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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 출전과 슈퍼스타 영입에서부터 3부 리그(리그 1) 생활과 재정적 파탄에 이르기까지, 리즈 유나이티드의 번영과 몰락은 축구 클럽을 어떤 방법으로 운영하면 망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사례다. 리즈 유나이티드의 우아한 비상과 초라한 몰락을 통해 많은 교훈들을 배울 수 있지만, 그 모든 교훈들 위에 자리한 한가지 굳건한 진실이 있다. ‘축구판의 흥망성쇠는 눈깜짝할 새’라는 것이다. 리즈의 몰락에 대한 인식조차도 힘든 요즘이다. 2001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까지 도달했던 패기 있고 당찬 리즈가 챔피언십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이젠 리그 1로 강등됐으며, 3,500만 파운드(약 600억원)의 부채를 둘러싼 법정 관리로 인한 추악한 싸움 때문에 고생하는 이 망가진 팀을 보고 있노라면, 이 팀이 6년전 힘차게 비상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것 조차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이 리즈 일대기의 주연 배우는 구단주 피터 리즈데일과 데이비드 오리어리 감독 그리고 리즈의 운영과정에 다수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 잉글랜드 굴지의 사업가 알런 레이튼, 리 보이어, 조너선 우드게이트 등이다. 물론 세스 존슨, 제랄드 크라스너, 켄 베이츠 그리고 리즈의 이사회 사무실 어항에 있던 금붕어도 포함된다. 이 일대기의 진정한 서막은, 팬이자 구단주였던 리즈데일이 오리어리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이루어졌던 희망차고 신선했던 관계부터 시작된다. 1996년 8월 당시 유행에 따라 프리미어리그의 리즈 유나이티드는 클럽을 주식 시장에 상장했다. 당시 리즈의 소유주는 리즈 지방의 사교성 있는 사업가들 레슬리 실버, 피터 길먼 그리고 빌 토더바이였고,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소유권을 매각하면서 500만 파운드(약 1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새로이 주식회사가 된 리즈의 회장은 언론재벌인 크리스 에커스였으며, 에커스 회장은 당시 단단하고 거칠었던 이미지의 요크서 지방 축구 클럽 리즈 유나이티드와 그 투박한 홈 경기장 앨런드 로드에 아주 현대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에커스 회장은 “우리의 의도는 리즈 유나이티드라는 클럽을 기반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독창적인 멀티 스포츠와 레저 시설을 건설하고, 유럽을 선도하는 스포츠, 레저 그리고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리즈의 성장과 몰락의 일대기는 리즈라는 클럽의 진정한 본질과 클럽이 나가고자 했던 방향간의 내적 충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리즈라는 클럽이 본디 지니는 거칠고 투박한 축구와 리즈라는 클럽이 가지고자 했던 밝고 관대한 이미지간의 싸움이었다. 리즈 유나이티드라는 주식회사는 고속도로 옆의 홈 경기장 속 자신들의 낡고 지친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요크셔 지방의 바르셀로나로 탈바꿈하려고 했다. 오리어리 감독의 리즈 시절을 힘들게나마 회상해 보자. 그처럼 완벽해 보이는 감독도 없었다. 그는 젊었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리즈를 멋지게 지도했다. 오리어리 감독은 전임 감독이었던 조지 그래엄이 남긴 수비 지향적이며 대인 방어에 철저한 선수들과 폴 하트 코치의 지도하에 있던 우드게이트, 해리 큐얼, 앨런 스미스 그리고 여러 명의 재능 있고 실전투입 준비가 완료된 유소년 팀을 물려 받았다. 단순한 운이었는지 예술적인 기획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리어리의 리즈는 그래엄의 리즈가 절대로 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 바로 무자비한 공격전술의 실현이었다. 1999년 오리어리의 리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를 했으며 UEFA컵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그 다음 시즌엔 프리미어리그 3위에 올라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냈으며, 그 과정에서 마이클 브리지스는 19골, 큐얼은 10골을 득점했다. 우드게이트와 루카스 라데베는 골문 앞의 벽이었으며 보이어와 에릭 바케는 미드필드를 통제했다. 리즈는 당시 갈라타사라이와의 일전에서 이스탄불로 원정응원을 떠난 팬 두명이 사망했던 사고도 극복해냈다. 당시 리즈데일 회장은 유족 곁을 떠나지 않고 병원에서 밤새도록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럼으로써 명예롭게 팀을 둘러싼 평화분위기를 조성하여 리즈 팬들의 기분을 바꾸어 놓았다. 그 후 리즈데일 회장은 클럽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하여, 리즈 지역에 집중적인 인종차별 반대와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현대 축구 클럽이 표본으로 삼아야 할 클럽이라는 찬사까지 듣게 된다. 당시 <포포투>는 리즈 유나이티드를 주제로 커버 스토리를 게재하였고, “부활한 리즈! 리즈 부활의 모든 것” 이라는 헤드라인을 낸 바 있다. ‘리즈가 잘나가는 이유는?’이라는 기사에서 오리어리 감독은 그의 평소 습관처럼 지극히 겸손한 어조로, 어린 선수들을 잘 지도했기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1년 후, 리즈데일 회장은 오리어리 감독에게 엄청난 이적 자금을 안겨주었다. 2000년 5월 리즈 유나이티드는 올리비에 다쿠르를 랑스에서(500만 파운드-약 90억 원) 영입했고 이적 시장이 닫힌 후에도 셀틱 소속의 마크 비두카 (600만 파운드-약 100억 원)와 리버풀의 도미닉 마테오(475만 파운드-약 80억 원)와 각기 계약을 맺었다. 2000년 11월엔 당시 잉글랜드 이적료 기록을 깨면서 웨스트햄에서 리오 퍼디난드를 1,800만 파운드(약 300억 원)에 영입했다. 2001년 5월에는 인터 밀란으로부터 로비 킨을 1,200만 파운드(약 200억 원)에 영입한다. 그들의 00/01시즌 챔피언스리그 행보는 대단했다. 로마, 라치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를 꺾으며 수백만의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았고 준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몰락의 씨는 이미 뿌려진 상태였다. 지금은 모두가 알다시피 내막이 밝혀졌지만 리즈는 파산할 운명이었다. 리즈의 광채와 하나된 정신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월 리즈 지방의 학생이었던 스르프라즈 나지옙을 고의적으로 폭행하고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운 죄로 보이어와 우드게이트가 고소당하여 재판에 출석하게 된 사건에서부터였다. 리즈데일 회장은 두 선수가 재판 중이더라도 경기에는 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 라며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리즈데일 회장은 당시의 상황이 불러올 소란에 대해서는 예측하지 못했다. 보이어는 자신의 선수 생활 절정기에 오전 시간은 법정에 출두했고 저녁에는 앨런드 로드의 팬들의 환호를 들으며 경기장에 섰다. 그리고 리즈는 발렌시아에 0-3으로 패하며 결승전 진출에 실패한 데 이어 승점 1점 차로 다음 시즌의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따내지 못했다. 2001년 10월 리즈는 더비 카운티에서 세스 존슨을 700만 파운드(약 130억 원)의 가격에 영입하는데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신빙성 있는 엄청난 이야기가 나온다. 존슨과 그의 에이전트는 1만7,000 파운드(약 3,000만 원)의 주급을 원했기에 리즈에 2만5,000 파운드(약 4,600만 원)로 자신의 몸값을 약간 높게 불렀다. 그러나 리즈데일 회장이 건 낸 계약서엔 3만7,000 파운드(약 7,000만 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양측 다 거짓이라며 완강히 부인하지만 팬들에게는 정설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다. 그리고 당시 리즈의 과소비 행태의 대표적인 예로 회자되고 있다. 한 달 후, 오리어리 감독은 리버풀에 1,100만 파운드 (약 200억 원)를 지불하고 포화 상태의 공격진에 로비 파울러를 추가했다. 그러나 파울러는 리그 24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이 기간 동안 리즈가 선수 영입에 들인 돈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5,600만 파운드 (약 1,000억 원) 이었다. ↑추락 전의 비상. 2001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리즈 선수들이 경기 전에 도열해 서있다. 우드게이트와 보이어의 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조금 지난 뒤 우드게이트는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운 죄로 기소가 되었고 보이어는 무죄로 판명이 났다. 이 때 오리어리 감독은 그의 저서 ‘재판중인 리즈’를 출간하여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리즈는 또 다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오리어리 감독은 해임되었다. 후임으로 테리 베나블즈가 선임되었지만 선수들은 하나씩 팔려갔다. 리오 퍼디난드는 3,000만 파운드(약 500억 원)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로비 킨은 700만 파운드(약 130억 원)에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2003년 1월엔 우드게이트도 900만 파운드(약 160억 원)에 뉴캐슬로 떠났고 리즈데일 회장의 모험은 끝났다. 리즈데일 회장은 축구팬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서 한 순간에 리즈의 밤거리를 다니길 두려워하는 존재가 돼버렸다. 2003년 2월 그의 입에서 또 하나의 축구 역사에 남을 명언이 나왔다. 그는 고통스레 자문하듯, “우리가 과거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썼어야 하냐고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우린 꿈 속에서 살고 있었죠.” 지금 그때의 리즈 시절을 돌아보면 위험한 도박처럼 보였던 선수 영입과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있는 빚들이 꿈같은 나날들에 가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리즈는 재정 파탄 당시 한때 맨체스터 시티의 측면 수비수였던 레이 랜슨이 운영하는 <유러피언 풋볼 파이낸스>라고 등재된 회사에 2,200만 파운드(약 400억 원)를 빚지고 있었다. 랜슨과 <유러피언 풋볼 파이낸스>는 리즈가 바케, 브리지스, 대니 밀스 그리고 마이클 두베리를 영입하는 이적 자금을 할부 형식으로 빌려줬다. 그렇게 선수를 영입하던 리즈는 2001년 9월 더 많은 스타 선수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유러피언 풋볼 파이낸스에서 6,000만 파운드(약 1,000억원)를 연 이자 8%로 빌리게 된다. 당시 레이튼은 결정 권한이 없는 이사진의 이사로 리즈데일 회장을 보좌하며 이 대출작업의 회계를 맡는다. 리즈는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챔피언스리그 수익 배당금 수백만 파운드를 꿈꾸며 그 돈을 따내 줄 것이라 예상되는 선수단을 만들려고 이 같은 일을 벌였다. 리즈데일 회장은 자신들에게 항상 보완책이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일이 틀어진다면 선수를 판매한다는 방안이었다. 그는 “우린 그때 단 1점 차로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지 못했죠. 그리고 이적 시장에서 선수 몸 값이 갑자기 폭락하는 바람에 우리가 재정적으로 고통받게 된 겁니다” 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잉글랜드 선수협의회에서 일하는 파산전문변호사인 마크 호벨은 리즈의 재정 파탄이 시작됐을 때 선수들에게 조언을 했다고 한다. “리즈의 운영 방식은 제대로 된 경영 방식이 아니었어요. 그냥 도박이었죠. 리즈는 회계를 할 때부터 자신들이 이미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것으로 처리 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말한 보완책은 오류 그 자체에요. 돈을 갚기 위해 선수를 판다는 게 전제인데, 축구를 하려면 선수들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려면 주급을 지급해야 하는데, 선수들 주급 총액이 어마 어마 했죠.” 리즈데일 회장은 결국 2001년 3월 31일 리즈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그를 대신해 회장직에 앉은 존 메킨지 교수는 어딘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었고, 그가 리즈의 회장에 부합하는 자격요건을 갖추었는지 조차 불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리즈 이사회 사무실의 어항 유지비에 대한 충격적인 전말을 밝혀낸 인물이었다. 메킨지 교수는 리즈의 화려한 씀씀이에 어울리게 어항 유지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즈데일 회장은 어항과 리즈의 씀씀이를 연관 짓지 말라며 “그 어항은 전면 개방형이었어요. 일년에 약 200 파운드(약 30만 원)가 들었죠. 그 누구도 어항에 대한 언급이 없었단 말입니다. 만약 누가 문제 제기를 했다면 제가 직접 먹이를 줬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어항 사건에서도 리즈의 부주의함이 드러나지만 선수들의 주급 역시 줄줄이 새나갔다. 존슨은 정말로 3만7,000 파운드(약 7,000만원)을 주급으로 수령했다. 다른 노장 선수들은 평균 2만5,000 파운드(약 5,000만원)를 주급으로 받았으며 스미스는 3만 파운드(약 5,600만원), 비두카는 5만 파운드(약 1억원)를 수령했다. 게다가 선수들과 장기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던 터라 리즈는 파산 후에도 계약에 따라 선수들에게 주급을 지급했다. 클럽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지면 항상 복지 부서가 먼저 정리된다. 엠마 센드포드의 극진한 정성으로 창설된 ‘리즈 지방 축구 공동체 프로그램’은 단번에 없어져 버렸다. 일 년이 지나자, 메킨지 회장은 “클럽 운영비 2,000만 파운드(약 370억원)를 절감했다”라고 자랑했지만 거액을 받는 슈퍼스타들은 그대로 남아있어 현실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구단 내부의 모든 부서들에서 총 75명의 ‘일반 사원’들이 해고됐고 출판부서는 사라졌다. 당시 클럽에 재직했던 익명의 제보자는 그때 해고된 사람들의 총 연봉이 한 명의 고참 선수 연봉에 훨씬 못 미쳤다고 밝혔다. 에른스트 엔 영 회계법인의 파산 전문가 게리 윌슨의 조언으로 구단 매각이 결정됐다. 그러나 당시 리즈의 채무지표를 분석했던 담당자들은 <포포투>에게 어떤 방법으로 클럽을 구제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간단하게 말하면 너무 많은 돈이 선수들의 연봉으로 지급되고 있었어요.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그때 리즈의 운영 행태로는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했어요.” 2004년 1월 리즈 지역의 파산 회계사 제랄드 크라스너가 리즈의 대표 이사이자 또 한 명의 파산 전문가였던 트레버 버치에게 구단을 사겠다는 계획을 들고 나타났다. 크라스너는 4명의 리즈 출신 사업가들과 공동으로 리즈 구단의 매입 계획을 시도했다. 우선 500만 파운드(약 100억원)를 임시 변통 자금으로 투자하고 나머지 1,500만 파운드(약 280억원)는 아일 오브 맨(영국령 자치 군도) 주재의 기업 트래픽에게서 빌렸다. 트래픽은 잭 패츠니라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소유였다. 크라스너의 회고에 따르면 트래픽에서 돈을 빌리는 데엔 ‘상당한 대가’가 따랐다고 한다. 2,000만 파운드(약 400억원)에 달하는 돈은 대부분 REFF(잉글랜드 축구 시설 등록 위원회)와 총액 6,000만 파운드(약 1,000억원) 어치의 주식을 소유하던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리즈의 주식을 소유했던 주주들은 리즈가 파산하면 단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이 원래 투자했던 원금에 훨씬 미치지 못한 액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채무 변제에 2,000만 파운드(약 800억 원)나 들어갔지만 리즈와 금전적인 연관이 있던 대부분의 사업체들은 리즈가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클럽에는 1,000만 파운드(약 400억원)의 부가가치세와 세금이 있었고 1,000만 파운드의 빚도 남아있었다. 총 2,000만 파운드의 빚이 남아 있는 상황인데다, 90년대의 소득세법 개정에 따라 축구 클럽들은 선수들에게 지급해야 할 주급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크라스너는 리즈의 과도한 씀씀이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했어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그때에도 선수들의 연봉은 클럽이 감당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라커룸 내의 사기와 팀워크는 없었고 리즈는 강등 길에 올랐다. 크라스너는 “그들은 악몽 속에서 살았죠. 규모는 비대했고 선수들의 연봉은 너무 많아 적절한 가지치기가 필요했었죠”라고 말했다. 크라스너의 컨소시엄(채권단)은 10마일(약 6km) 떨어진 브래드포드 시티가 사용한 방법을 리즈에 적용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브래드포드 시티의 전 구단주 제프리 리치몬드는 2000년 “6주간 미친 듯이 써 재꼈다”라며 잘못된 선수 영입을 고백했었다. 그는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컨소시엄에 고문으로 참가했다. 컨소시엄에는 그의 아들 데이비드가 재정문제에 참여하고 있었다. 리치몬드 부자는 팬들에게 3,000 파운드(약 500만원)에 달하는 20년짜리 시즌티켓을 판매해 850만 파운드(약 150억원)를 모을 생각이었다. 예상되는 판매액인 850만 파운드가 모이면 그 돈으로 채무를 변제하고 밀린 연봉을 지급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리즈의 20년짜리 티켓을 실제로 구매한 사람 수는 적었고 팬들은 리즈 이사회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게다가 리치몬드는 이미 비슷한 방법으로 브래드포트 시티의 재정을 파탄낸 전력이 있던 터라 이 계획을 실행할 적임자가 아니였다. 또한, 그때의 리즈 팬들에겐 20년은 고사하고 단 1년 동안이라도 이 팀이 존재할 것인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았다. 크라스너의 컨소시엄은 1,750장 판매를 목표로 20년짜리 티켓을 내놨으나 184장(55만 2,000 파운드, 약 10억원)을 파는데 그쳤다. 크라스너는 “우리의 오판이었어요. 티켓을 판매하는 방식이 틀렸고 사람들이 우릴 믿어주지 않았죠”라고 지금에서야 자신이 틀렸다고 고백했다. 2004년 5월, 폴 로빈스, 게리 캘리, 라데베, 바케, 비두카 그리고 스미스까지 있던 리즈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었다. 어릴 적부터 리즈의 팬이었던 스미스는 강등이란 치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독하게 경기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리즈 팬들의 자부심을 한 번 더 도려냈다. 그 다음달, 리즈는 2,970만 파운드(약 55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2003년의 4,950만 파운드(약 900억원) 그리고 2002년의 3,387만5천 파운드(약 600억원)의 손실에 이은 결과였다. ↑어릴적부터 리즈의 팬이었던 스미스도 리즈의 강등을 막지 못한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고 말았다. 리즈팬들의 자존심도 산산조각이 났다. 이제 크라스너 컨소시엄의 리즈 사태 계획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방안은 선수 판매였다. 로빈슨은 150만 파운드(약 30억원)에 토트넘으로 이적했고 제임스 밀너는 350만 파운드(약 65억원)에 뉴캐슬에 합류했다. 비두카는 미들즈브러로 떠났으며 파울러와 밀스같은 선수들은 리즈처럼 주급을 주는 팀이 아닌 곳으로 이적했다. 그렇지만 리즈는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의 주급을 감당하게 되어 세간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크라스너의 컨소시엄은 트래픽으로부터 빌린 리즈 사태 해결 자본의 상환일이 점점 다가오고 도저히 돈을 갚을 길이 보이지 않자 맨체스터 지역의 사업가인 제이콥 아들러가 운영하는 게드포트 리미티드에 홈 경기장 앨런드 로드를 800만 파운드(약 150억원)에 팔아 넘겼다. 이어 420만 파운드(약 80억원)를 받고 소프 아치 훈련장마저 매각했다. 현재 리즈는 홈 경기장과 훈련시설에 돈을 내며 임대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컨소시엄은 앨런드 로드 북쪽의 토지에 대한 옵션도 500만 파운드(약 100억원)에 매각했다. 리즈 사태에 어울리듯 이 땅은 한 카지노 회사가 사들였다. 리즈 사태를 둘러싼 사람 중 자신의 실수를 진솔하게 고백한 몇 안된 사람 중 하나인 크라스너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모든걸 매각해도 남은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사람들을 속이고 우리 잇속을 챙길 수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어요. 리즈 사태와 관련된 그 누구도 경제적인 이득을 얻지 못했어요. 결국 2005년 1월 런던의 첼시 하버에서 켄 베이츠 회장을 소개 받았죠.” 베이츠 회장은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성공을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빌렸었고 1파운드(약 1,800원)의 가격으로 인수한 첼시를 21년 간 이끌다 2003년 러시아의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1,800만 파운드(약 330억원)를 받고 팔았었다. 베이츠 회장은 은퇴하겠다고 밝혔으나 축구팀을 운영하는 것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또 하나의 몰락한 요크셔 지역의 축구팀 셰필드 웬즈데이를 인수하려고 추하고 긴 공방을 벌였었다. 그 후 베이츠 회장은 리즈 유나이티드를 인수했다. 베이츠 회장이 첼시의 구단주로 재직할 당시 많은 양의 첼시 주식이 역외자금(투자신탁을 통해 자신의 자금을 규제와 세금이 적은 곳에서 관리하는 방법)으로 관리 되고 있었다. 당시 실소유주가 밝혀지지 않은 스완 메니지먼트라는 투자신탁회사가 많은 양의 첼시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스완 메니지먼트의 투자운용사인 페트릭 무린은 첼시 이사회의 이사가 되어 익명의 투자자들의 수익을 보장하려 했다. 그러나 리즈를 인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베이츠 회장은 자신에게 리즈의 주식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리즈의 새 주인은 포워드 스포츠 펀드라는 투자모임이었으며 등록은 면세 지역인 카이만 군도의 한 사서함으로 되어있었다. 그 펀드의 소유주들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알 수 있는 길도 없다. 그러나 2006년 리즈 유나이티드는 페트릭 무린이 그 펀드에 투자했으며 경제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리즈가 무린에게 연간 18만6,000 파운드(약 3억원)를 컨설팅이라는 명목 하에 지급하였기에 리즈는 이 사실을 밝힐수 밖에 없었다. 베이츠 회장은 자신을 지지하는 투자자들이 리즈에 1,000만 파운드(약 18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크라스너가 임명한 케빈 블랙웰 감독을 신임하였고, 큰 액수의 영입 자금을 준비해주었다. 2005년 5월 임대했다 롭 헐스를 110만 파운드(약 20억원)에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고 버밍엄 시티에 80만 파운드(약 14억원)를 지급하곤 로비 블레이크를 그리고 프레스턴 노스 엔드의 리차드 크레스웰을 115만 파운드(약 21억원)에 영입했다. 헐스는 특출난 활약을 펼쳤고 주장 폴 버틀러의 통솔 아래 리즈는 05/06시즌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 도달했지만 왓포드와의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0-3으로 패하며 승격 기회를 날렸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진출까지의 성적만이 베이츠 회장이 리즈에서 이룬 업적이었다. 지난 시즌 리즈는 시즌 개막 후 7경기를 치를 동안 꼴찌에서 두 번째에 머무르자 감독을 데니스 와이즈로 교체하였다. 와이즈 감독의 부임으로 한때 리즈데일 회장이 꿈꾸던 현대적인 리즈의 종말을 선언했다. 와이즈 감독은 “전 선수들에게 예전의 리즈가 되라고 말했죠. 거칠고 투박하고 하나된 옛날의 리즈 말입니다”라고 부임 당시를 회고했다. 거칠고 투박한 열정과 팀워크로 뭉친 리즈는 반쯤 들어찬 홈 경기장에서 뛰었다. 베이츠 회장은 티켓값을 올렸고 저가형 티켓을 아예 없애버렸다. 베이츠 회장은 리즈의 현실이 챔피언십에서 처절한 생존게임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팬들이 프리미어리그 표값을 내길 바랬다. 그리고 지난 4월 28일 리즈 유나이티드는 리그 1으로 강등됐다. 2007년 5월 4일 리즈는 화의에 들어갈 것임을 밝혔고 3,500만 파운드(약 650억원)의 채무 상태에서 파산을 선언했다. 같은 날 컨설팅 회사이자 리즈의 관리를 맡은 KPMG는 포워드 스포츠 펀드에게 리즈의 소유권을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리즈의 주식가치 1파운드(약 1800원)에 대해 1페니(약 18원)의 값에 소유권을 사는 조건이었다. 1파운드 당 1페니의 인수 제안은 투자자 75%이상의 동의를 0.2% 넘긴 75.2%로 겨우 통과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투자자들은 너무나 빠른 시간 안에 통과된 것에 분개했다. 크라스너는 이때 또 한번 주목을 받았는데 그는 “이건 리즈가 좋을 때나 어려울 때 함께 해준 투자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리즈 지역의 하원의원 필 윌리스는 이 문제를 토론 대상으로 제기했고, 사기죄와 기업범죄를 적용해 각각의 기관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츠 회장은 즉각 “윌리스씨가 하원 밖에서도 그런 언사를 행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만약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면 그를 재판에서 보게 되겠군요”라며 반박했다. 베이츠 회장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윌리스는 몇몇 하원의원들과 함께 재무부를 찾아갔고 리즈가 미납한 세금과 부가가치세 770만 파운드(약 140억원)를 징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베이츠 회장과 포워드 스포츠 펀드의 주식 가치 1파운드 당 1페니의 상환 제안에 정면 도전했다. 베이츠 회장과 포워드 스포츠 펀드는 이때 재무부에 1파운드당 8페니(약 150원)의 가격으로 세금을 상환할 것이라고 했으나 재무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7월 4일 재무부는 베이츠 회장과 포워드 스포츠 펀드의 리즈 인수 과정에는 “금전적인 부정행위”가 개입되었다며 이 인수에 대해 불법이라고 발표했다. 베이츠 회장은 리즈의 경영권을 굳은 의지로 지켰고 누구라도 자신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고소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러자 KPMG는 다시 한번 리즈의 소유권을 리즈와 연관된 기업체들에 한하여 공개 매각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당시 정해진 인수 제안 기일인 7월 9일 월요일 오후 5시는 공개 매각 사실이 알려진 지 3일이 지난 뒤였고 대부분의 기업체들은 인수 제안을 하기에는 촉박한 시간이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결국 7월 11일 KPMG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소유권이 “공개되지 않은 액수”에 켄 베이츠 이하 포워드 스포츠 펀드로 다시금 넘어갔다고 밝혔다. 주위의 비난 때문인지 KPMG는 “투자자들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리즈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든 리즈라는 도시에는 깊은 창피함이 흐를 것이다. 자부심과 성공적인 도시이며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자신들의 축구팀이 이토록 초라하게 몰락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베이츠 회장이 리즈의 소유권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거나 다른 사업가들이 나타나서 수백만 파운드를 리즈의 잃어버린 긍지를 살리기 위해 투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리즈의 고난은 리즈데일, 오리어리, 레이튼의 ‘경솔한 행동들’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몇 년 전 오리어리 감독의 공격 축구에 열광했던 기사들은 온데간데 없고 리즈 지역에서 나오는 축구 관련 자료는 20페이지에 달하는 KPMG의 리즈 채무자 명단이다. 베이츠 회장의 리즈는 리즈시 대학에 4만 6,604파운드를(약 9,000만원), 웨스트 요크셔 앰뷸런스 서비스 회사에는 8,997파운드(약 1,600만원)를 갚아야 했다. 그런데 리즈는 요크셔 앰뷸런스 회사에는 빚의 99%를 감면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선수들의 연봉은 모두 통장에 입금됐다. 현재의 리즈에 없는 과거의 선수들에게 총액 63만 1595 파운드(약 10억원)가 지급된 것. 특히 에릭 바케에겐 7만 6,000 파운드(약 1억4천만원)가, 2003년 이후 리즈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은 밀스에게 21만 6,667파운드(약 4억원)의 연봉이 지급되었다. 다음 시즌 누가 리즈의 새로운 경영자가 되어도 리즈는 자신들의 그림자를 뒤쫓는 처량한 신세가 될 것이다. 리즈는 ‘클럽을 기반으로 확장해 지역 주민들에게 독창적인 멀티 스포츠와 레저 시설을 제공하고 유럽을 선도하는 스포츠, 레저 그리고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현재 리즈는 축구클럽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형편이다. 많은 사람들은 리즈가 빌린 돈을 클럽 홈 경기장을 보수하거나 확충하는데 써야 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돈은 전부 선수들을 사는데 쓰여졌고 그 선수들이 보여준 것은 챔피언스리그에서 단 한번에 그친 고속질주였다. 이후 리즈는 나락에 떨어져 두번 강등됐고 파산했으며 홈 경기장과 훈련시설을 임대하여 사용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리즈 팬들은 자신들의 클럽이 더 이상 나락에 빠지지 않길 바라고 있다. 이제 리즈 팬들의 가장 큰 소원은 자신들의 클럽이 더 이상 깊은 나락에 빠지지 않는 것뿐이다. <포포투 2007년 9월호 중에서> |
첫댓글 개인적으로 포포투보단 베일을 좋아하는데 포포투는 너무 뭐랄까 가쉽용이 많아서랄까.. 좀 흥미용이 많죠 포포투가. 그래도 군대에 있을땐 시간은 넘치다보니 두개다 봤는데 07 9월이라.. 이등병때네 ㅋㅋ 그때 봤던 기산데 포포투홈피에 떳길래 가져옵니다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있네요... 이렇게 비참할 줄이야
리즈 팬으로서 가슴아픈 내용이지요. 후 이번에도 승격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고 언제나 다시 비상할 날이 올런지......
정독했는데 조금 어렵네요 ㅎㅎ 내용을 대략적으로알고 있어서 그나마 좀 이해가되었던.. 레알이 리즈처럼 될수도있을가요?? 그때와 지금은 축구계 사정이 매우 달라서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여라도 챔스진출못한다면 시망될수도...
성쇠겠죠
아 ㅋㅋ 정신없이 뉴스올리다보니 ㄳ 한국어 공부한다는 놈이 안습이네
07년 9월이라...제대했을때 나온 거였구나
지금 호날두몸값만 1600억인데 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