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층 겹겹이 쌓인 ‘팬케이크 붕괴’… 실종자 156명 수색작업 난항
구조작업 사흘째 사망자 1명 늘어
사고 직후 화재… 연기-먼지 뒤덮여
“잔해속 생존자 버틸 공간 적어”
콘크리트 부식-주차장 벽 균열 등 3년前 ‘심각한 구조적 결함’ 경고
보수공사 착수하기 직전에 붕괴… 당국, 40년이상 노후건물 전수조사
처참한 붕괴 현장 25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 인근의 12층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 무너져 내린 아파트 구조물 잔해 위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아파트가 팬케이크처럼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겹겹이 쌓이듯 무너지면서 잔해 사이에 공간이 거의 없어 구조대원들이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프사이드=AP 뉴시스
26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 인근의 아파트 붕괴 현장. 12층 높이 아파트가 무너진 지 사흘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150명이 넘는 실종자가 건물 잔해 속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현장은 먼지와 매캐한 냄새로 뒤덮였다. 이곳에서 만난 구조대원 메기 캐스트로는 “붕괴 당일 이후 지금까지 3시간밖에 못 잤다”면서도 “잠은 나중에 자면 되지만 지금은 우리를 믿고 있는 실종자 가족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
붕괴 건물 맞은편 테니스장 벽면에는 실종자들의 사진과 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꽃다발, 양초들이 놓였다. 리오 소로 씨는 사진 속 한 여성을 가리키며 자신의 친구라면서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고 했다. 주민들은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이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 ‘팬케이크 붕괴’로 수색 난항
26일 사망자가 1명 늘어 이번 사고로 확인된 희생자는 모두 5명이다. 실종자가 156명이나 돼 사상자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소방당국과 구조대는 밤샘 수색을 사흘째 이어가면서 매몰자를 찾는 데 온힘을 쏟고 있지만 수색과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니엘라 레빈 카바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시장은 이날 저녁 브리핑에서 “수색과 구조를 계속하고 가능한 한 모든 생명을 구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이라고 했다. 마이애미데이드 소방당국은 “잔해 속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 지 시간이 좀 지났다”면서도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색과 구조에 생각보다 속도가 붙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사고 아파트가 이른바 ‘팬케이크 붕괴’를 했다는 점이 지목되고 있다. 팬케이크를 여러 장 쌓아놓은 것처럼 각 층이 대략적인 틀을 유치한 채 겹겹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붕괴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부분이 손상될 경우 주로 발생하는데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팬케이크 붕괴의 대표적인 사례다.
전직 구조대원인 그레그 파브는 CNN 방송에 “팬케이크 붕괴가 일어나면 각 층이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하중이 아래층에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여러 층의 잔해가 한꺼번에 눌려 쌓이기 때문에 잔해 속에 생존자가 버티고 있을 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아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사고 직후부터 붕괴 현장 깊은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도 구조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화재 연기와 각종 먼지가 구조 현장을 뒤덮은 데다, 간헐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잔해 더미를 걷어내는 작업이 어려워졌다. 구조 작업 도중 발생할 수 있는 2차 붕괴 위험도 여전하다. 에리카 베니타스 소방구조대 대변인은 기자와 만나 “잔해들 사이 공간이 매우 좁아 (구조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수색 작업을 위한 진입이나 외부에서의 관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 3년 전 경고 방치, ‘인재’ 정황
이번 사고가 인재(人災)라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붕괴된 아파트는 3년 전에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있다는 경고를 받고도 계속 방치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서프사이드 당국은 2018년 이 아파트의 안전도에 대한 보고서에서 “일부 가벼운 손상도 있지만 콘크리트가 부식된 부위는 대부분 신속하게 수리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한 건축기사 프랭크 모라비토는 특히 야외 수영장과 지하 주차장의 결함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보고서는 “수영장 상판 아래에 있는 방수제에 문제가 생겼고 이 때문에 아래에 있는 콘크리트판에 중대한 구조적 손상이 발생했다”며 “이 방수제를 교체하지 않으면 콘크리트 부식이 엄청난 속도로 확대될 것”이라고 적었다.
지하 주차장 역시 곳곳에 금이 가는 등 문제가 심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콘크리트 벽과 기둥에 금이 가고 부스러진 곳이 많이 관찰됐다”면서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사진을 보면 내부 철근이 드러난 곳도 있다. 아파트 관리를 맡은 주민위원회 측은 뒤늦게 보수 공사에 나서기로 결정했지만 공사에 착수하기 직전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붕괴 사고 원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플로리다국제대 지구환경대 사이먼 브도빈스키 교수는 지난해 연구에서 이 아파트가 1990년대부터 연간 2mm씩 침하했다고 밝혔다. 아파트가 40년 전 간척지에 세워졌는데 기후변화에 따라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건물과 지반에 바닷물이 스며들어 구조를 약화시켰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건설 전문가인 에번 벤츠 토론토대 교수는 NYT에 “붕괴를 유발한 것은 빌딩의 아랫부분, 아마도 주차장 부근이었을 것”이라며 “이런 붕괴는 디자인 실수나 건축 재료의 문제, 건설·관리상 착오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카바 시장은 26일 카운티 내 40년 이상 된 모든 노후 건물에 대해 30일간의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붕괴된 아파트도 40년 전인 1981년에 지어졌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마이애미=유승진 특파원
학비 벌러 온지 하루도 안돼… 새 직장 찾아 이사했다…
안타까운 실종-사망자들 사연
남미서 백신관광 일가족도 포함
소년과 함께 구조됐던 어머니 숨져
24일(현지 시간) 발생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 인근 아파트 붕괴 사고로 사망한 글라디스 로사노-안토니오 로사노 씨 부부(위쪽 사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아들 부부의 집은 붕괴되지 않았다. 파라과이 대통령 부인 동생 가족의 유모였던 루나 빌랄바 씨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국에 왔다가 실종됐다. 마이애미헤럴드 홈페이지 캡처
학비를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난 여성, 아들집으로 이사할 꿈에 부풀었던 어머니….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 사고 사흘째인 26일(현지 시간) 실종자와 사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파라과이 대통령 부인 동생 가족의 유모였던 루나 빌랄바 씨(23)는 사고가 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이 아파트에 도착해 묵었다가 실종됐다. 파라과이에서 간호학교에 다녔던 그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유모 자리를 구했다. 파라과이 언론은 그가 이번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의 어머니는 “미국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도 받았는데, 마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사고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실종된 힐다 노리에가 씨(91)는 아들 부부와 함께 살 준비를 하며 집을 부동산에 내놓은 상태였다. 1960년 쿠바에서 미국으로 온 그는 남편과 6년 전 사별했다. 그의 며느리는 “며칠 전 ‘아버지의 날’을 기념해 가족들이 모여 외식을 하고 어머님을 집에 모셔다 드렸는데,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됐다”고 했다.
아들, 며느리 부부와 사고 아파트의 다른 호에 살던 안토니오 로사노 씨(83)와 글라디스 로사노 씨(79) 부부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붕괴 사고 몇 시간 전에 이 부부는 아들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아들 세르히오 로사노 씨는 24일 새벽 ‘토네이도가 몰아치는 듯한 소리’를 듣고 발코니로 달려 나갔다. 그는 “원래 건너편에 부모님의 아파트가 보여야 했지만 거기 없었다. 사라져버렸다”며 울먹였다.
신혼부부였던 니콜 도란만시로브, 루슬란 만시로브 부부는 지난달 결혼식을 올린 뒤 새 직장을 찾아 마이애미로 이사했다가 실종됐다. 아르헨티나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던 안드레스 갈프라스콜리 씨(45)는 딸 소피아(6)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시키기 위해 남편과 함께 마이애미에 왔다가 셋 모두 실종됐다. AP통신에 따르면 동성(同性) 부부였던 이들은 소피아를 입양했다.
사고 후 잔해 더미에서 “나를 두고 가지 마세요”라고 외쳤던 아들 조나 핸들러(15)와 함께 구조됐던 어머니 스테이시 팽 씨(43)는 부상이 심해 끝내 숨졌다. 팽 씨는 구조 과정에서 다리를 절단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실종된 제이크 새뮤얼슨 씨는 24, 25일 이틀간 할아버지의 집 전화번호로 총 16통의 전화가 걸려와 가족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26일부터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김예윤 기자, 이은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