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 안순희
지난 화요일 아침 큰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산 벌초 작업을 마무리 하던 중이어서 웬일로 벌초가 걱정 되었나 싶었는데 뜻밖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윗동서의 부음이었다. 우리 세대의 종말이 시작 되었다는 신호였다. 오는 건 차례가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으니 팔순을 넘기신 형님은 크게 애달픈 경우는 아니지만 구순을 바라보는 시숙님이 걱정 되었다. ‘대려다 고생만 시키고’ 하시다가 말을 잇지 못하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생전에 손잡고 말이라도 한번 나눴더라면 덜 아쉬웠을 것을 하는 마음에 아무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어려우니 걱정 할까봐 알리지 않았다니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풍속까지 이리 비정하게 바꿔버렸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 전에는 누가 입원을 하면 온 마을 사람이 모여 문병 다니던 정 넘치는 기억이 있는데 가족의 면회조차 금지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니 서글펐다.
한 마을에 구순 넘은 큰시누님이 사시는데 형님은 남아 계시고 조카와 질부가 동행을 했다. 평일이어도 가을장마비가 와서 길이 뿌연 안개에 뒤덮여 다른 날보다 두 배로 시간이 걸려 서둘러 출발했지만 오후 늦게야 도착 할 수 있었다. ‘잘 갔느냐 누가 왔느냐‘ 광주 부근 지날 때부터 화성 장례식장에 도착 할 때까지 큰시누 전화를 다섯 차례나 받았다. 김포에 사는 막내 동서 부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이 몇 채 있다는 부잣집 장례치고 식장은 텅 비어 한산했다. 평일이니 밤에 올려나 했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은 두어 자리뿐이었다. 코로나가 한창 극성일 때도 다들 예의는 지키며 살았는데 핑계 댈 명분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떤 연유 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날 아침 발인제를 마치고 영구차는 화장장으로 떠났다. 꽃상여 대신 리무진으로 모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유족들이 타는 버스 짐칸에 관을 싣는 걸 보고 너무 놀랐다. 시골에서도 발아래 부모를 놓고 가는 경우를 보지 않았는데 , 부자의 돈 아끼는 방법에 혀를 차며 우리는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 오는 길에 조카며느리가 쓴 소리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아들이 셋 손자가 넷이나 되는데 운구할 친구 한명도 오지 않았다며 그 사람들 사회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보인다고 했다. 집안일인데 큰 흠결이 드러나서 부끄러웠다. 상가에서 아침에 컵라면 주는 것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전라도 와 경기도의 문화 차이일 수 있다며 흠결을 덮어 보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제력 자랑이나 말 일이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노자 돈 놓으라고 하니 며느리 들이 만 원짜리 한 장씩을 놓더라고 어이없어 했다.부자가 아니어도 부모님의 마지막 길은 좋은 물건으로 치장해 드리려는 마음이 기본 바탕에 깔려있는데 보통 사람들의 정서와 거리가 먼 그 사람들이 너무 낯설었다. 그렇게 쌓은 부를 어디에 쓰려는지 궁금했다. 무분별한 낭비는 삼가야겠지만 사람의 도리는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시절이 변했고 복잡한 구습 보다 편해 진 것도 사실이다. 장지는 고향의 선산이 아닌 추모공원의 납골당이 이미 보편화 되어 있어서 여러 번거로운 절차가 줄어드니 장례식에 놀러온 것처럼 앉아만 있었다. 펄럭이는 만장이 앞장서고 꽃상여가 구슬픈 노랫가락에 맞춰 흔들리며 가면 거리마다 가득한 사람들이 따르며 배웅하던 그 숭고하고 아름답던 행사는 먼 기억 속으로 박제된 구습이 되었다.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추억이라서 일까?
첫댓글 에고. 그러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르신들 돌아가셨다는 글 볼 때마다 걱정이 되곤합니다.
결국 빈손으로 가는데 너무하긴 했네요.
'우리세대의 종말'이란 말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글 읽는 제가 다 야속한 생각이 듭니다.
만장 휘날리며 꽃상여 타고 가던 시절이 아득합니다.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인데 보내드리데 있어서 너무나 정성이 부족했네요.
글 읽으며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꽃상여가 나가는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그 날은 일하지 않고 함께 애도했었지요. 읽으면서 뭔지 모르게 서운하긴 하네요.
만장기를 앞세우고 꽃상여 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배웅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시대 따라 산다지만 사람의 도리는 하면서 실아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곡소리 녹진하게 울려 퍼지던 장례식이 아득히 먼 과거가 되었네요.
시대가 변했으니 할 수 없죠.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