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전도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04/27토(土)행 8:26-40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거라”(행 8:26)
사도행전에 나오는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완전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성령께서 어떤 방법으로 전도를 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빌립은 스데반과 함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가 사마리아에서 집회를 하는데 큰 기적들이 일어나 기쁨이 넘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께서 그를 그곳에서 끌어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빌립은 성령의 인도함에 순종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장소를 인도해 주십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 8:26). 성령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빌립에게 예루살렘을 지나 가사로 가라고 장소를 지시해 주십니다. 집회에 성공하고 있는데 그곳을 떠나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만, 빌립은 영의 인도함을 받아 즉시 순종합니다. 이것이 참 자아의 삶입니다. 빌립이 사막에 도착하니 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보입니다. 사막에서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납니다. 하나님의 기가 막힌 타이밍입니다. 전도하려고 기도할 때 장소를 알려주십니다.
▣사람을 인도하십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행 8:27-28). 성령께서 ‘이 사람이다’ 이런 확신을 주십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러 갔는데 그 사람은 만나지 못하고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정확한 타이밍으로 인도하십니다.
▣전도의 방법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행 8:29)
‘나가라’ 순종하고 나갈 때 접촉점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세밀하게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인도함을 받으면 삶이 새롭고 기쁘게 다가옵니다.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거짓 자아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참 자아로 들어가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 8:35).
성령께서 기도할 때 의심이 되는 부분을 깨닫게 하십니다.
▣십자가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행 8:36-38). 세례를 받는 것은 십자가 체험입니다. 물에 잠길 때 죽음을 체험하고 물에서 올라올 때 부활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각자에게 사명으로 인도하십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 8:39). 빌립의 사명은 내시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고, 그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사명이 끝나니 이제 성령께서 다른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영의 인도함을 받으면 과거, 현재, 미래에 붙들리지 않습니다.
And...
전도의 주체는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영혼을 붙이셔서 할 말을 하게 하시고, 그를 구원하십니다. 나는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는 도구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전도하게 되면 나의 공로로 되었다고 믿으니 하나님께 쓰임 받고도 나중에 버림받게 됩니다. 모든 주체는 내가 아닌 성령이 하셔야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릴 수 있습니다. 전도뿐 아니라 일반적인 신앙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거짓 자아에 속지 않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가장 속기 쉬운 것은 경험에 의한 고착된 사고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늘 부정적인 반응을 했을 때 내 기억 속에 그 사람에 대한 고착된 생각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가 이렇게 했을 경우 반드시 이렇게 반응할 것이야, 이것이 속은 거짓 자아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부정적인 사람일지라도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내게 긍정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늘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정보,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짓입니다. 우리의 상황에 대한 해석이 중요합니다. 이 상황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지, 사단으로부터 왔는지 기도합니다. 불안한 마음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니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평안이 옵니다. 이렇게 거짓 감정에 속지 않을 때 주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습니다.
평안은 결과에 관계없이 주님이 함께하시는 사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는 아닐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가장 최고의 결과를 주십니다. 신앙의 승리 비결은 주님이 주인 되는 참 자아의 삶을 통해 영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참 자아의 삶을 새사람, 속사람으로 산다고 합니다. 은혜로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삶은 속은 삶입니다. 이런 삶은 실패합니다.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거짓 자아의 삶입니다.
저 또한 과거의 기억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있었습니다. 늘 그 상황만 되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부정적 감정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그런 나를 보며 주님은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과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현재에 감사하며 행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단에게 속아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주님을 가장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요셉은 하나님만 바라보니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미워하는 감정은 거짓이 주는 감정입니다. 거짓이 주는 감정을 거부하고, 이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형들을 용서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루어진 일이라면 사단에게 속아 사람을 미워하는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사단의 목적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집중하게 하여 사람을 미워하여 주님과 분리되게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과거와 미래에 속지 않고 현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신실하고
https://youtu.be/qn9CPWBkbGc?si=v7C7bkQv3nQ9r9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