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가로막은 담장도 기억만은 막지 못했구나.
🙏🎋幸福한 삶🎋🎎🎋梁南石印🎋🙏
그날 밤이었지,
내 생에서 가장 슬픈 NG를 외치며 멈춰야 했던 날,
헌데 그날은 너와 나 꿈에서도 엿볼 수 없었지.
마치 엄마 품속처럼 포근히 산이 감싸안은
구불구불 이어진 고향 들녘 푸른 들판.
괭이 든 아버지는
곰방대 입에 물고 괭이질로 밭을 일구고,
호미 든 어머니는
힐긋힐긋 뒤를 돌아보며 호미질에 분주했지.
경계도 없어
길이라 부를 것도 마땅치 않아
발길 닫는 곳이 길이던 마을 어귀,
밭두렁이 곧 길이었던 그곳에서
그와 나는 똑같은 바람을 맞으며 자랐지.
세월에 이글거리던 태양의 빛이
우리 얼굴에 붉은 노을을 입혔던 날,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얼굴에는
낯익은 흔적을 하나씩 덧씌워 놓았던 무렵.
푸르른 날들이 지나간 지 오래였지만
우리는 뿌리 깊은 소나무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을 듯했지.
서로가 앉은 자리에서
각자의 세월을 살아가면서도
어느 순간 그 시절이 떠오르는 날이면
가슴 한켠에 남은 그리움을 붙들겠지.
뱀처럼 굽이진 길을 돌아
숨이 차 잠시 멈춰 서서,
힘센 바람 한 자락 끝을 붙들고 몸을 기대고서
밤의 서늘함 속으로 이름 모를 기억을 털어냈어.
마당 복판에 피어오르던 모깃불처럼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서늘함을 대우던 그 시절.
어둠이 깊게 스며들어도
두려움보다 설렘이 한발 먼저 찾아왔었지.
우리는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그날 밤을 하얗게 세고서도 아쉬웠지.
연두색빛 단감나무 쌍잎 사이
어느새 돋아난 작은 새순 하나.
햇살과 비를 맞으며 자라더니
가느다란 가지를 곱게 뻗어
담장이 가른 네 집 울타리를 넘어
우리 집 울타리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와
호박넝쿨에 뒤엉켜 한 몸 되었지.
그렇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
나무 가지는 담장을 넘어왔는데,
그날 우리 둘은 설레는 가슴을 감춘 채
끝내 그 담장을 넘지 못했었잖아.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품고
밤을 새웠던 그날이 아직도 어제처럼 아련한데,
밤하늘의 달도 그날 모습 그대로이고
별들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거든.
해마다 이맘때면 새순도 돋아나고
가지들도 쑥쑥 자라 담장 너머 뻗어오는데,
너와 나를 담장이 가른 것처럼
우리의 사랑을 세월이 갈랐으련.
그런데도 참 이상하지.
그날 밤의 달과 별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그때 모습 그대로 빛나고 있거든.
그래서 그 담장 너머를 떠올리며
그날 밤 속을 헤매다 눈시울 적시고 있어.
혹시 너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그날을 떠올리고 있을지 궁금할 뿐이야.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 멍든 사랑의 상처,
끝내 건널 수 없었던 담장 사이를 두고
그렇게 우리의 가슴을 벌겋게 달구었던
그날 밤을 너도 나처럼 생각하는가.
오늘도 그날처럼 가을빛에
노랗게 잘 여문 단감은 여전한데,
우리 둘만이 간직한 설익은 사랑이
어쩌다가 세월 속에서 농익어버려
이토록 처절하게 덧나 아파야 했을까. 끝.
그렇지, 끝난 듯하면서도 끝낼 수 없는
아리고 쓰린 추억을 놓지 못했거든,
세월은 흘러도 그날 밤의 달과 별은
아직 내 가슴 한켠에 깃들어 있고
담장은 오래전에 낡아 뭉그러졌건만
우리가 넘지 못했던 그 마음의 벽은
아직도 옛날처럼 그대로 남았다는 게 서러울 뿐이야.
어쩌면 사랑이란 세월이 흐른다고 잊히지 않고
보이지 않은 벽이 가로막았다고 끝나는 것도
몸이 여물어 달라졌다고 변하는 것도 아닌가 봐.
그냥 가슴 한구석에 꾹꾹 눌러 묻고
평생을 감춘 눈물 속에서 살아내는 것.
이만큼 견뎌냈으면 됐다 싶은 어느 가을날
그러다 달이차면 눈에 들어오는 것
노랗게 익은 단감 하나 바라보다가
그날의 달빛이 어둠을 밝혀 눈에 들어오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얼굴 하나
가만히 마음속으로 되세겨 보는 일.
그런 뒤에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삶으로 돌아오는 것. 끝.
어, 이거 뭔 소리지.
어디서 하는 소리야.
뭐, 뭐라고 이렇게 끝맺지 말라고,
너가,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 거니.
아직도 주절일게 남은 걸 안다고,
그래, 그런 것쯤은 나도 알거든,
그렇다고 마냥 주절일 수 없잖아,
그래, 그렇구 말고
끝끝내 이생을 놓는 날에야
못 이기는 척 놓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는 아프더라도 간직해야 할
너와 나 우리 둘만의 그날 밤의 설렘.
설익어서 더 몸부림쳤고,
농익어 고름져 옹이처럼 굳어
더더욱 지울 수도 지워지지도 않은
참으로 심부가 녹아나는 아픈 사랑.
그날 밤은 그렇게 아직도 끝나지 않았건만.
세월은 몇 순배 돌고 돌아 그 계절에 앉혀놔
끝끝내 이생을 놓을 때만이 끝나는 아픈 설움.
오늘도 그날처럼 어둠이 깊이 스미는 시간
그날의 잔상에 옭아매어져 끝끝내 울게 한 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