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항서로 촉발된 죽음에 대한 생각 (2026. 9. 11)
이미환
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때이른 낙엽으로 떨어져 내린다. 푸른 하늘을 등지고 밝고 휜 구름이 두둥실 떠다닌다. 식탁위 시원한 오이 냉국은 김이 모락이는 콩나물 국으로 바뀌었다.여름내 축축히 묻어나던 습기는 어느새 그 건조함에 양볼이 푸석해지고, 마트엔 커다랗고 누런 호박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이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매년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익숙한 얼굴이다. 우편함을 열기 전까지만...
"귀하께서 작성하신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되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여름이 무르 익을 무렵 남편과 함께 건강보험공단을 방문했었다. 숙제처럼 떠안고 미루어 오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마치고 가뿐한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 곧바로 이어진 다른 일정들로 그 일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뒤늦게 이제금 도착한 등록증을 손안에 들자니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여러 갈래로 피어 올랐다. 아름다운 죽음의 이미지 한가닥을 손에 잡힐 듯 떠올리며 그 장면을 찾아 다시보기 버튼을 눌렀다.
삼국지에서 보여준 조조의 죽음 장면이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선 집안 만큼 편안한데가 없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고, 넷플릭스에서 95회로 연재되는 대작 '삼국지'를 보며 여름나기를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여름의 끄트머리가 되어 때마침 영화관에서는 오디세이가 상영되었다. 그 탓으로 최근에 소규모 모임에선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오디세우스 못지 않게 지혜로운 영웅이라 생각되는 '삼국지의 조조'가 자꾸 생각났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 조조가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지금껏 내가 직간접적으로 보아온, 책을 통해 또는
영상을 통해 보아온, 픽션 논픽션에서 다룬 죽음을 맞이하는 온갖 군상들의 모습을 통틀어서 으뜸이었다.
조조가 병상에 드러눕고, 오나라 손권과 중신들로 부터 황제로 등극할 것을 주청받지만, 조조는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다 얻었다"고 황제 등극 주청을 내치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한조각을 손으로 어르며 그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죽음을 예견하곤 아들 '조비'를 불러 주군으로서의 재목을 다시 한번 시험하고 적합함을 확신한 뒤. '조비'와 독대하여 한 나라의 주군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지켜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을 조언과 유언으로 은밀히 전한다. 자신의 사후에 일어날 혼란을 염두에 두고 중신들을 한자리에 불러 안정적인 이양을 위하여 해야 할 조치들을 해낸다. 마지막 죽음이 임박해 온 장면에서 "죽음은 시원한 여름밤에 편안하게 자는 잠처럼 두렵지 않다" " 사람들은 나를 잘못 보았고, 현재도, 미래에도 잘못 보겠지만 나는 남들의 이목따위 두렵지 않다. 나는 여전히 나다'며 담담히 죽음을 마주한다. 특히 압권인 것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여 물잔속의 물을 오른손 손가락에 적셔 올려 세 손가락에 맺힌 물방울을 응시하다 공중으로 튕겨 보내곤 앉은 채로 숨을 거둔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서 한 사람이 삶을 살아온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의 모습에 삶의 태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또한 역으로 삶속에 죽음이 내재되어 있으며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고도 한다.
이는 곧 오늘의 내 삶의 자세에 내일의 죽음을 맞이하는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까?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 하려면...
가을은 결실의 충만함과 함께 낙엽으로 스러져가는 아쉬움을 내포하고 있다. 봄과 여름의 찬란함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채 다가올 추운 겨울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물기 없는 가을 바람 속에는 상쾌함과 스산함이 혼존한다. 가을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 이와같은 가을의 입체성은 그에 합당하게 예로부터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
2026년 내게 가을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의 도착과 함께 죽음에 대한 사색으로 시작되고 있다. 감이 발갛게 익어갈 즈음 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도 좀더 깊고 원숙하게 무르 익어가길
기대해 본다.
첫댓글 미환선생님 아직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할 나이가 아닙니다. 더욱 정진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죽음을 모두 원합니다. 늘 기도 하면 이루어집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잊었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태어남이 나의 의도가 아니었듯 죽음도 나의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의 인생 시간을 계절로 바꾼다면 분명 가을 즈음을 지나고 있을 터인데 준비를 하는것이 맞겠지요. 글 잘읽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셨군요. 가을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계절로 해석했고, 조조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내일의 의연한 종말을 위해서 오늘을 잘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이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고 있을 때
선생님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잘 등록 하셨어요.
사람은 언제나 존엄한 죽음을 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죽음을 성찰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죽음이란 두 글자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무겁습니다.
26년 가을은 선생님께 참 뜻 깊은 가을에 쓴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