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판타지인가?
최현동
-自繩自縛, 판타지를 좋아하는 당신, 왜 하고 많은 것들 중에 하필이면 판타지인가?
한때 대유행하던 무협(武俠)이 수작 하나없는 쓰레기라서 타임킬링용 취급을 받으면서 책방과 대본소를 전전(輾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봇물 쏟아지듯 나와대는 수많은 졸작과 모작들에 함몰되어 무협은 결국 한때의 유행으로 끝났다. 그것은 작품이 나오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독자들이 흥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무협은 뻔하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믾은 독자들이 떠났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인식으로 그나마 보는 사람들도 타임킬링용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판타지에 대한 낙관론자들은 그 유행과 함께 졸작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수작들만 남을 것이라는 전망을 한다. 하지만 과연 판타지의 유행이 지나가도 판타지 소설을 읽어줄 독자들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유행이 가고 나면 판타지를 안보던 사람들까지도 판타지를 다른 소설과 대등하게 놓고 평가해줄까? 아니다. 유행이 지난 곳에 남는 것은 외면과 멸시(蔑視)와 천대 뿐이다. 판타지에 대한 낙관론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바로 이것, 즉 '독자를 과신(過信)'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유행의 쓰레기장 속에 쳐박혀 회생불능에 이르도록 판타지를 방치(放置) 할 수 없다. 판타지가 살아남기 위해 유행이 지나간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될 판타지를 준비해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판타지를 유행에서 살려내 하나의 장르로 끌어낼 수 있을까? 그 열쇠는 건전한 중간 독자층의 형성이다. 모험담만이 아닌 좀더 고급적이고 세련된 문학적 취향을 가진 지적 독자층을 형성해, 유행의 빠순이와 환치가 지나간 자리에 제대로된 팬을 중심으로한 매니아 문화가 자리잡을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독자층을 토대로 판타지가 일회용 오락물이 아닌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출판사와 작가들에게 비평이라는 자극을 줄 수 있어야 판타지는 회생할 수 있다. 그리고 물론 올바른 길을 걸을 때는 칭찬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판타지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 비평을 위해서 스스로 견문을 넓히는데 소홀해서는 안된다. 깊이 있는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판타지 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들도 읽어야 하며, 또 여러 분야의 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중간 독자층은 전문비평가 집단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비평은 무슨 거창한 저널리스트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을 볼 수 있는 눈만 가질 수 있으면 된다. 물론 부단한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아야 하겠지만 판타지를 위편삼절(韋編三絶)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데 영어로 된 외국 인터넷 사이트 정도를 검색하는 수고정도를 아끼지 않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자료가 없다고 불평만하면서 어쩌다 한번씩 나오는 D&D 룰북같은 책이나, 판타지 라이브러리만이 나오기를 바랄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집에 있는 백과사전을 뒤지고, 그것도 없다면 창고에 쌓여있는 교과서나 철지난 잡지라도 뒤져라. 원효(元曉)대사는 썩은 해골 물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A.플레밍(Alexander Fleming)은 곰팡이가 가득한 배양기에서 페니실린(penicillin)을 발견했다. 게다가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풍족한 이른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어느정도 시간과 노력만 투자한다면 매니아가 될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지금의 판타지 소설들은 댄스 일색인 가요계와 마찬가지로 편중되어 문학성은 거의 찾기가 힘든 이유는 재정이 궁하기 그지 없는 한국 출판사들이 자금 회수가 빨라해야 하고, 그로 인해 작가들은 빠른 연재를 통한 인기몰이를 해야되기 때문이다.(책장사라는 것이 사향산업이라는 것은 지금 당장 서점에 가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행태가 바로 판타지를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비록 몇몇 양심적인 작가와 출판사가 있기는 하나 제 코가 석자인 출판사와 작가에게 원론적인 문학성을 요구하는 것은 기실 소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원론적인 문학성의 필요를 강조하기보다 그런 원론에 기초한 현실적인 동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들이 그런 단기적 이익만을 쫓는다면 결국 손해를 본다는 것을 그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비평이고 그것이 진정한 독자가 할 일이다.
원칙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좋은 것은 칭찬하고 나쁜 것은 지적할 수 있는 제대로된 비평을 할 수 있도록 진정한 판타지 독자가 되도록, 판타지를 사랑한다면 우리들 스스로부터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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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노력하겠습니다.
앗 최현동님 아직도 계시네. 오랜만에 판랜왔는데 낫익은 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