새: 반딧불은 자기를 사랑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바보잖아. 자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그런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오기만 기다리는 거지.
밝은 쪽으로 걸어 나오는 영새. 환하게 밝은 얼굴이지만, 눈가가 젖어 있다.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채린.
와락 달려가 영새를 안는다.
영새도 채린을 깊게 깊게 껴안는다.
숨이 막히도록, 서로를 안는 두 사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두 사람. 눈가에 눈물을 서로 닦아준다.
채린은 영새의 얼굴을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코맹맹이가 되어.
채린: 아저씨……. 하나도 안 변했다. 그대로야. 나 봐요, 아저씨. 이제 다 컸죠? 나두 어른이죠?
영새: (고개를 끄덕끄덕 해준다.)
영새, 손을 펼쳐 보이면 조그만 케이스.
채린, 열어보면 반지다
영새: 받아줄래?
채린: (끄덕인다.)
영새, 반지를 꺼내, 채린의 손에 끼워준다.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치더니
채린의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
채린: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치더니) 아저씨, 나랑 춤출래요?
영새: (머뭇거리며) 글쎄…….
처음, 영새가 들려준 음악이 퍼져 나오기 시작한다.
채린은 불편한 영새의 다리를 보고는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웃으며 영새의 손을 말없이 잡으며 무대 중앙으로 데리고 간다.
플로어 바닥에 선 두 사람 평범한 블루스 춤을 춘다.
영새는 다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열심히 춘다.
그러자, 채린은 불편해하는 영새를 리드를 하며 춤을 춘다.
그런 채린을 보며 웃는 영새는 채린의 리드에 맞춰서 춤을 춘다.
채린도 영새를 보며 춤을 춘다.
이때, 영새와 채린의 춤추는 장면으로 화면이 브릿지 되면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간다.
은은한 달빛을 받은 눈밭에서 춤을 추는 영새와 채린.
영새는 아픈 다리가 아니고 정상적인 춤을 추고 있다.
눈밭에는 그들이 춤추는 발자국이 찍힌다.
여태까지 추었던 그 어떤 춤보다 사랑스럽게 추는 영새와 채린
동화 속 그림처럼 아름답게 초록불빛 사이에 잠겨든다.
카메라 천천히 뒤로 빠지면 반딧불이 한 쌍이 초록빛을 뿜으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그 반딧불들 하늘로 올라가면서 그 주위를 따르는 주위의 반딧불들이 같이 하늘로 올라간다.
도 심 의 하 늘. / 밤
서울 하늘을 나르는 초록불빛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반디를 발견한다.
환하게 웃음을 짓는 중년의 사람들을 지나 비치면서 날아간다.
까르륵거리며, 반디를 쫓는 아이들 위로 날아 어디론가 간다.
차안에서 키스를 하려는 철용과 미수.
갑자기 미수가 키스 할려는 철용을 피해 손가락질을 하면 뭔가를 가리키는데
철용 미수가 가리키는 곳을 보면 반딧불이 차에 붙어서 빛을 발하고 있다.
반딧불들은 이어서 하늘을 다시 날아서 어디론가 가는데 망원경으로, 또 다른 집을 감시하던 김 과장과 은혜를 비춘다.
김 과장과 은혜를 비추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반딧불들.
반딧불들은 하늘로 올라가서 크레딧을 변한다.
END
무녀도(巫女圖) 김동리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질펀히 흘러내리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엔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히 앉아 무당의 시나위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아버지가 장가를 들던 해라 하니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이전의 일이다. 우리 집은 옛날의 소위 유서있는 가문으로 재산과 세도로도 떨쳤지만, 글하는 선비란 것도 우글거렸고, 특히 진기한 서화(書畵)와 골동품으로서는 나라 안에서 손꼽힐 만큼 높이 일컬어졌었다. 그리고 이 서화와 골동품을 즐기는 취미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다시 손자로, 대대 가산과 함께 물려받아 내려오는 가풍이기도 했다. 우리집 살림이 탁방난 것은 아버지 때였으나, 그 즈음만 해도 아직 옛날과 다름없이, 할아버지께서는 사랑에서 나그네를 겪으셨고, 그러자니 시인 묵객(詩人墨客)들이 끊일 새 없이 찾아들곤 하였다. 그 무렵이라 한다. 온종일 흙바람이 불어, 뜰 앞엔 살구꽃이 터져 나오는 어느 봄날 어스름 때였다. 색다른 나그네가 대문 앞에 닿았다. 동저고리 바람에 패랭이를 쓰고, 그 위에 명주 수건을 잘라 맨, 나이 한 쉰 가량이나 되어 뵈는 체수도 조그만 사내가 나귀 고삐를 잡고 서고, 나귀에는 열 예닐곱쯤 나 뵈는 낯빛이 몹시 파리한 소녀 하나가 안장 위에 앉아 있었다. 남자 하인과 그 상전의 따님 같아도 보였다.
그러나 이튿날 그 사내는,
[이 여아는 소인의 여식이옵는데 그림 솜씨가 놀랍다 하기에 대감의 문전을 찾았삽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