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큰 딸이 지난 17일 어린 남매 둘을 데리고 제주엘 들어갔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제주에서 살아보기를 한다고 애를 데리고 먼저 제주행을 결심한데 영향을 받은듯 하다.
나는 지난 토요일 등산 갔다가 비를 흠뻑 맞아 몸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항공권 취소가 아까워 강행을
했더니 3벅4일 내내 고생이었다.
제주공항에 도착한 23일 점심때는 유명한 맛집이라고 찾아간 곳이 우진 고사리 해장국집이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번호표를 받았더니 한 시간 후에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동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시간이 다 돼서 찾아갔더니 그래도 손님들이 밀려 있었다. 한참 기다렸다가 구석진 방으로 안내되어 유명하다는 고사리 해장국을 맛을 보는데 해장국이 아니라 고사리를 고운 죽 같았다. 내가 보기엔 맛이 별로 였는데 홍보효과인듯 했다.
둘쨋날에는 본태박물관을 구경하였다. 추사의 서예작품이 볼만하였다. 그리고 남해도 지방에서 사용했던 나무로 조각된 상여가 전시돼 있었다. 험악하게 생긴 저승사자의 모습과 망자와 유족들을 위로할 목적으로 나무로 만든 꼭두들이 다양하게 진열돼 있었다. 거꾸로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있는 곡두들도 있었다.
셋째날에는 여미지 식물원과 이중섭 미술관을 구경하였다. 인근에 있는 이중섭거주지도 둘러보았다. 51년 피난으로 제주에 와서
아들 둘을 포함하여 네식구가 코딱지만한 방 한 칸을 얻어 지냈다고 한다. 네 사람이 누우면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할 좁은 공간이었다. 어렵게 사는 생활이지만 이중섭에게는 네 식구가 오손도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우리가 낮에 식물원 구경가면서 외손녀와 외손자를 데리고 갔다. 딸은 그 시간에 방을 비워 주어야 하다고 방청소를 하였다.
저녁때는 덮고 자던 이불과 베개호청,침대 카버 등을 세탁해야 한다고 벗기면서 베개에 얼룩이 졌다면서 투덜거렸다. 괜히 우리가 잘못해서 얼룩이 진 것처럼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자면서 베개 위에 타올을 깔고 잤으므로 우리가 땀을 흘리거나 침을 흘리기는 만무했다. 세탁소에 가서 세탁을 한 후 건조를 해 왔더니 다행히 얼룩은 지고 없었다.