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안해
최명애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기억나는 일이 있다.
새벽에 눈을 뜨니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중요한 날인데 하필이면…. 아침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불안하다. 빠뜨린 것이 없는지 살피고 또 챙겨본다.
아들이 수시모집 추천을 받아 Y 대학 경영학과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아침 9시가 면접이라 지방에서 아침에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할 듯하여 경기도 동생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교복을 챙기는 아들에게 비가 오니 사복을 입고 가서 학교에 도착하여 갈아입으라고 권했다.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중요한 날이니만큼 교복을 깨끗하게 입히려고 새벽에 일어나 다리고, 구겨지지 않도록 양복 케이스에 넣었다. 교복을 가지런히 넣으니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며 벌써 합격한 듯 설렌다.
교복이 든 케이스는 내가 들었다. 거의 매일 복잡하다고 느낀 서울 지하철이 웬일로 한산하다. 자리에 편히 앉아 가게 된 것도 좋은 징조같이 느껴진다. 양복 케이스는 구겨질세라 선반 위에 넓게 자리 잡아 반듯하게 펴놓았다. ‘이 정도면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아닌가.’ 하며 마음이 뿌듯하다. 의젓한 모습으로 입학하는 아들을 상상하며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역, ◯◯역’이라고 연거푸 방송에서 울려 나온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에 졸음도 약간 오던 터라 아들 손을 잡고 허둥지둥 내린다. 용케도 바로 택시를 잡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신촌 Y대로 향한다. 학교에 거의 도착한 순간 가슴이 쿵쿵 뛰고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아뿔싸, 교복! 어쩌지?’ 그때야 선반에 올려 둔 교복이 생각난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만 머리에 가득 찬다.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낯선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할까. 지하철역으로 전화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당황한 나머지 온몸이 떨리고 아들에게 민망하여 고개를 들 수 없다. 안절부절 허둥대는 내 모습이 가관이었나보다.
“엄마, 지금은 방법이 없으니 일단 학교로 들어가요. 면접 시간이 조금밖에 안 남았어요. 예상 문제도 한번 훑어보게요.”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는 아들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른다. 넋 잃은 사람처럼 한참 서 있다가 눈을 감고 가만히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친다. 아들에게 태연해 보이려고 억지 미소로 마음을 감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면접 예상 문제를 물어봐달라는 아들의 모습은 나를 더 미안하고 서럽게 한다.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올 리가 없다.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예상 시험지를 중얼중얼 읽는다. 불안한 마음으로 눈은 연신 다른 아이들을 살핀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는 수험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후줄근한 사복 차림의 아들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실 후 드디어 울음보가 터지고 만다. ‘아이쿠, 이 부족한 엄마야’ 스스로 자책하며 미안한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다. 면접장에 있을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 졸이며 기도한다. ‘일각刻이 여삼추餘三秋라더니 시간은 그렇게 더디 갈 수가 없다.
면접을 마치고 웃는 얼굴로 아들이 나타났다. 왜 교복을 입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지하철에 두고 내렸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는 아들의 말에 다시 가슴이 미어진다. 면접관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듯하여 그다음 질문부터는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고 한다. 존경하는 인물로는 법정 스님을 택했다고 한다. 집에서 가족 간에 대화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나서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아들 몰래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만가만 가슴을 쓸어내린다.
교복에 대한 첫 질문에 대답할 때 면접관의 표정이나 반응에 얼마나 긴장하고 부끄럽고 움츠러들었을까?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쉬워하는 아들의 모습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학교 교문을 나오면서 도움을 주지 못한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고 전할 때도 목소리가 떨린다. 죄인의 심정이 되어 다시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내일부터 등교하려면 교복이 필요하다. 대구 도착하면 늦어서 교복 상점도 문을 닫았을까 걱정된다. 실습하러 가는 친구에게 전화하니 마침 고맙게도 교복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팔이 조금 짧아 불편했지만, 다시 살 필요 없이 졸업할 때까지 요긴하게 입고 다녔다.
25년 전의 일이다. 아들은 그 후로 한 번도 그 일을 원망하지 않았다. 다른 학교에 진학했고 진로도 달라졌다. 나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화병이 날 지경인데 침착하게 다음 행보를 이어 나가 준 아이가 고맙기만 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해마다 가을이 되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미안함, 안타까움과 함께 가슴까지 아린다. 이렇게 큰 실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하기에.
첫댓글 그런일이 있었군요. 그래도 아들 인생~잘 읽었습니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난 날은 잊어버리세요. 더 좋은 일들이 기다립니다.
부모는 절대 잊히지 않지요. 자식에게 다하지 못한 일과 맛있는 것 먹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가슴에 담겨있죠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