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9월 26일)
<시편 11편> “의인을 감찰하시는 여호와”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11:1-7)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22:1,2)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5:8)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창19:24,25)
『시편 11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사울 왕의 추격을 당하는 가운데 지은 지로서, 지금 시인인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의 대적들은 그에게 ‘네 산으로 한 번 도망쳐 보아라. 그래 봤자 너는 한 마리 새에 불과하다’고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시인은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자기가 어떤 인간적인 도피책을 취하기보다 오직 참된 피난처이신 여호와만을 의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악인들이 그를 쏘기 위해서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고 화살을 장전하듯이 집요하게 해치려 하고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3절에서 시인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회의 기본 질서와 공의가 사라지고 불의한 악한 세력들이 득세하는 사회적 상황을 말합니다. 그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 의인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에 그는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고 탄식을 합니다. 당시 다윗이 당하던 고난은 그 개인만의 고난이 아니라 공의와 진실이 사라진 이스라엘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처럼 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악인들은 득세하고 다윗을 비롯한 의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삼상22:1-2 참고).
이 시편에 나오는 악인들은 다윗을 비롯하여 정직한 의인들을 제거하도록 사울 왕을 부추기는 간사한 자들로서, 그들이 의인들을 핍박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그들이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사상 속에 하나님이 없는 실천적 무신론자들로서, 하나님의 뜻과 공의보다도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가 인생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암담한 현실 때문에 ‘의인이 어찌할꼬’하고 탄식하던 시인은 비록 터가 무너진 세상의 현실 속에서도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시며 성전에서 의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신다’고 할 때 ‘감찰한다’는 히브리어 ‘바한’은 종종 시험(테스트)하거나 단련하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즉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연단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으로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처럼 자신을 연단하시는 가운데 악인들마저 사용하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다윗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오리라는 사실을 단언하고 있습니다. 여기 묘사된 불과 유황의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서(창19장 참고), 그처럼 철저한 파멸이 악인들에게 갑자기 닥칠 것을 암시합니다. 반면에 오직 여호와께 피하는 정직한 자들은 마침내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뵙는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로써 시인은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됨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임을 그는 말한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오늘의 기도 ● “터가 무너지고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오직 여호와께 피하는 의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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