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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설교 제목이 신앙은 어렵다였습니다. 제가 설교 말미에 다음 주에는 신앙은 쉽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다고 일종의 선포하는 선포를 했어요.
근데 이게 약간 파장이 있었어요. 그냥 성도들이 신앙은 쉽다는 말에 약간 혹한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는 아니지만 몇 분이 저한테 약간 기대감을 가지고 이번 주에 설교를 기대한다는 등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집에 있는 분도 그런 말씀을 하셔가지고 제가 일주일 내내 부담이 됐어요. 어쩌면 성도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거라서 조금이라도 쉬운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아마 많아서 그랬지 않은가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실은 제가 설교하는 지금도 조금은 걱정이 돼요.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앙은 쉬울지 모르겠는데 신앙은 쉽다라는 설교를 하는 건 어려울 수 있겠구나 이 생각을 했습니다.
웃으라고 한 말인데 아무도 안 웃으셔서
여러분 실제로 신앙은 어려워요. 신앙이 쉬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쉬울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보다 뭔가를 좀 더 하거나 포기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리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쉬운 길이 신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없는 것을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여러분 없는 걸 설명하면 설명하는 사람도 혼돈에 빠지고 그 설명을 듣는 사람도 혼돈에 빠져요. 왜냐하면 없기 때문에 없는 걸 설명하는 거잖아요.
요즘 아주 재미있는 유튜브 유튜브가 유튜버가 한 명 이게 등장이 있어요. 이 사람은 신의 악단에서 단장 역할을 맡았던 태항호라는 배우예요. 이 사람이 교회는 안 다니는데 궁금은 하네요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거기에 크리스천들을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그런 채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이 진행자가 되어서 신앙 이야기를 한다. 정말 재미있는 콘셉트 아니에요. 교회는 안 다녀요. 좀 관심은 있지만 아직 교회에 발은 내딛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불러다가 신앙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걱정을 해요. 왜냐하면 저게 될까 근데 저는 반대로 별로 걱정이 안 됐어요. 왜 안 되냐 하면 없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컨셉 자체는 좀 애매할 수 있어도 저 프로그램은 최소한 금방은 망하지 않겠다.
물론 사람들이 초대 손님이나 사회자가 좀 부족해서 문을 일찍 닫을 수는 있지만 생각보다 금방은 망하지 않겠다 이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계신 하나님을 나누는 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요.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걸 나누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요. 성령이 늘 여러분과 저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 성령을 나누는 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이 프로그면 생각보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면 이게 사기 방송이잖아요. 제가 진행하지 않더라도 이건 엄청나게 걱정이 됐을 거예요. 만약에 그런 방송들이 가끔 있잖아요. 사기성이 있는 방송들 그래서 잠깐 열었다가 문을 닫아요. 사기를 치고 난 이후에 왜냐하면 그게 실제가 아니고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근데 약간 컨셉은 애매해요. 교회는 다니지는 않는데 궁금은 하네요라는 컨셉으로 이제 초대 손님을 불러서 대화를 하고 이렇게 나누지만 실제 하나님이 실제하시니까 이 프로그램이 문제가 되지는 않겠다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이 믿음이 있으면 신앙은 생각보다 쉬워져요. 그러니까 신앙이 어려운 건 못 믿어서 어려운 거고 신앙이 쉬운 건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쉬워지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신앙적인 고민을 하는 대부분의 이 지점은 어떤 지점일까요?
못 믿는 지점인 거예요. 확신이 들지 않는 거예요. 말씀은 듣지만 말씀을 읽지만 삶은 경험하지만 이게 확신이 들지 않아서 괴롭고 힘든 거예요. 근데 확신이 생기면 믿음이 있으면 신앙은 쉬워집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온전히 믿지 못해서 생긴 어려움일 가능성이 되게 높아요. 그러니까 온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그 믿지 못한 것 때문에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으면 쉽지만 반대로 믿지 못하면 심각해져 갑니다. 계속 고민되기도 하고요. 고민을 넘어서 고통스럽기까지 해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다가 못 믿는 지점이 있어요. 사소하고 그냥 작은 것들은 쉽게 믿어지는데 어느 날 큰 문제가 생기거나 큰 어려움이 생기면 이게 못 믿어지는 거예요. 그때부터 신앙이 어려워지고 그리고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으면 쉽지만 못 믿으면 어렵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 말씀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지금 여러분의 삶의 주변에 있는 파도는 의심하기 때문에 일고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 교회 안에 있는 파도도 동일하게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일고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 가정이 경험하고 있는 파도 또한 내가 의심하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파도가 일어나고 있는 거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파도가 언제쯤 여러분에게 닥쳐왔는지 아마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못 믿었을 때일 거예요. 대부분의 인생의 파도는 내가 못 믿는 지점에 지점에서 신뢰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내가 확신하면 내가 믿으면 이 파도는 초기에는 크게 일어날지 몰라도 금방 잔잔해져 가요. 초기는 커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작아져요. 근데 못 믿고 불안하고 염려하면 할수록 이 파도는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성경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입니다. 시작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의 계심을 믿는 믿음 위에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기도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봉사나 섬김이나 교재가 있어야 돼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으면 예배도 생각보다 수월하고요. 예배를 통해서도 많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어요. 근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고하게 확신하지 못하니까 예배를 통해서 얻고 누리는 은혜도 점점 더 적어져요.
여러분 믿음이 적을수록 점점 불안해져 갈수록 예배를 통해서 얻는 은혜는 점점 더 적어져 갑니다. 반대로 우리의 믿음이 든든해지고 견고해지면 견고해질수록 예배를 통해서 얻는 은혜는 점점 더 많아져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 위에 기도가 있어야 돼요.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하지 않는 기도와 비슷할 거예요. 시간을 들였다. 아니면 어쨌든 뭐 이렇게 수고를 했다는 측면에서 좀 나을 수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는 기도일 수도 있어요. 우리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 위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지고 드려져야 되는 거예요.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 위에 교회를 봉사하고 섬겨야 그 섬김과 봉사를 통해서 섬기다 봉사하다가 얻게 되는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어요.
여러분 교회가 이 낭만적인 곳은 아니에요. 저도 긴 세월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가 정말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들은 그냥 찰나찰나 찰나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긴 시간을 보면 정말 교회는 행복했다. 저는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끊임없는 뭔가의 헌신이 있었고 끊임없는 뭔가에 때로는 다툼도 있었고요. 끊임없는 가의 뭔가에 좀 힘듦도 늘 있었어요. 그게 교회 문제로 힘들기도 하고 내 삶의 문제로 힘들기도 하고 항상 그랬어요.
그런데 이 신앙생활이 쉬우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 위에 그게 있어야 되는 거예요. 대부분이 교회 생활을 통해서 재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 느끼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봉사를 너무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내 삶에 일어나는 인생의 문제들도 너무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믿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이 재미없어지고 봉사도 그렇게 됩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믿지 못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못 믿으면 대책이 없어요. 이게 믿어야 뭔가는 풀리는 거예요. 근데 못 믿으면 대책 없는 것이 신앙생활이에요.
믿음 없으면 정말 힘든 문제예요.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거예요. 어떻게 강요해도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 없는 사람의 믿음을 강요하면 시험 들어요. 믿음은 강요해서도 안 되고 그래서 정말 힘든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견인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신앙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 파트는 조금 어려운데 우리가 그래도 함께 고민하면서 말씀을 좀 듣겠습니다. 칼빈지 5대 교리 중에 하나가 이제 성도의 견인이에요.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를 정말 짧게 설명하면 거듭난 성도,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에서 떨어지거나 멀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보존하신다는 것이 성도의 견인이란 이 교리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이 성도의 견인이라는 이 교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오해를 해요. 첫 번째 오해는 뭐라 하면 하나님이 끝까지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니까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지키시니까 내가 죄를 지어도 아무 문제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두 번째 사람은 내가 거룩하지 않아도 상관없겠구나. 어차피 하나님이 내 믿음을 지키시니까 내가 거룩하게 살지 않아도 문제없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근데 성경은 이 성도의 견인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교리예요. 전혀 다른 교리예요.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받고 난 이후에 거룩함으로 살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도 하시지만, 또한 그들이 거룩하기도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데살로니가전서 3장 13절을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한 구절을 더 보면, 로마서 6장 19절 하반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의 종으로 들여 거룩함에 이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거룩함은 의로운 길에서 의를 따르는 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명령하셨고, 근데 그 거룩함은 여러분과 제가 진리를 따르고 진리의 길을 걸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 거룩함이에요.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보면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시작 내
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거룩은 하나님이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끝까지 끝까지 요청하시는 명령인 거예요. 우리가 가난하고 우리가 힘들고 내 삶이 어렵다고 이 거룩에 대한 명령이 멈춰지는 게 아니에요. 이 거룩에 대한 명령은 끊임없이 우리가 가난하든 우리가 힘들든 우리가 어렵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려지는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만 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그렇게 살도록 보호하신 분이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보다 신앙생활은 쉬울 수 있다. 왜냐하면 나를 지키시고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보호하신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에요.
한 구절을 더 읽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입니다. 크게 읽습니다. 시작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게 어떤 의미냐 하면 거룩함 없이는 지금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기도 하시는 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거룩을 명령하셨어요.
근데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라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늘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인 거예요. 그래서 늘 은혜를 베풀어 내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내가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늘 은혜를 베푸시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요?
근데 이 일이 되게 힘든 일이에요. 근데 하나님은 항상 보면 힘든 일 옆에 하나님이 은혜도 함께 두셔요. 이렇게 믿음이 없으니까 이 은혜를 어떻게 못 보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이 그 힘든 일들을 잘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길과 방편을 그 사건 옆에 함께 두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믿음이 없고 신앙이 없으니까 이것을 못 보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오늘도 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돼요. 은혜가 멈춰진 게 아니에요. 지금 내려오고 있어요. 고난이 있다고 은혜가 멈춰진 게 아니고 문제가 있다고 은혜가 멈춰진 게 하나님의 은혜는 끊임없이 내려와 왜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지키시고 함께하시고 보호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그 고난과 어려움 옆에 있는 하나님이 함께 두신 그것을 극복하도록 두신 은혜들을 은혜의 방편들을 우리가 알고 찾아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가정에 경제적인 문제가 생겼어요. 근데 하나님은 그 한 구석 옆에 그 경제적인 문제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은혜도 함께 두시는 거예요. 근데 성도들이 어떻게 우리가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그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그 은혜의 방편들을 못 찾아내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고난을 직격탄으로 맞는 거죠. 고난을 직격다로 맞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고난과 함께 주신 고난을 이겨낼 방편을 못 찾아내서 그런 거예요.
하나님 여러분을 가난하게 하셨어요. 그 옆에 그 가난을 극복하고 남을 만한 은혜들을 함께 주셨어요. 못 찾아내는 거예요. 때로는 그게 기도일 수도 있고요. 때로는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요. 때로는 그게 한 구절 말씀일 수도 있고요. 때로는 어떤 상황과 사건일 수도 있어요. 성도를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과 힘들 때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어려움과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방편들을 항상 함께해 주시는 분이에요. 우리가 이것을 못 찾아내니까 신앙생활이 어려워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믿음은 쉽다고 할 수 있어요. 그 은혜의 방편을 찾아낸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쉬운 일인 거예요. 그런데 이거를 못 찾아내면 믿음은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괴로운 일인 거죠.
목회도 그렇더라고요. 이게 어려움이 있으면요. 그 어려움을 극복해낼 길도 함께 옆에 이렇게 두셔요. 제가 믿음이 없어서 그 어려움으로터 나를 지키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나와 함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두신 방편을 내 눈이 띄어지지 않으니까 내가 못 보는 거죠. 그래서 그냥 고난을 찍혔다으로 맞고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해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셨다고 이렇게 하는 거죠.
세 번째로 신앙생활이 쉬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9절 10절을 우리 좀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잘 살까요?
그냥 좀 질문을 단순하게 한번 들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잘 살까요?
제가 발견한 잘 사는 사람 이게 신앙적으로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일 수 있고, 세상에서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 가족 관계를 잘하는 것, 동료의 관계가 좋은 것 이런 걸 다 의미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이 잘 살까요? 사랑받은 사람이 잘 삽니다. 사랑을 못 받았거나 왜곡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잘 살기 어려워요. 물론 이 사람이 그 이후에 그 모든 걸 극복해 낼 만큼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어려서 왜곡된 사랑과 사랑을 받거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승복보다 세상 사는 게 어렵고 더 어려운 건 신앙생활도 어려워요. 어려움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이긴 사람의 특징 중에 하나가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고난 앞에서 잘 멈춰지지 않아요. 저는 그래서 동생들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해서 되게 감사해요. 어떻든 제가 마지고 어떻든 여러분은 안 믿으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긴 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도 겉보기로는 제가 주일날이나 수요일날 예배를 빠진 적이 없으니까 고3도 그랬고, 제가 고3도 주일 새벽은 새벽 기도를 다녔던 기억이 나요. 당연히 수요일도 가고 그러니까 당연히 그런 나를 부모님이 많이 사랑하셨겠죠. 그러니까 맞이라서 사랑하기도 하고 경상도는 약간 그런 게 있잖아요. 한 분은 아버지가 저한테 그때 하여튼 뭐 저희 가정이 좀 어려움이 있어서 돈을 조금 이렇게 주셨어요.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저 아직 결혼하지 못한 동생들이 있는데 동생들 인생을 책임지라고 어떤 저는 마이라서 부담감도 많지만 사랑도 되게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가진 특징이 하나 있는데 잘 포기하지 않아요. 저는 생각보다 사람에 대해서 잘 포기하지도 않고 상황에 대해서 잘 포기하지도 않고 낙심하기도 하고 괴롭긴 하지만 어떻든 포기는 잘 하지 않아요.
물론 믿음도 있어서 그렇겠지만 근본적으로 저는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 중에 하나예요. 물론 중간에 왜곡된 사람이 사랑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랑의 모습도 있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제 유년기를 봤을 때 부모님으로부터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은 자존감 자존심이 강한 게 아니라 자존감이 강해요. 그리고 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문제 앞에서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해요.
그런데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존감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왜냐하면 여러분과 저는 다 세상 그 어떤 사랑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인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 사랑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생각보다 신앙은 쉬울 수 있어요. 사랑받은 흔적이 있으며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 이 사람들은 생각보다 신앙생활이 쉬울 수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독생자 외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어요. 사랑의 힘은 놀랍고 위대합니다. 그리고 위기에서 그 사랑의 힘들을 경험하게 돼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원래 어려운 것이지만 생각보다는 쉬울 수 있어요. 그 받은 사랑이 고난을 이기게 하고 문제를 극복하게 만들고 삶의 어려움들을 통과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 사랑을 받은 힘이 있는 받은 흔적이 있는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잘해요. 그런데 보니까 제가 보니까 이렇더라고요. 성도들이 대부분은 사랑을 받았는데 철이 없어서 사랑받은 줄을 모르더라고요.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말한 것. 가끔 보면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자녀가 철이 없어서 사랑을 안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나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못 받았어요라는 사람이 있어. 물론 진짜 가끔은 지독하게 미움을 받고 자라는 분들이 있긴 있어요. 정말 비교해서 편애를 경험한 사람도 있긴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를 하나님부터 사랑을 받지 않은 성도가 한 명도 없어요.
근데 성도들이 좀 철이 없어서 사랑을 안 받았다는 거예요. 아마 여기에서 신앙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는 감정, 내가 은혜를 입었다고 느끼는 감정이 곧 믿음인 거예요.
그럼 따라 하겠습니다.
나는 사랑받은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에요.
여러분 이게 마음에 잘 새겨져 있으면 신앙생활은 생각보다 쉬워요. 사랑받지 못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면 신앙이 어려워요.
저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근데 신앙이 참 힘들더라고요.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을 때 목회가 너무 힘들어요. 목회의 환경이 힘들은 게 아니라 그 생각 자체가 저를 너무너무 힘들게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동일한 사랑을 받았잖아요. 그런데도 순교로 하나님의 사랑을 갚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놀랍지 않나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은 사랑은 같아요. 기본적으로 같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성도에게는 예수님 절반을 주고 어떤 성도의 예수를 다 준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모든 성도에게 자기의 독생자 외아들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다 주셨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다 사랑받은 사람인 거예요. 이 사랑에 대한 인식이 믿음이고 이 인식이 있어야 니가 신앙생활이 훨씬 더 수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를 사랑하십니까?
한 세 분 답하셨는데 이러면 저 일주일 내내 머리 싸고 막 드러누울 수도 있어요.
저를 사랑하십니까?
저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옆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족들을 사랑하십니까?
사랑은 생각보다 장애물을 쉽게 이기게 해요. 그러니까 교회가 사랑이 많으면 장애물이 문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그 사랑이 없는 교회의 특징은 사소한 것에 다 넘어지고요. 사랑이 있는 교회의 특징은 큰 문제에서도 안 넘어져요.
근데 여러분과 저는 사랑받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신앙생활이 훨씬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게 주도권에 대한 문제예요. 신앙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기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이런 거죠. 나는 청지기인데 청지기가 주인 행세하려고 하니까 이게 신앙이 어려운 거예요.
여러분 제가 주인이 아닌데 주인 노릇을 해요. 그럼 일단 어떻게 해야 될까요?
거짓말도 해야 돼요. 좀 위선이 가득 차야 돼요. 주인이 아닌데 주인 노릇하려면 위선적이지 않나요?
주인이 아닌데 주인 노릇하려면 교만하기도 해야 되고요. 주인인데 주인 노릇을 하려면 좀 더 고집도 세야 돼요. 주도권을 넘기지 않은 성도들의 특징인 거죠.
여러분 부모가 있는 자녀의 부모로 사는 것은 되게 어려워요.
왜요?
이미 부모가 있으니까 제가 이제 한국에 유학 온 자매들에게 형제 자매들에게 내가 한국에 있을 동안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와 우리 아내는 이제 엄마죠. 아내와 아버지 엄마가 돼줄게라고 이렇게 하면 그러면 이 형제들이 자매들이 처음부터 저를 막 아빠 엄마 이렇게 부를까요?
안 불러요 한참 시간이 지나야 돼요. 한참 동안 여러분 왜냐하면 부모가 이미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있잖아요. 캄보디아에도 있고 베트남도 있고 중국에도 부모가 있어요. 부모가 있어서 저를 부모로 코칭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여러분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기지 않고 내 힘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인생이 힘이 들어요.
재정이든 삶이든 자녀든 회사든 간에 주도권을 넘기면 힘들지 않지만 내 힘으로 이끌어가려면 너무 힘이 듭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내가 주인 된 삶은 힘이 듭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주인 된 삶은 힘들어요. 근데 세상은 항상 여러분 보고 주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으로 살면 힘들어요. 우리가요
왜요?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끄는 자가 아니라 이끌림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가면 쉬운데 내가 이끌어가는 삶은 너무 어려워요.
저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직간접적으로 엄청 많이 키웠는데 제가 키우는 가장 작은 동물이 펜더 마우스라는 동물이에요. 그러니까 햄스터인데 쥐를 닮았어요. 근데 되게 작아요. 손가락 정도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은 놈도 있고 되게 작은 것을 이렇게 키운 적이 있어요.
여러분 정말 신기한 게 이 작은 텐더 마우스도 고집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제가 키운 동물들 중에 고집 없는 놈을 하나도 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따르고 순종해야 될 우리가 고집 피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 온전히 잘 서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신앙생활이 아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승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김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