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7편
뇌동이 영관묘에서 수상한 사내를 체포했을 때는, 아직 날이 밝기 전이었다. 뇌횡이 말했다.
“이놈을 조촌장의 장원으로 일단 끌고 가서 밥이나 얻어먹은 다음에 현청으로 압송하여 취조해야겠다.”
뇌횡은 사내를 끌고 촌장의 장원으로 향했다.
동계촌의 촌장은 조개(晁蓋)인데, 본래 그 조상은 고을의 부호였다. 그는 의리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 천하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누구든 도움을 청하러 오는 자가 있으면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고 장원에 머물게 했으며, 떠날 때에는 은자를 주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창봉술을 좋아하였고, 힘이 엄청 셌다. 결혼도 하지 않고 무예를 수련하고 몸을 단련하였다.
운성현 동문 밖에는 두 마을이 있었다. 동계촌과 서계촌이었는데, 큰 시내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처음 서계촌에 항상 귀신이 나타나 대낮에도 사람을 홀려 시냇물에 빠지게 했는데,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이 지나가다가 마을사람에게 그 얘기를 듣고서,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청석으로 시냇가에 탑을 쌓게 하여 귀신을 제압하였다. 그러자 귀신이 서계촌에서 동계촌으로 도망쳤다. 조개가 그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홀로 시내를 건너가 청석탑을 빼앗아 동계촌 쪽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탁탑천왕(托塔天王)이라고 불렀다. 조개는 그 지방의 유지로서 강호에도 그 이름을 날렸다.
새벽에 뇌횡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한 사내를 체포하여 장원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하인이 조개에게 보고하였다. 이때 조개는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는데, 뇌포교가 왔다는 말을 듣고 얼른 문을 열어주라고 하였다. 하인이 문을 열자 병사들이 먼저 사내를 문간방에 가두었다. 뇌횡은 초당으로 가서 좌정하였다. 조개가 나와서 영접하고 물었다.
“포교께서는 무슨 공무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뇌횡이 대답했다.
“사또의 명을 받아 주동과 함께 각기 병사들을 거느리고 도적을 잡기 위해 마을들을 순찰하러 나왔습니다. 힘들고 지쳐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들렀습니다. 촌장님 잠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방해는 무슨!”
조개는 하인들에게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게 하였다. 조개가 물었다.
“우리 마을에서도 도적을 잡았습니까?”
“저 앞의 영관묘에 어떤 사내가 자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선량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술에 취해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밧줄로 묶어서 관아로 데려가는 길인데, 우선은 시간도 너무 이르고 촌장님께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리로 데려왔습니다. 후에 혹시 그에 대해 관아에서 물어보면, 촌장님께서 응답을 하셔야 할 테니까요. 지금 문간방에 가두어 놨습니다.”
조개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감사인사를 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후 하인들이 음식을 가져왔다. 조개가 뇌동에게 말했다.
“여기는 얘기하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후당으로 가시지요.”
조개는 하인을 불러 불을 켜게 하고, 뇌횡을 후당으로 안내하였다. 조개가 주석에 앉고 뇌동은 객석에 앉았다. 두 사람이 좌정하자, 하인들이 술과 음식을 내왔다. 조개는 뇌횡에게 술을 권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마을에 대체 어떤 도적이 있단 말인가? 어떤 놈인지 한번 봐야겠다.”
조개는 집사를 불러 말했다.
“여기서 포교님을 모시고 있어라. 나는 측간에 좀 갔다 오겠다.”
조개가 등불을 들고 문루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병사들이 모두 술 마시러 가고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조개가 문을 지키는 하인에게 물었다.
“포교가 잡아 온 도적이 어디 있느냐?”
“문간방에 있습니다.”
조개가 방문을 열고 보니, 서까래에 한 사내가 매달려 있었다. 웃통을 벗고 있어 새까만 피부가 드러나 있고, 다리에는 시커먼 털이 숭숭 나 있었다. 조개는 등불을 가까이 대고 살펴보았다. 얼굴은 검붉고 넓적했으며, 구레나룻 밑에 붉은 점이 있고 거기에 검누런 털이 나 있었다. 조개가 물었다.
“이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우리 마을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사내가 말했다.
“저는 멀리서 왔는데, 여기 어떤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도적이라고 체포하는데, 해명을 해야겠습니다.”
“우리 마을의 누구를 찾아왔소?”
“이 마을의 한 호걸을 찾아왔습니다.”
“그 호걸이 누구요?”
“조촌장입니다.”
“무슨 일로 그를 찾소?”
“그는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의로운 호걸인데, 제가 그를 부자로 만들어드리려고 왔습니다.”
“잠깐! 내가 바로 조촌장이오. 먼저 당신을 구하고 봅시다. 당신은 나의 친척이라고 합시다. 잠시 후에 내가 포교를 데리고 오면, 당신은 나를 외삼촌이라고 부르시오. 그럼 내가 외조카라고 인정하겠소. 아주 어릴 때 이곳을 떠났다가 이제야 찾아왔기 때문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겠소.”
“정말 감사합니다!”
조개는 후당으로 다시 가서 뇌횡에게 말했다.
“손님을 소홀히 대접해서 죄송합니다.”
뇌횡이 말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제가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다시 술을 몇 잔 마시는 동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뇌횡이 말했다.
“동방이 밝았습니다. 저는 이제 관아로 가야겠습니다.”
“포교께서는 공무를 집행하시니 더 붙잡지 못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우리 마을에 오실 일이 있으면 찾아주십시오.”
“촌장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다시 찾아뵈러 오겠습니다. 나오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문 앞까지는 전송해야지요.”
두 사람이 후당에서 나와 보니, 병사들이 이미 배부르게 먹고 창봉을 들고 있었다. 문간방에서 사내를 끌고 나왔다. 조개가 사내를 보고 말했다.
“덩치가 엄청 크구먼!”
뇌횡이 말했다.
“이놈이 바로 영관묘에서 체포한 도적놈입니다.”
그때 사내가 소리쳤다.
“외삼촌! 저를 살려주십시오!”
조개가 그를 살펴보는 척하다가 소리쳤다.
“아니! 너는 왕소삼이 아니냐!”
사내가 말했다.
“예! 제가 왕소삼입니다. 외삼촌은 저를 구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뇌횡이 조개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떻게 촌장님을 알아봅니까?”
조개가 말했다.
“이 녀석은 제 외조카 왕소삼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사당에서 자고 있었지? 이 녀석은 누님의 아들인데, 어렸을 적에 여기서 살았습니다. 4,5세 때 누님과 자형을 따라 남경으로 이사를 갔었습니다. 이사 간 지 10여 년 만에 이 녀석이 14,5세가 되어 객상을 따라 이곳에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듣기에,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고 하던데, 여기는 어쩐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구레나룻 밑에 붉은 점이 있는 것을 보니 비로소 알아보겠습니다.”
조개가 사내를 보고 말했다.
“소삼아! 너는 바로 나를 찾아오지 않고, 어째서 마을에서 도둑질을 했느냐!”
사내가 말했다.
“외삼촌! 저는 도적이 아닙니다.”
“네놈이 도적이 아니라면, 왜 체포되었겠느냐!”
조개는 병사의 손에 들린 몽둥이를 빼앗아 사내의 머리를 때렸다. 뇌횡과 병사들이 말리며 말했다.
“멈추십시오! 그의 말을 들어보시지요.”
사내가 말했다.
“외삼촌은 화를 가라앉히시고,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14,5세 때 여기를 와 봤으니, 이미 10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감히 외삼촌을 찾아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당에서 한숨 자고 술이 깨면 외삼촌을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사람들이 사유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체포한 것입니다. 저는 도둑질 한 적이 없습니다.”
조개가 다시 몽둥이를 들고 때리려고 하면서 욕을 했다.
“이 짐승아! 네놈이 나를 바로 찾아오지 않고, 오는 도중에 또 술을 처먹었단 말이냐! 우리 집에 네놈이 마실 술도 없을 줄 알았냐! 이 죽일 놈아!”
뇌횡이 말리며 말했다.
“촌장님께서는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촌장님의 조카는 도둑질 한 적이 없습니다. 덩치 큰 낯선 사내가 사당 안에서 자고 있길래, 의심이 들어 붙잡아 온 것뿐입니다. 촌장님의 조카인 줄 알았더라면 체포하지 않았을 겁니다.”
뇌횡은 병사들에게 사내를 풀어주게 하였다. 뇌횡은 다시 조개에게 말했다.
“촌장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조카인 줄 알았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개가 말했다.
“잠깐만 들어가시지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뇌횡이 조개를 따라 후당으로 들어가자, 조개가 은자 열 냥을 건네면서 말했다.
“적다고 꺼리지 마시고, 웃으며 받아주십시오.”
뇌횡이 말했다.
“이러시면 안 되는데…”
“만약 받지 않으시면, 저를 나무라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촌장님의 호의이니 받아두겠습니다. 다른 날 보답하겠습니다.”
조개는 사내로 하여금 뇌횡에게 감사 인사를 하게 하고, 병사들에게도 돈을 나누어주었다. 뇌횡은 조개를 작별하고 돌아갔다.
조개는 사내와 함께 후당으로 가서, 우선 옷을 주어 갈아입게 하였다. 그리고 정체를 물었다. 사내가 말했다.
“저는 유당(劉唐)이라고 하는데, 동로주 사람입니다. 구레나룻 밑에 붉은 점이 있어서 사람들이 저를 ‘붉은 머리털 귀신’ ‘적발귀(赤髮鬼)’라고 부릅니다. 크게 한몫 볼 수 있는 건수가 있어서 촌장님께 알려드리러 왔다가, 밤이 늦어서 사당에서 취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저들에게 체포되어 끌려오게 된 것입니다.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가도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대면하고서도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다행히 이렇게 뵙게 되었습니다. 형님! 좌정하시고 유당의 절을 받으십시오!”
유당이 절을 한 다음, 조개가 말했다.
“자네가 말하는 건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유당이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강호를 떠다니면서 많은 호걸들과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형님의 큰 이름도 자주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산동과 하북의 장사치들이 모두 형님을 신뢰하는 것을 보고, 형님께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믿을 만하다면 모든 것을 솔직히 다 털어놓겠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심복이니 걱정 말고 말하게.”
“북경의 양중서가 10만 관의 돈으로 금은보화를 사서 동경에 있는 장인 채태사의 생일 축하 선물로 보낸다고 합니다. 작년에도 10만의 금은보화를 보냈는데, 중도에서 어떤 놈들에게 약탈당했는데 아직도 체포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도 10만 관의 금은보화가 이미 준비되어, 6월 15일 생일날에 맞추어 조만간 출발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건 의롭지 못한 재물이니 취하더라도 꺼릴 것이 없습니다. 좋은 방도를 상의하여 도중에 탈취한다면, 비록 하늘이 알더라도 죄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형님께서는 진정한 남아이며 무예도 출중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재주가 부족하지만, 무예를 조금 익혀서 너덧 명의 장정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1,2천 군마 속에서도 창 한 자루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형님께서 버리지 않으시면, 이 재물을 형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형님의 뜻은 어떠하신지요?”
조개가 말했다.
“장하네! 다시 의논하세.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일단 객방에서 쉬게. 내가 생각해 보고, 내일 다시 얘기하세.”
조개는 하인을 불러 유당을 객방으로 안내하여 쉬게 하였다.
유당은 객방에서 생각했다.
“내가 뭣 때문에 이런 고초를 당한 거냐! 조개 형님 덕분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뇌횡이란 놈이 형님을 속여 은자 열 냥도 받아먹고 또 나를 밤새도록 매달아 놓았겠다! 그놈이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내가 몽둥이를 들고 뒤쫓아 가서 모조리 때려눕히고 은자도 되찾아서 형님께 돌려드려야지. 그래야만 내 분함이 좀 풀리겠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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