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항은 안면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항구다. 포구로 이어지는 진입로에서부터 횟집과 수산물 판매센터 등이 즐비하다. 요즘 이곳 식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메뉴는 게국지다. 겟국지, 겟꾹지, 깨꾹지 등으로 불리는 게국지는 본래 게장 국물이나 해산물 국물을 넣은 김치를 뜻한다. 그러던 것이 먹거리가 다양해진 요즘에 와서는 게국에 담근 김치나 우거지를 이용한 찌개로 변모했다.
해산물이 풍부한 태안반도에서는 예부터 게장을 담가 먹었다. 그 게장에서 건더기를 건져 먹은 후 남은 국물은 보관해두었다가 갯벌에서 잡은 농게 등을 더 넣어서 다시 게장을 만들었다. 꽃게와 농게 등으로 여러 차례 게장을 담근 국물 속에는 단백질과 무기질이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이 국물은 맛과 영양이 풍부한 겟국으로 탄생했고, 겟국은 다시 김장을 담글 때 양념으로 이용됐다.
겟국과 호박을 넣고 아무렇게나 버무린 김장김치를 태안 지역에서는 게국지라 불렀다. 어느 정도 익어 맛이 들면 국처럼 끓여 먹었는데, 겟국의 짠맛과 호박의 달큰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태안의 토속음식인 게국지다. 어려웠던 시절 국물 한 방울까지 알뜰히 사용했던 조리법이 게국지 탄생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이제는 맛도 맛이지만 어려운 시절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백사장항에서 맛보는 게국지는 본래의 토속음식과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조리법도 진화하는 것일까. 백사장항의 게국지는 묵은지찌개에 꽃게, 대하, 호박고구마를 넣어 끓인 일종의 해물탕이라 할 수 있다. 멸치와 파뿌리를 끓인 물에 묵은지와 팽이버섯, 안면도 호박고구마와 꽃게를 넣은 탕이다. 잘 익은 김장김치의 진한 국물과 꽃게의 달콤한 맛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밥 한 그릇을 어느새 비웠는지 모를 정도로 국물이 진국이다. 배가 불러 수저를 내려놓았다가도 아쉬운 마음에 다시 수저를 국물 속으로 밀어 넣기 일쑤다.
해상인도교를 산책하고 백사장항을 구경하다 보면 배가 출출해진다. 이럴 때 수북하게 쌓인 대하튀김, 꽃게튀김, 호박고구마튀김 등 고소한 간식거리가 군침 돌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