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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옹집(拙翁集) 홍성민(洪聖民)생년1536년(중종 31)몰년1594년(선조 27)자시가(時可)호졸옹(拙翁)본관남양(南陽)봉호익성군(益城君)시호문정(文貞)특기사항서경덕(徐敬德), 이황(李滉)의 문인
拙翁集卷之七 / 序 / 梁山詩板序
昔年。婦翁宰梁山。余從之遊。歲甲寅也。
當時年甚少。縱意所如。不能自律。樓觀乎逍遙。溪山乎探賞。友鄕人笈山房。煙壑沙汀。無處不跡。朋攀儕玩。有興必共。流連行樂者四年。人固舊契。地亦久寓。人情隨所在而親。不覺在異鄕焉。一別南州。路隔千里。首矯神馳。了了眼中。每願乘便一探往跡。少焉白面。力有二及。中焉簪笏。身有所繫。人事未諧。奮飛不能。俯仰之間。二十四回年矣。
庚辰冬。按節而南。
선조 | 13 | 1580 | 경진 | 萬曆 | 8 | 45 | 2월, 경상 감사가 되다. ○ 6월, 병조 참의로서 庭試 吏文製述에서 우등하여 加資를 받다. |
自密陽。傍黃山江而往。曲曲細路。局駕而行行。入平原數里許。有屋翼然江之左。黃山驛也。行過十里。過栗林近國浦。遙見樓角翬飛於暮靄間。認之爲雙碧。行行漸近。將入栗林。忽見明窓朱檻。交映粉堞上。認之爲澄心。過平橋。入城門抵官舍。周覽徘徊者久。目力所及。心緖自動。噫。吾之路斯路而行之者曾幾番也。寓斯寓而棲之者今幾年也。樓臺。吾足之所慣踏。而今又足之。湖山。吾目之所慣見。而今又目之。舟煙浦而觴之者猶昨也。手花竹而攀之者猶昨也。江山是而人物非。當時之所與友者。所與接者。死亡居多。未亡猶少。而所餘存者。當時之壯者少者。而時或有亡者矣。曩之見也。顔如花。髮如雲。齒如氷者。今焉見之。或有面盡皺者焉。或有髮半白者焉。或有齒半缺者焉。或成老嫗。或成老叟。見之可憎。接之可醜。乍視其面。怪焉而疑。審聽其聲。驚焉而信。始與之握手焉。始與之話舊焉。或笑或嗟之。舊人之存者亡者。或有老其子者焉。或有長其孫者焉。當時之存者今亡。當時之無者今存。人事之變極矣。其中崔公滉,澕,洌,沂昆季情最親。引之帳中以敍之。明燭昵坐。披宿抱而談往事。不覺膝之移於席而夜屢更也。兩地存亡。摠可驚心。吾之始遊於此者藉聘君。而聘君之去世。今過十年。尋來往跡亦如掃。相視說道。淚不禁下。吾高祖曾爲幕佐於是方。題詩樓額。在一百二十九年之前。樓梯纔上。先尋詩板而詠之。乃吾家舊唾也。謁文廟而香火之。少年讀書處也。過衙舍而顧視之。少年寢息所也。悲慰交集。心不自定。舊時舊跡。默記暗識。語不敢吐。而擁街觀者相顧以說。此必是觀我蒼顔。追我少年事也。明年春而巡。夏而巡。秋亦巡。雙碧四時之風態。一一重賞之。時時興爛。有若少年時。而每見情如舊。苽滿將還。崔君兄弟率邑中舊知者。設酒樂以別之。離筵絲管。不能令人歡。只令人悲。酒未瀉而腸先酸。熱盞語諸君曰。吾其老矣。今此之去。無事到南中。不復上此樓閣而對此故人。只可夢。不可面。滿坐惘然。俱作可憐色。乃以所賦詩。掛諸壁而去。來憩于通道寺舊棲之地。則崔兄弟率邑人梁之海,金允祖等。追來而別。席于磵邊而敍之。則日已昏矣。翌日夙興。情不能瀉。乃敢酒之。語出則嗟。將起而止。日過中而不能決。強策柔腸。促駕而出。至洞口無風橋而顧之。則崔君又來到矣。下馬而石。面溪而坐。跡其舊。稍延其留。黯然魂消語。不能而岐。自別歸來京洛。往來于懷十一年。而重按南。
在庚寅夏。到玆郡則前日之老者愈老。衰者愈衰。亡者愈多。而崔君昆弟尙無恙也。
선조 | 23 | 1590 | 경인 | 萬曆 | 18 | 55 | 2월, 대사헌으로 李山甫 등과 함께 鄭汝立을 천거한 盧守愼을 삭탈관직할 것을 청하다. ○ 5월, 대사헌을 사직하다. 경상 감사에 특별 제수되다. ○ 8월, 宗系辨誣의 功으로 光國功臣에 책봉되다. |
昔之去也。自以爲不復跡此地目此故舊。其訣之永。今焉上此樓。對此故人於十年之後。若天使之然者。其爲幸。甚於曩時之重到。而其爲飜倒。倍於曩時之重見也。越一月。以參會盟事還朝。歷過玆邑。邑中諸故人。慮我赴朝而不復來也。又設筵以餞之。其敍別之意。猶昔年也。余到通道。而諸君又追會。其惜別之難。猶昔年也。旣以詩賡諸郡樓。又以詩題諸寺壁而去。旣參盟宴于朝。還而南。歲將暮矣。到玆邑則諸舊知。皆抃躍以有語曰。抑天許公以究南中之夙分歟。天賜公以卒我輩之幸歟。不然。安得自朝以南者至此三也。其幸也比前日而愈幸。其喜也比前日而愈喜。自此巡到者數。苽之又滿。將還而北。設酒酒半。執盞相語曰。少時之別也。只惜其別。有後期。中年之別也。後會不可期。而猶有所覬。今此之別也。老益老而按之也再。百無計可到此。湖山也樓臺也故人也。今不可以復見。惜別尤劇。人情到此。又加倍矣。遲留而別。追來以別。又如昔焉。而情之惜則百於昔也。噫。吾於此地。初不相關。而乃敢係念於此。其來也如入故鄕。其去也如別故鄕然者。此固情之所動。而亦必有使之然者。吾生於世十九年而客於此。一別二十四年而按於此。別後十一年而又按於此。在南中而經歲月者多至六七年。人也地也。見之則歡。別之則悲。其歡也其悲也。固人情之所不能已者。而其所以使之歡使之悲者。有數存乎其間。吾爲造物兒有所幸有所憾也。吾於此地人。有所眷。人於我。亦如我之眷彼。是異人而爲親眷也。吾旣以詩若干首。留諸此地。以收此地債。以爲此地人之面目。又以詩與文。置諸篋中。時時披閱。則歃良郡之湖山也樓臺也人物也。長在於心中。足以延其跡於無窮。而以著夙分之深結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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拙翁集卷之七 / 序 / 靈山詩板序
少時客靈山。靈山倅申侯。乃先人女弟夫也。申侯視余猶子。余亦父事之。仍隨以往。申侯憐余少而孤。且好讀書。縱其出入。結邑中志學者游。令負笈山房。以長其業。至於歌臺酒席。引而參之。以共其樂。當時年正少。行樂甚。不覺鄕之異也。一日。申侯坐東軒。招余以進。指庭中老梅樹曰。此龍也。爾其爲梅龍詩之。仍成一絶以呈。申侯且曰。爾於他日釋褐。必將承命來于此溪山樓觀而光之矣。以此語之者數。去留數年。一別以來。南北隔矣。了了往事。每在心目中。如逢此地人。必問樓臺依舊否。舊知安穩否。探來消息。如見故鄕人然。庚辰秋。持節按南。巡向玆縣。望見蒼翠一角。參天而屹。認是靈鷲。爲山背邑而立。心自爲慰。沿溪而入。洞門漸開。官路中坦。巖壑前擁。此吾少年時所慣踏所游戲之地。二十四年而重跡之重目之。目纔及焉。心自爾動。乃人之情。而玆亦數也。舊人老吏。或侯於簷隅。或伏於階下。進而視之。則衰白老翁。盡是前少年。初逢面目。疑訝而不敢信。談其名而聞其聲。然後始知爾爲某而某爲舊也。我於彼。見其面目。疑其變而不敢信。則彼見我面目。亦如我之視彼也。問及舊知人。則當時之老者皆死。或曰。噫。其死也今二十矣。或曰。其死也今十年矣。或曰。其死也今數年矣。當時之壯者皆衰。而或有衰而死者焉。當時之少者皆中年。而或有衰之甚者焉。當時之按堵而居者。或有鞠爲茂草焉。當時之丘墟之荒者。或有鬱爲屋居焉。人事之變。至此極矣。庭中梅樹。當時爲老。指之以龍。星霜累更。老者益老。斡折枝疏。冷影査牙。
申侯去世。已抵七年。懷舊沈吟。淚不及拭。自此巡歷者三。每到情愈戚。
滿苽而還。一夢依俙。
後十年。再按南中。巡到于邑。坐未及穩。顧瞻中庭。梅之老者比曩日益衰。舊知舊吏之侯于簷伏于階者。比曩日益少。時或故人之子來侯曰。吾父之死久矣。舊吏之子來謁曰。吾父之死昔矣。其或餘存而侯謁者。曩日之向衰者甚衰。曩日之少壯者向衰。有總角兒童奔走左右者。問之則昔日少年者之子也。昔日老壯者之孫也。諦觀而追想。則其容貌。果如乃父乃祖少壯時也。自此巡歷者四。每到。情猶舊。
苽滿將還。
昌原府伯張君季宜具酒樂來抵于此。設宴以餞。
晉陽伯李君德溫偶來到。兩君皆同年及第也。
鼎坐作別以竟日。離筵絲管。不令人歡。只增人悲。非但爲兩君。亦爲此鄕人也。邑中男女聚官門。而相顧而語曰。
前十年而觀風。
後十年而又來也。
其父老則曰。曾見挾書書生。今見持節使臣也。公歸不復。邑人有語。此後難面。我亦興嗟。噫。茫茫四方。杳杳一身。萍梗於世。本無定跡。
而少年客於此。
中年按於此。
衰年又按於此。他人而契密。異鄕而情親。今此去住。又如故鄕人。非人力所能圖。必是造物兒所使也。
乃敢以前後所賦詩。板之而掛諸壁。以準南中債。又敢文之。以識其事。且見靈邑於吾。終始有分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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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집(松巖集) 권호문(權好文)생년1532년(중종 27)몰년1587년(선조 20)자장중(章仲)호송암(松巖), 청성산인(靑城山人)본관안동(安東)특기사항이황(李滉)의 문인
松巖先生續集卷之五 / 詩 / 未赴尙州榜會。擬呈僉年兄。時
洪壯元時可按察將歸。
洪聖民 | 1536 | 1594 | 南陽 | 時可 | 拙翁 | 文貞 | 益城君 |
홍성민(洪聖民) 시가(時可) 졸옹(拙翁) 문정(文貞) 병신(丙申) 1561 26 남양(南陽[唐]) 한성([京])
홍성민(洪聖民) 시가(時可) 졸옹(拙翁) 문정(文貞) 병신(丙申) 1564 29 남양(南陽[唐]) 한성([京])
安陰縣監朴文龍,
朴文龍 | 15?? | 1597 | 務安 | 明叔 | 梅月堂 |
박문룡(朴文龍) 군현(君見) 계미(癸未) 1570 48 함양(咸陽) 광양(光陽)
박문룡(朴文龍) 군현(君見) 계미(癸未) 1561 39 함양(咸陽) 광양(光陽)
玄風縣監任命臣,
임명신(任命臣) | 1531~? 본관은 풍천, 자는 신경(信卿)이다. 1561년(명종16)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
임명신(任命臣) 신경(信卿) 신묘(辛卯) 1561 31 풍천(豊川) 한성([京])
聞慶縣監李榮春,
李榮春 | 1532 | 1592 | 全州 | 應仁 |
이영춘(李榮春) 응인(應仁) 임진(壬辰) 1561 30 전주(全州) 한성([京])
軍威縣監李寗諸兄。
李寗 | 1527 | 1588 | 眞寶 | 魯卿 |
이녕(李寗) 노경(魯卿) 정해(丁亥) 1561 35 진성(眞城) 예안(禮安)
供辦遠邀諸同年。
嶠南遊宦是同人。千里相期喜會神。按轡澄淸能代聖。彈琴撫字可親民。秋鴻秋燕雖相別。年弟年兄摠自親。愧我病棲丘壑裏。遡風孤負奉淸塵。
송암집 속집 제5권 / 시(詩)
상주 방회에 가지 못해 여러 연형들에게 드리려 하다〔未赴尙州榜會擬呈僉年兄〕 이때 장원(壯元)한 홍시가(洪時可)가 안찰(按察)하고 돌아가려 하였는데, 안음 현감(安陰縣監) 박문룡(朴文龍), 현풍 현감(玄風縣監) 임명신(任命臣), 문경 현감(聞慶縣監) 이영춘(李榮春), 군위 현감(軍威縣監) 이영(李寗) 등이 함께 자리를 마련해서 동년(同年) 들을 멀리서 초청하였다.
영남에서 벼슬하던 동인들이 / 嶠南遊宦是同人
멀리 각처에서 약속하고 기쁘게 만났네 / 千里相期喜會神
고삐 잡고 징청하며 임금 일을 대신했고 / 按轡澄淸能代聖
탄금하고 무자하며 백성들을 새롭게 했네 / 彈琴撫字可親民
가을 되자 기러기와 제비가 서로 이별하지만 / 秋鴻秋燕雖相別
동년의 형과 아우들이 모두 몸소 참여했네 / 年弟年兄摠自親
부끄럽게도 나만 산림 속에 병들어 누워서 / 愧我病棲丘壑裏
바람 맞으며 홀로 청진을 받들지 못했네 / 遡風孤負奉淸塵
[주-D001] 연형(年兄) : 동년(同年)과 같은 말로, 과거에 동방급제(同榜及第)한 사람끼리 서로 부르는 호칭이다.[주-D002] 홍시가(洪時可) : 홍성민(洪聖民, 1536~1594)으로, 시가는 그의 자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졸옹(拙翁),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561년(명종16) 진사시에 장원하고, 1564년(명종19) 급제하였으며, 1580년(선조13)에 문신 정시(文臣庭試)에 장원하여 가선 대부에 승진되었다. 종계(宗系)를 변무(辨誣)한 공으로 광국 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다.[주-D003] 박문룡(朴文龍) : 1523~?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군견(君見)이다. 1561년(명종16)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70년(선조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주-D004] 임명신(任命臣) : 1531~? 본관은 풍천, 자는 신경(信卿)이다. 1561년(명종16)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주-D005] 이영춘(李榮春) : 1532~1592.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인(應仁)이다. 1561년(명종16)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문경 현감과 음성 현감(陰城縣監)을 지냈으며, 1592년(선조25) 함열 현감(咸悅縣監)에 제수되었으나 미처 임지(任地)로 나가기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철원(鐵原)으로 피난을 가서 지내다가 왜적의 손에 죽음을 당하였다.[주-D006] 이영(李寗) : 1527~1588.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노경(魯卿)이다. 온계(溫溪) 이해(李瀣)의 아들로 영주(榮州)에서 살았다. 1561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군위 현감ㆍ지례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주-D007] 동년 : 같은 해에 과거에 합격하거나 급제한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는 1561년 사마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말한다. 당시 홍성민을 비롯한 박문룡ㆍ임명신ㆍ이영춘ㆍ이영 등 모두 동년인데, 홍성민이 장원을 하였다. 문집의 저자인 권호문도 이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주-D008] 고삐 잡고 징청(澄淸)하며 : 방백(方伯)이 임지(任地)로 출발하면서 난정(亂政)을 쇄신하여 정화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범방(范滂)이 기주 자사(冀州刺史)로 나갈 적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서는 천하를 정화할 뜻을 개연히 품었다.〔登車攬轡, 慨然有澄淸天下之志.〕”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97 黨錮列傳 范滂》[주-D009] 탄금(彈琴) : 어진 정사를 베푸는 청백한 수령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공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 고을의 수령이 되었을 적에 마루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없이 거문고만 연주했는데도 잘 다스려지며 교화가 이루어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呂氏春秋 察賢》[주-D010] 무자(撫字) : 어루만져 사랑한다는 뜻으로, 즉 지방관이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을 뜻한다.[주-D011] 가을 …… 이별하지만 : 가을이 되자 기러기는 북에서 날아오고, 제비는 남방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기러기와 제비가 이별한다고 한 것이다.[주-D012] 바람 맞으며 : 원문의 소풍(遡風)은 《시경》 〈대아 상유(桑柔)〉에 “저 모진 바람을 받고 선 듯이, 또한 몹시도 숨이 막히네.〔如彼遡風, 亦孔之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주-D013] 청진(淸塵) : 상대방의 청고(淸高)한 유풍(遺風)이나 고상한 기질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홍성민 등 동방급제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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拙翁集卷之六 / 說 / 以學爲詩說
詩與學。爲一件事乎。硏窮乎義理。體認於身心。有所理會而自得者。學也。觸物而寄興。因事而寓懷。有所感發於聲音者。詩也。虛實有異。焉得爲一。然則詩與學。果爲兩件事乎。精義之所融會者爲學。性情之所發越者爲詩。思在無邪。韻合自然。則詩亦學也。焉可岐而二之。然爲詩有二。有詩而詩之者。有學而詩之者。詩而爲詩者。辭華而已。非詩也。學而爲詩者。義理而已。非徒詩也。隆古之世。至德其凝。何嘗有意於學。亦何嘗有意於詩也。精一執中之相傳。而勑天賡載之歌作。緝熙敬止之爲德。而關睢鵲巢之詩成。蘊諸中者實。發而爲事業爲聲音。節奏天然。自合於律。爲風焉。爲雅頌焉。此則學而詩也。詩而學也。何彼此之分乎。三代以下。詩與學岐而爲二。學自學詩自詩。學者必忌詩。詩者必忌學。然而發揮於學。猶可詩。專力於詩。未可學。聞有學而能詩者。未聞有詩而能學者也。是以。以詩爲詩之者。盡一生精力。用之於斯。出一語排一字。務必奇麗。安排而雕琢之。必致字均語諧後已。宮沈羽振。各臻其妙。錦心繡腸。以眩人眼。三河少年。楊帆東海。逸則逸矣。擢水芙蓉。倚風而立。麗則麗矣。此皆無益於身心。不過爲喪志之一物耳。以學爲詩者。不務詩。惟務學。學成德立。日就於義精仁熟之域。則講習討論之所得者弸鬯于中。而吐之於外。自爲理達之語。其辭也暢。其語也醇。不啻若炊沙鏤氷之比。此非敢爲詩也。學之所發者然也。心有所得。理有所會。自發於辭。故林下泉聲。原頭活水。自爲玩理之詠。東窓紅日。庭院垂簾。自入寓興之吟。此皆有益於身心。而爲養性之一資耳。若曰以學爲詩。則爲學者亦有意於詩乎。夫學內也。詩外也。君子自當學其學於內焉。敢詩其詩於外乎。學之道。貴於着裏近已。而欲其自得之也。自得之。則不能自韞。而著之於語。觸物生興。韻之於曲。不若是。不可謂之學也。不可謂之詩也。雖然。爲學而必於詩乎發之。何也。蓋人生而靜。因言而宣。具仁義禮智信之理。有喜怒哀樂之節。而志者。心之所之也。隨事而動。借聲而裁。吟詠之際。性情自著。可以感發善端。可以消融邪穢。是非之。諷論之。無不得其宜。此非但以學爲詩。苟爲學。不可無詩。然則三百篇之詩。亦本於學乎。曰然。夫子不云乎。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程子釋之曰。思無邪者。敬也。噫。舍此。吾不可以言詩也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