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의 예언들
이사야 9:1~7
크리스마스 성탄절이 다음 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절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날입니다. 이 날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날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곤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의 탄생은 온 세상의 운명을 바꾸는 지극히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세상 왕국들의 모습을 바꾸는 일대 사건이며 영적 판도도 천지개벽하듯 완전히 바꾸는 대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로 하여 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진 동방 박사들이 그 먼 나라에서 귀한 선물들을 준비하여 몇 달을 여행와서 예루살렘에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자가 어디 계시냐고 묻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듣자 당시 팔레스타인의 왕으로 재임중이던 헤롯 대왕은 기겁을 하고 태어나신 주님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들었던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든 것은 헤롯 대왕 이면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 마귀가 그토록 갈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이 어디 계신가를 보고받지 못한 헤롯 대왕은 마귀가 주는 무서운 분노감을 가지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 주변의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전부 살해하는 악랄한 마귀 짓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저질렀던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이렇게 인류 역사 전체에 커다란 변화의 중심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온 세상 년도를 계산할 때에 주님 오시기 전과 주님 오신 후를 표시하는, BC와 AD, 주전과 주후라는 말로써 년대를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과 주님 오신 후가 이처럼 큰 차이가 있기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으며, 온 세상 역사의 중심은 곧 우리 주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이러한 연대 계산 기준 표시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주 성탄절 주간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인 오늘 주일에는 우리 주님이 탄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그리스도 우리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여러 예언들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 생각합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맨 처음 예언하시는 하나님 말씀이 주어진 때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지구 상에 만들어놓으신 지상 낙원이었던 에덴 동산에서 마귀의 말을 귀담아 듣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스스로 지혜롭게 되려 하고 하나님 없이 잘 살겠다고 믿고 행동한 타락 직후의 때입니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가 이제 생명과 행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고 파멸과 슬픔과 영멸로 떨어질 운명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과 그 후로 태어날 그 모든 후손들에게 한 가지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 되는 사건을 예고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3:15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은 아담과 하와를 범죄하도록 유혹한 옛 뱀 곧 뱀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에게 내리는 심판의 예언인데, 여자의 후손 곧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통하여 태어날 인간들 중에서 특정한 한 사람 여자의 후손이 훗날 뱀의 머리 곧 마귀의 권세를 짓밟아 깨뜨릴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마귀의 종노릇하는 데서 구원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즉 훗날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 중에서 누군가 태어난 자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을 그 조상 아담과 하와의 원죄와 그 후손들의 자범죄의 결과로 초래한 죄의 노예 상태와 온갖 저주들과 필연적인 사망의 숙명과 죽은 뒤에 유황불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고통에서 구원해낼 것이라는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창조 직후 그 복스러운 낙원 에덴 동산에서의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완벽한 배신과 교만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 후손들 중에 한 사람을 보내시어 아담과 하와 이후로 찾아온 죄와 그에 따른 온갖 저주와 사망과 영벌에서 그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모든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이제 그 약속의 씨앗, 여자의 후손을 얻을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곤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첫 자녀를 잉태했을 때에도 바로 그러한 소망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4:1 말씀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이러합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여기서 ‘가인’이라는 이름은 ‘얻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와가 자기의 첫째 아들 가인에게 그 이름을 붙여준 까닭은 자기를 속여 에덴 동산의 그 풍요롭고 아름다운 행복한 환경과 하나님과의 복된 친교를 빼앗고 자기를 온갖 슬픔과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그 악한 사탄의 머리를 짓밟아버리고 자기들을 이 고통에서 건져내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 여자의 후손이 바로 자기가 낳은 어린 아이 ‘가인’이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소망이 그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인은 어머니 하와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가인은 자라나면서 그의 동생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려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기쁨으로 받아주시고 반면에 가인 자신이 드린 믿음 없는 형식적인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지 않자 불만을 품고 동생 아벨을 들판으로 불러내어 쳐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하와와 아담이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얼마나 실망스럽고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일 후에도 끊임없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곧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 구원자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도 여자의 후손들 중에서 약속하신 그 구원자 여자의 후손을 보내실 혈통의 계보를 조금씩 예언을 통하여 밝혀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홍수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주신 의인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한 계보가 특정되었습니다. 그 일의 계기는 대홍수 후에 노아가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발가벗고 있는 중에 둘째 아들 함이 아들 가나안과 함께 와서 그 모습을 보고 다른 가족들에게 조롱거리로 삼아 알렸을 때에 큰 아들 셈과 막내 야벳이 아버지를 겉옷으로 덮어드렸습니다. 잠을 깨고 난 후에 노아는 둘째 아들 함과 그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되 큰 아들 셈을 향하여 이러한 예언을 했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세기 9:26,27)
이로써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가 셈의 후손 중에 태어날 것이 예언된 것입니다. 그 후에 셈의 후손들 중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갈대아 우르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이었노라고 여호수아 24:2 말씀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 계속 있어서는 안되겠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을 이렇게 드러내보이시면서 우상과 잡신 숭배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 성읍을 떠나라고 아브라함에게 예고하면서 여자의 후손 곧 약속의 후손을 약속해주셨으니 곧 창세기 12:1~3 말씀입니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기를 온전히 드러내주시며 주권적으로 우상 숭배의 도시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땅 팔레스타인 땅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해 들이시면서 그를 크게 번성하게 해주겠고 그가 복의 근원이 되고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주고 그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겠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 덕분에 복을 얻을 것이라는 계시를 주셨으니, 곧 그 후손들 중에 약속하실 여자의 후손이 태어날 것이라는 뜻이 이 축복의 언약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언약을 맺을 때 보면, 언약의 상대방이 아브라함과 후손들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라고 쓸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 곧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 약속의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의 상대방으로 등장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나타나셔서 이르신 언약 말씀인 창세기 17:7,8 말씀을 보면 이르기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 사이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는 ‘후손들’이라는 복수가 나와야 하는데,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라는 단 한 사람을 언약의 상대방으로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 제단에 바치려고 한 직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축복하실 때에 하신 언약의 내용도 그러합니다. 창세기 22:15 이하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세기 22:15~18)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그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여러 명의 후손들을 언급해야 할 대목에 단 한 명의 후손을 의미하는 단수 명사 ‘네 씨’라는 단어를 반복하십니다. 여러 명의 후손, 여러 명의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요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것도 ‘아브라함의 씨들’이 아니라 ‘네 씨 곧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어느 특정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여 갈라디아서 3:15~16 말씀에 이르기를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들 속에 나타난 단수 명사인 아브라함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 인류의 구원자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언약의 사람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곧 구원자로 세상에 태어날 자가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에 태어난다는 예언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아내 사라의 몸종이요 첩인 하갈을 통하여 낳게 된 육신의 아들 이스마엘이라는 큰 아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사라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나이 140살 넘어서 후처로 맞아들인 그두라를 통하여 낳은 여러 아들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모든 아들들을 일찍이 자기 곁을 떠나 멀리에서 살림을 차려 살게 보내주었고, 오직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나이 백세, 그 아내 사라 나이 90세 불임의 나이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기적적으로 낳게 해주신 약속의 아들 이삭만을 자기의 정통 아들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그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여러 아들의 후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낳게 해주신 이삭을 통하여 세상에 태어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통하여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 이삭도 아내 리브가를 통하여 쌍둥이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그 아이들이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우자 리브가가 하나님께 물었을 때에 두 민족이 뱃속에서부터 나뉠 것이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리브가는 둘째로 태어날 자가 약속의 아들이 태어나게 될 선민의 족보인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남편 이삭이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첫째 아들로 태어난 에서가 사냥을 좋아하여 그 고기 요리를 가져오면 행복해서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빌어주고자 했을 때에 아내 리브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서 둘째 아들 야곱을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것을 믿고서 남편을 속이면서까지 둘째 아들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일을 벌일 때에 얼마나 큰 가정의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인가를 모르지 않았지만 리브가가 그렇게 일을 벌인 것은 하나님의 지엄하신 약속을 지키려는 믿음과 순종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큰 대가를 지불할 만큼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 여자의 후손, 인류의 구원자의 탄생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리브가가 자기에게 저주가 임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언약하신 말씀대로 둘째 아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축복 기도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그 일을 결행한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이 지명한 혈통을 통한 여자의 후손의 탄생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후에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메시야가 태어날 통로로 지명을 받은 계보는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의 후손 지파입니다. 야곱이 나이 147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자기 열두 아들들을 불러 모아 놓고 아들들의 장래 일들에 대하여 축복의 예언을 할 때에 넷째 아들 유다에게는 이렇게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유대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 49:9,10)
여기서 ‘규’란 왕이 손에 쥐고 있는 금으로 만든 지팡이, 금 막대기로서 곧 왕의 지엄한 권세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왕권의 상징인 규가 유다 지파에 항상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곧 유다 지파에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인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주어진 후에 약 900년 후에 유다 지파에 속한 자 중에 이새의 아들 다윗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순종하는 중에 성전 건축을 해드리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그 소원을 나단 선지자에게 아뢰었을 때에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께 주군 다윗의 뜻을 하나님께 아뢰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일러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짓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에게 짓도록 명하시면서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려는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신다면서 사무엘하 7:11 이하에서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이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것이며 그는 나라의 왕위에 올라 그 왕위가 영원히 보존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다윗 왕위에 올라 처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충성스러운 면모를 보여 성전도 크게 짓고 복을 많이 받고 나라도 크게 번성했으나 중년을 넘어서서 타락하여 이방 여인들을 많이 맞아들이고 우상 숭배에 빠짐으로써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고 그가 여자의 후손일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솔로몬 왕 이래로 이스라엘 나라는 급격히 세속화되고 무기력해지고 여호와 신앙을 저버림으로써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마다 그들의 죄악들을 무섭게 지적하며 책망하였습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선지자들은 또 다시 여자의 후손 곧 그리스도가 세상에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 여러 선지자들 중에 이사야 선지자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많이 한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사역하던 아하스 왕 때에 북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나라 르신이 연합군을 편성하여 남 유다 왕국을 공격하려고 하자 남 유다의 아하스 왕과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의 주민들은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그 때에 선지자가 왕을 세탁자의 밭 큰 길에서 왕을 만나 나라의 위기를 만나 두려움과 낙심에 빠진 아하스 왕에게 용기를 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적을 구하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이 믿음이 없고 하나님께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겸손을 가장하여 선지자의 복된 욕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거룩한 분노감이 생겨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이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3,14)
이 말씀을 통하여 위기에 빠진 유다 왕국에게 큰 소망의 표적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처녀 잉태의 표적이며 그 처녀를 통하여 태어날 아들은 ‘임마누엘’인데, 해석하면 그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 태어날 자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과 같은 위대한 자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장차 오실 여자의 후손이 이제 다윗 집의 계통에서 태어날 것인데 그는 처녀의 몸에 태어날 것이라는 위대한 사실이 계시된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 정혼한 처녀의 몸으로 우리 구주 예수님을 잉태한 것으로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다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자의 후손이 어디서 자라며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인 이사야 9장 1절로부터 7절까지 예언이 주어집니다. 함께 다시 한번 이사야 9장 1절 이하를 함께 읽어봅시다.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1~7)
전쟁의 혼란과 불안과 두려움과 슬픔과 고통과 흑암 속에 있는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 다윗의 가문에 한 아들을 태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압제의 막대기를 꺾고 전쟁터의 피 묻은 신발과 겉옷을 살라버리고 전쟁을 그치고 평화와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세상을 가져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한 아기를 태어나게 하시고 한 아들을 주실 터인데 그는 바로 전능한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일컬어질 것이며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며 그 나라는 정의와 공의로 가득차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여기서도 분명한 선지자의 예언의 내용은 여자의 후손의 탄생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후손 약속의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이 어느 가문에 태어날 것인가와 그가 어떻게 세상을 통치하시며 그의 사역을 하실 것인가에 대하여 이어지는 이사야 11장 1절 이하에 곧 이어 예언이 주어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락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이사야 11:1~5)
여기서도 여자의 후손이 이새 곧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며 그가 성령으로 충만하여져서 사역할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고 공의와 자비과 겸손으로 세상을 치리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구원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의 평화의 나라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대로 만민들에게 베풀어질 것이며 온 세상 전체의 평화와 안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서 이어지는 이사야 11:6~10 말씀에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누어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싹이 바로 여인의 후손 구주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로 인하여 그의 왕국이 도래하게 되면 만물 가운데 깃든 약육강식의 피의 저주가 그치고 인간 세계에 깃든 압제와 포악의 악한 지배 구조도 사라지고 평화와 사랑이 가득찬 세상이 펼쳐질 터인데 이 새로운 세상이 온 세상 모든 나라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 민족, 이스라엘만의 소망의 깃발이 아니라 온 나라와 민족의 희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예언 또한 신약 시대에 우리 구주께서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나라와 방언과 민족을 초월하여 그를 믿기만 하면 다 하나님 백성이 되고 구원을 받는 복음 전도가 이루어짐으로 그 일부가 현실화되었지 않습니까?
한 가지 더 여자의 후손의 탄생 장소도 구약 선지자에게 예언된 바 있으니 곧 미가 5:2 말씀에 나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 말씀은 너무 유명하였기에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마음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충만하였으니 동방 박사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알리는 하늘의 별의 인도를 받고 예루살렘에 들러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태복음 2:2)
고 말하였을 때에 불경한 왕 헤롯 대왕이 당시의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놓고 묻기를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고 하자 일치하여 이르기를
“유다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하였음이니이다”(마태복음 2:5)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럴 정도로 여자의 후손의 탄생은 하나님 백성 공동체에게 주신 가장 큰 관심사요 그들이 역사 속에서 존재해온 이유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아담 이래로 죄로 말미암아 처참한 저주와 슬픔에 빠져 살아온 온 인류에게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도록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며 준비해오고 증거할 책무를 지고 있었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 하나님의 모든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지금부터 이천년 전에 갈릴리의 마리아와 그와 정혼한 다윗 가문의 청년 요셉의 가정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으니 그 모든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다윗 왕가의 가문에 시집 오기로 약속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베들레헴 동네의 한 여관 집 마굿간에서 태어나게 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오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구원의 유일하고 결정적인 작정의 성취인 것입니다. 즉흥적이고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영원전의 구원 작정에 따라 이루어진 주의 깊게 계획하시고 역사 속에서 섭리하여 오신 가장 위대하고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구원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하여 예언해오신 그 일이 이루어진 성탄절을 참으로 기쁘게 여기고 가장 복스럽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날로 기념함이 합당합니다. 이 날은 모든 인간들이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의 슬픈 운명을 바꾸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인간의 죄의 권세가 꺾어지고 저주와 슬픔이 달아나고 사망이 생명에게 삼켜지고 원수의 문을 취하고 마귀를 하늘에서 내어쫓고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영원한 나라가 세워지는 일이 시작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달력에도 우리나라의 역사의 위대한 영웅의 탄신을 기념하는 날이 있습니다. 달력에 보면 4월 28일이 그 날인데, 그 날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의 날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1545.4.28.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훗날 영의정이 된 유성룡과 어린 시절 친교가 있었고 충남 아산에서 자라나면서 무인의 꿈을 품고 훈련하다가 늦게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전라도 좌수영 수군절도사로 있던 중에 임진왜란을 맞이하였습니다. 1592년 4.14. 충무공은 발발한 왜구의 침략을 맞이하기 전 한달 전에 거북선을 완공하고 예하 장병들의 훈련을 착실히 해왔던 터라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확실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7년 동안 이어진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우리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그를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경을 보면, 과거 하나님께서 나아만 장군을 세우셔서 아람 나라를 여러 차례 건져주셨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나라에 이순신 장군을 태어나게 하시고 이끌어 주셔서 우리 민족을 큰 위기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출생을 기념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하물며 이순신 장군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이 합당하거늘 만민의 구주요 온 세상의 회복자의 탄신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우리가 기념하며 기뻐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타락한 모든 인류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위대한 구원의 역사 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구주의 탄생의 사건이므로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경축할 일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보았던 대로, 하나님께서 아담 이래로 계속하여 자신의 종들에게 예고하셨던 바 여자의 후손, 약속의 아들, 그리스도의 탄생의 예언의 말씀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얼마나 끈질긴 열심을 가지고 일하셨습니까? 인간의 모든 불순종과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얼마나 불굴의 열심을 가지고 이 일을 계속해왔는가요? 2023년의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자기 백성들과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이 불굴의 열심을 다시금 깊이 묵상하며 감사와 찬양을 힘차게 부르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