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생각 - 가족
2023.1.4
마늘 작업을 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고향입니다.
비록 초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객지생활을 했지만,
가장 그립고 순수했던 동심의 세상이었기 때문이지요.
가장 어릴 때 기억은 집을 새로 지어 엄청나게 굵은 기둥과
대들보가 있는 넓은 마루입니다.
앞마당 반대편 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여름에는 대자로 누워있으면 더운줄을 몰랐지요.
그리고 꽃밭이 있고 뒤뜰에는 장독대와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고
울타리는 나무를 엮어 만들어 둘러쳤지요.
꽃밭 둘레는 포탄껍데기를 거꾸로 세워놓아 멋있었습니다.
두 명의 누나가 시집가기 전이라 여러가지 꽃을 가꾸어
집안에 꽃 향기도 나고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12살 때인 7월 장마 때
갑작스런 사고로 하느님을 모른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아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회의에 그친 회의였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저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녁 잠자리에서는 옛날 이야기를 해 주시고
새벽에 잠도 덜 깬 이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들었던 성우의 낭랑한 고전이야기...
그 때 방송된 내용을 엮어 책으로 펴낸 것이
'명상의 시간'과 '마음의 샘터'란 책입니다.
어렵게 찾아 최근에 구입을 했습니다.
성서구절을 매일 읽고 묵상하듯이
어쩔 수 없이 이불 속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이 습관화되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침 5시만 되면 눈이 뜨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저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맑은 머리로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새벽의 부지런한 사람들, 새벽 공기, 동이 트는 아름다움 등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한 마디로 여장부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41세에 낳으셔서 종종 막내인 나보고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태어났다’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위의 형과 10살이나 터울이 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형제는 3남 4녀 였는데
누나 1명과 나보다 7살 많은 형이 어릴 때 돌아가셔서
2남 3녀 5형제가 되었습니다.
누나들과는 10살 무렵까지 함께 생활했지만
고등학교 부터 서울에서 생활한 형과는
거의 같이 생활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엔
늙으신 부모님(50대)과 함께 외롭게 생활했기에
형제들이 함께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지요.
어머니는 매일 밭에 나가 사셨는데,
아버지 몸이 허약하셔서 남자가 하는 일까지 하셨습니다.
지게도 지시고 심지어 똥장군도 지셨습니다.
논에 물 대는 물꼬 싸움도 아저씨들과
아버지를 대신해 하실 정도로 억척스러우셨습니다.
서울에 이사오신 후 하느님을 알아
안나로 새로 태어나시고
가족들을 차례로 영세를 받게 하셨습니다.
누이 두 분, 형, 형수, 친척에게 한글도 모르시는 분이
열심히 전교하시려고 노력하셨고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셨습니다.
항상 새벽미사 가시기 전에 나에게
오늘 복음말씀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셔서
찾아드리곤 하였습니다.
한글도 모르시는 분이 우리 가족에게
예수님을 알려주시고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나는 몇 번 성당에 갔지만
결혼 전까지는 끝내 어머니의 말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영세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한글 실력으로
성서말씀을 적은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독학으로 한글 공부를 하신 듯 합니다.
딸 유스티나의 백일이 지나고 그 해 겨울 내 생일날,
하루 전 저희 집에 오셔서 아내와 함께 생일 준비를 거들어 주시고
다음 날인 내 생일날 새벽미사 다녀오시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이별 준비도 없이 돌아가시자
어머니께 죄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내 생일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그 후 내 생일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일어나는 습관
즉 아침형 인간을 만들어 주셨다면
어머니는 우리가족을 하느님께 인도하시고
나에게도 복음을 전하신 분입니다.
결국 성공은 하지 못하셨지만...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부산에서,
결혼약속 조건으로 영세를 받으라고 하신 장모님을 통해서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화룡점정을 찍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제 신앙을 챙겨주신
두 분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찬미와 찬양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