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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크리스마스트리 - 인공 낙원
매년 12월이 되면 전 세계 도심 광장이나 시내 한복판 도로에 커다란 상록수가 한 그루 선다. 이 나무의 존재감은 밤이 되면 확연해진다. 대형 건물과 차들로 둘러싸여 있으나, 알전구 속 낮은 조도의 불빛만으로도 나무는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크리스마스트리’라 불리는 이 사물은 도심 특유의 소외 환경에 짓눌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물은 자신이 놓인 주변 환경의 메마름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화시키며 그 느낌을 확산하는 특이한 힘을 지녔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나무(tree)’라고 불리지만 자연의 여러 나무 중 하나가 아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절대 나무’다. 크기가 커서가 아니다. 시청 앞 광장의 큰 트리가 아니라 이맘때 가정의 거실에 놓인 작은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알전구의 황금색 불빛은 혹한에도 따뜻한 감성을 발산하며, 눈꽃은 어른에게도 아이의 천진한 설렘을, 상록수 빛깔은 늘 푸른 청년의 시간을 환기한다. 와인색 구슬 장식에는 종교적 수난과 산타클로스의 유쾌한 이미지가 포개져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이러한 ‘장식’들을 통해서야 비로소 ‘트리’가 된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마스트리는 자연에서 태어난 나무가 아니라 실은 인공으로 탄생한 ‘거룩한 사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종교적 모티프를 소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물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인공적 손길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이 사물은 평범한 자연 침엽수에 머무르고 말았을 뿐, 여기에서 거룩한 사물로의 승화라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 남부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를 ‘파라다이스(낙원)’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낙원은 어디 있는가? 성스러운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춘추시대의 순자는 ‘사람다움’이란 백지 상태에서 문화적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사람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문물이 가능한 세계가 바로 낙원이라고 보았다. 보들레르는 예술가는 인공낙원에서 안식을 찾는 자라고 말했다. 니체는 낙원의 거주자는 신(神)이 아니라 ‘주인도덕’을 지닌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이런 사람을 노예근성과 제 안의 짐승성을 극복하려는 인공적 노력의 산물로 여겼다. 이들 모두에게 거룩한 정신은 신의 본성이 아니라 ‘넘어서려는 인공적 인간 정신’ 그 자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