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햇수로 50여년이 가까와 옵니다.
1974년 학교 다닐때 공부 하기 싫고 놀기만 하다가
밀리고 밀려서 갈때가 없어서간 지방 5류 농과 대학
집은 가난하고 먹고 살기도 어려운시절 남들은 공무원 시험준비 취직준비를 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지냈지만
나는 학과 공부는 아예 관심도 흥미도 없고
졸업하고 중이 될까 농사나 지을까 이럴까 저럴까
기숙사 침대에 누워 취직 학과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주로 동양고전 불교,심리학 잡다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고 헌책방에서 구해
잔뜩 쌓아놓고 읽으면서 학교 생활을 보낸것 같습니다.
취직 돈과 자유로우니 대학생활에 나름대로 자유로움과 낭만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하다가 안되면 선생 이나 공무원이나 하지뭐
그때 교사는 사범대를 안나와도 교직과목만 하면 교사임용이 될때 였습니다.
사범대는 농대 다음으로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교대는 학비와 군대를 안가도 별로 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연일 대학가는 교련반대 유신반대데모로 학사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교수와 학생 일체 유신체제에 비판과 반대를 못하게 했습니다.
기본적인 학문의 자유가 없는 감옥같은......
공부못해 취직안되는 돈있는 집애들은 대학원 가서 한학기 마치고
본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신입생 상대로 ** 개론 등 교양과목을 강의할 정도로 교수실력이 형편이 없었습니다.
지방대학은 특히 더 심했습니다.
누가봐도 말도안되는 정부의 지시와 국가정책과 시국에대해 유신독제정권에 비판은 고사하고
찍소리못하고 정권이
시키는대로 따라하며 권력의 눈치만보며
오직 자신의 출세영달과 무사안일 시간만 때우는 한심한 어용 교수들 .....
그중에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자신의 지위와 명예만 생각하고 권력형 정치교수들
인격과 양심 실력도 없는 한심한 인간들이 저게 교수라고 .....
내가봐도 교수를 존경은 커녕 무시하는 마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대학원수업도 제대로 안받고 앉아서 석박사 받는것은 다반사이고
몇십년전 노랗게 색이 바랜 강의 노트를 그대로 들고 와서 앵무새처럼 똑같이 반복하는
내가 들어도 그대로 배껴서 졸졸 외는....
지금은 그잡지가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지만...
나이가 드신분은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學園이라는 문학을 좋아하는 고등학생들이 60년대 학원장학생으로
80대이상 중견문단 원로 들이 대부분 그곳 출신이지요
자매지 農園 이라는 곳에서 일본의 효소농법이라는 내용으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식량이 모자라 개간을 장려하고 통일벼등 증산정책이 국가 시책이 였습니다.
파라치온등 고독성농약사용과 부주의로 일년에 한동네 몇명이 농약중독사고로 목슴을
잃은것이 허다 했습니다.
갑자기 머리를 팍 치는 것이 였습니다.
농사는 돈버는 산업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기르고 살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군에서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고
제대후 79년 12월1일 문교부 일본유학자격시험도 합격을 하고 비원앞 일본 문화원에서 일본어늘력 인터뷰 준비가 다 된상태에서 80년 국내외 시국상황으로 좌절되어
82년 일본국제자연농법개발쎈타 초청으로 여러번 장기연수도 다니면서....
일본의 자연농업의 철학,사상가도 만나고 잘나가는 의사를 그만두고 모든병의 원인은 먹는것과 병에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의사에서 농부로 자식을 농고로 보낸 유기농사를 짓게하는 .....
농업을 돈과 물질로만 보고 유기농업을 자신의이윤 극대화를 위해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나라 요즘 유기농사를 짓는 농사꾼들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생태순환 농업은 한갖 허울좋은 구호일뿐
대부분 채소는 자외선과 차단된 비닐하우스 안에서 영양과 에너지라고는 전혀 없는 맹탕뿐인 가짜 유기농채소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쉬쉬하는 오늘의 유기농업과 농가의 현주소 입니다.
요즘같이 택배 유통망이 잘되어있는 세상에 유통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 생산소비자만 더 어렵고 힘들게 하여
자기네 돈벌이만 생각하는 한살림,초록마을, 생협등 유기농 유통회사와는 이념과 철학이 다른 격세지감이 듭니다.
80년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유기자연 농사지어놓고
이 많은 유기농산물 어떻게 다팔지 하며 며칠씩 밤잠을 설치며 팔궁리를 아는 사람도 없고
뾰족한 묘안도 대책도 잘 떠오르지 않 않았습니다.
유기자연재배한 쌀과 잡곡은 언제나 꼭 비싸게 받고 팔아야 한다고 머릿속에 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깨달음 같은 좋은 생각이 내머리에 떠올랐습니다.
팔다 안되면 그냥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버리면 되지뭐
즐겁게 농사지으면서 건강하고 행복한것만 으로 이미 본전은 다 빠졌으니
남은 농산물은 하늘로 부터 보너스로 받은것이니 가난한 사람은 그냥또는 싸게
사먹는사람 살림살이에따라
팔면되지 생각을 하니
큰 구속과 굴레에서 억눌림에서 큰 자유와 해방을 얻은것 같았습니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똑같이 받는것이 오히려 형편대로 주고 받는것이 오히려 훨씬
공평한것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잠도 잘오고 가난도 면하게 되었습니다.
농고를 다니면서 할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뭐
그말이 씨가 되어 농사를 짓게 되었지만....
한때는 농사가 너무 힘들고 돈도 안되고 남들도 무시하여
은근히 슬퍼하고 후회도 했지만......
이제 생각하니
40여년 전부터 자연농법 요가명상,생태공동체등에 관심이 많아 해마다 겨울철이면 일하다가 가고 싶으면
몇달간 외국에 서 지내다가 옵니다.
벌써 10여년저 7월2일 갑자기 미주여행이 하고 싶어 오라고 해도 몇번 미루다가 대만에 20일 머물다가
9월 28일 석달여 만에 돌아오니 그해 농사가 내가 없어도 훨씬 잘되었습니다
농사는 하늘과 땅 자연이 저절로 짓는것이지
작물도 자식도 되도록 간섭을 적게 하고 꼭필요한것만 도와주면 다 알아서 잘 큽니다.
그때이후 지금까지
40여년간 쭉 그렇게 살고있습니다.
이제는 애들도 다커서 일찌기 자립자급 자력갱생 교육을 시켜 스스로 지 앞가림은 다 하고
많이 가진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평생 내쓰고 싶은대로 써도 부족함은 없습니다.
돈벌 목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지는 벌써 10여년이 됩니다.
쓰다 남은것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로 자식과 약속을 했습니다.
자식과 작물이 주인이고 나는 도움이 꼭 필요한부분만 도와줄뿐
이것이 나의 자식교육과 농사법 입니다.
돈주고 살수없는 좋은공기 산과 들의 녹지공간 하늘과 땅 이모든것이 내것이요 내놀이터라 생각하며
돈은 쓰는사람이 집은 사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아무리 많은 돈과 부동산도 죽을때 가져가는것도 아니고.....
누구의 지배와 간섭없이
새장같은 아파트에 갖혀서 나쁜공기와 자연과 단절된 회색의 아파트보다
봄부터 가을까지 산과들에 땅에 정기를 머금고 올라오는 산나물 들나물과
스스로 자란 산삼과 같은 들나물 산나물 과일을 먹으며
자연과 사회 에고로 부터
모든 굴레와 구속으로 자유와 해방을 바라는 자유로움
시골이 아니면 도시에서 감히 꿈꾸지 못하는 자연에서 생활
지금생각해도
아무 걱정 근심없이 사는 나를보고 늦팔자 좋다고 부러워 합니다.
첫댓글
보고 웃음지어봅니다
좋은 나날되세요
좋은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전기농법이라고 있습니다. 땅도 힐링하고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도 힐링되어, 사람이 먹게 되면, 음식자체가 보약이 되는, 고대 전기농법, Electricculture. 땅을 가꿀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땅은 그 주인자격이 있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왜? 자연이 자연을 원하니까요.
지금 도시에 사는 분들
대부분 시골가면 여러가지로 불편하다고
시골은 살곳이 못된다고
내려오지 못하는 분들
많습니다.
음치, 기계치, 자연치 ...
자연치 ㅡ자연을 느끼며 알지 못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