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 시작을 사범님과 함께 했기에 교사로서의 나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 제도 밖에서의 태권도 교육의 폭풍우는 나에게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강력한 저항으로써 학교에서의 교육을 기획하도록 이끌었다. 민희는 그런 나의 모습에 반짝이는 보석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민희는 솔직한 아이였다. 세상 부조리에 대해 침묵하지만 궁금한 눈빛을 잃지 않았고, 세상에 대해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학교 시험에 익숙한 아이들에겐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민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그 답답한 얼굴을 포기하지 않고 질문으로 밝혔기에 나는 기뻐했고, 약속대로 기억할 수 있었다. 정말 나는 말썽부리는 아이보다 질문하는 학생에게 더 깊이 호응하는 특이한 교사였다. 나에게 질문공탁의 보람을 처음으로 일깨워준 학생이었다.
사범님이 나에게 스승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나의 질문을 기다려주셨고 키워주셨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대가인 사범님께서 조금 전 태권도에 입문한 애송이 대학생인 나의 질문을 경청하시고 본인 역시 궁금하게 생각한 질문이라고 존중하고 즉각적인 답을 미루셨던 겸손한 모습에서 질문을 내 인생의 보물로 삼은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민희와 같은 질문을 밝힐 수 있는 학생을 만날 수 있었고 계속 인연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질문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엉뚱한 아이 민희의 또 다른 에피소드는 청소당번 건이다. 당시 교실 옆이 수도가이고 물이 자주 막혀서 책임있는 당번이 필요하였다. 매 쉬는 시간마다 찌꺼기가 끼지 않도록 수고(손 수, 고생할 고)해야 했기에 특히 추운 겨울에 손이 시려워 대부분의 아이들이 꺼리는 일을 민희가 자청한 것이다. 당시 나는 노자철학을 전공한 김용옥 선생님의 글을 자주 읽었고 태권도와 관련하여 노자의 글귀를 자주 일러주었는데 민희 그릇을 키우는데 일조한 듯 싶었다. 노자철학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리더십과 관련하여 양보야말로 리더십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가 나에게 다시 나타난 건 대학 즈음이다. 무술에 대한 관심을 계속 키우고 생물학도로서 석사반을 마치고 국과수에 입사했을 때 마땅히 기쁜 얼굴이어야 했건만 민희는 석사반에서의 학문활동이 국과수의 밀려드는 일로 인하여 끊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던 것이다. 당연히 받아주고 얘기를 들어 주어야 했건만, 나 역시 내 생활이 학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충분히 받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인연이 서로 닿지 않은 것이다. 그이 논문 앞에 감사의 글에 이런 글귀가 있다.
저의 이런 마음에 지표를 잡아주시고 지금까지도 항상 마음에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시는 스승님 민기식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논문 앞에 쓴 글도 옮겨본다.
민기식 선생님. 어려서 가르쳐 주신 가르침에 작은 성과가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을 이루고 머물지 않고, 내 몸 밖의 이익을 탐내지 않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제가 민희 올림
내가 교육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지만 민희는 특이하게도 23살 교사 민기식에게 최초로 협응하기 시작했던 제자였던 것이다. 스승이라는 기준과 제자라는 기준이 얼마나 높은가를 이규형 사범님을 통해서 체득했기에 감히 나를 평가하기 이르지만, 초등학교 6학년 김민희 학생에게 비쳐진 민기식 교사의 모습은 좀 각별했나 보다. 과연 나는 스승의 자격이 있을까?
오늘 오후 민희가 결혼할 상대 장윤정 선생님을 뵙고 비로소 민희야 말로 제자로서 자격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제자는 스승을 넘어서야한다. 나보다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철저하기에 민희는 제자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장윤정 선생님이야말로 안목이 대단합니다. 가정과 직장, 안과 밖을 아우를 수 있는 민희를 선택하신 장윤정 선생님의 인격이 높고 크시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자격이 늘 미진하기에 민희에게 보다 분명한 생각을 밝히지 않고 늘 미적거린다. 한 때는 민희가 학문과 직장 일 사이에서 번민할 때, 의도적으로 만남을 기피한 적이 있다. 네 연령에 맞는 고민을 친구와 동료들과 푸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면서 나이 든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그 때는 나 역시 혼란스러웠기에 스승다움을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사람간의 인연이 끊길 듯 이어지는 것이 신비롭다고 생각하면서 좋은 쪽으로 기억하는 민희가 고맙기만 하다.
김민희, 장윤정의 결혼 주례사는 사범님의 몫으로 던져졌지만, 사범님께서 중국 세미나로 빠지시면 대타로 내가 주례를 할 심산이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을 스승으로 생각하는 제자에게 더욱 정신차리고 교사를 넘어서 스승의 길을 추구하라는 각성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지금 내 학급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전면적으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럽고 보람있는 일인가는 책임감을 키울 때 가능하다. 내겐 사범님이 계셔서 스승상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가를 알고 있기에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사범님이 계셔서 제자로서 부분적이나마 교육학에서 이겨내보고자 한다. 내 인생 최대의 도전이다. 제자 민희도 나를 이기고 장윤정 선생님과 함께 아름다운 인생을 가꾸길 기원한다. 결혼식은 가정의 독립을 인정하는 약속의 시간이다.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