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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사백(국악을 사랑하는 백성들) 원문보기 글쓴이: 나팔꽃
시낭송과 시퍼포먼스의 경계는 어디인가?
시낭송(詩朗誦)이란 말 그대로 시를 낭랑한 소리로 암송한다는 뜻이다.
랑(朗)의 한자 뜻은 밝을 랑, 낭랑하다의 의미이고 송(誦)은 외다, 암송하다의 의미이다.
활자로 된 시를 보고 읽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 완전히 외워서 낭송을 한다는 뜻이니
낭독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흔히들 낭독과 낭송의 차이를 잘 모르고 혼용하여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분명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시 한편을 표현하는데 종이에 씌어진 것을 보며 읽는 것과
완전히 외워서 암송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연설을 하는데 연설문을
보고 하는 연설과 그 연설문을 완전히 머릿속에 외워두고 청중들과 시선을 맞추면서 연설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보고 읽으면 평면이라는 2차원의 세계에 갇혀서 평면위에
발을 묶어두고 표현하게 되니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활자 속에 갇혀서 더 이상을
표현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완전히 외워서 암송하는 것은 2차원의 공간에 있던 것을
3차원의 공간으로 이끌어내는 일이다. 평면 위에 누워 있는 시어들을 입체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며 2차원의 공간 속에 갇혀 답답해하던 시를 3차원의 공간으로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외워서 암송을 하면 시가 공간속에서 자유롭게 살아서 움직이기에 얼마든지 멀리 보낼 수도 있고
다시 끌어당길 수도 있고 어두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게도 할 수 있고 저 까마득한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시를 듣는 청중들에게 전해지는 감동의 깊이와
크기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의 시를 외운다는 것은 그 시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며 완전히 이해하고
시를 외웠다면 그 감동이 가슴속에서 물결치게 되고 그 감동을 꺼내 청중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시낭송이다. 긴 산문으로 된 문장을 외우는 것은 무척 힘이 들지만 시는 아무리 긴 시라도
외울 수가 있다. 왜냐하면 시에는 산문에는 없는 운율이 있기 때문이다. 운율은 시가 갖고 있는
음악적인 리듬인데, 어떤 노래를 할 때에 노랫말이 아무리 길어도 선율이 있으면 그 노래를
다 외워서 부를 수 있듯이 시에 있는 운율 때문에 아무리 긴 시라도 충분히 외울 수 있는 것이다.
낭송은 말 그대로 암송을 할 때만이 그 시의 감동을 최대한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낭송(朗誦)은 근본적으로 목소리의 예술이다.
목소리만으로 그 시에 담긴 희노애락을 다 표현해 내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목소리로 얘기를 풀어내는 동화구연과는 또 다르다. 낭송이나 구연이나 목소리를
가지고 하는 예술이지만 동화구연은 story중심의 예술이기 때문에 story를 극적으로 살려서
재미있게 전달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동화구연은 목소리로 하는 모노연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낭송은 연극대사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그저 노래처럼 해서도 안 된다.
노래는 멜로디(Melody) 중심의 예술이기에 시낭송과는 또 다르다.
만약 시의 리듬만을 부각시켜 낭송을 한다면 시어들은 다 죽어버리고 부자연스러운 신파조의
낭송이 돼 버릴 것이다. 시의 운율을 살리면서도 그 시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히
전달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리듬보다도 오히려 정확한 발음과 발성으로 시어(詩語)를
최대한 살리는데 더 중점을 두고 낭송해야 할 것이다.
요즘같이 시낭송대회가 여기저기서 많이 열리는 때가 어디 있으랴.
시낭송대회로서 제일 오래되기로는, 시낭송대회를 크게 유치해서 당시로선 생소했던
시낭송이라는 새로운 문화의 기틀을 마련한 00시낭송협회를 비롯하여 바로 며칠 전에
막 걸음마를 시작해서 제 1회 시낭송 대회를 개최한 시나 도가 있다.
본인은 그럭저럭 1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시낭송 활동을 하면서 각종 시낭송 공연을 하고
크고 작은 시극 극본을 써서 연출도 한 것이 수회에 이른다. 늘 시낭송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공연예술을 이끌어 내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낭송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시낭송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최근에 보았던 시낭송 대회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먼저 9월 말경에 00시낭송대회 서울 예선을
보았고 10월 말경에는 전라도 광주에서 열렸던 제1회 빛고을 전국시낭송 대회를 보았고
또 한 2주후에는 경북 문협에서 주최한 제1회 시낭송대회를 보았다.
우선 00시낭송대회 예선을 보고 많이 놀랐다. 작년까지의 대회와 비교를 해봐도
너무나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잔잔하면서도 정확한 발음으로 튀지 않게 하는 낭송을
지향하던 00시낭송협회의 심사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시낭송 대회를 개최해 오면서 그동안 이 협회는 많은 속앓이를 했음을 알고 있다.
오죽하면 00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00대회에서 좋아하는 낭송의 한 틀이 형성된 것이다.
이 대회에서 좋아하는 시와 낭송의 스타일이 굳어져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소속돼 있는 협회의 회원들 자체에서 스스로들도 식상하여 자성(自省)의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서서히 그 00류의 흐름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올해는 완전히
놀라운 변화를 보았다. 그런데 그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이었으면 반가웠을 텐데...
이 변화 역시 어떤 기로에 서서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대회에 처음 참여해 본 어떤 사람은 “아! 이 대회는 이상하게 튀면서 낭송해야 높은 점수를
주는군요.”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히 심사기준이 흔들린 결과를 보고 정말 놀랐다.
그리고 무척 실망스러웠다. 시낭송계의 종가집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이 단체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우려의 느낌이 강하게 일었다.
나머지 두 지역에서의 시낭송대회는 모두 첫 대회로서 그런 뜻 깊은 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큰 희망과 포부를 갖고 대회를 하고 있었다.
상금도 최소한 대상이 100만원 이상을 내걸고 하는 대회들이었다. 어느 대회나 상금이 크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또 많은 실력가들이 모여들게 되어있다. 이 두 대회 모두 CD심사로
예심을 하고 본선대회를 치렀는데 예심에 CD를 제출한 사람들만 해도 전국에서 200명, 250명
가까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 중에서 광주대회는 32명을 선발해서 본선을 했고 경북대회는 15명을
선발하여 대회를 치렀다. 경북대회 같은 경우는 20대1에 가까운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이었다.
이 두 대회는 20일의 간격을 두고 열렸는데 공통점이 많았다.
첫째는 CD심사로 예심을 본 것, 두 번 째는 배경음악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배경음악을 CD로 구워가지고 오라했다.( 나한테 시낭송을 공부하는 분들이 출전을 하셨기에
음악 선정이며 CD로 준비하는 과정 등을 도왔다. 다행히 그 중의 두 분이 대상과 동상을 타서
큰 기쁨을 안겨 주셨다.)
난 배경음악을 준비하라는 얘기를 들으면 늘 멈칫해진다. 배경음악.... 배경음악을 찾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낭송 대회에 배경음악을? 하는 반감 때문이다. 본인은 이미 오래전에
시낭송대회를 거쳐 지금까지 낭송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때만 해도 배경음악을 쓰는
대회는 거의 없었고 시낭송 대회에서 배경음악을 쓰는 것은 금기시해 왔었다.
지금도 내가 알고 있는 몇몇 꽤 큰 대회에서는 절대 배경음악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배경음악을 쓰게 되면 모든 시가 똑 같아지기 때문이다. 시가 시로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음악이 주인공이 되어 시를 다 잡아먹어 버린다.
음악의 선율이 너무 강렬해서 그 선율 위에 시가 얹히게 되면 낭송하는 사람이나 듣는 청중이나
그 선율에 따라 정서가 흐르게 되어있다 . 그러다보면 정작 시는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시낭송도 아닌 것이 음악 감상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낭송자들도 음악에 맞추어
낭송하다보면 낭송이 비슷하게 되어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낭송대회 때마다 듣게 되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은 어떻게 시낭송이 이렇게 천편일률적이냐 하는 것이다.
시낭송 심사위원으로 많이 뵙게 되는 허영자 교수님은 심사평을 하실 때 늘 거의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시는데 바로 그것이다.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한사람이 낭송하는
것처럼 비슷하다. 그 수많은 사람이 낭송을 하는데 왜 그런가 하는 말씀이다.
그렇잖아도 똑같은 시낭송을 한다는 핀잔을 듣는데 배경음악을 깔게 되면 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음악을 쓰게 되면 그 음악의 오르내리는 선율에 맞추어 낭송의 흐름을
맞추느라 한참씩 음악을 흘려보내다가 또 낭송을 하곤 하게 되니 어느 심사 위원은
낭송을 왜 그렇게 한참씩 쉬었다 하느냐 무척 지루했다 라는 말을 했다.
그것도 바로 배경음악을 씀으로 해서 생기는 부작용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지
배경음악을 쓰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배경음악을 깔아놓고 음악은 음악대로 흘러가게 놓아두고 낭송은 낭송대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오히려 감상을 방해하는 잡음밖에 되지 않는다.
즉 음악이 숨 쉬는 부분과 낭송이 숨 쉬는 부분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배경음악을 쓰는 것이 다 부적절하다는 것이 아니다.
배경음악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우는 따로 있다. 어떤 행사에 초청되어
공연 형식으로 시낭송을 할 경우이다. 그런 때는 낭송 실력을 겨루는 대회가 아니라
공연이라는 특성을 살려서 낭송만 너무 부각시키지 않고 배경음악으로 살짝 옷을 입혀서
마음껏 음악과 호흡을 맞추면서 혹은 적절한 움직임도 섞어주면서 낭송을 끌고 갈 수 있다.
그러면 왜 주최 측에서는 이런 부작용들을 다 감수하고 혹은 무시하고 배경음악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명료하고 동일하다. 낭송만 하면 듣는 사람이
지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최측엔 미안한 말이지만 천만의 말씀이고 낭송을
잘 감상할 줄 모르는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맛있는 줄 모르고 무감각해진다. 마찬가지로 배경음악을 깔고 낭송을 하는 대회를 가보면
처음 한두 편은 즐겁게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10편 20편 30편을 계속 음악을 깔고 들으면
그것이 오히려 답답하고 지루해지는 것이다. 그냥 그 사람 나름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즐기면
각기 음색도 다르고 표현방법도 다르기에 지루하지 않을 것을 음악이 계속 흐르니
더 지루해지는 것이다
이번에 경북 문협에서 주최했던 낭송대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2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15명의 낭송자들이 본선대회를 하는 것인데
모두들 주최측의 요구대로 나름대로의 배경음악을 준비해 왔고 낭송자가 무대에
올라가서 인사를 하고나면 음향실에서 음악을 틀어주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거의 뒷번호 쯤 가서 낭송자의 음악이 나오질 않았다. 준비해온 CD가 기계에서
먹히질 않는 것이었다. 마냥 시간을 보낼 수 없으니 할 수없이 그냥 음악 없이
낭송을 하였는데 그때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시어들이 하나하나 살아서 제 빛을 발하며
가슴에 들어와 박히는 것이었다. 답답하던 귀가 시원하게 열리고 숨통이 트이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아! 내가 지금 시낭송 대회에 와서 시낭송을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낭송자는 좋은 상을 탔다.
아마 모르긴해도 심사하는 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시낭송과 함께 음악이나 음향효과가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바로 시 퍼포먼스(performance)다. 우리는 퍼포먼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쓰고 있는데
퍼포먼스(performance) 의 사전적 의미는 실행 ,수행, 행위, 연기 등인데 예술행위의 개념으로
볼 때는 performance art 라 하여 육체의 행위를 음악, 영상, 사진 등을 통하여 표현하려는
1970년대에 시작된 예술 양식이다. 어떤 예술이 전통적인 장르개념으로는 표현을 충분히
할 수 없을 때 신체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예술행위를 말한다.
이번에 내가 두 대회를 보면서 느낀 것은 특히 경북대회에서 더 느낀 것은 낭송대회가 아니라
퍼포먼스 대회를 했다는 느낌이었다. 음악을 쓰는 자체부터가 그렇지만 음악을 쓰다보니까
낭송자들의 낭송도 음악에 맞춰서 거의 연극대사를 하는 식으로 되고 또 거기다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과도한 몸짓을 섞게 되는 것이다.
한 출전자의 예를 들어보면 그 낭송자는 많이 알려진 시는 아니지만 아주 독특한 시를 낭송했고
시에 맞는 의상이며 배경음악을 거의 완벽하게 준비했다.
그 낭송자가 낭송을 할 때는 무슨 마력이 있는 듯 모두가 그녀의 낭송에 빨려 들어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녀는 우선 늘씬한 외모에 시의 분위기에 딱 맞는 의상에
무엇보다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배경음악을 준비해서 그 음악의 신비스런 선율에 맞추어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신비스런 손동작을 계속했고 또 음색도 가성을 많이 써서 강렬한
목소리 연기를 했던 것이다. 거의 완벽하게 연기를 했지만 그걸 다 듣고 나서 생기는 의문은
저것이 과연 시낭송인가. 저 낭송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저 낭송을 잘하는 시낭송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음악이 없었다면 그렇게 낭송할 수도 없었고 그런 손짓을
할 수도 없었을 텐데 그 낭송자는 최대한 시의 분위기에 맞는 의상과 음악과 연기를 해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낭송자가 결국은 대상을 받지 못하고 또 나중에 좋지 않은 뒷말을 듣게 되는
것은 그 대회가 시퍼포먼스 대회가 아니라 시낭송대회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퍼포먼스 대회였다면 그 낭송가가 대상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낭송과 퍼포먼스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요즘 시낭송대회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의 시낭송계가 지금 시낭송과 시퍼포먼스의
경계에 서 있구나하는 느낌이다. 그 경계에 서서 이리 갈지 저리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느낌이다.
그것을 낭송자도 모르고 심사하는 사람들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절실하게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이번 대회에서도 보면 심사평을 할 때는 분명히 그런 연극적인
낭송은 낭송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하게 평을 해놓고서는 결과를 보면 그런 낭송자 들에게
큰상을 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지?” 하는 의문과 불만을 갖게 된다. 그
래서 본인은 요즘의 추세를 보면서 나름대로 그런 결론을 얻었다.
낭송대회는 분명히 낭송대회로서 그 본연의 모습을 지켜야하고 그 외에 시 퍼포먼스대회를
따로 개최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시 퍼포먼스 대회는 일정 시간만 정해주고 그 나머지 부분은
거의 제약이 없고 다만 그 시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서 표현해내면 되는 것이다.
왜 그런 옷을 입었느냐. 왜 그렇게 동작을 많이 넣었느냐 라고 탓할 필요가 없다.
음악이든 춤이든 노래든 마임이든 오로지 그 시를 잘 살려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모든 요소를
아무런 규제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낭송자 들도 헷갈리지 않고 그 시를 극적으로 살릴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최대한
동원해서 활발하고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정말 잠자던 시를 극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심사의 기준도 확연히 달라져야한다. 심사의 방향이 분명해지면 심사위원들도
심사하기에 편해질 것이다. “저건 괜한 사족(蛇足)이다.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의미한 동작을
하고 있구나!” 하는 요소들이 보일 때 그때 감점을 하면 되는 것이다.
괜히 어정쩡하게 시낭송도 아니고 시 퍼포먼스도 아니게 표현하는 것보다 그런 분명한 경계를
지어주고 대회를 개최한다면 훨씬 좋은 낭송이 나오고 뜻밖에 좋은 시 퍼포먼스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더불어서 우리의 시낭송도 한 차원 높게 발돋움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댓글 참 많은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나름 시낭송 대회를 나가 보지만 말과다른 어떤 기준인지가 헷갈릴때가 많은건 사실입니다. 대회와 공연은 반드시 구분이 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과 배경음악은 정말 공연때나 써야 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동감합니다~~* 시낭송 감상할때 음악이 들어가면 정말 음악에 마음이 뺏겨버려 시낭송을 감상할수가 없게 되더라구요 ~~
엊그제..마른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작은 잎새하나...를 부른 가수가 7080콘서트에 나와서 시낭송을 했어요. 노래 보다도 시낭송과 글 낭송을 많이 하러 다닌다더군요. 그런데..잔잔한 음악(아주 작은..들릴듯 말듯)에 마추어 암송이 아니고..보고 낭송하는데..그속에 내가 있는듯 했어요. 갠적인 생각에 꼭 암송을 해야 하는가 였어요^^
깜짝 놀랬었는데- 글쓴이가 "유화"님인줄 알고... - 제 소견은 노래나 시낭송의 공통점은 정확한 발음과 내용의 전달력이라 할까...나머지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액스트라들이라 할까... 일종의 효과적 요소로 봅니다 자기만의 창의력과 독창성이 부족하면 "만신"을 찾듯이 헤매다 죽는거죠....
요즈음,,,그저 시낭송의 본질은 문학이라는것,,,,언어의 통찰력으로 이루어지는 시,시낭송,,,여러가지 공부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