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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井) 미스테리(mistery)와 난함선(欄檻船)
가. 일사(逸史)의 가치 - 고대 사회 씨스템(system)에 대한 정보, 경제인류학(經濟人類學)의 보고(寶庫)
우리
고대사(古代史)의 일사(逸史)의 보고(寶庫)는 ‘한단고기(桓檀古記)’로 편집된 것이 그 하나의 맥(脈)이라면,
남당유고(南堂遺稿)는 이에
필적할만한 또 다른 일사(逸史)의 보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최근에 가락국(駕洛國)의 광대한 해역(海域)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선박이 있었음이 감안하면, 기기(紀記) 속에 있는
관경사국(管境四國)에 관한 정보가 ‘일본열도 호리병’을 벗어나게 되면 역시 일사(逸史)의 보고(寶庫)라고 할수 있겠습
니다.
좌계는 ①‘교환(交換)하는 거래’가 아닌 경제적 거래를 주축으로 하는 고대의 시장(市場)에 대해서
관심이 깊고,
②또한 ‘다수결(多數決)로 의견을 정리하지 않는’ 민주적 통합 방식에 대해서 역시 관심이
깊습니다.
한단고기(桓檀古記)에서는 비교환거래(非交換去來)가 오히려 교환거래(交換去來)를 이끌고 가는 경제형식을 신시
(神市)라고 일컫고, 또 ‘다수결(多數決)이 아닌 방식’으로 국가(國家)의 범위를 넘어서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통합을
하는 것을 화백(和白)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아시아(Asia)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으로 그 역사적 흔적을 찾아보려고 해도, 사료(史料) 자체가
희소하고,
또 학술적으로 연구된 내용도 그리 많치 않습니다.
이른바 신시(神市)와 화백(和白)의 내용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회 씨스템(system)’의 내용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좌계가 남당유고(南堂遺稿)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가장 큰 이유는
좀 엉뚱하게도 위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내용이
의미하는 고대 아시아(Asia)의 사회 씨스템(system)에 대한 내용이 “기존(旣存)의 사료(史料)보다 풍부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사(逸史)는 문자 그대로 정사(正史)에서 ‘빠트린 역사(歷史)’를
뜻합니다.
정사(正史)는 일반적으로 전(前) 왕조(王朝)가 망한지 객관적인 입장에 설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
- 대략 100년 쯤 후에 기술된다. - 사료(史料)를 망라해서 기술하게 되지만, 결국 ‘기술할 당시의 패러다임(paradigm)’에
종속되어서
역사해석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일사(逸史)는 이런 정사(正史)의 패러다임(paradigm)에 종속되지 않는
‘가치관(價値觀)’이 그대로 들어나거나
심지어 “역사의 흐름에 양보하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는 ‘저항적 가치관’이 정사(正史)와 대립되었기 때문에,
기록 자체가 ‘숨기어져 전달’되다가 나중에 발굴되는 것이 항례(恒例)인 것입니다.
즉 일사(逸史)는
정사(正史)보다 오히려 경제인류학(經濟人類學)적인 정보, 그리고 고대의 사회 씨스템(system)에
대한 정보가 의외로 태생적(胎生的)으로
정사(正史)보다 풍부하게 제공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일사(逸史)에만 나오는 <특이한
용어(用語)>는 고대 사회의 실상(實像)을 규명해주는 뇌관(雷管)이다.
1) 궁(宮)의 개념과 유사하게 쓰여진 정(井)의
개념.
그런데 일사(逸史)에만 나오는 아주 특이한 개념의 용어(用語)가 등장하는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당유고(南堂遺稿)의 경우 정(井)이란 개념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습니다.
이 정(井)은 통념적으로 ‘우물’을
뜻합니다.
문제는 남당유고(南堂遺稿) - 특히 ‘신라사초(新羅史抄)’에 많이 등장하는 이 정(井)이란 개념은 일단 ‘우물’이 아니고,
궁(宮)의 특수한 형태임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성일 선생께서 번역하신
‘婆娑尼師今紀(파사이사금,A.D.126 - A.D.158:재위33년) 1-7년 기사’에서만도 무려 8번이나
나올 정도로 이 용어는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다음에 나오는 8번의 자료를 보면, 정(井)이란 글자 앞에 한 글자를 더 집어넣어서 고정(高井),
대정(大井),
양정(壤井)으로 구분해 주는 것이 마치 궁(宮) 앞에 구분하는 글자를 붙여서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으로 구분해
주는
것과 같은 양상(樣相)을 띠고 있습니다.
① 3년
三年 正月 上與惠后 受朝高井
3년(A.D.128) 정월 왕과 혜후가
고정(高井)에서 조회를 받았다.
② 4년
四年 正月 上與惠后 受朝南桃 宴太君彡君 於高井
4년(A.D.129) 정월
왕과 혜후가 남도(南桃)에서 조회를 받았다. 고정(高井)에서 태군(太君)과 삼군(彡君)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
③ 4년 4월
조(條)
復以阿利爲太聖 居大井 許婁爲太聖私臣 呼以聖父
아리를 태성(太聖)으로 되돌리고 대정(大井)에서 살게 하고, 허루를
태성사신(太聖私臣)으로 하여 성부(聖父)라고
불렀다.
④ 5년
四月 大風 大井東門頹壞 上爲之責己不食 惠后沐浴禱天 曰 “責在妾身
願解夫 今須臾風止” 遣支所禮 問民頹戶
4월 큰 바람이 불어 대정(大正)의 동문이 기울어져 무너졌다. 왕이 자책하며 식사를 하지 않았다.
혜후가 목욕을 하고 하늘에 기도하며 말하기를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원하건대 남편을 풀어주시고, 비록 지금 잠깐
이라도 바람을 그치게 해
주소서”라고 하였다. 지소례를 보내어 백성들의 집이 무너졌는지 묻게 하였다.
⑤ 6년
八月 行大嘉俳 于高井 惠后自績
而示衆
8월 고정에서 대가배(大嘉俳:추석)를 행하였다. 혜후가 몸소 길쌈을 하며 백성들에게 보였다.
⑥ 6년
十二月
以康造太子 爲壤井大師 月公爲副師 星門爲都頭
12월 강조(康造)태자를 양정(壤井)대사고 삼고, 월공(月公)을 (양정)부사, 성문(星門)을
(양정)도두로 삼았다.
≪견해≫ 양정은 탈해가 묻힌 곳으로 이 분들은 모두 탈해와 혈족관계라는 뜻이다.
그러나 상장돈장에는 석씨와 관련된
계보가 특히 부실하여 정확한 관계를 알기는 어렵다.
⑦ 7년
七年 正月 上與惠后 拜玄神 于井中
受朝南桃
7년(A.D.132) 정월 왕과 혜후가 정중(井中)에서 현신(玄神)에게 절하였다. 남도에서 조회를 받았다.
≪견해≫
132년은 임신(壬申)년인데 임(壬)이 水(물) 또는 黑(검다)의 뜻으로 대치된다.
⑧ 7년
十二月 上宴太聖聖父
于高井
12월 왕이 고정에서 태성과 성부와 잔치를 벌였다.
2) 정(井)의 개념이 ‘우물’이 아닌 궁궐(宮闕)과 같은
건축물(建築物)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분명, 남당유고(南堂遺稿) 신라사초(新羅史抄)에서는 정(井)의 개념이 궁(宮)의 개념과
유사하게 사용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정(井)의 개념이 궁궐(宮闕)의 개념과 유사하게 사용되었다.”라는 것이
확실해진 것입니다.
이는 정(井)이란 개념 가운데는 ‘우물’이란 의미 이외에 전혀 다른 뜻으로써 사용되는 것이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물’이 아닌 의미로 정(井)의 개념이 쓰였을 때에는 일단 궁궐(宮闕)과 같은 거대한 어떤 건축물(建築物)임을
일단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일사(逸史)가 오히려 정사(正史)보다도 탁월한 사료적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미 예를 든 정(井)의 경우, 일사(逸史)인 남당유고(南堂遺稿) - 그 중에서도 신라사초(新羅史抄)에서 “이
정(井)이란
용어는 궁궐(宮闕)과 같은 어떤 건축물 내지 구조물(構造物)에 대한 용어이다.”라는 것을 확실히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점이 왜 중요한가?
이는 고대(古代)에서 내려오는 여러 가지 문헌적 기록에 정(井)이란 개념이
있는데, “정(井)이란 것이 과연 우물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이는 ‘우물’이 아니라 궁궐(宮闕)과 같은 어떤 구조물(構造物)이다.“라는 것을 확실히 함으로써,
‘고대 사회의 실상(實像)을 밝히는 결정적인 뇌관(雷管) 역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 정(井)에 대한 고대의
기록 들 (1)
- 천문(天文)의 정수(井宿), 삼성기전(三聖紀全)의 남정(男井)과 여정(女井),
1) 천문의
정수(井宿)
가) 보천가(步天歌)의 정성(井星)에 대한 노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이는
‘고조선(古朝鮮) 때부터 측정해서 고구리(高句麗)때 완성된 천문도
(天文圖)의 명칭입니다.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와 별자리가 약간 다르고, 별자리 수와 정확도가 더 앞서는
특징이 있습니다. - 살펴보면, 당연히 28수(宿)가 있게 됩니다.
이 28수(宿)를 ‘7개씩을
묶어서 하나의 셑(set)으로 된 통합된 집(=사(舍))’으로 나눈 것을 칠사(七舍)라고 하는데,
이 칠사(七舍)는 사신수(四神獸) - 즉 봄의 청룡(靑龍), 여름의 현무(玄武), 가을의 백호(白虎), 겨울의 주작(朱雀)을
각기 앞에 붙여서 “28수(宿)가 어디에 속(屬)해
있는가?”를 밝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주작칠사(朱雀七舍)는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입니다.
그런데, 이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이란 순서는 바로 겨울에 별(星)을 관찰하는 사람이 북(北)을 등 뒤로 하고,
남면(南面)해서 하늘을 볼 때, 좌측(左側)인 동(東)쪽으로부터 별이 뜨는 순서가 ① 맨처음에 정수(井宿)가 뜨고,
② 그 다음에 귀수(鬼宿)가 뜨고, ③ 그다음에
유수(柳宿)가 뜨는 식으로 그 순서(順序)대로 열거해놓은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겨울 하늘에서 맨 처음 동(東)편 하늘에 떠오르는
별이 바로 정수(井宿)인 것입니다.
정수(井宿)라는 별자리 명칭은 이 ‘별자리’가 한글의 (ㅒ)모양으로, 8개의 ‘주홍색 별’이
각기 4개씩 곤곤(丨丨) 모양으로
이열(二列)을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이를 한자(漢字)로 나타낸 것이 바로 정(井) 자(字)이기 때문에,
정수(井宿)로 붙여진 것입니다.
이 정수(井宿)에는 동정(東井)-그냥 정(井)이라고 합니다. -이
주성(主星)인데, 이 정성(井星)의 주변에는 물(水)을
뜻하는 별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말하자면, 수부(水府)는 정성(井星)의 오른편에, 사독(四瀆)은 우하(右下)에, 바로 밑에
남하(南河), 좌하(左下)에 수위(水位),
그리고 좌상(左上)에 적수(積水)가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정성(井星)이 뜻하는 “ ‘정(井)’의 개념이 원래
‘수중(水中)의 어떤 구조물(構造物)’이 아닌가?”하는
상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이 정성(井星)의
우상(右上) 쪽에 항상적으로 열월(列鉞) 혹은 월(鉞)이라는 이름의 별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월(鉞)의 뜻은 ①도끼,②수레의
방울소리, ③ 뛰어넘다(=월(越))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글자인데,
여기서는 ‘뛰어넘다.(=월(越)’이란 개념으로 쓰이는 것이 보천가(步天歌)를
읽어보면 확실해집니다.
보천가(步天歌)에 대해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천가(步天歌)는 수(隋)나라의 은자(隱者)였던
단원자(丹元子)가 별자리를 3원(垣) 28수(宿)로 나누고, 이를 암기하기
쉽도록 칠언시의 형태로 서술한 것을 뜻합니다.
조선시대 음양과(陰陽科) 천문부(天文部) 과시(科試)에서 보천가(步天歌)의 암송(暗誦)이 필수일 정도로 동양의
천문학(天文學)에서는 중요하게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보천가(步天歌)의 노래 내용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있는 순방체제(淳庬體制)의 인문적(人文的)
내용보다 오히려 봉건체제(封建體制)의 인문적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약간의 흠이 있긴 하지만, 천문(天文)의
인문학적인 ‘느낌’을 투영하고 있는
‘노래’입니다.
따라서 보천가(步天歌)의 내용은 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의 어떤 구조물’과 사회제도에 대한 정보가 많은
것입니다.
나) 하중정(河中淨) 의식(儀式)과 월정변안(鉞井邊安)의 수수께끼
정(井)에 관한 보천가(步天歌)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문(原文)]
① 팔홍횡렬하중정(八紅橫列河中淨)
②일홍명월정변안(一紅名鉞井邊安)
[해석(解釋)]
① “여덟개의 주홍색 별이 횡(橫)으로 이어져 두 열(列)을 이루니
강(江)가운데서 맑게 하는구나!”
② 하나의 주홍색 별의 이름이 월(鉞)이니, 정(井)의 주변(周邊)에 있으면서, 이를
안정(安定)시키도다!
일단, 이 보천가(步天歌)에 들어난 정(井)의 이미지(Image)는 정(井)자 모양으로 생긴 어떤
수중(水中)-구조물(構造物)이
있었고, 그 네 귀퉁이에 마치 저울대 같이 혹은 씨소(seesaw)같이 오르고 내리는 월(鉞)이란 부착(附着)기구가 있어서,
그 끝에 물(水)을 뜨는 ‘거대한 그릇’과 장치가 있음을 가정(假定)하게 합니다.
“하나의 주홍색 별의
이름이 월(鉞)이니, 정(井)의 주변(周邊)에 있으면서, 이를 안정(安定)시키도다!”
- 이 내용은 ‘물(水)을 뜨는 거대한 그릇’으로써 물을 떠 올려서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면서 정수기(淨水器)를 운영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
다시 말하면, 이 정(井)이란
수중(水中)-구조물(構造物)은 조감도(鳥瞰圖)로 보면 회(回)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가운데’에 사람이 기거(寄居)할 수 있는 공간(空間)이 있고, 여기에 4 귀퉁이에서 월(鉞)이란 씨소(seesaw)형태의
물(水)을 떠올리는 장치가 있어서 이를 ‘가운데 공간(空間)’에 부어서 점차 이것이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에 물을
정화(淨化)시키는 어떤 장치가 되어 있어서 결과적으로 맑아진 물을 획득하게 하는 장치가 있는 듯 한 그런 인상(印象)을
준다는 것입니다.
“강하(江河) 속에서 어떤 수중(水中)-구조물(構造物)이 있어서 맑은 물을 떠서 위에다
붓는다?! 도대체 이 ‘맑은 물’은
왜 무엇을 위해서 붇게 되는지?”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의문(疑問)이 중요한
것은, 보천가(步天歌)의 하중정(河中淨)에서 ‘맑게 한다.’는 정(淨)의 개념은 꼭 물(水)인
하(河)가 그 대상이 아니라, 비유(比喩)내지 추상적인 의미의 하(河) - 다시 말하면 이 세상(世上)이나 사회(社會)를
‘맑게 하는 것’으로 추상화(抽象化)시켜서 해석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어떤 내용을 성급하게 추상화(抽象化)해서 해석하는 것은 고대 사회에 있던 ‘구체적인 기물(器物)’
모습을 직시(直視)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런 유혹을 억제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고대(古代)에
정(井)이란 거대한 수중(水中)-구조물이 있고, 여기서 ‘어떤 중요한 의식(儀式)’으로써
‘맑은 물’을 떠서 올리는 행위가 있었고, 그것이 고대 사회(社會)의 실상(實像)을 조명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내용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보천가(步天歌)의
팔홍횡렬하중정(八紅橫列河中淨)이란 글귀에는 ‘사라진 문명(文明)의 ’잃어버린 도구(道具)‘의
단초(端礎)’를 들어내는 문장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월(鉞)이란 별자리가 의미하는 것은 조감도(鳥瞰圖)로 볼 때에 회(回)의 외곽(外廓) 사각형의 ‘별자리’의
위치로써는
‘저울대’처럼 지렛대 작용을 하면서 때로는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내려가기도 하는 그런 장치(裝置)가 부착된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천가(步天歌)의 정변안(井邊安)이란 문구(文句)는 그것이 모서리인 우(隅)로 표시되어 있지 않고,
변(邊)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회(回)의 외곽(外廓)의 사각형의 변(邊)을 안(內)에 끼고 ‘지렛대 작용을
하는
월(鉞)’이란 장치가 좌우(左右)로 활강(滑降)하는 구조가 아닌가?”하는 상상을 일으키게 합니다.
아무튼 ‘저울대’모양의 월(鉞)이
①정(井)의 ‘모서리’에서 있든지, ②혹은 정(井)의 변(邊)을 타고 슬라이딩(sliding)하면서
존재하든지, ③혹은 이 두 가지가 각기 모두 존재하든지 간에 아무튼 지렛대의 원리로 움직이는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봅니다.
지렛대는 ①힘점, ② 함의 받침점, ③ 힘의
작용점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작용합니다.
즉 조감도(鳥瞰圖)로 볼 때, 외곽(外廓)의 사각형 모서리에 있게되는
선박(船舶)이나. 혹은 변(邊)의 끼고 움직이는
선박(船舶)을 ‘힘의 받침점’ - 즉 저울대의 중심으로 삼고 이것이 부력(浮力)을 받는 선체(船體)에 결합이 되어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울대’의 양쪽으로 뻗은 막대 자체는 막대 길이가 ‘포갠 낙싯대’처럼 서로
끼워져서 활강(滑降=슬리이딩(sliding))하게
되고, 그 끝은 주사기(注射器)나 잠수정(潛水艇) 처럼 물(水)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또 내보낼 수도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면, 외곽 밖으로 뻗어나간 저울대가 물(水)속에 들어가면, -이는 힘의 작용점이 ‘늘어난 길이’만큼 세진 것을 뜻합
니다.
- 반대 측 즉 내곽(內郭) 주변에 있는 막대는 거대한 힘을 받아서 ‘들어 올리는 힘’의 작용점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
니다.
좌계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천문(天文)도 문자 그대로 ‘하늘에 써 있는
문헌(文獻)’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별의 배치, 이름 하나 하나가 천문도(天文圖)를 만든 문명의 핵심적인 정보(情報)가 들어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월성(鉞星)이란 별이 결국 정(井)이란 수중(水中)-구조물(構造物)의 네 귀퉁이에 붙어있는
‘지렛대’작용을
하는 ‘저울 대’가 붙어있는 것을 ‘별자리’에 투영(投映)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이
정(井)의 ‘네 귀퉁이’에 붙어있는 ‘지렛대 작용을 하는 저울대’의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井)이란
수중(水中)-구조물(構造物)의 각 부위(部位)의 명칭이 있어야만 구체적인 분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 ‘지렛대
작용을 하는 저울대’의 명칭을 월칭(鉞秤)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결국 8개의 주홍색 별인 정성(井星)과 1개의
주홍색 별인 월성(鉞星)은 조감도(鳥瞰圖)로 볼때에 내곽(內廓)에 있는
시설물에 대해서 외곽(外廓) 4귀퉁이에 ‘저울대’가 활강(滑降)하는 팔(=암(arm))을 지님으로써 아래의 것을 위로 들어
올릴 수도 있고, 위의 것을 아래로 내릴 수도 있는 어떤 작업을 하게 하는 것을 ‘별자리’로써 묘사하였음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井)이란 것을 어떤 수중(水中)-구조물(構造物)이란
이미지(Image)는 남당유고(南堂遺稿)의 신라사초
(新羅史抄)에 의해서 그것이 결국 궁궐(宮闕)에 이를 정도로 ‘규모(規模)가 큰 것’임이 들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정(井)은 수중(水中) 구조물(構造物)이다.”라는 아이디어(Idea)가 매우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즉
이 정(井)이라는 수중구조물은 궁궐(宮闕)만치 대형이라고 하여도, 정면도로 보면 ‘사다리꼴’의 윗부분에 어떤 힘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기도 하고, 위의 것을 아래로 내리게도 하는 ‘저울대’ 지렛대가 각기 4 모퉁이에 설치된 것을 표현
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두 경주(慶州)에는 각기 소호(巢湖)와 태호(太湖)가 있다.”는 사실과 해궁(海宮)
그런데,
신라(新羅)의 경주(慶州)로 비정(比定)할 수 있는 곳은 2곳인데, 하나는 오늘날 합비(合肥)지역입니다.
(*)참고 : 이에 대한
연구는 심제(心濟)선생님께서 꾸준히 연구해 오셨는데, 이 싸이트(site)에 ‘신라국 경주는 바로
안휘성 巢 (합비)지역이다.’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
심제(心濟) 선생님은 ‘天下古今大摠便覽圖(1666년 김수홍 작)’란 고지도(古地圖)로써 이 합비(合肥) 지역이
경주(慶州)
이라는 확증(確證)을 지도로 제공하셨던 것입니다.
(*) 심제(心濟) 선생님의 경주(慶州)에 대한 <3개의
지도(地圖)>를 볼 수 있는 곳.
: http://www.coo2.net/bbs/data/new_con_4/_shilla_kyoungju.jpg
그런데,
위의 ‘3개의 지도’에서 알수 있는 것은 경주(慶州) 주변에는 오늘날 소호(巢湖)라고 칭하는 호수(湖水)가 있고,
따라서 여기에는 남당유고(南堂遺稿) 신라사초(新羅史抄)에서 <정(井)이라고 칭해지는 궁궐(宮闕)과 같은 수중구조물
(水中構造物)>이 들어설 수 있는
위치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의 경주(慶州)는 이 합비(合肥)-경주(慶州)와 수로(水路)로 연결되어 있는
항주(杭州)-경주(慶州)라 할 수 있습
니다.
(*)참고: 이에 대해서는 이곳에 ‘[태왕] Mimesis 님) 두 경주(慶州)를
<潮汐水>를 타고 왕래하는 수로(水路)
- [4]’이란 글이 있습니다. (*)
(*) 두 경주(慶州)의 수로(水路)를
짐작할 수 있는 향고도 님의 지도
http://cfs13.blog.daum.net/original/24/blog/2008/07/16/00/13/487cbe9bb6fcd&filename=54.jpg
즉
항주(杭州)-경주(慶州) 역시 <정(井)이라고 칭해지는 궁궐(宮闕)과 같은 수중구조물(水中構造物)>이 들어설수 있는
태호(太湖)라는
호수(湖水)가 역시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당유고(南堂遺稿) 신라사초(新羅史抄)에 등장하는 <정(井)>이
‘궁궐(宮闕)과 같은 수중(水中)-구조물
(構造物)’이고, 이는 신라(新羅)의 수도인 경주(慶州) 부근에 있는 소호(巢湖) 혹은 태호(太湖)에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특수 선박’으로 이루어진 - 말하자면 수중(水中)-궁궐(宮闕)에 대한 칭호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정(井)이 일종의 선박(船舶)인 수중(水中)-구조물(構造物)이기 때문에, 물(水)을 통해서 이동하고,
이윽고
바다(=해(海))에서도 있을 수 있는 궁궐(宮闕)이란 점입니다.
그런데 남당유고(南堂遺稿) 가운데서 제일 먼저 출판이 된
화랑세기(花郞世紀) 11세(世) 하종(夏宗)에는 놀랍게도
해궁(海宮)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궁궐(宮闕)-선박(船舶)’ 즉 수중구조물(水中構造物)인 정(井)이 생각 컨데, 항주만(杭州灣)을 벗어나 오늘날
주산군도(舟山群島) 쯤에
정박(碇泊)하고 있을 때의 칭호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랑세기(花郞世紀)에서 해궁(海宮)이란 용어가 나오는 부분을
인용해보기로 합시다.
(*) 화랑세기(花郞世紀)에서 해궁(海宮)이란 용어가 나오는 부분 인용 (*)
[원문(原文)
옮김]
美室亦感世宗公之至誠 欲與公父子取團欒之樂 避居海宮 公事父母至孝 世宗公乃與美室禱公之壽于海神 時壽宗殿君
以幼隨在海宮 帝托見壽宗而累召之
美室上書列己罪而辭之
[해석(解釋) 옮김]
미실(美室) 또한 세종공(世宗公)의 지성(至誠)에 감격하고 (하종(夏宗))공(公)의
부자와 단란(團欒)한 즐거움을 가지려
하여 해궁(海宮)으로 피하여 가 살았다. 공은 부모를 지극한 효도로 섬겼다.
세종공(世宗公)은 이에 미실(美室)과 더불어 공(公)의 장수를 해신(海神)에게 빌었다.
그 때 수종(壽宗) 전군(殿君)이 어렸기에
따라가서 해궁(海宮)에 있었다.
제(帝)가 수종(壽宗)을 본다는 핑계로 여러 번 불렀으나, 미실(美室)은 글을 올려 자기의
죄(罪)를 늘어놓고 거절하였다.
(*) 화랑세기(花郞世紀)에서 해궁(海宮)이란 용어가 나오는 부분 인용. 마침
(*)
그런데, 정(井)이 ‘궁궐(宮闕)인 동시에’ 수중구조물(水中構造物)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이 정(井)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일까? 또 그 종류는 어떤 것이 있을까? 왜 고대인들은 이런 정(井)이란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
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라(新羅)시대에 해궁(海宮)으로 까지 쓴 이 ‘수중(水中) 구조물’은 한단고기(桓檀古記)에는 “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께서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성기전(三聖紀全)
상(上)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는 것이지요.
(*) 삼성기전(三聖紀全)상(上)의 정(井)에 관한 발췌인용
(*)
[원문(原文)]
1) 後桓雄氏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黑水之間
2) 鑿子井女井於天坪
劃井地於靑丘
[해석(解釋)]
1) 후(後)에 환웅씨(桓雄氏)가 (환인씨(桓因氏)의 파내류국(派奈留國) 문명을) 계승(繼承)하여
흥기(興起)하였는데,
천신(天神)의 조서(詔書)를 받들어 (섬서성(陝西省)의 삼위(三危)) 태백산과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약수(弱水)인)
흑수(黑水) 의 ‘사이’에서 - 서해(西海) 즉 오늘날의 청해(靑海)를 뜻함‘ - 강림(降臨)하셨다.
2) ‘하늘의
땅(=천평(天坪))’에서 (‘수중(水中) 구조물(構造物)인’) 자정(子正)과 여정(女井)을 뚫었으며,
(배달화백에서 천독(天毒)들의 좌석인)
청구(靑丘)에서 정지(井地)를 구획(區劃)하여 분리(分離)하셨다.
(*) 삼성기전(三聖紀全)상(上)의 정(井)에 관한 발췌인용.
마침. (*)
일단 위 해석에서 백산(白山) 흑수(黑水)의 지리 비정을 함에 있어서 좌계는 백산(白山)을 삼위(三危) - 이는
오늘날
청해성(靑海省)의 달판산(達板山) 산맥의 고칭(古稱)입니다. -와 늘 함께 붙어다니는 섬서성(陝西省)의 태백산으로 보고,
또
흑수(黑水)는 바로 감숙주랑(甘肅走廊)에서 고대의 약수(弱水)로 흘러가던 흑수(黑水)로 봅니다.
따라서 거발환(居發桓) 환웅께서
뒤에 나오는 자정(子正)과 여정(女井)과 관련해서 하강(下降)하신 곳은 사서(史書)에
<서해(西海)>로 흔히 언급되는 오늘날의
청해(靑海)에 강림하신 것으로 봅니다.
이는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이 ‘정(井)의 종류’이고, 정(井)에 관한 보천가(步天歌)의
분석에서 보다시피, ‘수중구조물’
이고, 또 신라(新羅)의 해궁(海宮)으로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청해(靑海)에 거발환 환웅께서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만들기 위해서 하강(下降)하신 기록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정(井)’을 ‘수중구조물’로 보는
해석이 <鑿子井女井於天坪 劃井地於靑丘> - “‘하늘의 땅(=천평(天坪))’에서
자정(子正)과 여정(女井)을 뚫었으며, (배달화백에서 천독(天毒)들의 좌석인) 청구(靑丘)에서 정지(井地)를 구획(區劃)
하여 분리(分離)하셨다.”라는 문장을 보면 “정(井)은 역시 우물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자정(子井)과 여정(女井) 앞에 있는 착(鑿)은 ‘구멍이나 굴(堀)’등을 뚫는 행위를
뜻합니다.
따라서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만약 선박의 일종인 수중구조물(水中構造物)을 뜻한다면, “선박에 무슨 구멍을 뚫어?!
즉각
가라앉을 것이 뻔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거부감이 듭니다.
그러나, 이는 한선(韓船) 특유의 ‘배 만드는 공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한선(韓船)은 근해용(近海用), 항해용(航海用)을 막론하고,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민선(民船)으로써 주로 해운업(海運業) 국제적 무역을 하는데 사용된 배로써 사선(沙船)의
종류입니다.
둘째는 관선(官船)으로써 주로 사신선(使臣船)으로 많이 사용된 배인데, 이를 막선(幕船)이라고 칭하는
종류입니다.
셋째는 역시 관선(官船)으로써, 포경선(捕鯨船), 군선(軍船), 공사(工事)하는 배, 배달화백(倍達和白)의 용도로써
많이 사용된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배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배이든 상관없이 한선(韓船)은 배 만드는 공법(工法) 자체가
워낙 특이한데, 그 중에 하나가 ‘배의
밑바닥’인 저판(底板)을 만드는 방법을 들 수 있습니다.
즉 배의 ‘선장(船長)의 길이’
방향으로 목재(木材)를 이어붙인다음, 이를 선폭(船幅) 방향으로 ‘구멍을 뚫고’ 장쇠(長槊)
라는 목재(木材)를 질러박는 방법을
씁니다.
이런 유형(類型)으로 배를 만드는 것은 오직 한반도(韓半島)에만 전수되는 특이한 공법(工法)입니다.
즉 같은
사선(沙船)아라고 하더라도 중국(中國)에서 만드는 방법은 배의 용골(龍骨)에 늑골(肋骨)을 붙이고,
여기에 외판(外板)이란 판자(板子)를 붙이고, 또 내판(內板)이란 판자(板子)를 덧붙이는 방법을 쓰지, 우리처럼 저판
(底板)을 만드는 공법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뚫었다.’라는 말은 “한선(韓船)을 만드는 공법(工法)으로 자정(子井)과 여정(女井)
이라는 수중 구조물을
뚫었다.”라는 말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鑿子井女井於天坪>을 “‘하늘의 땅(=천평(天坪))’에서 자정(子正)과
여정(女井)이라는 (수중구조물을) 뚫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해석이 아님을 뜻합니다.
오히려 정(井)을 ‘우물’로 볼
때의 기존(旣存)의 해석이 이상한 것입니다.
“무슨 우물물도 여자가 마시는 우물인 여정(女井)과 남자가 마시는 우물인 자정(子井)이
따로있나?!”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늘의 땅’ 즉 천평(天坪)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정도가 아니라,
남녀부동음수(南女不同飮水)
하는 지독한 남녀차별을 하는 것이 ‘이상(理想)적인 땅’인 하늘의 땅 즉 천평(天坪)이라고 이야기하는 해괴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삼성기전(三聖紀全) 상(上)에서 하늘의 땅 즉 천평(天坪)은 ‘배달화백을 하는 호수(湖水)’와 그 주변의 땅에
대한 경칭
(敬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께서는 배달화백(倍達和白)과 신시(神市)를 세계화(世界化)시킨
분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더욱더 ‘청해(靑海)라는 배달화백을 하는 호수’인 천평(天坪)에 내려와서 “이 배달화백과 관련된 선박인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만드셨다 ”로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귀절 인, <劃井地於靑丘>이란 문장을
청구(靑丘)에서 정지(井地)를 구획(區劃)하여 분리(分離)하셨다.”로
해석할때 우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언뜻 이해 자체가
안됩니다.
왜냐하면 위 문장의 뜻은 “ ‘배달화백을 하는 호수 주변의 땅’이 청구(靑丘)인데, 일반적인 청구(靑丘)와
정지(井地)라는
청구(靑丘)가 그 성격이 다르므로, 구분해내는 일을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께서 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
니다.
즉 배달화백을 하는 호수(湖水)의 주변은 일반적인 청구(靑丘)와 정지(井地)라는 이름의 청구(靑丘)가 구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배달화백을 할 때에 ‘말발을 움직이는 천독(天毒)’들이 계시는 청구(靑丘)가 호수 가 이외에도 또
있나?
정(井)이 수중구조물이라고 하면, 이 정(井)이란 수중 구조물이 해궁(海宮)이라고 부를 정도로 컸다면, 그 곳에 흙이
있어서 천독(天毒)들께서 이 정(井)이란 수중구조물에 타고 ‘말발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정지(井地)라고 칭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달화백의 구체적인 과정’을 재구(再構)해보면, 청구(靑丘) - 즉 호수(湖水)가에서만 ‘말발’을 이동시키는
것이
힘들어지는 단계가 있습니다.
배달화백이 여러 단계가 있는데, 그중 <주작단계(朱雀段階)>라는 것이
있습니다.
청룡단계(靑龍段階)에서는 다루칸(darukhan)들이 태(兌)를 타고, 정견(政見)을 발표하시기 때문에, 호수(湖水)가에
있는 천독(天毒)들께서 청구(靑丘) 뒤에 있는 사대(射臺)에서 명적(鳴鏑)활을 쏘아서 ‘말발’의 이동을 지시하는 것으로써
주권행사를 할수
있습니다.
오늘날 각궁(角弓)이- 국궁(國弓)을 뜻합니다. - 유효 사정거리가 145미터이기 때문에, 화살이 더 길게 나가는
‘삼각형
날개 화살촉’이 곁들여진 명적(明笛)화살을 쏘면 적어도 200미터는 유효사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루칸(darukhan)들께서 타시는 태(兌)란 수중연단(水中演壇)은 호수에서 10내지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정연
(整沿)하고 있기 때문에, ‘배달화백의 청구(靑丘)의 폭(幅)’은 140에서 200미터까지 호수(湖水)가에 고리 형태 즉 환형
(環形)으로 둘러쳐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연(整沿)이라는 말은 물가에 배(船)가 일정한 간격으로 떠서 정렬(整列)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말발’을 받는 다루칸(darukhan)의 태(兌)들이 물가에서 10미터나 20미터 호수(湖水) 안쪽에
정연(整沿)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다루칸(darukhan)이 비록 검토분야인 정목(政目)이 달라서, 천독(天毒)이 계신 곳에서 2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곳까지 옮겨가서 청구(靑丘) 뒷편에 있는 사대(射臺)에 올라 화살을 쏠 수 있기
특성을
부여합니다.
즉 배달화백의 청룡단계(靑龍段階)는 ‘명적화살의 과녘’인 태(兌)의 집시관(集矢棺)이 청구(靑丘)라는 땅에서
명적(鳴鏑) 화살의 유효사정거리에 항상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달화백의 주작단계(朱雀段階)에 들어가면 문제가 전혀
달라집니다.
그것은 다루칸(darukhan)들이 ‘으뜸 다루칸(darukhan)’을 중심으로 여기 저기 ‘무리’를 지어서
그루핑(grouping)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때의 다루칸(darukhan)들은 자신이 소속된 그룹(group)의
‘으뜸 다루칸(darukhan)’이외에 다른 그룹의
다루칸(darukhan)들의 정견(政見)에 대해서 혐오도(嫌惡度)를 지금 거론하고 있는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통해서
나타낼 권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역시 천독(天毒)들의 ‘말발’을 받아서 때로는 이 그룹,
때로는 저 그룹으로 이합집산 하기 위해서
자신의 태(兌)를 몰고 가게 됩니다.
태(兌)들이 그루핑(grouping)되어 있고, 또
호수(湖水)가에 정연(整沿)해 있지 않고, 이동하기 때문에, 배달화백의
주작단계(朱雀段階)에서는 이 태(兌)들이 위치하는 곳이 호수 주변이
아님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호수 주변에는 청룡단계(靑龍段階)를 진행에 응(應)하고 있는 태(兌)들이 정연(整沿)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배달화백의 주작단계(朱雀段階)에서는 천독(天毒)들께서 자신의 주권행사(主權行使)를 하기 위해
‘말발’을 움직
이는 것을 청구(靑丘) 뒤에 있는 사대(射臺)에서 명적(鳴鏑) 활을 쏘아서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청구(靑邱)자체가 선박(船舶)들을 마치 기차(汽車)처럼 묶어서 다루칸(darukhan)들이 ‘무리’를 틀고 있는
군(群)들 사이로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가운데서, 벽옥(璧玉)과 곡옥(曲玉)이라는 2가지의 말발을 움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천독(天毒)들이 앉아계시는 “청구(靑丘) 자체가 2가지 종류가 있을 수 밖에 없음을 뜻합니다.”
3)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의 정지(井地)와 봉황대문(鳳凰大門)을 통과했을시의 ‘세례(洗禮)축하(祝賀)의식’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실을 신라
말기의 고운(孤雲) 선생께서 이미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에서 언급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원문(原文)]
崔致遠鸞郞碑序
曰 國有玄妙之道 曰 風流設 敎之源備 詳仙史
[좌계의 해석(解釋)]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에서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다.
풍류(風流)라고 말해지는 시설물(施設物)은 ‘대비(對備)함의 원천(源泉)’에 대한 가르침인데, 선사(仙史)에 상세(詳細)
하다
좌계의 해석은 일반 사람들의 절구(絶句)를 달리한 것인데, 요컨데 풍류설(風流設)이라는 것이 ‘돛을
단 선박(船舶)을
타고 흐르는(=류(流)) 시설물(施設物)’ 즉 선박(船舶)의 종류로 보는 것입니다.
바로 최치원(崔致遠) 선생께서
풍류설(風流設)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정지(井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선박의 종류는 바로 민선(民船)인
사선(沙船)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선(沙船)들을 이물(船首)과 고물(船尾)을 이어서 마치 거대한 뱀처럼 또는 용(龍)처럼 묶고서는 이를
끌고서
그룹핑(grouping)되어 있는 태(兌)와 자정(子井), 여정(女井)을 쫓아다니면서 주권행사를 하기 위해서 명적(鳴鏑)화살을
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때 고물과 이물을 이어서 마치 뱀처럼 길게 이어지는 그 낱낱의 배인 사선(沙船)이 어떤
배인가?
향고도 님께서 참으로 희귀(稀貴)한 자료인 ‘조선(朝鮮)의 사선(沙船)’을
올려주셨습니다.
(*) 조선(朝鮮)의 사선(沙船)을 볼수 있는 곳
http://cfs8.blog.daum.net/original/6/blog/2009/01/10/11/51/49680d4480c1a&filename=a-2.jpg
이런
사선(沙船)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을 다음 4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①평저(平底) : ‘배 밑바닥이 평평한 것’인데, 이는 배를
육지(陸地)에 끌어올려서 수리(修理)가 용이하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②다장(多檣) : 돛의 갯수가 많음을 뜻하는데, 최소한 3대박이
이상이며, 이는 항해용 선박일 경우 풍력(風力)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③방두방소(方頭方艄) : 이물(船首)과 고물(船尾)이 4각으로 되어
있는 형태를 뜻합니다.
이 방두방소(方頭方艄)의 특징은 배의 이물(船首)과 고물(船尾)을 서로 이어도 선체(船體)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
이른바 축로상계(舳艫相繼)할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④유출소(有出艄) : 이는 “배의 고물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간 것이(=출소(出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범선(帆船)이 역풍(逆風)을 만나게 되면, 돛을 사각(斜角)으로 달게 되는데, 파도 역시 ‘바람’의 힘에 의해서
상하(上下)로 진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키(=타(舵))를 파도가 일렁거리지 않는 부분까지 내리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긴 타축(舵軸)을
수직으로 올리고 내리는 방식 - 이른바 현수식(懸垂式)을 하기 위해서 발생하는 특징입니다.
위 특징 가운데서 ③과 ④를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향고도 님의 ‘조선국선’의 그림을 보면 알수 있듯이 사선(沙船)은 이물(船首)의 높이가 고물의 높이보다 낮습니다.
그런데, 배(船)는 타축(舵軸)을 상하면, 안되기 때문에, 축로상계(舳艫相繼)를 할 때에 배의 허리(=요(腰))부분의
- 이는 이물(船首)쪽과 고물(船尾)쪽의 치솟아 올라가지 않는 부분을 뜻합니다.
-좌우현(左右舷)에 두 배를 잇는 다리(=교량(橋梁))을 설치합니다.
이
교량의 모습은 대략 조감도로 보면 <ㅏㅓ>형태, 다시 말하면, 앞 뒤의 배가 충돌하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동목(璪木)’을 설치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완성된 것을 흔히 축로상계(舳艫相繼)라고
표현합니다.
선체(船體)의 모양 자체가 방두방소(方頭方艄)이기 때문에, 좌우현(左右舷)에 앞 뒤의 배를 연결하는 2개의 교량을
연결해도 ‘평행사변형’으로 뱀처럼 각도를 틀수있는 기본적인 조건(條件)이 형성되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삼한(三韓) 사람들이 사선(沙船)을 타고, 상상할 수 없는 지역까지 항해(航海)했음을 나타내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
이는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韓(馬韓)-07/04’을 뜻함 - 마한(馬韓) 사람들은 배(船)에
마치 ‘무덤’과 같은 흙
돔(dome)을 짓고 그 속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원문(原文)]
無墦拜之禮. (*)居處作草屋土室, 形如瘣,
其戶在上, 擧家共在中(*), 無長幼男女之別.
[해석(解釋)]
(배(船)속에 있는) ‘무덤’에 절하는 예법이 없었는데, 이들은
배(船)속에 마치 ‘무덤’처럼 생긴 토실(土室)주변에
(채소(菜蔬)인) 풀을 심고 그 안에 사는데, 집이 배 위에 있었다.
모든 가족이 그
안에 살며, (육상(陸上)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같은) 장유(長幼)와 남녀(男女)의 구별이 없었다.
즉 마한(馬韓)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한 항해(航海)를 하였기 때문에, 항해(航海)기간 동안 ‘채소’를 ‘흙 돔(dome)’위에
키우면서 그 긴 여행(旅行)을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선(沙船) 위에는 원래 ‘흙이 있는 땅’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선(沙船)들이 축로상계(舳艫相繼)된
상태에서 태(兌)와 자정(子井), 여정(女井)이 어우러진 곳을 마치 용(龍)처럼
누비고 다니면서 명적(鳴鏑)활을 쏘니깐, 이 사선(沙船)들의 축로상계(舳艫相繼)되어 있는 땅을 정지(井地)라고 표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문제는 배달화백을 진행하게 되면 항상적으로
‘작은 정치공동체의 통합’과 ‘큰 정치공동체의 통합’을 병해하는 이른바
배달(倍達) 방식으로 진행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청룡단계(靑龍段階)에서는 ‘7가지의 사회적 위기’에 들어가는 영성문(靈星門)의 역할 때문에, 결과적으로 ‘큰
정치공동체의 통합’이 먼저 되고, 그 도움을 받아서 ‘작은 정치공동체의 통합’이 나중에 완성되는 식으로 진행되게 됩
니다.
이런 배달화백의 진행방식은 현실적으로 ‘흙
돔(dome)’을 지어서 채소(菜蔬)를 재배하면서 여행하는 장거리의
‘큰 정치 공동체의 통합’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작은
정치 공동체의 통합’이 이루어짐을 뜻합니다.
배달화백의 청룡단계(靑龍段階)를 마치게 되면, 호수 가의 청구(靑丘)의 말발을 받은
태(兌)들이 이윽고 봉황대문
(鳳凰大門)을 통과하게 됩니다.
‘헬륭 개스’로써 만들어진 봉황(鳳凰) 아래에 거대한 여정(女井)이 있는
모습으로 여러 문헌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다루칸(darukhan)들은 봉황대문(鳳凰大門)을 지나야 만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이
함께 있는 이른바
주작단계(朱雀段階)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말발’을 받은 다루칸(darukhan)이
봉황대문을 통과하게 되면, 천독(天毒)들도 ‘말발’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사선(沙船)이 축로상계(舳艫相繼)된 것을 타고서 역시 봉황대문을 들어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이미 먼저 통합된 천독(天毒)들께서 ‘봉황대문(鳳凰大門)을 통과한 천독(天毒)’들을
축하(祝賀)해주기
위해 자신의 사선(沙船) ‘위’에 있는 흙을 옮겨주고, 또 호수에 있는 자정(子井)과 여정(女井)들 역시 이를 축하해주기
위해서 월칭(鉞秤)을 통해, 호수 밑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물’인 한천(寒泉)을 떠서 뿌려줌으로써 축하(祝賀)하는
의식(儀式)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축하(祝賀)해주는 세례(洗禮)’인 셈인 것이지요.
실제 주역(周易) 수풍정(水風井) 괘(掛)의
구오(九五)의 효사(爻辭)는 이런 정경(情景)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문(原文)]
구오(九五)
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
상전(象傳) 한천지식(寒泉之食) 중정야(中正也)
[해석(解釋)]
구오(九五) : 수중구조물인
정(井)이 ‘거세게 물을 뿜기 위해’(=렬(冽)) 맑고 찬 (호수(湖水) 밑)의 샘을 먹는다.
상전(象傳) : 맑고 찬 생을 먹는 것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호수(湖水) 속의 ‘맑고 찬 샘 물’을 마시는 것은 절대 사람이 아니라, 그 호수 위에
떠있는 정(井)이라고 칭해지는
‘수중 구조물’이었던 것입니다.
한자의 렬(冽)은 마치 고드름 같이 차가운 물이 거세게 쏟아지는 것을
상형(象形)한 것입니다.
병아리가 물을 먹을때 보면 한 모금 마신 후에 고개를 하늘로 드는데, 그 모습이 꼭 ‘저울대’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
오는 모습을 합니다.
정(井)에 관한 보천가(步天歌)에 서술된 월칭(鉞秤)에 대한 묘사도 꼭 이 병아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따라서 주역의 위 효사(爻辭)는 ‘호수 속의 차가운 샘물’을 떠서 스프레이(spray)해주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정(井)이란 ‘수중구조물’이 고대의 준설(浚渫)하는 선박 역할을 한 것도 눈치챌수 있는데,
이런 준설선(浚渫船)이기도 한 정(井)이 배달화백에 동원되었을 시는 봉황대문을 들어선 천독(天毒)들을 축하하기
위해서 ‘한천(寒泉)을 월칭(鉞秤)으로 퍼서 다른 천독(天毒)들이 준 흙 위에 뿌려주어서 더욱더 축하하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 의미’를 말하는 상전(象傳)이 한천지식(寒泉之食) 하는 까닭을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즉
자신의 말발을 바람직한 세상의 통합을 위해서 주권행사(主權行使)을 하고, 이것이 다른 천독(天毒)들과 소통이
많이 되어서 결과적으로 자신이 ‘말발’을 준 다루칸(darukhan)이 주작단계(朱雀段階)에 들어갔다면,
이 천독(天毒)의 뜻은 정(井)이 한천(寒天)을 길어다 뿌려줄 만한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즉 정(井)은 준설선(浚渫船)인 동시에 ‘세례(洗禮) 분수선(奔水船)’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준설(浚渫)작용과 세례분수(洗禮奔水)를 하는 기구가 바로 월칭(鉞秤)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에 일반적인 주역의 해석 ‘우물이
맑은 한천(寒泉)이고 이를 마신다.’로 해석하면, “왜 맑은 한천(寒泉)을 마시는
사람이 중정(中正)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고대로 부터 내려오는 정(井)에 대한 이미지(Image)가 죄다 어떤 수중구조물(水中構造物)과 관련됨을 보여주고,
또 이 정(井)이라는 구조물을 배달화백의 도구(道具)였음이 더욱 명쾌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 청해(靑海)에서 여정(女井)과
자정(子井)을 뚫으신 거발환 환웅께서는 한단고기(桓檀古記) 신시역대기
(神市歷代記)에 ‘배달화백과 신시(神市)를 세계화’시킨 분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원문(原文)]
배달환웅정유천하지호야(倍達桓雄定有天下之號也)
기소도왈신시(其所都曰神市)
[해석(解釋)]
배달(倍達)(화백)은 환웅(桓雄)께서 천하(天下)를 찾게 하는(=유(有)) ‘사회적
명상(冥想)(=정(定))’으로써 칭한 칭호이다.
그 도읍(都邑)을 말하여 신시(神市)라 했다.
- 이러한 이야기는
삼성기전(三聖紀全) 상(上)의 ‘착자정여정어천평(鑿子井女井於天坪) 획정지어청구(劃井地於靑邱)’
라는 문구를 더욱더 다르게
보아야합니다.
배달화백(倍達和白)으로써 천독(天毒)들이 ‘스스로의 세상을 찾게 한’ 거발환(居發桓) 환웅께서 배달화백의 도구인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오늘날 청해성(靑海省)의 청해(靑海)에서 제작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배달화백(倍達和白)을 이해하려고 할 때에, 호수(湖水)나 포구(浦口)에서 일어난 이 회의(會議)에
동원된 선박(船舶)에 대해서 지나지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명(文明)을 크게 보면 정신과 물질을 교류시키는 형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신과 물질을
교류시키는 형식은 3가지 차원의 문화(文化)로써 이루어집니다.
①도구(道具)문화와 ②규범(規範)문화, ③그리고 정신문화인
것이지요.
도구에 대한 이해없이 이를 바탕으로 어떤 규범아래 인간이 행동한 것은 이해하기 곤란한 것입니다.
이미 예를 든 바와
같이 정(井)이 ‘수중-구조물’이란 도구(道具)로 알고 있는 사람과 ‘우물’이라는 도구(道具)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 규범(規範)의 단초(端礎)를 보여주는 여러 문헌적 흔적이 있어도 전혀 다르게 해석할수 밖에 없고,
또 그것에서 감응(感應)되는 정신도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배달화백에 동원되었던 도구(道具)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즉 “삼한(三韓) 사람들이 사선(沙船)에다 ‘흙 돔(dome)집’을 짓고서 바다에서 섭취하기 힘든 채소를 지어먹으면서
항해생활을 전담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고대를 보는 눈은 전혀 다르고,
또 미래(未來)를 보는 눈(眼)이
전혀 다름을 뜻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배달화백에 동원되었던 여러 선박(船舶)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 우리 배의 세 종류 - 사선(沙船), 막선(幕船), 난함선(欄檻船)
우리 민족이 탄 선박은 크게 보아서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3종류입니다.
하나는 이미 말씀드린 민선(民船)이었던 사선(沙船)입니다.
그 다음에 막선(幕船)이
있습니다.
이 막선(幕船)은 흔히 사신선(使臣船)으로 많이 사용된 배입니다.
향고도 님이 올려주신 그림 가운데, ‘조선
통신사선’이 바로 막선(幕船) 종류입니다.
(*) 막선(幕船) 종류인 ‘조선 통신사선’을 볼 수 있는 곳
http://cfs12.blog.daum.net/original/3/blog/2009/01/10/12/09/4968114ed07fe&filename=001l.jpg
1)
막선(幕船)이란?
이 막선(幕船)은 키(=타(舵))를 다는 방식이 사선(沙船)과 그 유형(類型)이
다릅니다.
막선(幕船)은 배의 모양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때에 선미(船尾)인 (◤)에 불(乀)자 방향으로 난
타혈(舵穴)을
뚫고, 여기에 타축(舵軸)을 거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배의 종류를 뜻합니다.
이처럼 배에 타혈(舵穴)이 뚫혀있는 것은 2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배의 저판(底板)쪽으로 향저타혈(向底舵穴)방식
입니다. 또 하나는 향미타혈(向尾舵穴)을 쓰는 방식입니다.
두 방식
모두가 타축(舵軸)에 타병(舵柄)이 꼽히는 타병공(舵柄孔)을 뚫은 형태의 배입니다.
따라서 선체 내부의 타혈(舵穴)이 올라오는 부분에 상타상(上舵床)이라는 것을 별도로 만들고, 타축을 깊게 내리고나
올리고 나서 그 타판(舵板)이 들어간 수심(水深)을 결정한 후에, 타병공(舵柄孔)에 타병을 꽂아서 방향을 통제하는
배입니다.
아무튼 향저타혈(向底舵穴)을 쓰는 배는 ‘어선(漁船)’,
‘유람선(遊覽船)’ 등의 작은 배일 경우에 해당합니다.
‘키’의 작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형(小形)에 어울리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해용 선박이 되려면 향미타혈(向尾舵穴)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항해용 선박이라함은 급변하는 바다의 환경
속에 포구(浦口)로 피하지 않고, 뚫고 나갈수 있는 자체의 힘을 지닌 선박을
뜻합니다.
그런데, 향저타혈(向底舵穴)은 강풍 앞에서
아무런 방향타 역할을 못합니다.
오직 향저타혈(向底舵穴) 방식이 유효한데, 이 방식은 타축(舵軸)이 사선(沙船)의 현수식(懸垂式)처럼
곤(丨)자로 내려
가지 않고, 불(乀)로 내려가기 때문에, 급회전(急回轉)할 때에 전복의 위험이 없이 돌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타축(舵軸)이 선체(船體)내부의 공간을 길면 길수록 잡아먹기 때문에 이점이 약점인 것이지요.
아무튼 막선(幕船) 종류의 배는
근해용(近海用) 타축과 항해용 타축이 다릅니다.
근해용 타축은 타축(舵軸)사이에 타병(舵柄)을 꽂을 수 있는 타병공(舵柄孔)이 있게
되는데,
이는 구조적으로 허약한 특징이 있습니다.
타축(舵軸)은 단단하기 짝이 없는 나무들 - 조록나무(산유자(山柚子))라든가
흑단(黑檀)나무 자단(紫檀)나무 따위를
쓰는 것이 관례인데, 이는 바다의 횡파(橫波)가 워낙 쎄서 웬만한 재질의 타축(舵軸)을 뿌러 트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횡파 앞에 ‘구멍’을 뚫어놓은 타축(舵軸)을 한없이 내린다는 것을 뿌러지기를 자초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막선(幕船)에서는 ‘항해용 선박’으로 움직일 경우, 이런 타병공(舵柄孔)이 있는 타축(舵軸)을 타혈(舵穴)에서
끌어당긴 다음, 항해용 타축(舵軸)으로 갈아 끼웁니다.
마치 영어의 에취(H)자 모양으로 된 당간지주(幢竿支柱) 사이에 원통관(圓筒管)을
끼운 장치 - 즉 원통관(圓筒管)으로된
씨소(seesaw)같은 장치에, 이곳에 타축(舵軸)들을 도킹(docking)시키면서 내려 보낼 수 있는
장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원통관(圓筒管)은 ‘피리’처럼 구멍이 뚫어져 있습니다.
죽 항해용 타축은 이어 붙이기를 하는
셈인데, 모든 타축(舵軸)의 끝은 놋쇠로 된 ‘괴통’이 - 이는 다른 도구를 끼울 수
있는 홈이 난 것을 뜻합니다. - 있게 되고, 원통관(圓筒管)에 들어온 이어붙일 2개의 타축을 ‘피리 구멍’을 통해서 ‘놋쇠로
된 괴통’과 끼워들어갈 타축(舵軸) 고정 핀(pin)을 박아서
결합시킬 수 있는 장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정(井)이란 수정구조물에 장치되었던 ‘월칭(鉞秤)’이라는 장치와
유사함을 알수가 있습니다.
즉 막선(幕船)에 쓰는 항해용 타축 결합장치는 ‘타축 결합 월칭(鉞秤)’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막선(幕船)이란 용어는 고리도경(高麗圖經) 주즙(舟楫)에서 등장하는 말인데, 이는 고리(高麗) 사람들이
‘막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서긍(徐兢)이 한자(漢字)로 막(幕)이란 글자를 써서 옮긴 종류의 배를 뜻합니다.
원문(原文)은 다음과
갈습니다.
[원문(原文)]
幕船之設 三島皆有之 以待中下節使人也 上以靑布爲屋下
以長竿代柱四阿各以采
[해석(解釋)]
막선(幕船)은 삼도(三島)세 모두 구비되어 있다. 여기에는 중급(中級)및 하급(下級)의
절부(節符)를 지닌 관리들이
태운다.. 위에는 푸른 베로 덮어 그 아래에 방(房)을 만든다. 긴 ‘대나무’ 장대로써 기둥을 대신하였고,
네
귀퉁이는 채색(采色)된 끈을 쳤다.
이 내용은 ‘천막(天幕)’을 친 모양을 설명하는 것인데, 막선(幕船)이라고 해서 반드시
천막(天幕)을 치는 것은 아닙니다.
선미(船尾)쪽에 집을 짓고, 그 앞에 담장까지 치고 필요하면, 이 담장 위에 천막을 칠수 있게 하는
장치를 할수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 그대로 인 배가 바로 향고도 님이 올린 위에 소개한 ‘조선통신사선’의 그림인
것입니다.
사선(沙船)이라고 배의 명칭이 생긴 것은 이 배를 주로 사민(沙民)들 - 즉 재중(在中) 삼한인(三韓人)들이 ‘양자강
하류’의
모래에서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배 이름 자체가 사선(沙船)이 된 것입니다.
반면 막선(幕船)은 우리 말에서
‘자제(自制)함이 없이’라는 뜻의 ‘마구’의 줄임말인 ‘막’을 붙인 말을 한자 한자의 막(幕)을
음차한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이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전세계에서 오직 한반도에만 전(傳)해져 내려오는 난함선(欄檻船)이란 선박이 있는데, 이 배는 유난히도,
조선(造船)함에 있어서 ‘까다로운’ 즉 자제(自制)하여야할 엄격한 규칙이 있는 배인데, 이와 관선(官船)으로써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제(自制)함이 없는’ 즉 ‘마구’의 개념은 ‘함부로’의 개념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선박(船舶)을
만들 때에 필요한 기능을 자유롭게 가져다 붙일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도 한선(韓船)을 만드는 공법(工法)을 철저히 지키면서
말입니다.
이런 한선(韓船)의 공법(工法)은 매우 엄격해서 막선(幕船)이나 사선(沙船)이라고 할지라도 한선(韓船)의 공법(工法)으로
만들면
반드시 저판(底板)을 장쇠(長槊)를 질러 밖는 식으로 견고무비(堅固無比)하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해용 선박으로
만들 때에는 격벽(隔璧)이라든가 다장(多檣)이라든가- 이는 돛을 최소한 3대박이 이상으로
다는 것을 뜻합니다. - 하는 새로운 기능을
첨가시켜주어야합니다.
이 격벽(隔璧)은 배가 암초(暗礁)에 충돌할 경우, 일부분만 침수하도록 ‘배 밑창’에 방(房)을 많이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우리 뱃사람들을 ‘뱃장’이라고 합니다.)
막선(幕船)은 이럴 경우, 그냥 격벽(隔璧)을 ‘마구’ 붙이면 되는
배인 것입니다.
또 다장(多檣)이 필요하면 돛을 많이 달면 되고, 또 항해용(航海用) 선박으로 변신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바다의 횡파(橫波)에 타축이 뿌러지지 않게 하려면, ‘타축 결합 월칭(鉞秤)’을 향미타혈 옆에 부착하고,
타축을 이어붙여서 내리면 그뿐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처럼 ‘융통성이 풍부한 배’를 막선(幕船)이라고 칭한다는 것입니다.
즉 “벤치마킹(benchmarking)을
마구 해도 되는 선박”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함선(欄檻船)의 종류의 배는 비록 항해용 선박으로 변조한다고 할지라도
‘자체 고유한 어떤 구조’가 있어서
격벽(隔璧) 자체를 ‘마구’ 적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다장(多檣)을 하려고 해도,
‘마구’ 돛을 가져다 붙일 수가 없는 배가 바로 난함선(欄檻船)종류의 배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배는 ‘배
구조에 자체의 룰(rule)’을 반드시 따러야하는 배인 것입니다.
즉 함부로 다른 선박으로부터 벤치마킹할수 없는 고유한 룰(rule)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배(船)의 기본적인 도구(道具)인 ①‘노(櫓)’와 ②닻(=범(帆), ③ 방향타(方向舵)가
난함선(欄檻船)의
경우 워낙 일반적인 선박과 그 유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난함선(欄檻船)은 일반적인 배가 ‘낮은 노(櫓)’를
씀에 비해서 ‘높은 노(櫓)’를 써서 ‘날개젓기’를 하여 접영(蝶泳)하는
식으로 움직이는데, 이를 위해서는 배(船)의 각층(各層) 내부에는 수평봉(水平棒)을 연결하고, 상하의 여러 층(層)에는
수직봉을 내리는 이른바 루로(樓櫓)-씨스템(system)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접영하는 기능은 결국 쇄빙(碎氷)을 하면서 북극해로 나가거나, 혹은 선체(船體)를 들어서 적선(敵船)을 위에서
내리치는 공격을 한다든가 하는 행위를 가능케 하는데, 이럴 때의 충격을 소화하기 위해 배의 선체(船體) 자체가 두 겹,
즉 이중저(二重底)로 되어 있어서 워터-범핑(water-bumping)장치를 내장(內藏)하고 있는 배가 바로 난함선 종류의
배입니다.
또
난함선(欄檻船)의 돛은 역풍(逆風)이 불때, 선폭(船幅)보다 더 큰 횡범(橫帆) 만을 - 이를 동양에서는 포범(布帆)
이라고 합니다. - 사용하면서 이를 2개의 돛대나 3개의 돛대로써 ‘지렛대’로 옮기거나 혹은 유압(油壓)을 통해 옮기는
독특한 비범(緋帆)씨스템을
적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방향타(方向舵)가 ‘키’인 타축(舵軸)만이 아니라, 측판(側板)까지도 이물에 2개, 고물에 2개
도합(都合)
5개를 운영하면서, 이런 방향타의 타축(舵軸)을 올리고 내리는 방식이 깃대 올리고 내리듯 하는 승강식(昇降式)
오늘날 말로
센터보드(centerboard)으로 운영을 하는 특이한 방법을 씁니다.
따라서 이런 가장 기본적인 배(船)의 보조기구 자체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이 난함선은 다른 배의 기능을 옮겨다가
적용(適用)할 수 없는 구조적 특징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난함선(欄檻船)의
난(欄)은 선박의 주변에 상하(上下)로 올라가는 ‘늑골(肋骨)’과 ‘기둥’을 수평으로 묶어주는 긴
‘대들보’ 형의 목재를 난(欄)이라고
합니다.
함(檻)은 선상(船上) 갑판에 마치 ‘우리(=함(檻))’와 같은 것이 선박의 좌우현(左右舷) 쪽에 내려와 있는 것을
뜻합니다.
놀랍게도 이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선박은 한반도에서만 그 기술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고리(高麗)때까지는 난(欄)과
함(檻)을 동시에 같은 형태로 내려오다가,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우리(=함(檻))’은 사리지고, 오직 난(欄)을 친
선박의 형태가
발견됩니다.
그런데, 저 배달화백의 도구(道具)로 쓰인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은 난함선(欄檻船)의 한 종류인 송방(松舫)을
적용한
배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또 태(兌)라는 것도 전형적인 난함선(欄檻船) 종류입니다.
따라서 ‘배달화백의 도구’로 쓰인
대부분의 배는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배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조선조(朝鮮朝)에도 이 난함선(欄檻船)에서 ‘우리’인 함(檻)은
사라지지만, 난(欄)을 선박에 두르는 형식의
배는 계속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것이 바로 판옥선(板屋船)과 거북선인 것입니다.
세계
역사상의 유일한 무적함대(無敵艦隊) - 매영(梅營)의 군선(軍船)이 바로 난함선(欄檻船)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난함선(欄檻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조선조(朝鮮朝) 난함선(欄檻船)인 판옥선과 거북선을 심층
(深層)깊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난함선(欄檻船)은 신기하게도 ‘한반도(韓半島)를 성지(聖地)로 아는 사람들에게만’ 전해졌고, 현재
난함선
(欄檻船)의 구체적인 정보는 오직 매영(梅營)의 도본(圖本)들과 기록 - 즉 각선도본(各船圖本)과 이충무공전서
(李忠武公全書)
권수도설(卷首圖說) 이외에는 전세계에 없기 때문입니다.
“배달화백의 도구(道具)를 이해하지 않고, 배달화백이 어찌 진행되었는지?”를
파악하기는 매우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또 대부분의 배달화백의 도구였던 선박(船舶)이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배였기 때문에,
우리는 최후의 난함선
이고 유일하게 역사적 흔적이 있는 조선조(朝鮮朝) 난함선(欄檻船)인 판옥선(板屋船)과 거북선 부터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판옥선과 거북선은 저 배달화백의 도구였던 자정(子井)과 여정(女井) 그리고 태(兌)등등의 배달화백의
도구로 쓰였던 선박(船舶)들을 되찾게 하고, 배달화백을 운영하였던 문명의 현실성을 탐사할 수 있게 하는
타임-머신(time-machine)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마. 우리 선박(船舶)에 대한 기술(記述) 차례
문제는 이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선박이 워낙
‘일반적인 선박’과 그 유형(類型)이 다르기 때문에, 차근 차근 하나씩
‘다른 선박과 어찌 다른가?“하는 것을 단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
자체가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의외(意外)로 ‘선박에 대한 구체적인 도본(圖本)과 정보(情報)’가 일본(日本)이나
중국(中國)보다
많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런 도본(圖本)을 중심으로 ‘우리의 선박’을 재구성(再構成)하는 식의 이 긴
씨리즈(series)글을 쓸 수가 있게
되었는데, 편의상 몇개의 과정을 나누어서 쓰는 것이 좋다고 보여집니다.
1) 판옥선과
거북선에 대해서
맨 먼저 언급해야할 것은 ‘조선조(朝鮮朝) 난함선(欄檻船)’이 그 구조가 ‘우리’를 뜻하는 함(檻)은
고리(高麗)시절
송방(松房)이라는 매우 특이한 선박(船舶)을 마지막으로 사라지게 되고, 오직 난(欄)을 치는 선박의 특징을 지니게 됩
니다.
이 ‘선박’이 ‘우리’를 두르고 있는 것은 그 이유가 배(船)가 육지에 걸어서 나갈 수 있는 ‘게다리(=해족(蟹足))’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게다리’를 응용하는 것을 빼고는 모든 특징이 조선조(朝鮮朝) 난함선(欄檻船)인 판옥선과
거북선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이를 아주 상세하게 거론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금관선(金官船)에 대해서
판옥선과
거북선을 통해서 난함선(欄檻船)의 특징이 설명이 되고 나면, 이 난함선(欄檻船) 가운데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금관선(金官船)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는 순서로 이 씨리즈(series)의 글을 쓰려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종가(宗家)-거북선의 주기(注記)인
‘감장구선가(敢粧龜船歌)’와 일연(一然) 스님께서 ‘금관의 배’가 될수 있는
조건(條件)을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조(條)로 언급해 주었기 때문에, 이 금관선(金官船)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쓸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가 사실은 2척인데 하나로써 결합하고 있는
금관선(金官船)은 ‘종가(宗家) 거북선’ 뿐만이 아니라, 관경사국(管境四國)
시절에 육부군(六部軍)-전함(戰艦)이었던 과포선(戈砲船) 종류, 또 고주리(高朱利)의 포경선(捕鯨船) 함대(艦隊)로써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3) 송방(松房)과 배달화백의 도구(道具)에
대해
금관선(金官船)까지 설명을 하면, 한반도 고유의 선박의 특징이 거의다 언급이 되는 셈인데, 여기에 자정(子井)과
여정(女井)또 태(兌) 등의 기초가 되는 ‘고리도경(高麗圖經)의 주즙편(舟楫編)’에 묘사된 송방(松房)을 자세히 검토하고,
이로 부터 배달화백의 도구였던
선박들에 대해서 일람(一覽)할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크게 보아서 이 긴 선박 씨리즈(series)는 3단계로 나누어서 난함선
특유의 선박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되겠습
니다.
도본(圖本)과 명백한 기록(記錄)을 바탕으로 우리의 선박을 재구(再構)하는 것이긴
하지만,
실제 기계적인 작동은 ‘상상력’으로 보완(補完)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선박에 대해서 이제 긴 여행(旅行)을
떠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