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덕길
장마가 오락가락 하는 사이 마음은 지치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지치고 피곤할 땐 쉬어야 한다.
쉰다는 것은 일상으로의 탈출이다.
사람이 지치고 힘든 이유는 반복되는 생활의 연속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 충실하다가 문득 거울속의 나를 보았을 때 내가 많이 약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그것은 바로 지쳐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여행을 떠나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유가와 물가 때문에 어디를 간다는 것이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택한 것이 단체 여행이다. 한때는 관광지만 골라 다녔고 절까지 구경하면 그게 끝인 줄 알고 지낸 적이 많았다.
내가 산을 타고 산이 나를 이해하려고 할 때 나는 비로소 산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하는 산으로의 여행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도 드물다.
오늘 서산 황금산 트레킹역시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절을 택해서 절까지 올랐듯 언제부터인가 산을 택하고 산 정상까지 오름을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언제부터인가 나는 트레킹의 맛에 푹 빠져버렸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영덕 블루로드, 청산도 슬로우시티, 남해 바래길, 등을 걸으며 나는 나를 생각했고 지친 나에게 휴식을 선물했다.
길은 구불구불 이어져 산을 만나고 강을 만나고 바다를 만났다.
길이 만나는 곳에 내가 있을 때, 나는 즐거웠다. 길이 이어진 곳에 내가 섰을 때, 나는 나를 내려놓았다. 다시 길을 나설 때, 나는 다시 나를 챙겨서 내가 가야할 길을 물었다.
트레킹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고 그 비경이 사진 속에 들어올 때, 마음은 벌써 서산 황금산 해안길을 거닐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면서부터 우리는 안면이 있는 친구와는 미소로 처음 보는 친구와는 목례로 인사를 나누었고 그래도 더 반가운 친구와는 악수로서 인연을 확인했다.
‘그래 내가 많이 외면하면서 살았구나. 나 스스로 벽을 만들고 있었구나. 여기 이대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랬다.
외로움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벽을 쌓고 스스로의 테두리 안에 갇혀 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외로움이 깊으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깊으면 지독한 우울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힘들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테두리 안에서 과감히 탈출을 할 줄도 알아야한다.
저 밝은 친구들의 미소를 보라!
우리 밟는 이 길에서 우리의 일상은 잠시 잊기로 하자. 그리고 지금을 즐기기로 하자.
서산 황금산 해안 길은 그야말로 천상의 길이었다.
금강산보다 아름답고 장가계 보다는 약해도 사량도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빼어난 비경이었다. 라고 나는 감히 말하는 바이다.
먼 바다는 가까운 바다 밖에서 흐릿했고 가까운 바다는 몽돌 밭 밖에서 숨죽이며 흐느꼈다.
꽃게가 산비탈에 올라와 붉은 토씨를 입을 때, 태양은 간간히 구름 틈에서 내리 쬐었고 바람은 하늘 저 위에서만 구름을 몰아가고 있었다.
‘어라? 몽돌에도 나이테가 있네.’
해풍에 시달리고 파도에 만신창이가 되어 수천 년, 수만 년 풍파세월 견디고 견디다가 끝내 켜켜이 주름을 쌓아가며 만들어진 몽돌밭, 그 몽돌의 일대기가 일순 장엄하다.
해안가 아스라이 펼쳐진 해안 단애들은 깎아지를 듯 아팠고, 바람은 바위를 후벼 파서 파인 바위가 사시나무 떨듯 위태했다.
이 절벽 너머에 저 절벽이 우뚝 솟아 다음 절벽을 감추었고 이 바다 너머 저 바다에서는 애타는 파도 울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끝내 부서져 내려 돌멩이가 된 바위를 밟으며 나도 몽돌의 일부가 되고 친구들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
간이 그늘 막 안에서의 점심은 꿀맛이다.
“산행을 와야만 내가 잘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다니까…….”
어떤 친구의 말이 명언이다.
정성스레 차린 꼬막조개무침, 계란말이, 닭발, 즉석 골뱅이무침, 초밥, 모둠 고기볶음, 고추볶음, 까지 어느 한 가지 맛이없는 게 없었고 어느 한 가지 남기고 갈 음식이 없었다.
산을 닮고 바다를 닮은 내 친구들과 함께해서 더 행복한 하루였다.
언제 다시 오늘의 황금산 해안길이 소설로 재 탄생할지 나도 모른다.
다만, 그 자리에 네가 있었고 내가 있었고 네 눈에 눈부처 있어 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나는 기억하리라.
참석한 친구들 일일이 이름 부르며 써야하는 감칠맛 나는 후기를 나는 쓸 줄 모른다.
내 눈에 넣어서 아프지 않은 이가 친구들이었기에 나는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매운탕에 들어간 그 작은 게 까지도 오늘은 소설이 된다.
모두 고맙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