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 정선례
시간이 갈수록 잊히지 않는 친구가 있다. 무엇보다도 친구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기였던 중학교 학창 시절 3년 내내 우리는 한 몸처럼 변함없이 늘 붙어 다녔던 단짝이다. 우리가 어떻게 친하게 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 애는 작은 키에 피부는 하얗고 순정 만화에서 막 걸어 나온 여주인공 같은 큰 눈에 목소리가 맑고 성품이 정다웠다. 우리 둘 다 전학해 와서인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금세 친해졌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마냥 좋아서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교실에서 마치 밭 둘레 우거진 마른풀 섶에서 소란스러운 참새처럼 텔레비전 연속극, 좋아하는 연예인 소식을 떠들었다. 쉬는 시간에 읽고 있는 책 내용을 말하는 것도 모자라 수업 시간 선생님의 눈을 피해 쪽지를 주고받았으니 그때는 뭐 그리 할 말이 많았을까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말하지 않고 눈빛만 주고받아도 속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잘 맞아서로 잘 통했다. 존재만으로도 품격이 느껴져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좋아했던 그 애가 내 친구라는 게 한없이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설과 만화책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교보문고나 종로서적에서 놀았다. 집으로 놀러 가면 앉은뱅이책상 옆에 “캔디, 베르사유의 장미, 롯데롯데, 작은 아씨들 순정 만화책이 종류별로 쌓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만화 속 주인공들을 즐겨 그렸는데 흡사하게 잘 그렸다. 나는 그 친구 집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만화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순정 만화 속에 나오는 순박한 여주인공 같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게 아니라 선명하게 기억되는 건 함께 했던 좋았던 추억이 많아서일 거다. 생쥐가 가마니에 나락 까먹듯이 학교 옆에 구멍가게를 들락거렸다. 군것질하러 가면 ‘크라운산도’라는 과자를 잘 사 먹었다. 마트에서 그 과자를 발견하면 항상 그 친구가 생각난다. 시험 기간이면 남산도서관에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도 시험공부보다는 소설책을 읽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참 없었다. 학창 시절 내내 화장실까지 꼭 붙어 다녔던 내 친구 ㅇㅇㅇ는 나에게 간절한 그리움이 되었다. 늘 곁에 두고 싶은 내 마음속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진달래가 마흔 번이나 피고 진 것을 보아온 이즈음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그 아이가 더욱더 그립다.
이성보다 동성이 더 좋았던 그 시기에 우리는 키다리 아저씨, 사랑의 학교, 데미안을 돌려보며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때는 이 시기이다. 한국 단편소설과 세계 명작소설을 두루 섭렵하고 영화 보러 다니느라 공부는 뒷전이어서 부모님에게 걱정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계기로 거의 볼 수 없었던 친구가 결혼식에 와 주었다.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육아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마음이 서늘하다. 그 애가 결혼했다며 사진을 보내왔는데 신랑과 잘 어울리고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이 예뻤다. 엄마는 아무나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2년 터울인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이 지방에서 서울로 가야 하는 네 결혼식보다 더 우선이었으니까, 그 당시 4대가 함께 사는 내 처지가 무척 힘들었거든“. 그 후 내 무심함으로 연락이 끊겼으니 미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결혼식을 기점으로 평생 함께 갈 사람이 갈린다고 주변에서 말하는 걸 듣고 더욱 미안했다. 뒤늦게 수소문하고 연락처를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요즘같이 휴대전화가 있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채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가슴앓이는 하지 않을 텐데.
봄꽃처럼 화사한 얼굴이 눈에 선하고 소리 내 웃던 순박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귀에 쟁쟁하다. 깊은 산속 옹달샘보다 더 맑았던 심성과 순한 눈매를 지녔던 내 친구 만날 방법이 뭘까 생각해보았다.
내게도 학창 시절이 있었지만, 연락되는 친구가 아무도 없다. 청소년기인 학창 시절 사춘기를 아프게 보내느라 진학하지 못하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기술학원 전자과에 다니느라 친구들을 멀리했으니 어리석었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글 쓰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듣는 대로 뭐든 이해할 수 있다는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글쓰기를 배우는 것도 혹시 내 글을 읽고 연락해오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 연결된다는 말처럼 내 글이 언젠가는 친구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이름이 어려워, 한때 개명할까도 생각했지만 이름을 바꿔 버리면 더욱더 친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기에 이대로 살기로 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잘 살다 보면 언젠가는 보게 될 문학소녀였던 내 친구 보고 싶다.
첫댓글 친구분께 마음이 닿길 바랍니다.
그 문학소녀들 사이에 저도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에요. 덕분에 제 추억 속으로도 여행합니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일이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다가오는 일.
저도 많이 경험했기에 공감됩니다.
안타깝네요.
그 좋은 친구를 잃어버리고 사시는군요.
어려운 시절 보내고 '글 쓰는 여자'가 된 선례님!
장하십니다.
선생님 바람처럼 글이 친구와 만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저도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져 안타까운데 그마음 공감합니다. 먹고 사는 일이 먼저라. 연락이 닿기를 바랍니다.
감정이 충만하신 우리 정선례 선생님. 문학 소녀라는 별칭이 딱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