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너희가 성경에 읽어 본 일이 없느냐 - 이 표현은 신약성경 중에서는 예수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는 표현이다.. 예수께서 이러한 말을 하시는 경우는 모두 성경이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경우이다. 본문의 내용은 시 118:22를 인용한 것으로, 행 4:11;엡 2:20;벧전 2:7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대인들의 배척과 이방인들이 오히려 그를 영접함을 표현하는 증거로서 사용되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 - 시 118편은 다윗이 모든 건축자들, 즉 사울과 그 추종자들의 세력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쫓겨 다니는 삶을 살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택하여 왕으로 세우심으로써 이스라엘을 견고케 하셨다고 하는 내용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된 것으로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여러 강대국으로부터 학대와 핍박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퉁이의 돌, 즉 선택받은 민족으로 삼으시고 축복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당시의 건축자들, 즉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등의 지도자들은 다윗의 원형이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되신 예수를 내어 버렸다.
예수는 '건축자들의 버린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는 시편의 말씀을 통해서 본 비유에서 당신께서는 악한 농부로 비유된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들에 의해 새이스라엘을 건설할 그들의 메시야로서 적합치 않다고 하여 버림을 받은 돌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모퉁이의 머릿돌이란 지붕이나 건물 바깥계단 혹은 성벽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돌로, 건물의 상부구조를 유지하고 그 모양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다른 모든 돌들은 이 돌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이스라엘과 예수, 모든 성도와 예수와의 관계가 건축물과 모퉁이 돌과 같음을 시사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건축의 비유는 교회의 그것에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분명 예수는 교회의 모퉁이 돌이신 동시에 교회의 머리, 즉 교회의 주인( 시다. 따라서 모퉁이 돌의 비유는 교회론적인 것인 동시에 기독론적인 것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의해 배척당하신 예수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사 영광받게 하셨으며 신령한 건물로 지음을 받는 영적 공동체인 성도들의 모임에 모퉁이 돌이 되게 하셨다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 -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통치가 유대 지도자들의 권세 밖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혈통상의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본문은 하나님의 권세로 율법을 전달하던 특권을 가진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그 권한을 박탈당하고 그 나라의 의와 성령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이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특권과 사명을 갖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빼앗긴 너희'는 율법사, 서기관 등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자들'은 예수의 제자들로 볼 수 있다.
[마 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이 구절은 사 8:14, 15와 단 2:35의 내용을 그 배경으로 한다. 실로 예수는 모퉁이의 돌로서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지만 악한자들에게는 멸망을 가져다 주는 돌이 되신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칼빈(Calvin)은 이 돌을 유대 백성들의 외고집의 돌멩이로 이해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견고하심으로 그돌을 파멸케하시고 더욱 더 영광을 얻으실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이 돌위에 떨어지는 자'와 '이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의 경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견해들이 있다. (1) 전자를 통회하는 심령으로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자라고 보고, 후자는 그리스도예수의 비천한 출생과 지위 때문에 실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스도를 향해 공격적으로 대적해 오는 자라고 하는 견해와
(2) 전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왜곡된 지식으로 인해 그를 용납치 않는 자, 후자는 예수와 그의 말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자라는 견해(Bruce)와 (3) 전자는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 위해 모의를 꾸미는 사악한 자들이며, 후자는 그리스도를 넘어 뜨리려고 질주해 오다가 그분께 떨어지는 자, 즉 그 분의 강력한 반격을 받게 되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와
(4) 전자는 그돌에 대해서 반항하는 자, 후자는 그 돌이 추궁하여 심판한 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의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유대교권주의자들에 대한 예수의 심판 선언의 맥락 속에서 이해 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이 '돌 위에 떨어진다'고 함은 예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불신앙이 스스로에게 넘어지게 하는 거침돌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박살내다'로 번역되는 헬라어 '쉰들라스데세타이가 의미하는 바는 그대로 해를 당하여 파멸에 이르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의 뜻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러 오실 종말의 때를 예언하시는 것으로, 그날에 악한 자들은 키질의 결과로 날아가 버리는 쭉정이와 같이 구별되어 영원한 불구덩이로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마 21: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비유를 듣고 - 지금까지 예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신 두 비유는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경고의 말씀이다. 두 비유를 통해 드러난 사악한 인물들이 바로 종교 지도자 자신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듣고 아는 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잘못된 자신들의 모습을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를 죽이고자 완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 21: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가 지금 예루살렘 성안에 있으므로 성전 경비원을 불러 그를 쉽게 체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경우와도 같이 예수를 의의 선지자로 여기는 백성들의 반응을 두려워 하여 공식적인 석상에서 체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훗날 가룟유다의 배반에 의해 산에 계신 예수를 밤에 은밀히 체포할 수밖에 없었다.
실로 이것은 백성들에 대한 예수의 지지도가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요 11:53에 의하면 산헤드린 공의회원들도 나사로가 부활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하고 그 명분을 찾기 위해 계속 예수를 따라다녔음을 보게 된다. 실로 그들에게는 이미 겟세마네에 계신 예수를 체포하기 훨씬 이전부터 예수를 죽일 죄목과 명분이 구상, 모의 되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