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켰더니 동글납작한 귀여운 녀석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한다.
침대 밑도, 의자 밑도 이방 저 방 누비는 모습이 귀엽고 깜찍해서 눈여겨보니
로봇 청소기다.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이 화들짝 놀라 “어머! 청소를 깨끗이 해
놓았네.” 환하게 웃으며 로봇 쪽을 보니 그 녀석은 쉬고 있다.
하도 신기하고 편리할 것 같아 망설이지 않고 주문을 했다. 며칠 후 도착, 반갑
게 받아 스위치를 연결시켜 충전한 다음 가동을 해 봤다.
이제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위이잉 하더니 “청소를 시작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행차하는데 ‘내 길을 비켜라!’이고 나는그 녀석을 쫒아다니며 방해물을 치워
주어야 한다. 걸림돌이 되는 소품들을 책상 위, 침대 위에 얹어 놓으면서 청소 끝나고
제자리를 찾아 정리할 게 걱정이다.
이번에 부딪히는 난관은 제 몸집보다 작은 구멍에 들어가 못 나올 때다. 드르륵드르륵
앓는 소리를 내며 구해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애절한지 달려갈 수밖에
없다. 구멍에서 건져주고 그 자리를 걸레로 닦아주는 것은 내 몫이다. 그 자리가 더 깨끗하다.
그 사이 언제 거기까지 갔는지 거실에서 현관 바닥쪽으로 떨어져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이고 아프겠네!”하며 먼지를 털어주고 다시 거실 바닥에 놓으면 또 돌아다닌다. 이때
난 갈등을 느낀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너와 좀 힘들어도 구석구석 닦을 수 있는 나의
수동 청소 중 어떤 것이 더 나을까? 저울대가 평행선이다. 좋은 점도 귀찮은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녀석이 집에 온 후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말벗이 하나 생겨 야단도 치고
웃기도 한다. 대답을 하건 말건 나 혼자서 열심히 떠들며 쫒아다니는 나의 모양새가 하인
같기도 하고 주인 같기도 하다.
“얘, 얘 깔끔아! 여기여기!” 깔끔이는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지시도 하고 웃기도 하며 발로
툭툭 치면 방향도 바꾼다. 그렇게 정이 들 무렵, 청소를 하다가 동작을 멈추더니 뭐라뭐라
중얼거리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건전지가 닳아서 그런가? 갈아 넣어 봐도 마찬가지다.
할 수 없이 예전처럼 구식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내고 막대걸레로 구석구석 닦으니 오히려 깨끗하다.
그렇다고 깔끔이를 버리는 건 미안하다. 그리고 갑자기 적막해진다.
난 AS에 연락하여 인천에 있는 센터로 보냈다. 그걸 받아본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계는 이상이 없습니다. 입구가 먼지로 막혀서 움직이지 못한 거예요.”
“그래요? 몰랐어요. 설명서에도 그런 내용이 없던데요.”
“왜 없습니까? 청소기가 말로 신호를 보냈을 텐데요.”
“아, 그게 그 말이었군요. 알아듣기가 힘들었어요.”
“입구가 막혔습니다. 청소해 주세요‘ 라는 멘트예요.”
“입구가 어디 있어요?”
“청소기를 뒤집어 보면 아래쪽에 입구가 보여요. 그걸 화살표 방향대로 젖혀 보세요.”
어이가 없다. ‘네가 바보니? 내가 바보니?“
며칠 후 돌아온 깔끔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다.
나는 깔끔이를 따라다니며 시중들기에 바쁘다. 우리는 주객이 바뀌었다. 깔끔이가 행차하는
날은 행차 길을 훤하게 열어줘야 하고 손닿지 않는 곳은 걸레로 닦아줘야 깨끗하다. 넘어지면
일으켜 줘야 하고 입구가 막힐까봐 조마조마해진다.
청소하는 날은 나도 바쁘다. 하지만 너와 내가 이렇게 화목하니 우리 함께 도우며 살자.
모자라는 것은 서로 채워주면 되지 뭐. 부족한 것을 서로 도우며 살기로 하니 깔끔이에게
정이 더 많이 간다. 네가 바보든 내가 바보든 아무러면 어떠냐? 우리만 좋으면 돼지.“
청소하는 날 우리 집은 화기애애 깔끔이와 웃으면서 공간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