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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5일(목)
묵상 -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 성경본문 : 마태복음 17:14~27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이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따라서 그들도 예수님이 행하셨던 권능을 행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과 세 제자가 산에서 영광 가운데 있는 동안, 산 아래 있던 나머지 제자들은 간질로 고생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치유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영적 무능력이다.
그동안 제자들이 권능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권능 때문이었다.
그 권능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만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자신의 무능력만 드러날 뿐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서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분명 예수님은 온 땅을 다스리시지만, 이 땅에는 악의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제자들은 그 세력을 내쫓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유는, ‘믿음이 작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수님의 권세가 온 땅에 충만하다 해도, 믿음이 작은 자들은 그 능력을 누리지 못한다.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제자들에게 『믿음의 능력』을 강조하신다.
겨자씨 한 알 만큼만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권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두 번째 수난에 대한 예고를 하시자, 제자들은 매우 근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온전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함을 단정적으로 보여준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의 권능이 주어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주님을 믿고 담대히 나아간다면 주님이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역의 중심지로 삼던 가버나움으로 들어오신다.
성전세를 받는 자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라고 요구한다.
모두가 유대인이기에 당연하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 곧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기에 성전세를 낼 이유가 없다(25~26절).
예수님이 진정한 성전이 되시고, 예수님과 성령으로 연합한 공동체인 교회가 성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전세를 거부하지 않으시고 독특한 방법으로 성전세를 내신다.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제일 먼저 잡는 고기의 입에서 한 세겔을 취해 예수님과 베드로의 세금을 내라고 하신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성전세를 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성전세에 대한 법이 그 땅에 유효하므로, 또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실족하게 할 필요가 없으므로 예수님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다.
아직 천국이 세상의 법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지혜로 적절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셔서 천국을 완성하실 때에는 세상의 모든 법을 폐하고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이 지속될 것이다.
천국은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세상 권세와 천국 권세는 묘한 긴장 관계에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소속은 천국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 믿음의 권능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악하고 더러운 죽음의 권세와 싸워 이겨 나가야 한다.
[생명의 삶 Q.T]
2021년 2월 25일(목)
[불신 세상을 향한 성도의 책임과 특권]
● 성경본문 : 마태복음 17:14-27
14.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없음)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한 사람이 예수님께 간질 앓는 아들을 고쳐 달라 청하며, 제자들은 못 고쳤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치유하시고, 못 고친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못 할 것이 없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나온 동전으로 세금을 내게 하십니다.
● 본문 해설
산 아래의 제자들 17:14-21
연약한 믿음에는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변모로 영광 가득했던 변화산과는 달리 산 아래 현실은 무력했습니다. 예수님이 내려오시자, 한 사람이 발작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남아 있던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며 나무라십니다. 이 말씀은 모세의 고별 설교에 나온 표현으로(신32:5, 20),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다른 신을 섬겼던 것처럼 당시 유대인도 그들 조상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거부하고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패역한 세대 가운데 믿음을 드러낼 책임이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그 믿음이 참되다면 하나님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오늘 내 삶에서 드러내야 할 믿음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성전세 납부 17:22-27
20세 이상 유대인 남자는 매년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출30:12-15). 성전세를 거두는 자들의 요구에 예수님은 왕들이 관세와 국세를 다른 이들로부터는 받지만 아들들에게서는 받지 않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는 그분의 죽음이 생명을 대속하는 속전이 될 것이기에 성전세가 필요 없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과 불협화음을 내지 않기 위해 성전세를 내기로 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낚시로 처음 잡은 물고기의 입에 있는 한 세겔로 예수님과 베드로 두 사람 몫의 성전세를 지불하도록 하십니다. 이 사건은 성전의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님이 만물도 주관하고 계심을 잘 보여 줍니다.
- 예수님이 물고기 입에서 얻은 한 세겔로 성전세를 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내가 세상 질서 안에서 주님의 방법으로 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 오늘의 찬송 (새 542 구주 예수 의지함이)
(1) 구주예수의지함이 심히기쁜일일세 영생허락받았으니 의심아주없도다
(2) 구주예수의지함이 심히기쁜일일세 주를믿는나의마음 그의피에적시네
(3) 구주예수의지하여 죄악벗어버리네 안위받고영생함을 주께모두얻었네
(4) 구주예수의지하여 구원함을얻었네 영원무궁지나도록 주여함께하소서
(후렴) 예수예수믿는것은 받은증거많도다 예수예수귀한예수 믿음더욱주소서
● 묵상 에세이
내 삶의 현장에 와 보라! - 말씀, 그리고 사색과 결단 / 이재철
한때 교회 성장론이 한국 교회를 휩쓸었습니다. ‘와 보라.’가 한국 교회의 단골 전도 표어였습니다. “우리 교회 한번 와 봐라, 우리 목사님 설교 한번 들어 봐라, 우리 교회 성가대 찬양 한번 들어 봐라, 우리 교회 성경 공부에 한번 참석해 봐라,” 그때의 ‘와 보라.’는 예배당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와 보라.’의 대상을 우리 삶의 현장, 일터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당신이 목사입니까? 장로, 권사, 집사입니까? 당신이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는 답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와 보라. 내가 우리 가족과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살아가는지 우리 집에 와서 봐라, 우리 자식들을 어떤 교육관으로 교육시키는지, 우리 자식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공적 책임을 지면서 살게 하는지 우리 집에 와 봐라.” “내가 장로인지 알고 싶니? 내 사무실에 와 봐라. 내가 얼마나 정직하게 일해서 돈을 벌고, 번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와서 네 눈으로 확인해라” 예수 믿는 우리가 사는 터전을 그들이 보고 우리처럼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교회로 인해 세상은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집과 일터는 투명한 유리가 끼워진 진열장 같아야 합니다. 누구든 들여다보고 예수 믿고 싶어지는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 한절 묵상
마태복음 17장 18절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하신 일은 꾸짖으신 것뿐입니다. ‘꾸짖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에피티마오’는 주로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주어로 합니다. 즉 하나님만이 귀신을 꾸짖으시고 쫓아내실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악한 권세를 물리치시고 고통당하는 영혼을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성도가 악한 권세에 맞설 무기요 능력입니다(엡 6:17).
● 오늘의 명언
믿음의 기도는 은혜라는 공장을 가동하는 연료다. - 찰스 스펄전
● 오늘의 기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합니다. 귀신을 꾸짖어 떠나게 하시고,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얻어 성전세를 내심으로 만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증명하신 주님! 태산도 옮기실 수 있는 주님께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의탁하오니 주관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