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의 합리성
정철의 <관동별곡>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관점(觀點)을 가지게 한다. 어떤 이는 관동의 감각적 경치 묘사에 흠뻑 빠지고, 어떤 이는 관동팔경의 감정적 표현에 마음이 녹아나고, 어떤 이는 정철의 시공적 사유세계에 매료된다.
정말 그 시대 관료가 어떻게 이런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정철은 관료 이전에 문학을 사랑하는 작가였기에 가능했던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우리가 <관동별곡>을 읽으면서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이다. 이는 정철이 <관동별곡>을 쓰면서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성과 감정과 사유를 맘껏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상상력의 극치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내용 중에 나는 정철이 생각하는 술[酒]에 유독 시선(視線)이 간다. 정철은 시선(詩仙)이며 취선(醉仙)이며 평선(平仙)이었다. 그러니 정철은 늘 술에 취해 시를 쓰고 지내며 자신이 신선이라 여겼다. 정철이 생각하는 정철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관동별곡> 다음 구절에서 읽을 수 있다.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워 풋잠을 얼핏 드니/ 꿈에 본 사람이 날더러 하는 말이/ 그대를 내 모르리 하늘에 진선(眞仙)이라/ 황정경(黃庭經, 도교 서적) 한 글자를 어디 그릇 읽어두고/ 인간 세상 내려와서 우리를 따를까/ 적은 듯 가지마오 이 술 한잔 먹어보오/ 북두성 기우려 창해수(滄海水) 부어내어/ 저 먹고 날 먹어 서너 잔 기울이니/ 조화로운 바람이 불어 어깨춤을 추게 하니/ 구만리 하늘을 날 수 있는 것 같구나/ 이 술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눠/ 억만 창생을 다 취하게 만든 후에/ 그제야 다시 만나 또 한잔하자(<관동별곡>)
어쩌면 이런 시상(詩想)을 낼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모두 신선이라 했다. 정철은 하늘에서 ‘신선의 글’인 『황정경』 한 글자를 잘못 읽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술 한잔하고 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 술잔이 북두칠성 국자이다. 정말 대단한 정철이다. 술은 동해 바닷물이다. 어쩌면 술과 술잔을 이리 잘 표현했을까?
술잔은 북두칠성이니 모두의 소망을 이뤄주는 칠성신(七星神)이다. 게다가 술은 동해 바닷물이니 모두의 이상을 담은 낙원(樂園)이다. 낙원을 퍼서 마시는 술잔이 북두칠성이라. 참 멋지다. 그런데 정철은 낙원인 이 술을 혼자 마시지 않았다. 억만 창생인 온 지구의 모든 사람과 마셨다. 그렇게 억만 창생인 모든 지구인이 마신 후에 다시 맘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또 한잔하자고 했다. 과연 주당(酒黨)다운 발상이다.
정철이 생각하는 술, 정철이 생각하는 술잔은 가히 황홀경(怳惚境)이다. 정말 정철의 생각을 잘 표현했다. 정철이 시선(詩仙)이면서 주선(酒仙)이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상상력이 동쪽 바다를 넘고 밤하늘을 찌른다. 이 어찌 생각이 북두칠성에 닿고 창해수 끝에 닿지 않겠는가.
청철의 술잔 이야기는 정말 유명하다. 그는 작은 술잔에 만족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입궐해서 정사를 봐야 하는 정철이 궁궐에 들지 않았다. 정철이 전날 과음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본 임금 선조는 정철에게 은(銀) 술잔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 술잔으로 하루에 석 잔만 술을 마시도록 했다. 정철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술잔을 받아 나온 정철은 임금님과의 약조를 지키기로 했다. 그러나 술잔이 너무 작아 취흥을 낼 수 없었다. 하기야 술잔을 북두칠성으로 여겼던 정철이니 어찌 작은 은 술잔에 흡족할 수 있었겠는가. 정철은 임금께서 내린 술잔을 두드려 아주 크게 만들었다. 그렇게 정철은 취선으로서 나날을 보냈다. 우리는 정철이 왜 임금이 내린 술잔을 키웠는지 그의 작품을 보면 알만하다.
재너머 성권농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정철 시조)
정말 대단한 취선이다. 이 시조는 우리가 고등학교 때 익히 봤던 작품이다. 그는 술이 있으면 어디든 갈 사람이었다. 정말 그 풍광이 눈에 선하다. 술 익었단 소식 듣고 소를 타고 가는 모습이 가히 압권이다. 술 핑계로 맘 맞는 친구를 만나 사는 재미를 더했다.
정철의 술잔에는 인생도 담았다. 정철의 걸작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보면 알 수 있다. 술을 향해 나가는 그의 의지가 참 대단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주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 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주리여 매여가나, 상여에 만인이 울어네나, 억새와 속새와 떡갈나무와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랑비와 굵은 눈 소슬바람 불 때, 그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떠하리.(장진주사)
정철(1536~1594)은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58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계에 입문하고 유배 생활을 번갈아 했다. 쉽지 않은 인생이었다. 그가 왜 그렇게 술을 찾았는지 짐작이 간다. 정철에게 술은 정말 낙원 같은 존재였다. 은 술잔을 두드려 늘린 사연도 알만하다. 정철에게 술잔은 그가 담을 수 있는 세상천지였다. 세상의 낙원을 담을 수 있는 술잔이 그에게는 필요했다.
정철의 술타령은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행위가 아닐까. 그리고 북두칠성 같은 술잔도 요즘 시대에 필요한 술잔이 아닐까. 사해(四海)의 온 백성들과 나누어 마실 수 있는 술과 그 술을 뜰 수 있는 정철이 생각한 술잔이 왜 지금 필요할까. 용서하고 화해하고 술잔에 서로의 모든 사연을 담고 품어서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정철이 가진 은 술잔을 또 두드리면 술잔은 더 커지고, 창해수보다 많은 술을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이학주, 2024.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