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충신이었던 정몽주는 쇠퇴하던 고려를 버리고 이성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이방원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만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이다.
끝까지 고려의 정조를 지켜 고려의 충신으로 남겠다고 한 정몽주는 결국 이방원일당에 의해 격살(때려 죽임)을 당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몽주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충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뚝심있게 끝까지 자신의 사상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은혜를 안 사람이다.
나도 정몽주같은 사람이 돼 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솔직히 나는 정치적인 면에서 비겁한 사람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얘기 하는 걸 극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정치얘기 잘못했다가 교회가 두 쪽 날까봐, 가족이 깨질까봐 두렵다. 우리 아내와도 정치포지션이 다르다.
혹자는 우리 단체 이름이 "더불어사는우리"라 해서 더불어민주당빠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2015년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연합이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기 전부터 우리가 먼저 "더불어사는우리"를 쓰고 있었다.
난 자유한국당도, 더불어민주당도, 극한 대립과 싸움으로 치닫는 이런 상황이 경멸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손을 잡고 일하는 소위 잘나가는 단체들에 비해 성장이 더딘 것이 나의 이런 정치색 때문일까?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비겁하지만, 사랑과 은혜에 있어서는 충신이 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 이것이 내 스타일이고 내 삶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계기는 단 한 사람을 운명처럼 만난 것 때문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운명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1998년, 뇌성마비란 장애 때문에 아무런 미래가 없었던 나를 건져주신 분이 사강감리교회 김길수목사님이다. 어디 나 뿐이더냐. 우리 가족을 통째로 건져주신 분이다.
많은 빚쟁이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우리 가족을 교회에서 사찰로 써 주셨고, 방송일로 써주셨던 것이다. 참,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눈물뿐이 안 나온다.
우리 힘으로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했다면 대학 근처도 못 갔으리라. 하지만 사강교회에서 주신 장학금으로 석사 2개까지 취득한 게 아닌가? 지금은 Ph.D.(철학박사) 수료까지 했으니 사강감리교회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에 나를 건져주신 김길수목사님께 감사하려는 것이다. 아무 가능성 없었던 나를 손잡아 주셨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내려 깔보는)시선과 너무나도 달랐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거의 100% 눈치가 100단이다.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있기 때문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나, 늘 눈치보는 게 자연적인 현상으로 고착화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님만은 눈빛부터가 달랐다.
그러다가 2008년, 교회에서 주최하는 중국 우르무치 선교를 갔었다. 그때 하나님의 콜링을 받았다. 그리고 안양에 위치한 갈보리금식기도원을 다녀왔다. 마음을 먹고 담임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목사님, 저 신학교에 가겠습니다." 솔직히 나는 "가지말라"는 대답이 되돌아 올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내 몸도 장애인인데다 동일시점에 다른 청년이 나와 똑같이 신학교 가겠다고 말하자 목사님께서는 기도해 본 결과 "가지 말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근데 난 "그래? 가라"란 응답이 왔다.
그래서 결국 훌륭한 목사가 돼 있지 않는가? 내가 내 입으로 훌륭한 목사라 해서 미안하다. 뭐에 복받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목사님이 날 이렇게 만든 것이다. 무료급식을 처음 하게 된 이유도 목사님 때문이었고, 내 까지께 뭐라고 TV에 나와보겠는가? 난 참 행운아다. 사람 잘 만난 행운아이다.
목회철학은 또 어떠랴. 누가 날 보고 "리틀 김길수"란다. 그 말이 참 듣기 좋다. 10년 이상 목사님 설교를 듣고 또 들었다. 방송실 일을 하며 똑같은 설교를 듣고 또 들을 수 있었다. 테이프로 복사하다가 듣고, 1부, 2부 예배 때 듣고, 아주 주구장창 들어서 이제는 웬만하면 알 것 같다. 이만큼 목사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터라 사상과 철학과 신학이 그대로 내 머릿 속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자나깨나 영혼구원,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우리교회 평생목회철학이 "구령열에 기도열에 헌신열에 불타는 교회"이다. 목사님과 똑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목사님이 요즘 은퇴를 앞두고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렇게 열심히 앞만보며 달려오셨는데, 한 눈 팔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다보니 지금의 연세까지 온 것인데,,,
지난 주 화요일 명절을 앞두고 목사님께 인사하러 갔었다. 많이 야윈 목사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 목회를 회상하는 대화끝에 두 눈에 촉촉하게 고여있는 눈물을 봤다. 그리고 주르륵 떨어지는 회한의 추 하나,,,
정말 마음이 아팠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눈물을 보게 된 것이다.
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렇게 글로 내 심정을 쓰고 있다.
마치 이방원의 하여가에 맞서 정몽주가 단심가로 응수했던 것처럼...
지난 2004년쯤, MBC가 PD수첩을 통해 금란교회 김홍도목사님을 때릴 때
부목사로 계셨던 목사님께서 금란교회 홈페이지에 글 하나를 올리셨던 게 기억난다.
잘잘못을 떠나 힘들고 곤경에 처해있던 당시 스승님으로 모셨던 김홍도목사님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구구절절 글로 옮겨졌다. 이 글을 나에게 보여주셨던 게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왜 그때 나에게 보여주셨는지 몰랐으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목사님의 심정이 지금의 내 심정과 오버랩되어지는 건 우연이 아닐테다.
목사님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목사님을 손가락질해도 저는 목사님을 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목사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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