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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식일이 지나니,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을 때에, 무덤으로 갔다.
3.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내 주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4. 그런데 눈을 들어서 보니,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은 엄청나게 컸다.
5. 그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웬 젊은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6.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습니다만,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입니다.
7.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십시오. 그는 그들보다 앞서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십시오."
8. 그들은 뛰쳐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막16:1-8)
1. After the Sabbath was over, Mary Magdalene, Mary the mother of James, and Salome bought spices to go and anoint the body of Jesus. 2. Very early on Sunday morning, at sunrise, they went to the tomb. 3-4. On the way they said to one another, “Who will roll away the stone for us from the entrance to the tomb?” (It was a very large stone.) Then they looked up and saw that the stone had already been rolled back. 5. So they entered the tomb, where they saw a young man sitting at the right, wearing a white robe—and they were alarmed.
6. “Don't be alarmed,” he said. “I know you are looking for Jesus of Nazareth, who was crucified. He is not here—he has been raised! Look, here is the place where he was placed. 7. Now go and give this message to his disciples, including Peter: ‘He is going to Galilee ahead of you; there you will see him, just as he told you.’”
8. So they went out and ran from the tomb, distressed and terrified. They said nothing to anyone, because they were afraid.
1. 안식일이 지나니,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1. After the Sabbath was over, Mary Magdalene, Mary the mother of James, and Salome bought spices to go and anoint the body of Jesus.
성경의 내용들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성경 말씀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지리산을 교회 청년들과 등반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청년들은 이런 등반이 처음이었습니다.
전라도에서 출발해서 경상도로 내려오는 2박 3일의 이 등반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앉아서 첫사랑 이야기로 킬킬대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그쳐도 학생들은 제 통솔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늦장을 부리다가 시간에 쫓겨서 야간 행군을 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인가 위험에 처한 우리를 신고한 모양입니다.
저기 반대편에서 구조대가 손전등을 켜고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큰 산에서 우리는 졸지에 조난을 당할 뻔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산은 너무 크고 우리는 너무 작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야는 불과 십여m 앞이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리산도 우리나라의 한 귀퉁이에 해당됩니다.
세계 지도에서 우리나라 찾아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지구도 태양계 안에 8개인가 하는 행성 중 하나이고 태양의 1/100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우주 안에는 이 태양계와 같은 행성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답니다.
나를 그 우주와 비교하자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당연히 대천 바다에 빠진 바늘 하나보다 더 작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우주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
그 때도 요즈음처럼 사람들이 제 주제 파악을 못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원대한 꿈을 꾼 것입니다.
거창한 비젼을 가진 것입니다.
하늘에 닿는 건축물을 짓자는 것입니다.
4.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5. 주께서는,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창11:4,5)
사람들 보기에는 엄청난 구조물이었는데 사람들이 꼼지락거리며 쌓아 올리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초라한 것을 보시려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번에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오신 것은 인간의 가소로운 구조물을 확인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분이 이 땅에 먼지보다 작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엄청나게 두들겨 맞으신 후에 십자가에 못이 박히고 창에 찔려서 물과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이 사람들에게는 영락없는 패배로 해석된 것입니다.
2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예수를 모욕하며 말하기를 "아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30.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너라!" 하였다.
31.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함께 그렇게 조롱하면서 말하기를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 하였다.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도 그를 욕하였다.(막15:29-32)
또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내용의 말씀을 들려드리려 합니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으셨던 주님이 다시 사신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란 그 존재가 분해 되어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일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예외가 없었습니다.
우리 조상 수천만 수억이 그대로 흙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그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믿어지나요?
구원이란 바로 이 사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죽을 존재가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그 부활을 수시로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대로 부활이 있었을 때였습니다.
8. 그들은 뛰쳐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8. So they went out and ran from the tomb, distressed and terrified. They said nothing to anyone, because they were afraid.
왜 그랬을까요?
마르다도 말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현실 되자 당황한 것입니다.
1. 안식일이 지나니,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1. After the Sabbath was over, Mary Magdalene, Mary the mother of James, and Salome bought spices to go and anoint the body of Jesus.
그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이 여인들은 모두 같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십자가께서 죽으셨던 날 주님의 뒤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이 안식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린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시체에 발라드릴 향료를 들고 무덤을 찾아간 것입니다.
2.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을 때에, 무덤으로 갔다.
2. Very early on Sunday morning, at sunrise, they went to the tomb.
안식일이 끝나기를 그 때처럼 간절히 바란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밤 한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이 끝나자 지체하지 않고 무덤을 향한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아들 집에 가지고 가려고 김치를 담궜습니다.
그것을 들고 서두르느라 아침밥을 챙겨 먹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서둘러야 했고 그렇게 고속도로에 잘못 진입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쪽이 서울 같아서 그렇게 열심을 내서 달린 것입니다.
부산을 향해서........
방향이 틀렸는데 그들의 열심과 진실함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까?
새벽잠을 설치고 아침을 굶으며 운전을 했기 때문에 서울과는 더 멀리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3.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내 주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4. 그런데 눈을 들어서 보니,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은 엄청나게 컸다.
3-4. On the way they said to one another, “Who will roll away the stone for us from the entrance to the tomb?” (It was a very large stone.) Then they looked up and saw that the stone had already been rolled back.
그들이 열심을 낼수록 부산 사투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가까이 왔는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서울 표준말이 들리기 시작해야 하는데.......
무덤을 막고 있어야 할 돌멩이는 왜 치워져 있지?
이 여인들은 무언가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마음은 순수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하는 마음에 충실해서 향료를 준비하고 잠을 설치고 새벽에 나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가?
그들은 냉철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공생애의 초기부터 그들에게 부활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묻기를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습니까?" 하니,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습니까?"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2:18-21)
마르다는 이미 부활을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습니다."(요11:25-27)
주님은 제자의 그리스도 고백을 들이신 후에 본격적으로 주님의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31.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흘 뒤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막11:31)
하지만 이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주님은 무덤에 누워 계셔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제 생각에 충실했습니다.
물론 주님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교회 왔습니까?
교회에 와서 무엇을 합니까?
목소리가 쉬도록 소리를 지르고 앞뒤로 흔들어대면서 기적을 향해 소리치는 일을 위해 왔습니까?
그래서 그 일을 하고 만족하고 계십니까?
방언도 하고 성령에 충만해졌습니까?
여러분 앞에 여러분의 생각대로 모든 일들이 성취되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획하고 여러분이 성취하고 여러분이 만족하는 일은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일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일이 신앙이 아닙니다.
지금 서울로 가야 하는데 열심히 부산으로 달려가서는 안 됩니다.
신앙이란 감성주의가 아닙니다.
눈물만 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냉철한 이성 주의가 먼저 요구됩니다.
방향을 일단 서울로 잡고 엑셀을 밟든지!
나에게 주님은 무슨 말씀을 해 주셨느냐?
그렇게 자기 감성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다 보니 JMS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달려가다가 생각해낸 것입니다.
무덤을 막고 있을 무거운 돌입니다.
그 무덤은 다른 무덤에 비해 유별나게 큰 돌덩이로 막혀 있었습니다.
당시의 관리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이미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시체를 훔쳐 간 후에 부활했다고 제자들이 거짓 소문을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물론이라는 단어가 당시에 없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영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사시던 시절입니다.
주님은 물 위를 걷고
나병을 고치시며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그를 일으키신 그 분이 부활을 말씀하셨지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에도 불트만이 살아 있었는데 신화를 비신화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경이 제대로 읽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가지 못하도록 더 큰 돌덩이로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았던 것입니다.
그 무덤의 문은 인봉 되었고 또 로마 군인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을 경험을 했던 여인들 역시 이 땅의 상식을 가지고 행동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을 구속하지 않았던 것은 세상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장이 난 것입니다.
그렇게 시체를 찾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줄줄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은 이미 굴러가 있었습니다.
로마 병정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포에 질려서 다 도망간 것일까요?
그 무덤은 최소한 다른 공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네 복음서가 모두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돌은 이미 치워져 있었습니다.
5. 그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웬 젊은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5. So they entered the tomb, where they saw a young man sitting at the right, wearing a white robe—and they were alarmed.
잠도 설치고 일절 한눈팔지 않고 무덤으로 달려 왔으니 이제는 주님의 시체가 보여야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전혀 딴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귀신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온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 사람을 고치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예수께서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귀끼리 힘의 대결에서 예수께서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왔다.(마12:28)
그것은 단순한 세력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전혀 다른 차원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임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무덤에 누워계실 예수님 대신에 천사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죽으셨던 그 무덤에서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세력이 그 죽음의 세력을 굴복시키셨던 것입니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펼쳐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그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곳은 주님이 누워계셨던 무덤입니다.
6.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습니다만,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입니다.
6. “Don't be alarmed,” he said. “I know you are looking for Jesus of Nazareth, who was crucified. He is not here—he has been raised! Look, here is the place where he was placed.
이 천사들이 그들에게 말 한 내용은 너희가 잠을 못 자고 아침을 거르고 향료를 준비해서 무덤을 찾아왔는데 그렇게 죽어서 누워계시는 그런 그리스도는 네 생각 중에나 있지 성경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너희가 네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두고 놀라지 말라는 주의부터 주었습니다.
이런 주의는 그들의 반응(8절)을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3일 전 일입니다.
그들은 그런 죽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보다 더 비참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비명 소리
그 하늘을 가르는 회초리질
로마 병정은 얍 소리를 지르며 여지없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창자가 터져 나왔고 물과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 기억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모조리 제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깊은 슬픔에 젖어 있고
잠도 못 자고
향료를 준비하고 엉뚱한 장례 준비를 하고 무덤을 찾은 것입니다.
부산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나신 것입니다.
오직 그 분의 말씀대로!
그렇다고 이 여인들도 그 무덤에서 당장에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빈 무덤을 보았을 뿐이고 천사의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오고 가던 말들과 또 역사적인 현실.
이 부활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습니다.
나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성경의 표현이 어떤 상황을 이르는지 상상이 안 갑니다.
그런데 거기에 질서가 조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 진화된 것이 아닙니다.
외부의 하나님의 의지가 개입되신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창1:1-3)
하나님께서 계시니 혼돈이 물러가고 빛이 생긴 것입니다.
그 타자의 의지를 통해서 하루만에 다시 이틀만에 그렇게 육일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시면서 바로 그 하나님께 주님의 영혼을 맡기신 것입니다.
46.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부르짖으시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셨다.(눅23:46)
그랬더니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두고 잔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모든 것을 성부 하나님께 일임하신 주님께서 삼일 주무셨다가 일어나셨습니다.
그를 깨우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잠에서 깨신 주님은 그 큰 돌덩이 문을 여시더니 갈릴리로 가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셨기 때문에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님을 높이신 것입니다.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이들 모두가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2:8-11)
물론 이 일은 예수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넘을 수 없는 담으로 여겨졌지만 주님의 부활은 믿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15:20)
주님은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때에 그 부활을 다만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역사 안에서 부활의 첫 열매로 맺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역사 안에서 부활의 현실을 사람들의 눈에 확인시키셨던 것입니다.
산 위에 올라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사람이 개미처럼 작아 보일 것입니다.
땅 밑에서 볼 때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게 하신 그 하나님 나라에서 죽음을 볼 때 그것은 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에 불과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은 영원한 파멸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주님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정의를 뒤집어버리신 것입니다.
죽음은 잠시 자는 것이다.!
또 이 부활은 우리의 삶의 자세를 뒤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18.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롬8:18)
부활을 믿는 사람은 현대의 고난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미리 예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30. 그리고 우리는 또 무엇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까?
3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거는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합니다만,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32.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고전15:30-32)
이 일은 부활로 인해서 바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오늘 먹고 마시자 내일은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을 인정하다 보니 자신은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이 고난 삶은 부활로 인해서 결정지어진 것입니다.
7.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십시오. 그는 그들보다 앞서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십시오."
7. Now go and give this message to his disciples, including Peter: ‘He is going to Galilee ahead of you; there you will see him, just as he told you.’”
천사들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향료를 챙겨 들고 무덤을 찾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일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른 것입니다.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먼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여인에게 듣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인들이 천사의 요구대로 부활을 제자들에게 말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여인들에게 들었을 때 제자들 중에는 무슨 소리냐며 무시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부활을 직접 확인했을 때 여인들의 증언을 무시했던 자신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을 걸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는데.......
그들은 여인들의 말을 반신반의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여인들의 증언대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불 위에서 지글거리던 부자처럼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꼭 그 말을 하셨던 것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 말씀을 잘 듣지!
29.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눅16:29)
하나님의 일은 그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불러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모세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말씀의 신뢰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관건이지만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빤쓰 목사들의 말을 맹신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성경의 말씀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비윤리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이십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이 여인들의 증언을 듣고 그들은 이제 직접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던 이들에게 주님께서 자신을 보이고 다니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설명 되고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시는 주님을 통해 보여지는 것입니다.
또 믿어지는 것입니다.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다음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7. 그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태어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고전15:4-8)
선교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지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도 말들을 통해서 우리를 이해시키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의 현실입니다.
그 부분을 두고 성경이 성경 스스로를 두고 성령을 통해 기록되었다고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뿐 아니라 거짓 없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여러분의 증언은 아주 중요합니다.
더러운 행실과 말을 하면서 입증할 수 없는 기적을 둘러대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특별히 간증을 통해서 영적인 과장행위를 일 삼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8. 그들은 뛰쳐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8. So they went out and ran from the tomb, distressed and terrified. They said nothing to anyone, because they were afraid.
그들이 부활의 현장을 보면서 보인 반응입니다.
다시 한 번 이 본문을 읽어 봅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그의 역사를 눈앞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8. 그들은 뛰쳐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8. So they went out and ran from the tomb, distressed and terrified. They said nothing to anyone, because they were afraid.
마르다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습니다."(요11:25-27)
이런 믿음의 고백을 어디에다 두고 이제는 이러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저는 유리 바닥으로 이어진 출렁다리를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허공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단한 유리 바닥이 깔린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 몸무게쯤은 충분히 바쳐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알고 있고 자신들의 표현에 의하면 또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현실이 펼쳐졌을 때 그들은 기겁하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주님께서 현재(God’s presence)하신다고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설명하기를 하나님의 현재란 설교하는 뒤를 돌아보세요 지금 예수님께서 교회 문을 드르륵 여시고 신발장에 신을 넣으신 후에 여러분이 앉으신 장의자에 함께 앉으시는 것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즉각 무섭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로 고백되는 하나님 현재의 사건이 당장에 내 눈앞에서 일어나면 놀라서 예배당을 박차고 도망할 것입니다.
몇 사람은 장의자에서 옆으로 졸도해서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막상 그 실체를 잃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무엇인가?
이 여인들은 자신들의 고백이 현실로 자신들의 눈앞에 열릴 줄 몰랐던 것입니다.
엠마오를 걷던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22.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말하기를,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24.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참 어리석습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참 무딥니다.
26. 그리스도가 반드시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눅24:22-26)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만 그 진정성은 어디까지 입니까?
정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을 고백하면서도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다가 무슨 무슨 집사가 내 뒷말했다며 흥분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활을 제대로 고백했다면 바울처럼 죽음을 각오하는 희생을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수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을 마가복음이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처음의 마가복음은 여기에서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이 원본이 더 마음에 듭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를 보더니 기절할 뻔한 나라가 여러분에게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충격을 받은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수천 년 안식일을 지켜왔습니다.
안식일 날이면 엘리베이터의 제 층수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에는 밥하는 일도 못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적군이 내 목숨을 노려도 안식일 날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그렇게 지켜왔던 안식일인데 그들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다음 그 안식일이 아닌 주일(Lord’s day)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 신앙의 중심을 세상 만드신 성부의 찬양에 두었다가 이제 우리의 죄를 인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날로 바꾸어서 지키게 된 것입니다.
2,000년 전 충격받았다가 잠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주일 예배를 드리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