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05) 유비가 갈 곳은?
다음날, 조조는 하비성에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주력군을 이끌고 서주성으로 돌아왔다.
그런 뒤에 휘하 장수들과 참모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조조가 도열한 참모와 장수들 앞으로 들어오며 말한다.
"모두 들으시오! 우린 이번 전투로 서주 육군을 얻어 위엄을 떨치고 세력도 강해졌소.
이건 우리가 거병한 이래, 가장 크게 이룬 승리요.
이로 인해 우리는 잠시나마 기쁨에 취했소.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소. 왠지 아시겠소?
그건 기주의 원소가 대군을 앞세워 공손찬 토벌을 시작했기 때문이오.
요 몇 달 동안 원소의 압박 때문에 공손찬이 큰 손실을 입었다 하니, 이대로 가다간 얼마 되지않아 유주가 원소의 손에 넘어갈 것이오.
그리 된다면 대한 천하를 원소 혼자 독식해, 청주,유주, 병주, 기주를 손에 넣는 최강의 제후가 되는 것이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조조는 며칠 전 밤 있었던 초선과의 밀회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깨져 버린 것에 대한 불만이 희석된 차갑고 냉랭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모사 순욱(謀士 筍彧)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주공의 말씀은 조만간 원소와 생사를 가르는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며, 그 전투로 천하의 주인이 결정될 것이라고 들립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한 팔을 들었다 내리며,
"그렇소! 그럼 이 순간 내가 뭘 원하겠소?"
조조의 말은 점차 격앙되어 갔다.
그러자 곽가(郭嘉)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주공께서 원하시는 것은 원소와 공손찬의 싸움에서 승패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전쟁이 길어질 수록 원소 진영과 공손찬 진영의 손실이 계속 커질 것이고, 주공께서도 시간을 벌어 최후의 결전을 위한 충분한 준비가 가능하지요."
하고 말했다.
조조는 곽가가 자신의 속을 들여다 보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호쾌하게 웃으며 자리의 탁자를 <탁!>하고 치며,
"으하하! 맞소!"
하고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명이다! 모래 허창으로 귀환해서 군을 정비한다!"
하고 말하니, 일동은 읍하며 동시에 복명하였다.
"알겠습니다!"
한편, 유비는 서주성 성루에서 성밖을 내다 보며 망중한(忙中閑)에 잠겨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관우와 장비가 함께 다가와 관우가,
"형님! 걱정이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유비가 두 사람을 보며 말한다.
"조조가 모래 허창으로 회군을 하니, 우리는 어디로 갈지 생각중이네, 서주는 이제 조조 손에 넘어가 우린 몸 둘 곳이 없지 않은가?"
그러자 관우가,
"조조가 형님을 서주목에 봉한다고 했는데..."
하고 운을 띄우자, 유비가 믿음이 가지 않는 어투로,
"흠!.. 조조는 여포에게도 삼군 대원수에 봉하겠다고도 했었지..."
"서주성이 안 된다고 하면, 소패에 남는 것은 어떨까요? 형님께서는 큰 공을 세우셨고 그동안 많은 굴욕도 참으셨는데, 조조에게 부탁하면 설마, 소패성 하나 쯤이야 안 주겠습니까?"
관우가 희망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유비는,
"소패에 있게만 해 준다면 물론 나도 좋지. 허창까지 따라 갈 생각은 없으니 말이야. 어쨌든 이젠 조조와는 멀리 할 수록 좋을 것이네."
그러자 관우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유비가 장비에게 물었다.
"셋째, 자넨 어떤가?"
그러자 장비는,
"헤헤헷! 저야 아무러면 어떻소? 형님 뜻이 제 뜻 아니우?"
하고 <퉁>치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관우가 웃으며,
"셋째는 걱정이 하나도 없구만!"
"하하핫! 당연하지요. 이 넓은 천하에 우리가 머무를 곳이 없겠소? 뭐가 걱정이오?"
이렇게 대답하는 낙관적인 장비의 말을 듣고, 유비조차 그를 쳐다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한편, 조조는 참모들과 함께 회군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를 논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조조는,
"곧 회군하는데 따른 여러가지 사전문제는 걱정없이 처리했으나, 단 한 사람 문제만큼은 처리하지 못했소. 유비 말인데, 한 사람은 죽이라 했고, 또 한 사람은 이용하라 했고, 마지막 사람은 이용하고 죽이라 했지. 이제 곧 회군 할 텐데, 이 자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순욱이 아뢴다.
"여포는 죽고, 서주는 주공께 귀속됬습니다. 유비는 갈 곳이 없어졌으니 주공께 의탁하려 할 것입니다. 죽일 이유가 없어졌지요. 오히려 이용해야죠. 그래서 유비를 잘 쓰게 되면 주공께서는 현군이라는 칭호를 들으시게 될 겁니다."
이어서 곽가가,
"혹시 주공께서 유비에게 서주목에 봉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말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곽가는 한숨을 쉬며,
"하!... 분명히 말씀하십시오.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자 조조가 곽가를 똑바로 쳐다보며 똑 떨어지게 대답한다.
"있었네!"
그러자 곽가가 냉철한 어조로 말한다.
"그럼 약속을 지켜, 유비를 서주목에 봉하십시오. 단, 명분은 주되, 실권은 주지 말고 믿을 만한 장군을 서주에 남겨서 군정과 민정을 장악케 하고, 유비는 그냥 소패에 남겨두도록 하십시오."
곽가의 말을 턱을 괴고 듣던 조조가 선듯 대답하기를 주저하자, 순욱이,
"저도 동의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도 조조가 대답하지 않자, 정욱(程昱)이 읍하며 아뢴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쯤 되니 조조는 어쩔 수가 없이 결정을 해야했다.
그러나 조조는 눈을 깜박이며 턱을 괸 손을 까불리더니 이어서 눈을 감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눈을 번쩍 뜨면서,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바로 그때, 병사 하나가 달려 들어오며 아뢴다.
"보고 합니다! 이곳 서주 지역 대표들이 대장군을 뵙자고 청합니다!"
"무슨 일로?"
"허창으로 곧 회군한다는 말을 듣고, 서주 오백만 백성들을 대표하여 만민서를 바친다 하옵니다."
그러자 조조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그래? 그건 뜻 밖이로군, 우리가 서주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주 백성들이 그렇게까지 섬기다니, 민심이 좋구만! 음, 하하하하!... 들어 오라고 해라!"
"예!"
병사가 나가자, 조조는 지금까지 자리에 기대고 앉았던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서주 지역의 대표들을 경건히 맞을 준비를 하였다.
잠시 후, 두 손으로 만민서를 떠받든 서주지역 대표 노인이 일행과 함께 조조앞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조조앞에 일제히 무릅을 꿇고,
"소인 노일호가 대장군을 뵈옵니다!"
하며 일동이 조조에게 절을 하였다.
조조는 따듯한 음성으로 대답한다.
"어서들 일어 나시오."
그러자 노일호가,
"대장군께서 곧 허창으로 회군하신다 하여 서주 육군의 백성들을 대표해 만민서(萬民書)를 바칩니다. 부디 대장군께서는 유 공 현덕을 남겨 서주목에 재임토록 해 주십시오."
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누구?"
조조는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놀라 물었다.
그러자 노일호 노인이 다시 대답한다.
"유 공 현덕 , 아, 유비 말씀입니다."
하고 고쳐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조조가 실망스런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유가 뭐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노일호 노인은,
"예, 대장군. 유 공은 백성을 사랑합니다. 도겸이 죽고, 유 공이 아홉달 동안 서주목을 관장했는데, 그 아홉달은 우리 서주가 가장 태평했던 시기였습니다. 유공은 각군(各郡)의 조례를 개정하여 탐관을 척결하고 조세를 감면했으며, 또 다리를 세 개나 놓았고, 오백장(丈)이 넘는 제방으로 관계시설을 만들어 농가에 풍년이 들고,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대장군! 서주 백성들이 지금까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전일 유 공께서 어진 정치를 펼쳤던 덕이니, 그런 현명한 주군을 모실 수 있도록 살펴주시기 바라옵니다."
노일호 노인의 이같은 말이 끝나자, 함께 온 서주 지역의 대표들이 일시에 아뢰는데,
"대장군! 살펴 주십시오!"
하고 같은 소리로 복창을 하니, 조조는 노일호 노인의 말도 놀랍거니와 자신의 내심의 뜻과 전혀 다른 요청을 받자, 난감하기만 하였다.
그것은 참모인 순욱, 곽가, 정욱도 마찬가지로 이들은 노인의 말 중간 중간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놀라거나 조조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역 대표의 말이 끝나자 조조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렇게 조조가 대답하기를 주저하고 있으려니, 서주지역 대표들은 다시 한번 입을 모아,
"대장군! 유 공을 서주목에 봉해 주십시오!"
하고 일동이 합창하 듯이 아뢰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조조는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내어 웃었다.
"허허허허!... 아 하! 유비가 그렇게나 현명하다니! 그렇다면 조정에 기둥이 될 재목이로군! 헌데, 그런 인물에게 서주목을 맡긴다면 오히려 그게 억울한 일이 아니겠소, 응? 하하하...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음... 여러분이 올린 이 만민서를 조정에 올리고, 여러분의 뜻을 천자께 알려, 천자께서 친히 유비를 서주목에 봉하도록 할 것이오. 어떻소?"
임기웅변에 능한 조조는 유비를 서주에나 소패에 놓아 두고 가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하고, 허창으로 데리고 갈 명분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역 대표들은 이러한 조조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 하고 일동이 조조를 향하여 엎드려 절하며 외치었다.
"고맙습니다. 대장군!"
이들이 물러가자 조조는 손에 들고 있던 만민서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외쳤다.
"유비는 절대, 서주는 물론이고 소패에 조차 남겨두지 않겠다!"
그러자 순욱이 말한다.
"조금전에 주공께서 서주에는 유비의 명분만 세워놓고 소패에 남겨두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조조가 손가락까지 펴들고 대단히 흥분한 어조로,
"방금, 서주의 유지란 자들이 하는 말을 못 들었소? 유비가 벌써 서주의 민심을 얻지 않았나? 그 놈에게 명분을 주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실권까지 쥐게 될 것이고, 서주에 남긴 우리사람은 유명무실하게 될 꺼야! 그렇게는 안 돼지! 유비를 남겨 두면 안돼! 놈을 허도로 데려간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쳐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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