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끄트머리에서
봄이 오늘로 끝이다. 봄의 끝자락에 선다. 5월 31일-.
산책하고 돌아오니 여름호 문학지가 반긴다. 해마다 봄날이 가면 세월의 물가에서 아쉬움을 달랜다. 사계절에 뚜렷한 우리나라가 요즘은 봄의 실종을 피부로 느낀다. 마치 원치않게 여름을 맞이하는 듯, 아니 강제로 여름이 봄날에 끼어든 격이다.
이상기온으로 벌써 몇주째 25-30도를 오르내린다. 아무리 유엔에서 북한을 자제하는 목소리가 커져도 새정부들어 세번이나 핵무기를 발사한 북한처럼 무더움 또한 아랑 곳 없다. 어떻게 봄을 누렸던가 자문자답을 할 때면 다행히 여느 해보다 조금은 차별성을 보여 천만다행이다. 남해안의 광양,구례 봄 매화,산수유축제를 다녀온 게 다소 위안이면 위안이다. 그 후, 꼼꼼히돌아본 서해안과 선운사의 말사 내소사, 잘 꾸며놓은 고도(古都) 전주 여행은 봄날의 역사가 아니던가!
뻐뚜기 탁란처럼 봄날을 밀어내며 여름이 활개친다. 예전 같으면 서민의 계절이요. 싱싱한 과일철이며, 미역감는 개울가를 떠올려 얼마나 낭만에 부풀을까? 달력 상, 앞서가는 계절 여름의 등록은 내일부터다. 삶의 기력이 바닥을 헤매어 활동 반경을 한껏 좁게 하는 못된 이상 기온-,
비까지 내리지 않아 농사조차 포기한다며 거북이 등 얘기가 뉴스마다 떠오른다. 사실 봄이라고 봄비를 맞으며 누나와 화초 모종을 얻어 심을 때도 아닌데, 여름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기분이다. 화단마다 황무지다. 오월의 대명사가 무더위로 너무 일찍 핀 아까시아꽃이 한때는 앞산을 털갈이 짐승같기도 했지만, 이내 낙엽처럼 쓸려가며 봄을 정리한다.
마지막 날 -.집을 나선다. 마른 하늘이 구름 몇 장 모아놓고 저녁부터 소량의 비를 뿌린다고 하지만, 훌훌 그것마저 밀치고 다시 더위가 몰려올 기세다. 봄의 끄트머리를 잡으려는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근교 생전 가보지 않던 생경한 농촌 길로 발을 뗀다.가는 곳마다 헝클어진 고무 호수와 텅빈 비닐하우스가 지천이다. 드넓은 논을 가위질해 절반도 못 되게 모를 꽂아놓고 물을 끌어오다가 지친 모양들이다, 다른 한 쪽은 버쩍 말라가니 큰일이다.
소양댐과 마주보는 건너 마을 산길로 들장미 향이 진하다. 포장은 잘 되어 있으나 인적이 없다. 멋대로 춤추던 잡초밭이 올해도 주인 발길이 뜸하다. 망초들 세상이다. 멧돼지가 칡뿌리를 찾아 들 쑤셔놓은 산소 한쪽이 절단이 났다. 산골짜기마다 물이 자작자작하다.
뽕나무가 파파 할배처럼 힘겹게 반긴다. 올따라 해충이 유난히 뽕나무에만 접근한 탓이리라. 빨간 오디가 여기저기 검게 익어가지만, 병치레하느라고 완전 포위되어 숨도 못 쉴 지경이다. 인적이 사는 듯하지만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스프링 쿨러만이 바짝 마른 회색 아기나무 밭이랑을 넘나들면서 바삐 실날같은 지하수를 퍼 나른다. 요즘 유명한 비타민 나무인가보다. 중하게 위한다. 아무도 없는 골짜기 마을을 되돌아 내려온다.
-이거 드시고 가세요.
잎새 뒤에 숨어숨어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운지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옷자락을 부여잡는다.
올들어 처음 보는 산딸기라 닁큼 다가선다. 예년보다 실하지 않지만 그 중, 유난히 성숙한 녀석을 따서 예전처럼 입에 넣는다. 달달함과 새콤함이 반반이다. 욕심을 부려 내려가 한웅큼 열대지방 원숭이처럼 팔을 늘여 따 크게 벌리고 한입에 넣는다. 멍석딸기라고 예전 화진포 별장 부근에 가면 마치 온 산이 불타 듯 널브러져 있던 산딸기가 생각난다. 양탄자같던 그 산자락에도 지금 한창이리라.
다리를 건너 늘어선 벚나무 아래를 걷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녀의 유두처럼 바알갛던 벗찌가 벌써 까맣게 익어 반긴다. 유년기 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학교 울타리처럼 늘어선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서 주워먹던 벗찌가 반갑다.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잘 익은 벗찌를 칡잎 사귀를 따서 담아 왔다.
허탕치며 마을을 벗어나던 내게 한 자락의 인사로 베푼 산딸기와 벗찌가 마음을 달래준다.
강수량이 올들어 유난히 적어 익은 산딸기조차 풍성치 못하지만 처음 시식을 한 게 얼마나 고마운가!
봄의 끝이다. 끝이란 단어는 어디에 맞추어도 기쁨보다는 미련과 아픔들이 버무려 아쉬움만 풍기는 듯하다.
고생 끝, 군대생활 끝, 가난의 끝, 총각의 끝은 다소 즐겁겠지만, 특히 세월의 매듭으로 나이를 더해가는 우리네 생은 참으로 허할 뿐이다. 일시적인 안온에 빠져 덤덤하면서 그저 약자의 노래처럼 어이쿠 벌써 6월이네, 벌써 가을이네, 벌써 한해 끝이네라고 하고 읊조리며 넘기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던가!
귀가하니 정치면에서는 어렵기만 하던 변수들이 발목을 잡더니 퍼즐처럼 제법 맞추어가며 재갈거린다.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여름호 잡지를 펴본다. 46p가 시름에서 나를 찾게 해주지만, 명일부터 여름이라고? 더더욱 살인적인 더위, 오존으로 얼마나 인간들을 질질 옥죄일까? 이런 망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세상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6월의 시를 찾아 보아도 모두 지금 찾아든 무더위가 봄을 훼방놓아 감동이 파고들지 않는다. 절기로야 이미 입하가 스쳐갔지만 실제로 보면 내일 동이 트면 여름의 첫날이다. 서민의 계절이라 큰소리치지만 오존에 피부가 상하고 미세먼지가 호흡기를 목졸라 두렵다.
모처럼 아침에 생뚱맞게 지인에게 생평취춘풍(生平吹春風)이란 시화를 띄웠더니 이내 답지한다.
-선배님은 참 행복을 추구하고 사시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란 단어가 생각납니다. 글자체가 상당히 절제된 모습, 좋아보입니다. 건강하세요-.
위로를 하는지 칭송을 하는지 한참 문자를 해득하기에 바빴다.ㅎ
낙천주의자-. 가능하면 아름답게 느끼려는 사람 중 하나임엔 분명하다. 걱정거리가 장마 후 부유물처럼 많지만, 기분이 좋아 이겨낼 자신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도 기분이 최고라고 내게 부추긴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마라, 리처드칼슨作
늦은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고 하니 일말의 기대감으로 마지막 봄날을 싱그럽게 보내리라.(끝)
첫댓글 이제 유월. 한달만 있으면 올해도 반년 세월은 빠른데 덕전선생님처럼 좋은글도 못쓰고 안타깝게 시간만 가네요
왜 못쓰오, 굳은 암벽을 기어오르는 그 인내와 체력이면 무언들 못하리오. 5월 5일이 음력으로 입하지만 기실 6월 1`일이 여름이라니 ㅎ 감사
딸기가 고와 군침이 넘어 갑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글 감사.
잎새 뒤에 숨어숨어 이룬 산딸기-;지나가던 덕전이 보았습니다. 딸까말까 망서리다가 모두 땁니다.ㅋㅋ
구상유취(口尙乳臭)같은 애교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