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년쯤 전의 일일세. 안경점을 하는 친구의 점포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신문을 흝고있는 나에게 그가 돋보기 하나를 건네주더군, 젊은 시절부터 눈 좋기로 소문이 났던 나의 사양도 잠시, 그걸 걸치니 그야말로 환희, 바야흐로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더군. 어찌나 글자가 그리도 크고 선명해 보이던지, 원!
친구야, 모처럼의 자리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헤어졌군. 같은 울타리에서 공부하며 엇비슷하게 장가도 가고 직장생활도 시작했던 우리가 어언 오륙십이 되어 아이들 혼사나 있어야 한자리에 잠깐 잠깐씩 만나니 새삼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게 되는군.
그날 피로연 자리에서 이어진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가내 대소사의 안부를 거쳐 자연스레 이 나라 이 사회에 대한 우리 세대들의 관심사, 바로 세상 돌아가는 문제들이 아니었나? 화기애애하던 대화들이 갑작스레 언성이 높아지고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시시비비 분별이 어려워진 뒷맛이 영 개운치가 못하네.
어지러운 상황이 반복된 끝에 던져진 노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와 이라크 파병에 대한 논란, 초강수를 두고 있는 송두율 교수에 대한 문제, 한진중공업 노조원의 죽음과 대선자금 조달의 의혹, 그리고 꼭 약방의 감초처럼 초를 치는 전교조에 대한 비판과 한총련에 대한 성토는 너무나도 듣기가 곤혹스러운 것이었네.
현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전임 대통령의 하수인이고, 송 교수는 간첩이며, 북한 돕기는 무력을 증강시켜 남침을 부추기는 이적행위이고, 전교조는 좌경교사의 모임이라는 둥, 어쩌면 그리도 척척 죽이 맞는 "작문"들을 전개해나가던지. 한술 더 떠서 우리의 구세주는 영원한 우방 미국뿐이라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네.
어쩌면 이다지도 자네(들)의 이야기는 붕어빵을 찍은 것처럼 한결같은지? 우리 세대들이라면 국론 분열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 할 만큼 결론이 대충 비슷해. 일 년만에 만난 친구 건 삼 년만에 만난 친구 건, 그리고 서울에 살 건 지방에 살 건 어쩌면 그렇게도 정치적 판단이 똑 같은지 몰라.
이제 그 의문을 풀자면 해답은 너무나 단순 명료한 것 같아. 그건 바로 지금까지 이 나라 언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조중동"을 비롯해 수구보수 "신문지"들 덕택이야. 신문구독자 넷 가운데서 세이나 선택하여 본다는 그 거대언론세력의 영향력! 지금까지 구정권에 빌붙어 기득권을 누리며 독재자들을 찬양하고 빈익빈 부익부의 왜곡된 경제구조를 변호해온 수구의 첨병이 바로 그네들이 아니었던가?
[수구보수 신문들의 논조를 그대로 읊어대는 듯한 모습에 반가운 만남 뒤에도 착잡-바른언론 "한겨레"를 추천하네]
1997년 말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이 나라에서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 절치부심하던 구여권 세력은 다 된 밥을 삼키지 못하고 2002년 말 다시 어이없게도 노무현 후보에게 쓴잔을 마셨지. 그런데 이게 어디 그들만의 패배일까? 친미방공교육을 받고 자라나 개발독재시대에 봉사해온 우리 "쉰세대"들까지도 덩달아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으로 밥맛을 잃고 소주를 마시며 허탈해 했다지. 이것은 지금도 이 사회의 주류라고 자처하는 우리 구세대가 젊은 인터넷세대에게 패배해버렸다는 자격지심 탓이겠지만, 숨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낡은 사고의 벽을 깨뜨리라는 신호탄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자네(들)는 마치 잃었던 고구려 옛 땅을 되찾으려는 듯 조중동의 궤변에 현혹되어 방황하고 있으니 보기가 너무 딱하구먼. 수구신문의 논조를 무의식중에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마치 내 철학, 내 주장이나 되는 것처럼 그들의 논리를 전달하고 확산하는 앵무새로 전락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깝고 민망스럽군.
친구야, 일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물론 자네는 지금도 전교조가 시골 교장을 죽이고,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온 북측 응원단은 우리 체제를 흔드는 적화공작단이며, 청와대에는 강성 386들만 모여서 자기네들을 괴롭힌 구체제의 인물들을 족치려 한다고 믿고있을 테지. 오늘날 경제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모두 다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강성노조 탓이고, "좌경정권"이 조금만 더 김정일과 야합하면 이 나라는 단숨에 공산화가 이루어지고 피땀 흘려 벌어둔 내 재산은 모두 다 날아가 버린다?
정말 이야기하기 조차도 끔찍하군. 반공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우리 구세대가 수구언론의 일방통행식 세뇌공세를 받으며 국가체제의 일하는 기계로 전락한 폐해가 너무나 커 보이네. 다른 건 모르더라도 요즈음 방송에서 진행하는 <미디어 비평>이나 <미디어 포커스>를 좀 보게나. 머리 좋다는 거대신문의 모사꾼들이 얼마나 사실을 비틀어 독자들들의 머리를 쓰레기터로 만들고 있는지를! 이제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그만큼 우리만 외면받는 구세대가 되는 거야.
그래서 이제 한 가지 소박한 처방을 내리네. 지금까지 자네의 머릿속을 오염시킨 악의에 찬 수구적인 신문들을 사절하고 제대로 된 신문을 찾아 읽어달라는 거야. 생활에 딴 겨를이 없을 자네가 지금 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조선일보> 바로보기와 같은 운동에 대해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획일적인 수구의 앵무새 노릇을 하는 그들의 정체를 꿰뚫어 바른 신문이 무언가 하는 선택을 해달라는 거야.
그래서 나는 지금 자네에게 진지한 심경으로 우리 <한겨레>를 추천하네. 올바른 소리를 내다가 길거리로 내몰리고 핍박받은 올곧은 사람들이 6만 여명의 국민주주들의 성원 속에 일으켜 세운 이런 신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언론사에 큰 획을 긋는 자부심이야.
친구야. 내가 맨 앞에 한 이야기를 이해하겠나? 내 눈 좋다는 맹신에만 깊이 빠져 글자가 제대로 보이는 돋보기 하나 쉽게 쓸 생각을 못한 미욱한 자신을 어찌 후회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바른 신문, 그건 바로 우리 "생각의 돋보기"야.
오랫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무슨 설교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것 무척 미안하이. 하긴 내가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랄까 봐서. 그렇지만 우리는 무의미한 삶을 버리는 대신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이 시대의 책임자가 아닌가? 두서없는 이 긴 이야기가 자네의 판단에 얼마만큼 도음을 줄 수 있을까 몰라. 그래도 자기를 희생해가면서 이 나라의 바른 언론문화 구현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사들도 많은데 나도 이런 정도 생각이라도 꼭 주위의 친구들에게 피력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이요, 책무라고 생각하여 몇 자 적어보았네. 차가워지는 날씨에 건강 유념하게나.
이 글은 2003년 11월호 “<한겨레 가족>의 열린사람들”에 이중양 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이중양 님은 서울대 사대 수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현 고등학교 교사,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으로서 한사모 카페에 5월 18일 가입하셨습니다.
6월 12일 한사모 정기모임에 참석한 이중양 님이 위 <한겨레 가족> 원본 카피를 회원님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한겨레 독자 중에는 2003년 11월 이미 위 글을 읽거나 지나친 분들이 있으리라 짐작됩니다만 큰곰자리는 어제 한사모 모임 후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서 처음 읽었습니다. 학창의 울타리에서 동문수학했던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의 이 편지는 동문이었지만 졸업 후 각자 삶의 방식과 또한 그 간격에서 비롯된 다각적인 인식 차이에 대해 잔잔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독후감은 제가 평가하는 것보다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다만 이 글을 소개하는 것은 다름 아닙니다. 필자 이중양 님의 <한겨레> 탄생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 친구와 동문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 <한겨레신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필을 들어 동문, 친구, 세상에 띄우고픈 내용인 것 같아서입니다.
회장님, 얼굴이 헬숙하시더군요. 밤낮 없이 네티즌 모두에게 댓글달기는 많은 시간과 생각을 사용해야 합니다. 회장님의 이러한 노고는 <한겨레신문>에 관심 갖는 사람들의 증가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댓글달기등 회원님들의 십시일반 시간 할당제에 대한 의견을 부탁...
큰곰자리님 이렇게 난삽한 글을 다시 실어주시니 너무나 고맙고 민망스럽습니다. 글도 하 오래되었고 지난 달에 권혁철 기자님께서도 이미 한번 소개해주신 내용인지라(번호: 935)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사실은 엊그제도 시골학교 동창모임에 갔다가 수구꼴통들과 한바탕 논쟁을 하였습니다.
경기도 덕평수련원에서 열린 노사모5차총회에 토요일 날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와 늦게서야 씀니다. 1200명정도 왔는데 노혜경님도 오셨고.대회장 왼쪽 앞에 언론개혁, 그리고 오른 쪽 벽 전면은 조선일보의 친일행각등 반민중. 반민족적은 사진자료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2년전에도 이곳에서 노사모 ...다시 쓰기로 하
첫댓글 큰곰자리님 !감사합니다. 12일 이중양님의 프린트물을 받아 읽어 보았습니다. 여러회원들이 보고 느낄수 있도록 수고해 주셨습니다.
회장님, 얼굴이 헬숙하시더군요. 밤낮 없이 네티즌 모두에게 댓글달기는 많은 시간과 생각을 사용해야 합니다. 회장님의 이러한 노고는 <한겨레신문>에 관심 갖는 사람들의 증가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댓글달기등 회원님들의 십시일반 시간 할당제에 대한 의견을 부탁...
감사 합니다. 잔잔히 마음에 닿아 생각케 하는군요..
큰곰자리님 이렇게 난삽한 글을 다시 실어주시니 너무나 고맙고 민망스럽습니다. 글도 하 오래되었고 지난 달에 권혁철 기자님께서도 이미 한번 소개해주신 내용인지라(번호: 935)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사실은 엊그제도 시골학교 동창모임에 갔다가 수구꼴통들과 한바탕 논쟁을 하였습니다.
어딜가든 30% 꼴통들이 자리잡고 있씁니다. 돌대가리 마음돌리기엔 약대가 바늙궤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든 작업입니다.인간 무지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자들은 잘보여줍니다..
이중양 님, 겸양의 말씀입니다. 글을 읽으며 감명을 받았습니다. 게시판에 종종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바랍니다.
저도 이중양님 글 감명깊게 읽어습니다. 저역시 회사향우회 모임이나 고향 침목모임때 자주 의견충돌을 가집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사고나 의식이 얼마나 불일치 한가를 뼈절이게 느낍니다.
경기도 덕평수련원에서 열린 노사모5차총회에 토요일 날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와 늦게서야 씀니다. 1200명정도 왔는데 노혜경님도 오셨고.대회장 왼쪽 앞에 언론개혁, 그리고 오른 쪽 벽 전면은 조선일보의 친일행각등 반민중. 반민족적은 사진자료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2년전에도 이곳에서 노사모 ...다시 쓰기로 하
흰머리소년 님, 좋은 공기마시고 왔으니 한턱 내셔야 합니다. 다음 모임에서 한사모 회원님들 기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