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가 쓴 '제나라 사람(齊人)' 이야기
수필가 정임표
어느 깊은 산골, 가난하지만 뼈대 있는 가문의 선비 허풍(虛風)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평생의 과업이 있었으니, 바로 한양으로 올라가 장원급제를 하여 가문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방에 놓인 책들은 먼지만 뽀얗게 쌓여 갈 뿐이었고, 허풍의 발길은 늘 집 밖을 향해 있었습니다.
글공부에 매진해도 모자랄 시간에 그가 온종일 매달린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한양 골목골목 높은 대감들의 집안 사정을 훤히 꿰뚫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판서 댁에 경사가 났는지, 어느 대작의 집에 초상이 났는지가 그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특히 초상이 난 대감집은 허풍에게 가장 훌륭한 사냥터였습니다. 슬픔에 잠긴 상갓집은 문턱이 낮아져, 그저 허름한 갓을 쓰고 슬픈 표정만 지어 보이면 누구든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초상집에 들어설 때마다 마치 고인과 대단한 의리라도 있었던 것처럼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상주들이 건네는 고기와 술을 배불리 먹은 뒤, 문상을 온 다른 명망 높은 대감들 틈바구니로 슬그머니 끼어들었습니다. 대감들이 시국을 논하면 옆에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 그들이 농을 던지면 가장 크게 웃으며 마치 자신이 그 일원이 된 듯한 기분에 취했습니다.
늦은 밤,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온 허풍은 아내 앞에서 어깨를 잔뜩 으쓱이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임자, 내가 오늘도 이 판서 댁 상가에서 우의정 대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라의 대사를 논하고 왔소! 어찌나 나를 귀히 여기던지, 역시 큰 물에서 놀아야 사람 대접을 받는 법이라니까.”
아내는 매일같이 책장 한 번 넘기지 않으면서 귀빈들과 어울렸다고 허세를 부리는 남편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아내는 이튿날, 상복(喪服)을 챙겨 입고 나서는 남편의 뒤를 몰래 밟기 시작했습니다. 허풍이 당도한 곳은 한양에서 가장 권세 높은 영의정 대감댁의 초상집이었습니다. 아내는 멀찍이 담벼락 뒤에 숨어 남편의 행태를 지켜보았습니다.
남편은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곡을 올렸습니다. 상주들이 절을 받고 물러나자, 남편은 쏜살같이 음식이 차려진 마당 구석으로 향했습니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고기반찬을 입에 밀어 넣고, 술을 연거푸 들이켰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남편은 갓을 고쳐 쓰고는, 저 멀리 화려한 도포를 입고 모여 있는 대감들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대감들이 한마디 던질 때마다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굽히며 아부를 떨고, 그들의 옷자락 끝이라도 스치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이 된 양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감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하인들마저 남편을 ‘상갓집 개’라 부르며 손가락질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느끼던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영광’의 실체는, 결국 멸시와 구걸 뒤에 숨은 애처로운 허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 남편은 어김없이 술에 취해 당당하게 사립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허허, 오늘도 내 영의정 댁에서 대감들과 술잔을 나누며 장래를 약속하고 왔소. 나 같은 인재가 곧 조정에 등용되는 것은 시간문제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내는 깊은 한숨을 쉬며, 남편의 책상 위에 먼지 쌓인 서책을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대감들의 그림자 뒤에 서서 얻어먹은 고기 한 점에 취해, 스스로가 대감이 된 줄 착각하셨구려. 남의 빛을 제 빛인 양 우쭐대는 동안, 당신의 등불은 까맣게 꺼져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오. 내일 마당 쓸어 모은 먼지나 털어 드려야겠소. 대감집 앞마당 먼지가 묻어 있으니, 당신 눈에는 그것도 황금으로 보일 테지요.”
남편은 아내의 날카로운 뼈 때리는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붉어진 얼굴로 먼지 쌓인 책장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후학 여러분! 열심히 자기 공부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