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01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 속죄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니”
“아론의 아들들 중에서 그를 대신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소제를 드릴지니 그것은 주께 영원한 규례니라. 그것을 전부 불사를지니 제사장을 위한 소제물은 완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지니라." 하시니라. 주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속죄제에 관한 법은 이러하니라. 속죄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니 주 앞에서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물을 잡을 것이요, 죄로 인하여 그것을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거룩한 곳 즉 회중의 성막 뜰에서 먹을지니라.(레위기 6:22-26)
("The priest from among his sons, who is anointed in his place, shall offer it. It is a statute forever to the LORD. It shall be wholly burned. "For every grain offering for the priest shall be wholly burned. It shall not be eaten." And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Speak to Aaron and to his sons, saying, 'This is the law of the sin offering: In the place where the burnt offering is killed, the sin offering shall be killed before the LORD. It is most holy. 'The priest who offers it for sin shall eat it. In a holy place it shall be eaten, in the court of the tabernacle of meeting.)”
임마누엘!!
하나님은 이제 속죄제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속죄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범한 죄악이 얼마나 흉악한 것임늘 반대급부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지극히 더럽고 흉악한 것을 해결하는문제는 그 반대로 지극히 거룩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본문에 언급된 ‘지극히 거룩함’에 관한 말씀 탐구입니다.
히브리어 'qodesh(코데쉬)'. ‘구별(apartness)’, ‘거룩함’, ‘신성함(holiness, sacredness)’를 의미합니다.
코데쉬(qodesh,명남)는 카다쉬(qadash)에서 유래했으며, '분리됨, 거룩함, 신성함'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70회 나오고 있습니다.
명사 코데쉬는 '거룩함'의 개념을 내포합니다. 즉 이것은 거룩한 영역에 속하는 사물, 따라서 범속한 것과는 구별되는 사물의 본질적 특성입니다. 이러한 구분이 레 10:10과 겔 22:26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여기에서 코데쉬가 홀(불경스러운, 세속적인, 범속한)의 반의어로 등장한 것입니다.
"거룩한"이라는 단어가 '두려운 신비'(mysteriumtremendum)를 시사한다는 오토(R. Otto)의 견해는 매우한 견해라고 봅니다. 즉, 그것은 어느 정도의 경외를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신격과 거의 같은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의 거룩한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내실을 거룩한 곳들 중의 거룩한 곳이라 불러 ‘지성소’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그의 능력의 신비성과 관련시킬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선하고 전혀 악이 없는 그의 속성에로도 귀착 시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객체들은 제의적 불결성이 전혀 없는 객체들이며, 이러한 제의적 불결성은 도덕적 불결성도 의미합니다. 이 거룩한 객체들은 단순히 바쳐졌을 뿐만 아니라 선한 것에로 바쳐졌으며 악한 것과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사 의식상으로, 더럽히는 것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진정 영적 도덕적 성결을 의미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 구약성경으로부터 신약에 인용되었습니다(벧전 1:16, 레 19:1, 레 20:7 등등).
그리고 소위 성결 법전이라는 것은 윤리적 색체가 강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모습을 반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윤리적으로도 거룩한 분으로 계시하면서, 하나님 자신을 닮은 거룩한 속성에로 인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종교의 기본 요소 중 하나는 신성의 영역과 범속의 영역 간의 상호 불가침적 구별을 유지시키는 것이었습니다(민 18:32).
고유적으로 거룩한 것, 또한 하나님의 법률이나 종교 의식에 의해 거룩하다고 명명된 대상은 범속한 것으로 취급하면 결코 안되었습니다.
안식일은 거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과 관련된 금지 사항들은, 그날의 독특한 성격을 유지시켜 주고 그 날이 범속한 날로 취급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출 16:23-26, 사 58:13, 사 58:14).
제사장들에게는 그 거룩한 신분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특별 제한이 가해졌습니다(레 21:6이하).
성교는 구약성경에서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나 성교는 레위기 율법상의 불결 상태를 초래하는 한 요소였으며(레 15:18) 이로써 거룩한 것과의 접촉이 금지되었습니다(삼상 21:4). 이와 동일한 원리가 화목 제물(레 19:5-8), 거룩한 기름(출 30:32-33), 그리고 거룩한 향(출 30:37)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거룩한' 영역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레 5:15-16에서 "성물"이라 불리는 레위기적 예배의 여러 요소들 즉 그 땅의 소산물(레 19:24), 사유 재산(레 27:28), 군사 행동으로써 획득한 전리품(수 6:19) 등이 이에 포함되었습니다.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희생 제물은 '거룩하다'고 명명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제사장직에 의해 묘사된 바로서 거룩한 영역에 절대적으로 바쳐진 것이기 때문입니다.(레 19:18).
거룩한 영역이 불완전한 요소들을 소유한 세계와는 개념상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역의 완전 무결성이 엄격히 유지되는 한 거룩한 영역도 그 불완전의 세계 내에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거룩함(holy)‘의 완전 무결성 유지는 이스라엘 종교의 매우 중요한 기능이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규례와 율례라는 맥락 내에서 구속적 사랑을 가지고 인간에게 접근하였으며 이러한 규례와 율례들은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인 성결의 순수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레위기적 제도가 성립되기 이전에도 이 원리가 그대로 인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출 3:5을 보라).
제사 의식 역시 거기에 참여한 자들에게 거룩함을 부여했습니다. 이 점은 구속의 개념에 있어서 본질적 요소였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를 내리건대 거룩함이란 죄악적이고 속된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기 때문에 인간을 거룩함에로 부르십니다(레 19:2, 참조: 벧전 1:15).
그의 거룩한 속성 때문에 하나님은 필멸적(必滅的) 인생들의 연약하고 불완전한 요소들을 초월해 계시며 따라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출 15:11-12). 거룩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수 있습니다(시 15:1이하).
하나님은 본래 거룩하시며 도덕적 불완전으로부터 떠나 계시기 때문에 그의 약속에 그가 신실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시 33:21). 자기 백성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그리고 에덴의 저주에 비롯된 불완전성으로부터 피조물을 구속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궁극적으로 나타내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습니다(롬 8:18-23).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함을 깊이 묵상하시면 하나님의 형상회복하는데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