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석산(禪石山)742.4m 소개
선석산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과 칠곡군 약목면·북삼읍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42.4m이다.
서진산(棲鎭山) 또는 누진산(樓鎭山)이라고도 불린다.
영암산(鈴岩山, 784m), 비룡산(飛龍山, 546m), 시묘산(侍墓山, 367m)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선석산에는 사적 제444호로 지정된‘성주 세종 대왕자 태실(星州世宗大王子胎室)’을 비롯하여
천년고찰 선석사(禪石寺)와 자연 전망대 역할을 하는 용바위, 태봉(胎峰) 등의 바위가 있다.
바위의 형상이 용의 머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는 정상으로부터 약 2분 거리에 있는데
이곳에 서면 첩첩이 쌓인 가야산과 금오산 줄기가 펼쳐지고,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용바위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태봉에서 내려다보면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단지가 호수처럼 펼쳐진다.
태봉 근처에는 조선시대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9기가 묘여 있는 세종 대왕자 태실이 있다.
산 아래쪽에 자리 잡은 선석사는 신라 말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로,
원래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고려 시대 공민왕 때 현 위치로 이전했다 한다.
그때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터를 닦는다’는 의미를 가진‘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 개칭했는데
이로 인해 산의 이름도 선석산이 되었다.
사찰에는‘선석사 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3호)’,‘선석사 괘불탱(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7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세종대왕 왕자 태실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2003년 3월 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세종대왕의 아들 8대군과 10군의 태실 18기와 세손(단종)의 태실 1기로 전열에 11기, 후열에 8기가 서 있다.
원래는 1438년(세종 20)에서 1442년까지 세워진 수양대군을 비롯하여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단종 등
20여 기의 태실이 있었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반대하여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은 금성대군과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및 안평대군의 태와
장태비는 1457년(세조 3) 태봉 아래로 파내어 쓰러뜨려졌다.
이 5기의 기단석은 1975년 보수, 정화하면서 찾아 원자리에 앉혔다.
세조가 등극한 뒤 세조의 태비 앞에 홍윤성(洪允成)이 글을 지어 비석으로 세웠으나
지금은 심하게 마모되어 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화강암으로 깎은 19기의 태실은 조선 태실 의궤(儀軌) 형식으로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백자로 된 태호(胎壺)를 넣었다.
태호 속에는 태항(胎缸)과 태주(胎主)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誌石)을 넣고 지상에는
기단, 간석, 옥개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각 왕자의 태실을 가리키는 표석을 세웠다.
태실의 옥개 높이는 25㎝, 지름 1.6m, 둘레 3.2m이며 신석은 높이 60㎝, 지름 1.2m, 둘레 2.4m이다.
기단은 높이 45㎝, 지름 2.2m, 둘레 8.8m이고 태비의 높이는 90㎝, 너비는 35㎝이다.
이 태실에서 출토된 태호로 분청 인화문 대접과 분청 상감 연화문 뚜껑 1벌, 명기(銘記)가 있는
지석 2점이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밖의 것은 1929년 왕가로 모두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