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명품이라는 이름이 대접 받는 세상이다. 명품 사과, 명품한지, 명품강의, 명품도시, 명품헤어스타일 ….
시골 살 때였다. 주인집 마루에 뒤주가 놓여있었다. 뒤주와 벽 사이에 비닐가방이 두개 끼워져 있었다. 하나는 초록색이고 또 하나는 빨강색이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한 아이 둘이 초등학생 때 쓰던 책가방이라 했다. 딱히 쓸모도 없지만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그냥 놔둔 것이라 했다.
나는 그 가방 두 개를 얻어왔다. 조각조각 십 센티 크기로 잘라 사방을 돌아가면서 코바늘뜨기를 하고, 초록 빨강 모티브를 이어 붙여서 가방하나를 만들었다. 아이 셋을 키울 때는 기저귀 가방이 되고, 그 이후에는 유일한 내 외출용 가방이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교육문제를 들먹이면서 도시로 이사 할 마음을 먹었다. 진주에서 자그마한 옷가게를 해볼 생각이었다.
마땅한 점포가 있어서 계약을 했다. 이웃집 언니와 가게에 진열할 물건을 사러 남대문 시장엘 갔다. 요즘은 일일생활권의 거리가 됐지만 그때는 서울 가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물건을 사서 저녁때에나 돌아올 형편이었다. 옷가지며 소지품을 담아갈만한 가방이 마뜩찮았다. 나는 기저귀를 넣어 다니던 초록빨강 그 가방에다 이런저런 것을 챙겨 담았다.
저녁때나 되었을 때 서울에 도착했다. 도깨비시장 부근에서 이른 저녁밥을 사먹고 나오다가 친정집에 가져가겠다며 언니가 미제 커피 한 병과 과자 몇 봉지를 샀다. 미제커피 맛은 어떨까? 호기심에 나도 한 병 샀다. 지하 골목을 빠져나와 큰 길로 올라왔다. 육교 들머리에서 경찰 두 명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만 갔다. 지은 죄는 없지만 괜히 마음이 조였다. 사무실로 들어가서 앉으라는 의자에 앉았다.
“우리가 뭐 잘못한 거 있습니까?” 언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당신들 밀수품 장사 아니오?” 의아해서 나는 경찰을 바라보았다.
“이런 외제가방을 들고 다니면서도 아니란 말이요?”
“아니, 이건 제가 만든 겁니다.”
“지금 농담하자는 겁니까? ” 경찰은 내 진담을 귓등으로 듣는 듯했다. 비슬비슬 자리를 피해 앉더니 자기네들 할일만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우두커니 반시간나마 앉아 있었다. 한 경찰이 다가오더니, 사는 곳이 어디냐, 전화번호는? 하고 다그쳤다. 언니는 한쪽 눈을 찡긋했지만. 눈치 없는 나는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시우.” 우리는 무얼 잘못 했는지도 모른 채 훈방조치로 풀려났다.
이웃집 영인이 엄마가 옷 구경을 왔다. 서울 가서 밀수가방이 되어 돌아온 내 가방을 보았다. 요모조모 신기하다는 듯 매만졌다.
“이 가방 어디서 샀어? 이런 건 처음 보네.”
나는 가방의 출생비밀을 늘어놓았다.
“손재주가 별미네. 명품이 따로 없어. 가죽이라면 더 좋을 긴데….”
며칠 지나서 영인이 엄마가 한 아름이나 되는 보따리를 안고 왔다.
“이걸로 재주껏 솜씨한번 부려봐.” 영인이 엄마는 시동생 양화점에서 구두를 짓고 남은 자투리를 얻어온 것이다. 나는 뜻밖의 횡재에 어쩔 줄을 몰랐다.
사전에는 뛰어난 작품이나 물건을 명품이라 한다고 적혀 있다. 우리 조상들은 혼과 정성이 깃든 물건을 명품으로 쳤다. 그래서 구증구포니 열두 번 배접이니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손수 지어 입힌 내 배냇저고리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명품인 것이다. 명품에는 지은이가 쏟은 혼신의 정성과 어떤 진정한 의미가 들어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비닐 가방을, 밀수한 명품으로 본 옛날 그 경찰관이야말로 진귀한 물건을 알아보는 훌륭한 눈의 소유자였다. 초등학생이 쓰다 남은 비닐 책가방을 조각조각 뜯어 만든 기저귀가방이 얼마나 희귀한 것이며 또 거기에 쏟은 엄마의 정성과 진정이 얼마나 고귀한 정신이었는지를 알아보았으니.
틀림없다. 명품은 아무 눈에나 보이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