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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제목들(7)
청결한 마음을 주옵소서(2)
2017년 9월 3일 / 대예배, 오후예배 / 마태복음 5장 8절
사람들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성경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그런 것에 마음을 쏟고 자랑을 늘어놓는 이방인처럼 되려고 하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염려, 걱정하지 말라는 것은 좋으나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지만 그 뜻을 안다고 해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말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겠습니까?
■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한 신앙인이 어느 날 입이 퉁퉁 부어서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왜 그렇게 입이 부었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이놈의 입이 자주 실수를 해서 크게 망신을 당했다고.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주먹으로 입을 쥐어박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성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어떻게 하면 마음이 정결해질 수 있을까?’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죄의 혼탁함을 회개하고 보혈로 씻어야 됩니다. 죄는 마음을 부패하게 하고 혼탁하게 합니다. 죄로써 부패된 마음은 구정물과 같습니다. 흙탕물과 같습니다. 하늘의 계시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죄를 토설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서 혼탁한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됩니다.
사 59:1-2 /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팔이 짧아서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시며 귀가 어두워서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너희의 호소를 듣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느냐? 2) 오히려 너희의 죄악이 너희를 하나님과 갈라 놓았다.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에 장벽처럼 쌓여 있기 때문에 너희가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없다. 너희의 온갖 악행이 쌓여서 하나님의 얼굴을 가려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희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실 수가 없다.
1. 마음이 청결한 사람
예수님은 마태 5장 전체에 걸쳐 마음이 깨끗하기를 강조하셨습니다.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더니 8절에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외모를 중시하였지만 예수님은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마음이 청결(깨끗)하다는 것은 깨끗한 옷을 입고 경건한 태도로 절간에 틀어 박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의식으로 경건한 척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아름답게 장식한 무덤 같아서 겉은 좋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온갖 위선과 죄가 가득 차 있다.’(마 23:27-28)고 하셨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그릇의 겉은 깨끗이 하노라고 했고, 종교적 의식을 지키면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것이어서 그들이 그렇게 하여 마음의 깨끗함을 얻을 수도 없었고 원하는 참된 평안과 기쁨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볼 때 오늘날 문명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외형만을 치장하려고 하는데, 속은 더러운 것이 있는 오늘의 현상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성경전체가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의 동역자로 에베소 교회를 이끌어간 목회자였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써 해야 할 일과 성도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도록 전심전력을 다해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딤전 1:5 /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가득 차고 생각이 정결해지며 믿음이 굳세어지는 일입니다.
▶ 하나님과 예수님은 마음을 중요하게 보시는데, 성경에 나타난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삼상 16:7 /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그의 용모가 특출하고 키가 큰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지 마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 사람은 눈에 뜨이는 외모를 보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하고 말씀하셨다.
렘 17:10 / 인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자는 바로 나 여호와이다! 인간이 아무리 깊은 소원을 품더라도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 행동한 것에 따라 그대로 갚아 주는 자가 바로 나 여호와이다.
잠 16:2 / 사람이 하는 일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여도 여호와께서는 속마음을 헤아리신다.
고전 3:16-17 / 여러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성전인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17)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거나 허물어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정결하며 여러분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롬 10:10 / 사람은 마음으로 믿을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확실하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 마음을 더럽게 하는 죄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옛날부터 일곱 가지로 생각합니다. 음욕, 탐심, 시기, 교만, 미움, 혈기, 거짓된 것으로 이와 같은 것들이 마음에 섞이면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썩어집니다. 이런 것들이 점점 장성해서 마음이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고 이것이 밖으로 나와 행동으로 나타날 때 더러운 행실이 되고, 입으로 나올 때 더러운 말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이와 같은 마음이 깨끗해지기까지는 결코 참되고 완전한 행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이 더러운 마음을 씻어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더럽혀진 옷은 세탁기에 돌리면 됩니다. 그런데 더럽혀진 마음은 어디서 빨아 깨끗이 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담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겸손만을 보여주신 것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깨끗이 할 수 있다는 진리를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더럽혀진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주신 분은 예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음란한 생각하지 않고, 남을 미워하거나, 남이 잘 되는 것에 배 아파하지 않는 것. 이런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성경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양심도 깨끗함을 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저주하면서 마음 편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자기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까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왜 저 사람을 미워하는지, 미워할 수밖에 없는지 정당한 이유를 생각해 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의 청결, 마음의 깨끗함’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나쁜 생각도 안하고,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깨끗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하고 있는 기준으로 볼 때 깨끗하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마음 상태가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정도이고, 자신이 왜 다른 사람을 미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으면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미움을 살인이라고 규정합니다. 얼마나 과격한 것입니까? 다른 여자나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그 자체가 간음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백이 없습니다. 우리가 변명을 한다고 해도 그 변명이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습니다.
❶ 마 5:48 /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❷ 레 11:44-45 /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내가 거룩하므로 너희도 깨끗하고 거룩해야 한다. …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여호와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만 한다.
2.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복이 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을 말합니까? 섞이지 않은 마음, 갈리지 않은 마음, 일치한 마음을 말합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깨끗한 마음, 정화된 마음, 순결한 마음을 말합니다. 갈라진 마음, 이중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은 뿌연 마음, 가려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일치한 마음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오십니다. 요한복음의 표현에 의하면 영생을 받은 사람들은 그 영원한 생명이 약동함으로 인해 마음의 변화 즉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무슨 변화입니까? 거룩함을 추구하고 살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속에서 일종의 거룩한 욕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옳다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했던 것들이 이제는 내 자신 안에서 나를 괴롭힙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껄끄럽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욕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당했는데 이제는 남을 미워하는 것이 나를 괴롭힙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나오는 것이 귀찮고, 안 나오면 목사가 전화를 하니 목사 얼굴 때문에 나오기도 하고, 핑계대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교회 나오지 않으면 찜찜하고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나왔는데,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가니 마음의 상태가 달라집니다. 음란한 생각을 하면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뒤에서 남을 욕하고 물고 씹으면 예전에는 시원했는데 이제는 속이 불편하고, 속에서 ‘그만해라. 됐다’라고 말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로 인해서 괴롭지 않았는데 이제는 괴롭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한두 마디 말씀이 들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악을 버리고, 한두 걸음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다보면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예전에는 희미하게 느끼던 말씀이 점점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모호했던 말씀이 점점 분명해집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생뚱맞게 생각되었지만 하나님 앞으로 한두 걸음 나아가다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하며,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들게 됩니다.
그 마음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분명해지면 질수록 하나님을 향하는 정신과 마음의 상태가 하나님께로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들의 삶은 점점 더 거룩해지고, 청결해집니다. 이제는 개와 돼지처럼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거룩한 것을 맛본 사람은 예전의 추하고 저급한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갔을 때 느꼈던 그 기쁨과 평안과 사랑과 활력과 거룩함을 새롭게 경험하고 싶은 충동심이 생깁니다.
찬송가 285장 / 1.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참 기쁘고 복 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후렴>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2. 이 좋은 날 내 천한 몸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 몸과 맘 다 바쳐서 영광의 주 늘 섬기리
3. 새 사람 된 그 날부터 평안한 맘 늘 있어서 이 복된 말 전하는 일 나의 본분 삼았도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참된 복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영원한 복을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 영원한 복을 풍성하게 누리기 위해서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몇 가지 도덕적인 규칙을 지킨다고 해서 거룩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예수를 떠나서는 거룩할 수 없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거룩해질 수 있다. 다른 길은 없다.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으로 정신과 사상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마음가짐과 감정상태가 순결해야 한다. 행동과 행위가 거룩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날마다 가까이 나아와라. 그러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마음 중심을 거룩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라.”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는 말씀이 뜻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거룩한 것과 상관없는 거룩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급함과 유치함이 판을 치고,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것이 정상처럼 움직이는 세상입니다. 고상한 것, 거룩한 것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거스르면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고 그 문도 작아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마 7:1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육신적으로 편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은 다릅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편한 것과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이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이 주는 복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복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심하며 살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복이요, 거룩하게 사는 것이 복이요, 사랑하며 사는 것이 참된 복인 줄 알기에 그 길을 오늘도 내일도 가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기에 내 힘과 내 지혜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의지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 길 끝에서 저와 여러분들은 영광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히 12:14 / 모든 싸움을 피하고 정결하고 거룩한 생활을 추구해 나가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구도 주님을 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일 3:2-3 /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어 있으리라는 시선만은 확신합니다. 그때 그분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모두 자기 몸을 그분처럼 순결하게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는 순결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은 그리스도를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 추구해야 할 참된 복입니다. 거룩함은 우리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고상하고 고급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시며, 그 사람들을 통해서 타락으로 얼룩진 세상을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의 자리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대답하십시다.
♬ 1. 이 세상은 날이 갈수록 악해져 가고 온 거리마다 넘쳐나는 죄악의 물결
< 후렴 > 오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자 오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2. 사람들은 참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어둠의 길을 방황하며 소리지르네
3. 어느 누가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으랴 하나님 없는 저들에게 오직 죽음뿐
3.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예수님의 제자 빌립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원 또는 부흥집회도 참석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작정하고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금식기도도 합니다. 하나님을 한번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면 또는 삭개오에게 찾아오듯이 오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볼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아마 믿음의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 하나님을 보게 해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보면, 자기 방식대로 보여 달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보게 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은 그 분 스스로가 계시해 주는 범위 안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靈)이기 때문에 육신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갓이 아닙니다.
모세도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고,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아마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고 인간의 가장 큰 소원과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을 보는 것일 것입니다.
다윗이야말로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고 하나님을 보는 것을 가장 큰 기쁨과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시 16:8-11 / 나 여호와를 한마음으로 모시고 살며 주께서 내 가까이에 계시니 떨리지 않습니다. 9) 하여 이 마음 기쁘고 한없이 즐겁습니다. 이 몸도 편안히 살아갑니다. … 11) 생명의 길 보여주시리니 주님의 얼굴은 한없는 나의 기쁨, 주님은 한없는 나의 즐거움이십니다.
▶ 예수님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하셨지만 눈으로 감각적으로 직접 본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출 33:20). 예수님도 하나님을 직접 본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지만(요 6:46), 하나님을 영적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발걸음을 의의 길로 한 걸음씩 걷게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걸어온 인생길 길목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임재하신 것을 생생하게 느끼곤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전도와 사랑의 봉사 현장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해야 합니다.
♬ 1.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후렴>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2.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때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3.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 단순한 마음으로,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고요히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처럼 들려지게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고 의지할 때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로 보이게 됩니다. 요셉과 다윗처럼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고 의지할 때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음성과 인도하시는 은혜의 손길을 보고 느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설교를 들어도, 성경 말씀을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해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순수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질 때만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전 13:11-12 /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나 모두 다 어렸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적 말이나 생각이나 판단을 모두 다 내버렸습니다. 12) 우리 비록 지금은 희미한 거울속 들여다보듯 희미한 모습만을 비춰 보지만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분명히 볼 것입니다. 나 비록 지금은 알고 있는 것 모두 다 몽롱하고 흐리나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꿰뚫어 보시듯 모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지금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보고 느끼며 살고 앞으로 천국에서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앞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그와 같게 되고 그의 계신 그대로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일 3:2-3 /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어 있으리라는 시선만은 확신합니다. 그때 그분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모두 자기 몸을 그분처럼 순결하게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는 순결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4. 어떻게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선언하셨는데, 많은 분들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니까 ‘그래 됐어! 나는 청결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정결케 된 것인가요? 이게 한국교회의 딜레마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조금 은혜를 받았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었어. 끝.’ 그런데 구원 얻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불신자와 똑같은 생활을 하거니 그들보다 훨씬 더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천(賤)한 구원론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니,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나는 청결해!'하고 끝나 버립니다. 지금도 사람들 안에는 죄성(罪性)이 강해 세상과 마귀와 연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과연 내 마음이 청결한가?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이점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나오듯이 마음이 청결한 자라는 선언을 받습니다(요 15:1-2 /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나 아직도 내 안에는 죄악의 본성이 남아 전인격이 청결하다고 안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도하는 순간 나는 청결치 못합니다. 따라서 청결하려면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연합해야 합니다.
요 15:4-8 / …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안에 살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6) 만일 누구든지 나를 떠나면 필요 없는 가지처럼 버려질 것이요, 말라서 다른 것과 함께 묶인 채 불에 태워질 것이다. 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 안에 살며 내 말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거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내 참제자가 된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계 3:20 /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 이런 점들을 깊이 고민한 중세 때에 보면 수도원 운동을 하면서 교회가 점점 타락해가는 것을 보고 본질을 찾겠다고 청빈이나 정결생활을 주창하면서 수도원에서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고 이 세상과 가까이 있으면 자꾸 접촉이 되고 세상의 유혹을 받고 하니까 청결해지기 위해서 따로 나가서 공동생활을 하면 어떨까요? 실제로 그렇게 공동생활을, 세상과 분리된 생활을 한 집단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청결해질까요? 예수님 당시 쿰란 공동체라고, 에세네파들은 청결한 생활을 토대로 하여 구원을 자처했는데 그렇게 노력을 하면 전인격이 깨끗해질까요?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어느 시대에나 그랬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표준을 청빈생활에다 두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본다는 말인가?
한 곳을 찾아봅니다. 야고보서 4:6-10입니다. 여기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청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약 4:6-10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악한 욕망에 대항할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는 힘을 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물리치십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을 떠나 달아날 것입니다. 8)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씻으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순결로 채우고 하나님께 진실하십시오. 9) 여러분이 악한 일을 저질렀거든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하십시오. 슬퍼하며 마음으로 참회하십시오. 웃음보다는 슬픔을 배우고 기쁨보다는 괴로움을 배우십시오. 10) 그래서 여러분이 주님 앞에서 무가치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주께서 여러분을 일으켜 세우고 힘을 주시며 높여 주실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과 마귀를 대비하여 가르치는데,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하나님과 마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 두 마음입니다. 두 마음이라고 하는데, 마귀처럼 무슨 흉측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중심'이 마귀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돌아섰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결별하여 마귀 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권면하기를 ‘손을 깨끗이 하라,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누굴까요? 불신자일까요, 신자일까요? 여기에서 야고보 사도는 누구에게 설교하는 것입니까? 성경을 믿는 성도에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성도’입니다. 불신자는 한 마음뿐이죠? 마귀에게 속해서 철두철미하게 마귀 휘하(麾下)에서 움직이고 살아갑니다. 일생을 그렇게 살아가는데, 그러니까 마귀의 종노릇만 하는 한 마음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하고 6절에 ‘교만한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라’고 합니다. 10절에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합니다. 팔복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지요? '애통하라, 슬퍼하라, 낮아져라, 그게 복 받은 자다!' 합니다.
여기 '두 마음'이란?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왔다 갔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만 집중해야 할 마음이 자기에게 기울어져 있을 때를 교만이라고 하는데, 교만은 자기를 자꾸 높이는 것으로 마귀가 아주 좋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 자기 마음을 높이는 것이 교만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곧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일편단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뿐입니다.
이런 마음을 우리 스스로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그 초월하신 하나님만 집중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음을 치르면서까지 우리를 살려서, 그리고 그분이 부활하셔서 우리를 거기에 결합하여 주시려고 하십니다. 부활의 생명가운데 뿌리를 두고 살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내 안에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붙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청결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자하는 강한 의지가 청결로 가는 사람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을 강력히 제지하고 눌러 버리고 그리스도를 좇아 살려는 마음이 청결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를 가르친 다음 '두 마음을 품지 말라!' 하고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6장으로 넘어가서 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를 가르친 다음에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여기 ‘재물은 돈을 말하는데, 재물과 하나님을 대등한 위치에 놓고 ’어느 것을 섬길래? 하시는 것입니다. ‘재물’을 마치 하나님처럼 ‘주인’으로 놓는 것을 지목하십니다. 물론 누가 재물과 돈을 ‘내 주인이다!’고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실질적으로 돈을 내 주인이라고 한다는 것을 놓고 ‘하나님을 섬길래, 돈을 섬길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식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왜 재물을 의인화(擬人化)하여 가르칩니까? 그만큼 재물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다 됩니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습니까?’라고 하지만 사실 안되는 게 너무 많은데, 사람들은 우선 당장 몇 가지를 보고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압니다. 그게 사회적인 여론입니다. 돈 자체가 무슨 힘이 있어서가 아니고 사람이 그렇게 취하고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화폐 개혁만 해도 돈은 그저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는 물질에 불과한데 사람이 숭배하니까 힘을 발휘합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왜 이런 큰 힘을 발휘할까요? 사람이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데’ 하는 마음이 우상숭배입니다. ‘나는 돈이 나의 신이다!’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돈을 의지하고 돈을 추구하고 돈에 힘을 집어넣고 그래서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니까 돈이 神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돈을 하나님과 나란히 놓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돈과 하나님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두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멸망으로 우상숭배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두 마음은 결국은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이 두 마음이 없어야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오직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단순히 무슨 착하고 순진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 청결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연합시켰는데도 이 세상을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이 두 마음인데 이것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시험하려고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이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 우위에 두고 섬기는 마음이 곧 청결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과연 하나님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상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미워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여전히 마음이 청결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데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렇게 하십시오.
눅 11:8-13 / 내 말을 잘 들으라. 그가 친구라는 이유로는 일어나서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그 간곡히 조르는 것 때문에 일어나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9)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된 사람으로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2) 아들이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음과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기에, 내 힘으로 못하기에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청결케 함이 필요한 것을 안다면 최선을 다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애를 쓰는 모습을 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사 정결케 해 주십니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거역하는 인간의 본성이 떠나가면 점차 더 청결한 마음이 됩니다.
겔 36:25-29 / 그런 다음에 너희 몸에 정한 물을 뿌려 그동안 온갖 우상을 섬기면서 더러워진 오물을 깨끗이 씻어 주고 26) 너희 속에 새 마음과 새 정신을 넣어 주겠다. 너희 가슴속에서 돌처럼 굳어진 마음을 들어내고 나의 마음에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내가 이렇게 내 영으로 너희를 가득 채워 놓아 너희가 내 뜻에 따라 생활하고 내가 준 모든 계명을 지키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게 만들겠다. 28) 그렇게 되면 내가 옛날에 너희 조상들에게 주었던 땅에서 다시는 쫓겨나는 일 없이 너희는 영원히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29) 내가 이렇게 깨끗이 씻어 주면 너희가 다시는 과거의 더러운 행실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희가 다시 깨끗해지는 그날에는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흉년이나 굶주림을 보내지 않겠다.
따라서 성도라면 마음이 청결한 자이지만 아직도 악한 본성이 남아있기에 이것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으니까 마음이 청결하려면 성령께서 마음에 자리를 잡고 경영하시도록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마귀가 와서 마음을 점령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좇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말씀을 지킵니다. 성령을 좇지 아니하는 사람은 마음이 청결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좇아 아니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주관자가 되어서 마귀의 말을 더 따르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 집중되지 못하고, 자기에게 집중되면 두 마음을 갖는 자이고, 하나님과 나란히 다른 것도 섬기는 자이니까 우상숭배자입니다. 그렇게 계속 나가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자기 자신을 비우는 청소 작업을 해야 합니다. / 죄를 뉘우치며 자신의 모든 허물을 들어내는 회개를 계속해야 합니다. 내 자신 속에 내재하고 있는 거짓과 위선과 이중성, 탐욕을 모두 회개하고 드러내고 벗어버리는 청소작업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윗처럼 그런 일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거짓된 것을 다 드러내고 토해내는 청소작업과 회개작업을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비워야 합니다. 감춘 것을 다 드러내 놓고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영적으로 자기 자신의 거짓되고 위선적인 죄악의 기질을 십자가 앞에 드러내 놓고 회개하며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새로 지음을 받은 거룩한 성도가 되십시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스스로 청결해 질 수가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고백한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만들어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청결해 집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시 51:10 / 하나님, 나에게 깨끗한 마음 지니게 하소서. 나의 속마음이 심지 굳게 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렘 32:39 / 그때에는 내가 그들의 생각과 행실을 변화시켜 한 가지 목표 곧 그들이 언제 어디서나 나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 그들과 그들 자손이 언제까지나 복을 받아 잘사는 인생을 향하여 일생을 살게 하겠다.
겔 11:19-20 /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변화된 새 마음을 주고, 또 새 정신을 불어넣어 주겠다. 내가 그들의 가슴속에서 돌처럼 단단해진 마음을 드러내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겠다. 20) 그러면 그들이 내 지시에 따라 살고 내가 준 명령들을 존중하며 지켜 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일치한 마음, 섞이지 않은 마음, 깨끗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결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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